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논술 자료함
서울대 구술 시험 준비 어떻게 할까?
박형만(해오름논술아카데미 원장)
1. 대학은 구술 시험을 통해 학생의 어떤 점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일까?
다음 글은 지난 2004학년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정시모집에 지원한 도반이 쓴 시험후기입니다. 이 학생은 서울대 기준으로 내신 5등급이었고, 서울대 언어능력경시대회 국어부문 대상 수상경력이 있습니다. 이 글 속에 구술시험의 면면들이 들어 있으므로 꼼꼼하게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쓴 도반은 현재 서울대 법대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저는 원서를 제출한 후 수시를 위한 기본적인 공부를 하였습니다. 수능 다음날 1차 전형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일주일 조금 넘게 집중적인 대비를 하였습니다. 졸업고사가 일주일간 있었기 때문에 저녁에는 졸업고사를 대비해 공부했고, 대신 낮 시간에는 최대한 집중해서 수시에 대비했습니다.
대비과정에서 선생님과 우리 사회 주요 쟁점과 문제를 논하며 ‘생각의 틀’을 잡기 위해 노력했고, 법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은 따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생각의 틀’을 강조하셨는데 저는 그것을 ‘합리적인 가치관’을 형성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평소 보수적 수구 언론에 의해 길들여진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선생님과 계속 대화를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하나 바꾸어 갔습니다.
심층면접이 있었던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 차를 타고 서울대학교로 갔습니다. 8시 20분쯤 도착하여 대기실로 들어가니 벌써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조교에게 핸드폰을 맡기고, 잠시 그 동안 수업시간에 정리한 노트를 봤습니다. 대기실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긴장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면접을 보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에 8시 40분쯤 면접실 바로 앞 복도에 놓여진 책상에 앉도록 안내받았습니다. 첫 번째 면접을 보는 학생은 그때부터 기본소양과 학업적성 시험지를 받아 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슬쩍 보려 했으나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았고, 어느덧 9시가 되어 첫 번째 학생이 면접실로 들어가고 저는 앞 책상으로 옮긴 뒤 시험지를 받았습니다.
기본 소양은 (가), (나), (다) 세 지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가)는 영어 지문이었는데 10줄 정도로 작년에 비해 길었습니다. 제가 해석을 치밀하게 하지 못한 관계로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말하기 힘들지만, 대충 절대적인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 지문은 국한문 혼용 지문이었고 동일한 운동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릴레이가 각자 ‘제한된 낙하 운동’과 ‘진자 운동’ 이라고 다르게 해석한 예를 들며, 절대적인 진리는 알 수 없고 단지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 의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 지문은 장군과 시종의 대화였는데, 양떼가 일으키는 먼지 구름에 싸움이 일어난 것으로 착각한 장군이 시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내용이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가) 지문을 해석하고 (가)와 (나)의 관계를 말하라는 문제였고, 두 번째 문제는 (다) 지문의 두 인물을 (가)와 (나)의 관점에서 각각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학업 적성은 편견과 가치관 등을 갖고 있는 하나의 인간에 불과한 판사에 의해 내려진 판결은 과연 정의인가? 또한 판사의 판결에 승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였습니다.
면접실은 그리 크지 않았고 쇼파에 교수님 세분이 나란히 앉아 계셨습니다. 앞에 탁자가 있었고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M: 가운데 계셨고 호의적이었던 노교수님
L: 왼쪽에 계셨고 호의적이었던 젊은 교수님
R: 오른쪽에 계셨고 약간 비판적이었던 젊은 교수님
나: 안녕하십니까?
M: 여기 앉게. 문제를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게.
나: 다시 읽어보고 나서 대답 드려도 되겠습니까?
M: 그러게
나: (가) 지문은 절대적인 진리를 구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사실주의 역사학과 유사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M: 그럼 (나)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나: (가)에서는 절대적인 진리를 구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서는 인간이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 의해 현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를 알기 힘들다는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M: 그래서 한마디로 어떤 관계인가?
나: <이전 발언에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했어요> 기본적으로 진리를 밝혀야 한다는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립이라고 말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L: 패러다임이 무엇인가? 뜻을 한번 설명해 보게.
나: 과학자 사회에서 그 집단 성원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율하는 인식의 체계라고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뉴턴의 역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넘어온 것은 물리학계에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을 규율한다는 측면에서는 법과도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L: 그렇다면 과거 아리스토텔레스나 갈릴레이의 주장은 현대 사회에서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인가?
