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시인 33년 동안
나는 아름다움을 규정해왔다.
그때마다 나는 서슴치 않고
이것은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반역이다라고 규정해왔다.
몇 개의 미학에 열중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 미학 속에 있지 않았다
불을 끄지 않은 채 나는 잠들었다

아 내 지난 날에 대한 공포여
나는 오늘부터
결코 아름다움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규정하다니
규정하다니

아름다움을 어떻게 규정한단 말인가
긴 장마 때문에
호박넝쿨에 호박꽃이 피지 않았다
장마 뒤
너무나 늦게 호박꽃이 피어
그 안에 벌이 들어가 떨고 있고
그 밖에서 내가 떨고 있었다

아 삶으로 가득찬 호박꽃이여 아름다움이여

- 고은 시인의 작품입니다. 익고 익어 4잠 잔 누에가 고치실을 풀어내듯, 삶의 관조와 애정이 눈부십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이루려는 여러 도반님들과 함께 향유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