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논술 자료함
은둔과 상승의 욕망, 아파트 / 김찬호(연대 사회학과 교수)
나는 다시 익숙한 내 아파트의
닫힌 구조 속에 위안을 느끼며 돌아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아파트의
닫힌 구조를 사랑한다
완전한 내 공간 하나를 늘 갖고 싶었고
그 꿈을, 아파트의 닫힌 구조가
완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았으므로 (백미혜 ‘완전한 공간’ 중)
1960년대 서민 주택으로 등장하여 70년대 후반부터 중산층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이제는 농촌에도 곳곳에 들어서는 아파트. 이윽고 지난 2000년을 분기점으로 전체 가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시간이 지나면서 슬럼으로 퇴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이란 곧 아파트의 소유를 의미하고, 이미 그 꿈을 이룬 중산층과 상류층은 더 좋은 아파트를 향해 매진한다. 그 결과 부동산의 인플레이션은 대개 아파트 가격이 주도한다.
우리의 전통적 주거문화나 공간 심미감각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가 이토록 열망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편리함 때문이다. 난방, 방범, 자잘한 수리 등에서 단독주택에 비해 훨씬 간편하다. 그리고 단지가 제공하는 공원과 주차장이 생활의 쾌적함과 편의를 제고해준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아파트의 또 한 가지 매력은 단절 (‘apart’)된 생활구조가 주는 자유로움이다. 위에 인용한 시는 ’자기만의 집‘에 대한 오롯한 갈망을 잘 담아내고 있다. 시의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은 이러하다. 공중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 윗집 여자와 함께 아파트의 보일러 공사가 지체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을 때는 친밀함을 느끼면서 서로 등을 밀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저녁에 보일러가 고쳐지자 그 친밀함이 사라져버리면서 익숙한 폐쇄 공간에 다시 돌아와 안온함을 느끼게 된다. 타자와 어울리고 싶은 욕망과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에 은둔하고 싶은 욕망이 우리에게는 공존하는 것이다.
아파트는 각 집들 사이의 물리적 상호연관성이 매우 긴밀하다. 반면에 주민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매우 희박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일으키는 소음 때문에 아랫집에서 잠을 설치는 경우처럼 작은 부주의가 다른 집에 적지 않은 폐를 끼치게 되는데, 그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해 이웃 관계가 험악해지기도 한다. 그렇듯 사람들 사이에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 거대한 공동주택이 유지되는 것은 전문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덕분이다. 관리사무소가 그것이다. 주민들에게 그 실체는 경비원과 관리비 고지서, 그리고 이따금 나오는 안내 방송 등으로 체험될 뿐이다. 평소에 주민들은 그 이상으로 관심이 없고,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다.
바로 그것이 아파트의 맹점이다. 아파트 관리에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집행된다. 각 집에서는 고지서대로 꼬박꼬박 관리비를 납부하지만,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개보수, 단지내의 대형 공사 등에는 각종 이권이 연루되기 십상이다. 만일 위탁관리업체가 비양심적인데 입주자대표회의마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다면 엉뚱한 곳으로 관리비가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아파트를 둘러싼 부조리는 재개발 조합의 숱한 파행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파트의 매력은 단절된 생활구조가 주는 자유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의 아파트가 저소득층을 위한 거라면 한국의 경우에는 준고급 주택으로 정착됐다
재개발의 목적이 재산가치의 증식에 있듯이, 아파트는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었다. 무슨 동, 몇 단지에 사느냐를 가지고 생활의 급수를 매기는 것이다. 이점은 프랑스의 발레리 줄레조라는 교수가 쓴 <한국의 아파트 연구>라는 책에서 잘 분석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의 아파트가 저소득층을 위해 고층으로 단지화한 것인데 비해 한국의 경우 매우 준고급 주택으로 정착되었다. 거기에는 “대규모 주택정책과 주택소유정책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주택정책과 정부와 재벌기업간의 긴밀한 관계, 국가의 급성장을 주도한 권위적 정부에 의한 양산과정 통제”가 있었고, “이후 주택부문에 간접적으로 개입했던 정부가 후퇴하고 중산층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아파트단지는 상업주택건축의 기본적 틀로 자리 잡아 ‘새 것’ ‘깨끗한 것’ ‘도시로의 통합’ ‘사회적 지위의 상승’의 이미지를 획득하게 됐다.”
