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위한 책
-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이선희 해오름 사회교육아카데미 강사


"아이들에게 선한 의지를 주시고
그들의 힘을 북돋워 주시고,
그들의 수고에 복을 내려주소서.
아이들을 편한 길로 인도하지 마소서.
그렇지만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소서."
- 아누슈 코르착의 『홀로 하나님과 함께』 중 「한 교사의 기도」중에서

선생님.
어떤 책을 읽고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생각이 아득해지는 충격에 빠지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가끔 그런 경험을 합니다. 그때마다 ‘내가 왜 이걸 좀 더 일찍 몰랐을까,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사고의 폭, 내 인생의 깊이가 달라졌을 텐데……’, 하고 짧은 탄식의 소리를 내놓습니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책을 읽을 때면 더 그렇습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내 아이들을 좀 더 잘 키울 수 있었을 텐데, 진작 알았더라면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보다 더 잘해줄 수 있었을 텐데’하고 말입니다.

선생님,
이건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인데요, 얼마 전 집에서 추석맞이 대청소를 했습니다.
저희 집 부엌에는 일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라디오가 하나 있는데요. 이 라디오가 가스레인지에서 멀리 떨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름때가 끈적끈적하게 앉아있었는데, 전자 레인지 위에 얹어져 있어서 잘 몰랐었지요. 요즘은 먼지 잘 닦이는 휴지도 있어 그걸 가지고 닦으니 금방 제 색이 나오며 깨끗해집니다. 신나서 쓱싹쓱싹 닦아버렸는데 아차! 하고 어떤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에게 이런 기쁨을 맛보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이를 놓쳐버리다니, 쯧쯧.
저희 집 아이는 마음 내키면 엄마를 돕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비질을 하면 자기가 걸레로 닦겠다고 하고, 아니면 자기가 청소기를 돌릴 테니 엄마는 걸레질을 하라고 합니다. 청소를 한 후 잘 정돈되고 깨끗해진 모습에 두 모자가 흐뭇해하며 다시 어지르는 게 문제지만서도요. 더러워진 라디오를 닦으면서 아이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손길 하나에 금방 반짝반짝 제 모습을 되찾는 걸 보는 기쁨, 자기 수고(노동)에 대한 뿌듯함, 아울러 자기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등.
더러움을 닦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예요. 우리는 그 일을 통해 세상 때에 찌들은 우리 자신도 닦을 수 있잖아요.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전 그만 아이에게서 그런 기쁨 하나를 빼앗은 겁니다. 여느 때에도 얼마나 많이 이런 기회를 빼앗았던 것일까요? 자발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정작 자발성을 발휘할 기회는 몇 번이나 주었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