나: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진리는 변화해 왔고, 현재 우리가 진리라 믿고 있는 이론 또한 먼 미래에는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진리의 변화과정을 고찰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M: 그렇다면 진리가 여러 가지란 말인가?
나: 아, 제가 어휘선택을 잘못했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분명히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리는 거대한 빙산에 비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수면 위의 빙산은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절대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은 이러한 빙산의 일각과 같은 진리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전체적인 빙산의 모습, 즉 절대적인 진리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이러한 다양한 모습의 ‘일부분’들을 진리의 전체 모습이라고 오해하여 진리가 여러 가지인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M: 절대적인 진리를 결국 알 수 없다면 그래도 그것을 추구해야 하나?
나: 예. 서정주 시인의 ‘추천사’에 볼 수 있듯이 인간이 비록 절대적인 진리를 끝내 성취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추구해가는 과정 자체가 인간에게 살아가는 이유를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R: 그럼 두 번째 문제를 풀어보게
나: 예. 장군은 공명심에 사로잡혀 양떼가 일으키는 먼지 구름을 전쟁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명심은 앞서 말씀드린 패러다임과 같은 일종의 색안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시종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사실을 정확히 바라보고 장군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기본소양에서 몇 가지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간 것 같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M: 자네, 초록색 종이 받았지? <학업 적성 평가 시험지가 초록색이었습니다.>
나: 예.
M: 판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 예. 판사는 법을 가치 체계의 최상위에 두고 판결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법이 정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판결 또한 정의롭고 그에 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 법이 왜 정의로운가?
나: 법은 한 국가 국민들의 일반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법은 48년 국민 투표라는, 국민들의 일반 의지가 표현될 수 있는 수단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제헌 국회에서 제정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L: 국민들의 일반의지를 담고 있다고? 현 사회에서 법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은가?
나: 물론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법과 그에 따른 판결이 정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법이 모든 국민들로부터 정의롭다는 인정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린 것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어떤 절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법이 정의롭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R: 그 절대자는 누구인가?
나: 분명 법의 정당성을 논할 수 있는 절대자는 추상적인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합리적이고 온건한 가치관을 가진 다수의 선량한 일반 국민들의 관점을 그러한 절대자의 관점과 유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법 조항들이 지켜지고 있고, 위반 시에 제제가 가해지는 현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데에는 그러한 다수 국민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L: 자네, 노동자들이 요즘 자살까지 하며 사용자들에 맞서 강경하게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사용자들은 법을 지키고 있네. <이때 선생님과 함께 토론했던 ‘노동자의 임금 압류' 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한 규정이 없을 수도 있고 국가 보안법과 같이 시대에 맞지 않는 법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이른바 법의 흠결이 존재합니다. 사용자들이 법 조항을 악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에 속합니다. 이러한 법의 흠결은 구체적인 재판과정에서 형성된 판례를 통해 보다 정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의롭지 못한 법이 생긴다는 말인가?
나: 예.
M: 그럼 법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 아닌가?
나: 처음 법이 제정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법 조항에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법의 흠결을 이유로 전체 법체계의 정당성이 부정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법 조항들은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분적인 결함들은 국민의 동의를 얻은 정당한 입법 활동, 또는 구체적인 판례가 쌓임으로써 보다 정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분적인 흠결을 문제 삼아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현 사회체제의 지속은 불가능할 것이며 보다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몇 가지 대화가 더 오고 갔지만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교수님들과 저의 대화는 저의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
위 시험 후기에서 볼 수 있듯이 구술시험은 수험생의 학업적성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학에서 학문을 탐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와 소양 그리고 학업적성능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우선 기본소양과정은 전공과 상관없이 수험생 모두에게 적용하는 질문입니다. 서울대와 연세대, 이대 등에서 기초소양과정 질문을 해왔는데 문제 범주는 교과 전영역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유형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영어 제시문과 국한문혼용 제시문, 사진이나 그림, 도표 등 다양한 형식의 질문을 통해 수험생의 기초소양을 평가합니다.