그러한 추세는 최근 한결 분명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문에 실리는 아파트 분양 광고의 문구를 보자. ‘처음부터 끝까지 최고의 자부심’, ‘정상의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라면 어울리는 주소도 특별해야 합니다.’, ‘세상의 명예가 되는 Royal Address’, ’Castle First’, ‘ Noble Community’, ‘수준 높은 **의 프라이드’, ‘주거 명품’…. 이런 문구에 곁들여지는 설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품격’이다. 다른 사람들과 뭔가 구별되고 싶은 욕망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낼까? ‘마침내 당신이 꿈꾸던 모든 생활이 한 곳에서 이뤄집니다. 첨단의 안전, 자연이 어우러지는 건강, 다양한 즐거움이 함께 하는 문화생활, 아이를 위한 최고의 교육환경까지…. 이곳에선 모두가 당신의 것이 됩니다.’라든가 ‘Intelligent High-end Residential’ 등의 문구에서 잘 나타나듯 웰빙의 윤택함과 최신 정보기기의 편리함, 그리고 교육환경의 탁월함을 내세운다.
시인이 말한 ‘완전한 공간’은 바야흐로 개별 가구가 아니라 단지 차원에서 실현되는 듯하다. 아파트는 집합적 단위로 동질성을 확보하면서 그 자체로 자기 충족적 구조로 완결되어 가는 것이다. 그 주거 공간에 담기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신문에 전면광고로 실리는 단지의 상상도가 자아내는 꿈은 어떤 빛깔일까.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 아래 구석에는 매우 희미하고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이미지는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이 글에 나타난 아파트는 현대인의 어떤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현대인 삶의 태도에 깃든 문제를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익숙한 내 아파트의
닫힌 구조 속에 위안을 느끼며 돌아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아파트의
닫힌 구조를 사랑한다
완전한 내 공간 하나를 늘 갖고 싶었고
그 꿈을, 아파트의 닫힌 구조가
완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았으므로 (백미혜 ‘완전한 공간’ 중)
1960년대 서민 주택으로 등장하여 70년대 후반부터 중산층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이제는 농촌에도 곳곳에 들어서는 아파트. 이윽고 지난 2000년을 분기점으로 전체 가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시간이 지나면서 슬럼으로 퇴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이란 곧 아파트의 소유를 의미하고, 이미 그 꿈을 이룬 중산층과 상류층은 더 좋은 아파트를 향해 매진한다. 그 결과 부동산의 인플레이션은 대개 아파트 가격이 주도한다.
우리의 전통적 주거문화나 공간 심미감각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가 이토록 열망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편리함 때문이다. 난방, 방범, 자잘한 수리 등에서 단독주택에 비해 훨씬 간편하다. 그리고 단지가 제공하는 공원과 주차장이 생활의 쾌적함과 편의를 제고해준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아파트의 또 한 가지 매력은 단절 (‘apart’)된 생활구조가 주는 자유로움이다. 위에 인용한 시는 ’자기만의 집‘에 대한 오롯한 갈망을 잘 담아내고 있다. 시의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은 이러하다. 공중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 윗집 여자와 함께 아파트의 보일러 공사가 지체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을 때는 친밀함을 느끼면서 서로 등을 밀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저녁에 보일러가 고쳐지자 그 친밀함이 사라져버리면서 익숙한 폐쇄 공간에 다시 돌아와 안온함을 느끼게 된다. 타자와 어울리고 싶은 욕망과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에 은둔하고 싶은 욕망이 우리에게는 공존하는 것이다.
