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만 선생님께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논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비교적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가 의문이 드는 몇 가지 문제가 있어 다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문학은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좋은 매개물입니다. 저 자신도 그랬고 많은 이들이 문학작품을 읽습니다. 자기에게 오래도록 남는 문학작품은 작가가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읽은 이가 감정을 이입하거나 공감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 함께 그 기분을 느끼고 싶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감정의 상태가 읽는 이에게 훗날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그저 흘러가듯 잊혀질 수도 있고 평생 그 느낌을 안고 힘든 삶이 닥칠 때 작은 위안을 삼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문학적 주제'라는 것도 어찌보면 원래는 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늘 쓰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몽실언니'를 읽고 주제를 말해 봐라 한다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어른들은 자기들이 생각한 어떤 답이 머릿속에 있겠지만 아이들은 여러 가지 대답을 합니다. 자기가 동생을 돌본 기억 때문에 난남이가 더 머릿속에 남아있는 아이도 있고, 몽실이가 너무 똑똑해서 열등감 느낀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읽고 나면 마음속에 무엇이 남을지는 '주제'라는 말로 한정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아이가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지요.
선생님께서는 교사가 주제를 선택하고 그 주제를 전개할 수 있는 다양한 텍스트를 정해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다룰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텍스트가 문학작품일 경우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의적인 교사의 해석에 따라 아이들이 그것을 열린 사고로서가 아닌 주입되는 또는 기계적인 사고에 머무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문학작품을 읽게 하고 다양한 이야기나 감상을 나눈 후에 그 작품에서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들을 이야기하게 하고, 다시 몇 가지 조사를 해서 아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제가 많은 부분을 잘 모르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쯤은 생각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주신 자료가 성의면이나 준비면에서 매우 꼼꼼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체계적인 면과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내용적인 면에 대해서는 몇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논술에서는 교사의 관점과 역량이 중요하다고 하셨기 때문에 더욱 더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 제제의 상처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감상보다는 근본 이유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업 안은 구조적인 문제의 피해자인 '아버지'의 곤혹한 입장에 대한 언급 생략하고 제제의 상처만을 이야기함으로써 제제를 때린 나머지 가족과 제제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게 됩니다. 또 이 문제를 의료와 신체, 교육의 방임이라고 단정하고 이 가정에 사회적 개입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개입이란 법적 대응을 말합니다. 아이들은 아동복지법을 미리 읽어와야 했기 때문에 제제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어떤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토론하게 됩니다.
사회구조적 모순으로서의 '가난', 그로 인한 아동학대를 이야기 한다면 처벌을 받고 신고 당할 사람이 과연 '아버지'입니까? 그는 힘없는 브라질의 민중일 뿐입니다. 근본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면 '아버지'를 왜 처벌해야 한다고 하는 것인지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암 사망률 1위'인 금천구에 제가 살고 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아이들은 가난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얼마 안 되는 수업료도 내지 못하고 미안해서 그만두고도 가끔 오곤 합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이 수업안 대로 논술 수업을 받는다면... 하고 상상해 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어떤 누구에게도 보편 타당하게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수업안이 특정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거든요.
사회구조적인 '가난'의 문제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를 말하고자 했다면 '나는 두렵지 않아요'같은 교재가 더 낫지 않았을까요? 파키스탄의 양탄자 짜는 아이들의 이야기이고 엄청난 노동과 열악한 임금에 신음하는 아이들을 대변하다 살해당한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저는 주제를 선정하는 것은 교사의 역량이고 자유이나 그에 맞는 텍스트를 고르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하고 교사 자신의 주관으로 인해 아이들이 겪게 될 혼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문학작품이 갖고 있는 것들을 아이들이 충분히 혹은 다양하게 느끼게 하는 것과 '논술'이라는 것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학적 접근과 '논술의 세계'에서의 통합적인 시각, 쟁점을 이용한 인식의 확장 작업은 같은 축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을 오독하면서 논술의 세계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수업 안을 내신 선생님께 죄송합니다. 만약 제 수업 안을 보셨다면 아마 백장도 넘는 이의제기를 하실 수 있겠지요. 저는 그저 문제를 제기하고 싶고 나누고 싶어서 그럽니다. 해오름에서 주신 교안이기에 더욱 더 열심히 본 것입니다.
너무 긴 글 죄송합니다. 할 말이 더 있지만 다음에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