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비를 '삶의 완성'이라고 본다면, 그 길에 이르는 방법으로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노랑 애벌레처럼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의 하나로 나비가 되는 길, 호랑 애벌레처럼 온갖 도전과 실패를 거울삼아 나비가 되는 길, 나비가 된 친구들의 삶을 보고 그저 따라 하다 나비로 되는 길, 우리는 이 세 가지의 삶을 어느 것이 더 좋고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노랑 애벌레는 호랑 애벌레처럼 '삶의 의미'를 찾아 절실하게 헤매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애벌레가 하는 대로 무조건 따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한 마리 애벌레로서 풀을 뜯어 먹으며 사랑을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삶에 행복을 느낄 뿐이지요. 그러다 진정한 나비의 삶에 대한 지혜를 갖고 있는 늙은 애벌레를 만나 자연의 한 과정처럼 나비가 됩니다.  우리의 삶도 노랑 애벌레처럼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작은 것들에 행복할 줄 알고,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자기 성찰을 해 나간다면, 자신의 일(꿀을 모으는 일)을 통해 결국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꽃에게 열매를 맺게 해주는 ) 그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와 비교해서 호랑 애벌레는 훨씬 적극적으로 살았다고 봅니다. 평범한 애벌레의 삶보다는 좀더 높은 단계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꿈이 큰 만큼 도전과 실패의 아픔도 컸지요. 누구보다도 더 경쟁의 논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남을 짓밟고 정상까지 올라가도 보았습니다.  이런 호랑 애벌레의 삶은 현실 속에서 우리의 삶과 가장 유사해 보입니다. 남과는 무언가 다른 삶을 꿈꾸고, 삶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며, 때로는 승자의 기쁨과 패자의 아픔을 모두 겪은 후에야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라는 가슴 깊은 곳에서의 울림에 귀 기울이게 되는 그런 삶 말입니다. 결국 남과 다른 좀더 높은 삶보다는 남과 함께 하는 삶의 태도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노랑 애벌레이든 호랑 애벌레이든 삶을 좀더 가치있게 살아 보려는 마음 자세가 있으면 언젠가는 나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나비의 삶이 많아 질 때 이들이 곧 삶의 전형이 될 테고, 사회의 전체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곧 이상 사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