선생님,
어렴풋한 짐작만으로도 요즘 선생님이 얼마나 곤고한 날을
보내고 계신지 그냥 다 알겠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 말을 붙이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저희 기수(중등논술 22기) 샘들이 ‘공부를 하자’
크게 발심하고 이번 나무날부터 공부모임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작부터 ‘방학에 공부하자’며 설왕설래했는데, 마침내 시간을 내고
마음을 다지고 뜻을 모으고 하여 이렇듯 ‘본때 있게’ 모이게 되었지요.

그간 선생님이 우리 기수에 대해 ‘흡족하지 않다(?)’ 언질을 주고
분발을 촉구할 때마다 속이 뜨끔뜨끔 찔렸더랬습니다.
딴 기수 샘들에 견주어 우리 샘들이 뭘 못해서 그런가 의심도 생기고
(어쩌면 우리 샘들의 큰 약점은 불성실했던 과제수행이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그것을 문제 삼으신다면 우리 샘들은 아마 입이
광주리만 해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면모에서는?)
한편으로는 우리야 우리 생긴 대로 나아가자 하면 그만이지
싶은 고약함이 불거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공부가 끝나는 시점으로
시간이 곤두박질치면서 샘들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안으로만 고일 뿐 밖으로 터뜨리지 못했던,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뜨거운 열의를 ‘우리끼리’ 폭발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 반성했던 거지요.
그래서 ‘우리를 내놓은 자식’ 취급하지 않으신다면
반드시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공부를 계속하자고 만장일치로
선생님을 향해 돌아앉아 우리끼리 입을 맞추게 된 겁니다.

선생님,
이 공부에 대한 선생님의 깊고 단단한 뜻과 도반들에 대한 다감하고
너른 애정을 잘 알고 있으므로 서슴없이 말씀 드립니다.
전날 김형준 선생님한테도 투정 부리듯 ‘큼직한 지식 덩이를 그렇듯
던져만 주면 나더러 어떻게 소화하라는 거냐‘고 한마디 했을 때,
김형준 샘의 답변을 읽고 크게 깨우쳤는데, 무엇보다 수십 년 단련된
고질적인 편견이 여전히 날 사로잡고 있다는 것과, 해오름에서의 공부란
그저 계기일 뿐 내면화라는 긴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아무리 지적으로 훌륭하고 정서적으로 완벽한 스승을 만났다 해도
그의 지식과 품성이 저절로 내 것으로 스며들지 않는다는 것쯤 알고 있는데도,
어째서 그 따위 졸렬한 말을 떠들었는지 부끄럽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좀 진지하게, 아니 심각하게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자 합니다. 우리 샘들이 그간 선생님에게서 배운 가르침은,
돌이켜볼수록, 선생님의 발치에서 헤작거리는 수준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이번 공부를 통해서 그야말로 선생님을 따라잡도록
(이 경지에 이르는 것이 샘들의 꿈이니까요.)
성실히 아니 대단히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이런 우리 샘들은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첫째, 좀 더 효율적인 공부모임 방식에 대한 지침을 주셔요.
둘째, 중등학생에게 어울리는 텍스트들에 대해 안내해 주셔요.
     (이 문제는 그간 강의 때 계속해서 샘들이 찾아야 할 과제로 안겨졌지만
      샘들 스스로, 또한 수업 안에서 그닥 시원한 답이 없었던 듯합니다.)
셋째, 이 공부가 끝나고도 선생님과 지속적인 소통이 가능한지를 알고 싶습니다.
     공부를 정리하고 안내받기 위해 선생님의 고견과 격려가 필요한 때문입니다.  
넷째, 우리 샘들도 칭찬과 가능성을 인정받고 싶은, 여리지만
      누구에게도 견주고 싶지 않을 만큼 훌륭한 샘들입니다.
      더러 칭찬해 주시고 부족하고 결핍된 면은 채워 주시고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크게 질타해 주셔요.

선생님,
답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