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논술 자료함
씨네21칼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독학을 찬양함 /최보은 <진주신문> 편집국장
2005.10.14 14:00
나는 학교가 제조해낸 지식인들보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이윤기 선생 같은 ‘독학자’들을 신뢰한다. 명문대 출신보다는 무명대학 출신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한 사람을 더 평가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그 제도의 정당성에 한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거나, 그 제도의 강제성에 한번도 저항한 적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독립적인 사고의 소유자라고 믿겠는가. 물론 김, 노 두 대통령의 경우, 자의가 아니라 가정 형편상 다니지 못한 것이지만, 사후적으로 그것이 두 사람에게 위대한 독학자로서의 계기를 열어준 것은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시험벌레(말 그대로 ‘벌레’!)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딴짓’을 하며 땡땡이친 사람의 지성이, 무슨 뜻인지 왜 배워야 하는지도 묻지 않은 채 그저 달달 외워 받은 점수로 우쭐대면서 사는 이른바 일류대 출신들보다 훨씬 더 우월한 것을 수도 없이 보고 살아왔다.
극소수 학교 제도의 수혜자들이 이른바 ‘학벌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유포해내는 데 맞서, 이제 그들에게 거꾸로 ‘학벌밖에 가진 것 없는 자의 콤플렉스’를 지적해줄 때가 온 것 같다. 여기 몇 가지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과연 학벌이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지 의심해보자.
1. 경기고 서울대 스탠퍼드 박사 출신 홍석현 주미대사와 역시 경기고 서울대 럿거스대 박사 출신 이회성씨는 홍석현씨가 거주하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만난다. 언론사 사장인 홍씨가 현금보따리를 건네자, 유력 정치인의 동생인 이씨는 영수증 한장 안 써주고 그 보따리를 받아간다.
2. 이른바 명문대 출신 국회의원들과 국정감사 피감기관 소속 검사들이 술자리를 벌인다. 검사 출신 주성영 의원은, 미처 술자리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여주인에게 ‘년’자를 붙였다. 한 간부급 검사는 성희롱 발언을 했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 야당 대변인이나 언론 같은, 자의적으로 의제를 설정할 권력을 가진 이들은 절대로 “학벌 높은 자들이 하는 짓을 보라. 학벌을 맹신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서울대 철학과 졸업생 김영삼과 상고 출신 김대중의 현격한 지성 차를 목격한 바 있지만, 학벌이 안겨주는 프리미엄에 중독된 사람들의 구조적 훼방에 의해 눈뜬 장님처럼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개인적으로, 쓸데없이 긴 가방끈을 들고 학문 세계가 아닌 학문 시장에 진입한 사람들을 보면 투자한 시간과 경비를 회수하기 위해 그가 무슨 쓸데없이 어려운 말들로 우리를 괴롭히려 들 것인가, 의심이 든다).
세상사를 통찰하는 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파편화된 지식과, 처세의 기술과,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할 인맥 리스트와, 자본시장에서 유리한 고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자격증, 이것이 지금의 학교가 확실하게 보장하는 몇 안 되는 것들이다. 지금의 학교는 (대개는 왜 벌어야 되는지도 모르는 채) 돈 벌기 바쁜 부모들을 위한 가장 교활한 형태의 가장 값비싼 탁아소이며, 자본주의가 그토록 찬양하는 가족주의의 이상에 어긋나게도, 될 수 있으면 가족들을 더 일찍 헤어지게 하고, 더 모일 수 없게 만드는 훼방꾼에 불과하다. 학교(와 그 제도의 본질적 모순에 기생하는 사교육기관들)는 자기 할 도리를 다했다고 믿고 싶어하는 부모들에게 가장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그 부모가 자녀 양육을 위해서 써야 할 시간에 벌어온 돈의 대부분을 갈취해간다. 그렇게 해서 자녀들에게 빛나는 대학 졸업장이 안겨졌다 한들, 대부분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다시 자신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자본시장에서 피튀기는 경쟁을 벌이는 악순환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일인데 말이다.
