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모둠원 : 이임숙 윤은미 주은숙 김경옥 아름다운 분(그날 이름표를 놓지 않아 깜박 이름을 못 알아봤네요. 죄송합니다)
*꼬리 없는 쥐
- 꼬리를 자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해 본다면?
외적 요인: 생존권의 문제, 거대한 물질 문명앞에 희생되는 개인의 삶
내적 요인 : 쥐 자신이 자신의 본질이라고도 볼 수 있는 꼬리를 잘라낸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없다는 것. 하지만 정체성이 있다 하여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잆는 사회구조.
- 꼬리를 자른 후 얻은 것은 무엇인가?
생존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발발거리고 돌아다녀야 하는 쥐의 본능은 일허버린채, 무기력하게 앉아 손만 까딱거리는 센서의 부속품으로 전락함.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자신의 모든 가치를 잃어버린 최소한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 쪽은?
1. 길을 떠난 동그라미
- '조각을 잃어버려'에서 '조각'이 의미하는 것은?
'조각'을 자신을 완벼하게 채워줄 수 있는 것들 또는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완전한 동그라미'를 쫓는 것 자체가 하나의 허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잃어버렸다는 것' 또한 이가 빠진 모습 그자체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임을 깨닫지 못하고 외부로 부터 각인된 하나의 이상형에 자신을 비교하는 모습으로 해석했습니다.
- 여행에서 만난 '존재' 는 삶의 어ㅕ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시행착오들 또는 노력 등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주변의 모든 것들 즉 작지만 소중한 것들오 해석했습니다.
→ 이과정에서 동그라미의 삶의 태도는 어떠한가?
자신의 이상향을 추구하며 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사소한 즐거움이 주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아직은 깨닫지 못하는 태도라고 이해했습니다.

2. 짝을 만난 동그라미
- '짝을 만났다'는 것의 의미?
일시적으로 추구했던 바를 이루었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을 실현해 보게 된다. 그것이 성공이든 명예이든 부이든.......
- 짝을 만난후 동그라미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속도감은 얻었지만 자신이 그동안 누려왔고 만났던 작은 것들의 소중함은 오히려 잃게 된다. 마치 요즘 현대인이 자신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준다고 굳게 믿고 소유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도구들 -자동차,세탁기, 훌륭한 목욕 시설, 냉장고, 홈시어터 등 모든 것이 갖추어진 완벽한 집에서 살지만 오히려 더 시간이 없고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급격한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신의 삶에 대한 소중함과 본질을 알지 못하고 외부에서 강요된 가치관에 자신을 맞추어 살다보니 .......
→  이 과정에서 알 수 있는 동그라미의 삶의 태도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에 편승해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는 모습

3. 다시 길을 떠나는 동그라미
- '내려놓은 조각'은 무엇인가?
진정한 자신을 찾아 떠나는 모습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또 완전한 동그라미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허상이라고 본다면 조각을 내려 놓은 것은 자신이 그동안 지배받았던 욕심이나 집착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 동그라미는 다시 어디로 길을 떠날까요?
자신의 만족과 자신만의 이상을 쫓던 자기 중심적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주변에 있는 것들 , 완전한 동그라미가 되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며 원래의 자신의 모습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 이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동그라미의 삶의 태도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모습.

♥ 글을 올리며 이 생각 저 생각
택스트와 비디오에 대한 토론에 대한 정리와 이해는 되었지만,  토론을 하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습니다. '이거 너무 택스트에 대한 이해를 도식적으로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현대사회의 문제 인간 소외의 문제를 끊임 없이 다루고 이야기 하는데, 과연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자신이 감내할 수 없는 속도감을 우리 모두는 견디고 살고 있는데 그 속도감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우리가 마음으로 늘 바라는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만약에 내가 꿈꾸는 삶을 위해 동그라미처럼 조각을 내려 놓지 못한다면 우리는 늘 갈등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지금의 내 상황이 딱 그렇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현실의 문제만 보이는 답답한 삶. 이것이 현재 내가 겪고 있는 딜레마이며 과연  어떻게 내 마음이 정리될 것인가?
어제도 집 앞에 나갔다가 전경들 닭장 차 마냥 쭉 늘어서 있는 학원차들을 보았다. 아이들을 그 답답한 학원에 밤12시 1시까지 잡아다 놓기 위해 서있는 차들은 아무리 외관을 예쁘게 칠해 놓아도 내게는 끔찍한 감옥으로만 보인다. 아이들이 불쌍하다. 내아이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 곳을 다니고 있다. 나도 현실의 무게 앞에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어른들이야 40킬로의 속도로 살건 50킬로의 속도로 살 건 어른이니까 어느 정도 감내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엇인가? 모두들 교육 문제를 떠들어 대지만 어느 누가 그 아이들을 이 깊고 긴 수렁에서 꺼내줄 것인가? 반드시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더 좋은 동그라미가 되라고 아직 잘 구르지도 못하는 동그라미를 우리는 얼마나 빨리 굴리며 몰아세우고 있는가? 이런 문제를 못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늘  내 아이만은 자기 모습대로 천천히 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남들처럼 빨리 굴릴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진정으로 '조각을 내려 놓을' 용기가 있을까? 그것도 모두가 다같이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 그렇게 되도록 나부터 노력하자고 ........ 모두 맞는 말이지만  너무 회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