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글을 읽고 글쓴이가 제기하는 문제 쟁점을 찾아 그 중심 되는 내용을 요약 설명하고, 이 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구술하시오.


*** 장밋빛 전망과 수치의 함정 /이완기 (MBC기술본부장)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표현하는데 있어 수치만큼 객관성과 구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수량화하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다. 상품의 질, 매체경쟁력, 경제상황, 건강상태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물과 현상들이 숫자로 표시되고, 심지어는 인간의 아름다움마저도 치수와 점수로 평가되는 현실이지만, 수량화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수량화는 사람들에게 절대적 믿음을 심어주는 마력이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관련 정책이나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분석하고 전망하는데 있어, 통계수치를 자주 이용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수량화가 갖는 신비한 힘 때문이다. 정부가 특정 정책의 미래 전망을 수량화하여 발표할 때, 그 통계전망치의 근거나 결과를 분석하는 조건과 방법 등은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항상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그 수치 자체일 뿐이다.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수치의 장난

물론 통계전망치는 전제된 조건의 범위 안에서 일정한 과학적 근거를 가진다. 하지만, 그 전제조건의 합리성을 따지는 일은 쉽지도 않을뿐더러, 미래에 대한 예측인 만큼, 어느 누구도 그 통계수치의 옳고 그름을 적극적으로 가리려 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런 경우 수량화는 오히려 진실을 가리고 실상을 모호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지난 5월25일 감사원이 발표한 ‘청년고용 증진시책 추진실태’에 대한 감사결과에 따르면, 그 동안 정부 각 부처가 발표했던 인력수급전망의 정책차질이 상당부분 잘못된 전망치에 기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2005년 정보통신기술(IT) 수요인력과 관련하여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약 14만명이 부족한 것으로 예측한데 반해,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2만9000명이 부족한 것으로 전망하였다. 부족인원에 대한 전망치에서 조사 기관에 따라 무려 4.8배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생명공학기술(BT) 분야에서도, 문화콘텐츠기술(CT) 분야에서도 각각 11.7배, 4.5배의 격차로 나타났다.

이것은 정부 각 부처에서 작성한 통계전망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못된 예측자료는 잘못된 정책을 낳고, 잘못된 정책은 국민에게 커다란 재앙으로 돌아온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된 IT분야의 통계전망치는 IT인력 양성정책에 반영됨으로써, 2002년 IT관련 학과 졸업생이 12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2003년도 IT산업체 채용예정 인원은 2만명에 불과했다. 잘못된 통계수치에 의존한 IT인력 확대정책이 오히려 인력수급의 심한 불균형을 초래한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사례 하나를 더 들어보자. 97년 ‘지상파 디지털방송 추진협의회’는 ‘지상파디지털TV 방송방식 조사보고서’에서 국내 지상파디지털TV 전송표준으로 미국방식을 채택할 것을 정보통신부에 건의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방식을 채택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경제·산업적 효과를 내세웠고, 그 유일한 근거는 97년에 퓨처 테크놀로지가 작성한 지상파디지털TV 시장예측 통계자료였다. 그러나 이 자료는 전송방식 논쟁이 한참이던 2002년 당시만 해도 실제 시장규모와 너무도 큰 차이를 보여 자료로서 인정받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16만개 일자리, 알고 보니 월 170만원짜리 한달 일자리

이 자료는 2002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될 디지털TV 누적대수를 3700만대로 예측했다. 추진협의회의 논거는 미국의 디지털TV시장이 예측한 대로 단기간에 크게 성장할 것이므로 미국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산업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이 디지털TV를 시작한 98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의 총 디지털TV 누적판매대수는 약 300만대에 불과했다. 전망과 실제 사이에 무려 12배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퓨처 테크놀로지의 이 터무니없는 예측 자료는 디지털TV 전환정책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99년에 있었던 5개 경제부처 차관회의에서도 재활용된 바 있다.

통계수치의 문제는 매체에도 책임이 있다. 정부정책이 발표되면 대부분의 매체들은 정부가 강조하는 내용만을 앞세워 충실하게 전달하는 반면, 통계전망치 자체에 대해서는 분석이나 비판을 기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 1월에 한 중앙일간지가 보도한 다음과 같은 기사는 그 좋은 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따르면 DMB시장은 콘텐트, 단말기, 장비 등에서 2010년까지 모두 1조4000여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16만3600개의 일자리도 기대된다.” 이 기사는 전망수치의 정확성 여부와는 별개로, 통계수치의 앞뒤 상관성에 대한 분석을 유보함으로써, 엄청난 고용효과가 있는 것처럼 독자들을 혼란시켰다.

이 기사에서 핵심은 16만여개의 일자리다. 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16만여 개의 일자리 창출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면밀히 기사의 내용을 뜯어보면, 여기서의 일자리는 지속적인 고용의 개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사 내용대로 2005년부터 2010년까지의 DMB시장 총매출액 1조4000억원이 16만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면, 5년 동안 1개 일자리가 생산해 내는 총 매출액은 약 850만원이며, 1년에 1개 일자리가 생산해내는 매출액은 약 17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즉 16만여명의 노동자들은 매년 월급 170만원으로 1달 일하고 11달을 쉬어야 함을 의미한다. 매출과 일자리의 상관관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이 기사는 상식을 가진 국민들에게는 기만적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정부에게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정책은 매우 솔깃한 구호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전망과 자료에 근거해 정책을 입안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다. 잘못된 전제와 엉터리 통계수치로 나라의 미래를 재단하는 것은 언젠가는 들통 나기 마련이며 위험천만한 일이다. 정부의 자세를 바로 잡는 것은 언론밖에 없다. 그래서 기사화하기 전에 통계수치를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있는 매체가 기대된다. 그런데 그 희망을 품는 우리가 자꾸 초라해지는 것은 이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