아파트는 각 집들 사이의 물리적 상호연관성이 매우 긴밀하다. 반면에 주민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매우 희박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일으키는 소음 때문에 아랫집에서 잠을 설치는 경우처럼 작은 부주의가 다른 집에 적지 않은 폐를 끼치게 되는데, 그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해 이웃 관계가 험악해지기도 한다. 그렇듯 사람들 사이에 관계와 소통이 단절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 거대한 공동주택이 유지되는 것은 전문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덕분이다. 관리사무소가 그것이다. 주민들에게 그 실체는 경비원과 관리비 고지서, 그리고 이따금 나오는 안내 방송 등으로 체험될 뿐이다. 평소에 주민들은 그 이상으로 관심이 없고,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다.
바로 그것이 아파트의 맹점이다. 아파트 관리에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집행된다. 각 집에서는 고지서대로 꼬박꼬박 관리비를 납부하지만,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개보수, 단지내의 대형 공사 등에는 각종 이권이 연루되기 십상이다. 만일 위탁관리업체가 비양심적인데 입주자대표회의마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다면 엉뚱한 곳으로 관리비가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아파트를 둘러싼 부조리는 재개발 조합의 숱한 파행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파트의 매력은 단절된 생활구조가 주는 자유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의 아파트가 저소득층을 위한 거라면 한국의 경우에는 준고급 주택으로 정착됐다
재개발의 목적이 재산가치의 증식에 있듯이, 아파트는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었다. 무슨 동, 몇 단지에 사느냐를 가지고 생활의 급수를 매기는 것이다. 이점은 프랑스의 발레리 줄레조라는 교수가 쓴 <한국의 아파트 연구>라는 책에서 잘 분석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의 아파트가 저소득층을 위해 고층으로 단지화한 것인데 비해 한국의 경우 매우 준고급 주택으로 정착되었다. 거기에는 “대규모 주택정책과 주택소유정책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주택정책과 정부와 재벌기업간의 긴밀한 관계, 국가의 급성장을 주도한 권위적 정부에 의한 양산과정 통제”가 있었고, “이후 주택부문에 간접적으로 개입했던 정부가 후퇴하고 중산층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아파트단지는 상업주택건축의 기본적 틀로 자리 잡아 ‘새 것’ ‘깨끗한 것’ ‘도시로의 통합’ ‘사회적 지위의 상승’의 이미지를 획득하게 됐다.”
그러한 추세는 최근 한결 분명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문에 실리는 아파트 분양 광고의 문구를 보자. ‘처음부터 끝까지 최고의 자부심’, ‘정상의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라면 어울리는 주소도 특별해야 합니다.’, ‘세상의 명예가 되는 Royal Address’, ’Castle First’, ‘ Noble Community’, ‘수준 높은 **의 프라이드’, ‘주거 명품’…. 이런 문구에 곁들여지는 설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품격’이다. 다른 사람들과 뭔가 구별되고 싶은 욕망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낼까? ‘마침내 당신이 꿈꾸던 모든 생활이 한 곳에서 이뤄집니다. 첨단의 안전, 자연이 어우러지는 건강, 다양한 즐거움이 함께 하는 문화생활, 아이를 위한 최고의 교육환경까지…. 이곳에선 모두가 당신의 것이 됩니다.’라든가 ‘Intelligent High-end Residential’ 등의 문구에서 잘 나타나듯 웰빙의 윤택함과 최신 정보기기의 편리함, 그리고 교육환경의 탁월함을 내세운다.
시인이 말한 ‘완전한 공간’은 바야흐로 개별 가구가 아니라 단지 차원에서 실현되는 듯하다. 아파트는 집합적 단위로 동질성을 확보하면서 그 자체로 자기 충족적 구조로 완결되어 가는 것이다. 그 주거 공간에 담기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신문에 전면광고로 실리는 단지의 상상도가 자아내는 꿈은 어떤 빛깔일까.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 아래 구석에는 매우 희미하고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이미지는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이 글에 나타난 아파트는 현대인의 어떤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현대인 삶의 태도에 깃든 문제를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