서울대 본고사 부활이다, 자립형 특목고 설립이다 하는, 교육개혁에 대한 속시끄러운 온갖 논의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어떤 교육개혁 전문가들도 말하지 않는 진실 하나를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중에서 몇 안 되는 진짜 중요한 것들은, 사실은 다 우리가 독학할 수 있는 것들일 뿐 아니라, 오히려 독학해야만 전인적으로 종합적으로 깨우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2005.10.14 14:00
나는 학교가 제조해낸 지식인들보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이윤기 선생 같은 ‘독학자’들을 신뢰한다. 명문대 출신보다는 무명대학 출신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한 사람을 더 평가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그 제도의 정당성에 한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거나, 그 제도의 강제성에 한번도 저항한 적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독립적인 사고의 소유자라고 믿겠는가. 물론 김, 노 두 대통령의 경우, 자의가 아니라 가정 형편상 다니지 못한 것이지만, 사후적으로 그것이 두 사람에게 위대한 독학자로서의 계기를 열어준 것은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시험벌레(말 그대로 ‘벌레’!)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딴짓’을 하며 땡땡이친 사람의 지성이, 무슨 뜻인지 왜 배워야 하는지도 묻지 않은 채 그저 달달 외워 받은 점수로 우쭐대면서 사는 이른바 일류대 출신들보다 훨씬 더 우월한 것을 수도 없이 보고 살아왔다.
극소수 학교 제도의 수혜자들이 이른바 ‘학벌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유포해내는 데 맞서, 이제 그들에게 거꾸로 ‘학벌밖에 가진 것 없는 자의 콤플렉스’를 지적해줄 때가 온 것 같다. 여기 몇 가지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과연 학벌이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지 의심해보자.
1. 경기고 서울대 스탠퍼드 박사 출신 홍석현 주미대사와 역시 경기고 서울대 럿거스대 박사 출신 이회성씨는 홍석현씨가 거주하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만난다. 언론사 사장인 홍씨가 현금보따리를 건네자, 유력 정치인의 동생인 이씨는 영수증 한장 안 써주고 그 보따리를 받아간다.
2. 이른바 명문대 출신 국회의원들과 국정감사 피감기관 소속 검사들이 술자리를 벌인다. 검사 출신 주성영 의원은, 미처 술자리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여주인에게 ‘년’자를 붙였다. 한 간부급 검사는 성희롱 발언을 했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 야당 대변인이나 언론 같은, 자의적으로 의제를 설정할 권력을 가진 이들은 절대로 “학벌 높은 자들이 하는 짓을 보라. 학벌을 맹신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서울대 철학과 졸업생 김영삼과 상고 출신 김대중의 현격한 지성 차를 목격한 바 있지만, 학벌이 안겨주는 프리미엄에 중독된 사람들의 구조적 훼방에 의해 눈뜬 장님처럼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개인적으로, 쓸데없이 긴 가방끈을 들고 학문 세계가 아닌 학문 시장에 진입한 사람들을 보면 투자한 시간과 경비를 회수하기 위해 그가 무슨 쓸데없이 어려운 말들로 우리를 괴롭히려 들 것인가, 의심이 든다).
세상사를 통찰하는 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파편화된 지식과, 처세의 기술과,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할 인맥 리스트와, 자본시장에서 유리한 고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자격증, 이것이 지금의 학교가 확실하게 보장하는 몇 안 되는 것들이다. 지금의 학교는 (대개는 왜 벌어야 되는지도 모르는 채) 돈 벌기 바쁜 부모들을 위한 가장 교활한 형태의 가장 값비싼 탁아소이며, 자본주의가 그토록 찬양하는 가족주의의 이상에 어긋나게도, 될 수 있으면 가족들을 더 일찍 헤어지게 하고, 더 모일 수 없게 만드는 훼방꾼에 불과하다. 학교(와 그 제도의 본질적 모순에 기생하는 사교육기관들)는 자기 할 도리를 다했다고 믿고 싶어하는 부모들에게 가장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그 부모가 자녀 양육을 위해서 써야 할 시간에 벌어온 돈의 대부분을 갈취해간다. 그렇게 해서 자녀들에게 빛나는 대학 졸업장이 안겨졌다 한들, 대부분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다시 자신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자본시장에서 피튀기는 경쟁을 벌이는 악순환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일인데 말이다.
서울대 본고사 부활이다, 자립형 특목고 설립이다 하는, 교육개혁에 대한 속시끄러운 온갖 논의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어떤 교육개혁 전문가들도 말하지 않는 진실 하나를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중에서 몇 안 되는 진짜 중요한 것들은, 사실은 다 우리가 독학할 수 있는 것들일 뿐 아니라, 오히려 독학해야만 전인적으로 종합적으로 깨우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