기본소양평가는 대학에서 학문을 익히는 데 필수적인 기초지식과 적성을 갖추었는지 알아보기 위한 평가로서, 제시된 지문과 질문들을 통해 폭넓은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사고력과 종합적인 판단 능력, 그리고 적절한 표현력을 측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위 시험후기를 쓴 학생이 풀었던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다음 제시문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서울대학교 2004학년도 수시2 기출문제)
(가) We historians have a responsibility to historical facts in general, and for criticizing the abuse of history in particular. I need say little about the first of these responsibilities. I would not have to say anything, but for two developments. One is the current fashion for novelists to base their plots on recorded reality rather than inventing them, thus fudging the border between historical fact and fiction. The other is the rise of postmodernist intellectual fashions in universities, particularly in departments of literature and anthropology, which imply that all facts claiming objective existence are simply intellectual constructions ― in short, that there is no clear difference between fact and fiction. But there is. And for historians, the ability to distinguish between the two is absolutely fundamental. We cannot invent our facts. Either Elvis Presley is dead or he isn't. The question can be answered unambiguously on the basis of evidence, in so far as reliable evidence is available.
*fudge: 왜곡시키다
(나) 아주 옛적부터 사람들은 끈이나 사슬에 매달린 무거운 돌이 흔들리다가 멈추는 것을 보아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운동을 제약된 落下 운동으로, 즉 무거운 돌이 그 자체의 本性에 의해 높은 位置에서 낮은 位置로 움직여 정지 상태에 이르는 운동으로 보았다. 반면, 갈릴레오는 그것을 동일한 동작이 무한정 되풀이되는 振子 운동으로 보았다. 그러한 시각의 轉換이 왜 일어났을까? 그것은 갈릴레오가 돌의 움직임을 더욱 정확하게, 더욱 客觀的으로 觀察한 데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知覺도 그만큼 정확했다. 제약된 落下 운동을 振子 운동으로 보는 變化는 운동에 대한 理論(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과학자들은 단지 제약된 落下 운동이나 振子 운동을 볼 수 있었을 뿐이며 그보다 더 기초적이고 그들의 理論으로부터 독립된 경험을 할 수는 없었다.
(다) 시종과 함께 길을 가던 기사의 눈에 길 위로 커다란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내 운명이 날 위해 준비해 둔 커다란 행운이 이제야 날 찾아왔구나. 기사의 모험에 대한 역사책에 기록된 대로 나는 오늘 실력을 발휘해서 후세에 영원히 빛나는 명예를 얻게 될 것이다. 저기를 보거라. 저 엄청난 먼지 구름은 바로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진군하면서 일으키고 있는 것이니라.
저쪽 말고 이쪽에서도 먼지가 일어나고 있는데요.
기사가 고개를 돌려보니 사실이었다. 그는 이 두 군대가 맞부딪쳐 격렬한 전투를 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사가 너무 확신하고 있었기에 시종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죠?
어쩌긴, 당연히 약한 편을 도와야지.
그러나 두 무리가 가까이 오자 먼지를 일으키는 것이 양떼였음이 드러났다. 시종이 말했다.
아이고, 세상에. 내 눈에는 주인님이 말씀하신 군대는커녕 기사나 말의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또 다시 마법에 걸리셨나 봅니다.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말이 울부짖는 소리며 진군 나팔과 북 소리가 안 들린다는 말이냐?
“양떼가 움직이는 소리밖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데요.
“이런 겁쟁이 같으니라구. 눈앞에 보이는 것도, 확연히 들리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하다니. 필경 두려움에 눈이 멀고 귀까지 멀었나 보구나.
그러면서 기사는 말에게 박차를 가하며 약한 편을 구하려고 양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질문 1] 제시문 (가)의 요지를 말한 뒤, 제시문 (가)와 (나)의 관계(일치, 대립, 예시 등)를 설명하시오.
[질문 2] 제시문 (가)와 (나) 각각의 입장에서, 제시문 (다)에 나오는 두 인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다음으로 전공소양과 적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자신이 전공하려는 전공에 대해 어떤 태도와 소양이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함이지요. 그래서 수험생이 공부하려는 학문세계에 대해 얼마나 깊고 뚜렷한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또한 전공학문에 관한 적성이 적합성을 보이는지도 정밀하게 측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공학문에 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를 심층적으로 질문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양을 평가한다는 것이지요.
전공소양을 보는 대학은 서울대와 연세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서강대, 이대, 경희대 한의대 등이 있고 문제 난이도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서울대학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전공소양준비를 한답시고 대학 전공 개론서를 탐독하거나 경시대회 수준의 높은 난이도의 문제를 열심히 공부하기도 하지만, 헛 공을 들이는 셈이지요. 따라서 수험생들은 전공부문에 대한 자신의 마인드를 갖출 필요가 있으며 학문에 대한 당당하고도 뚜렷한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2. 어떤 질문들이 구술시험 문제로 출제되는가?
수시전형 유형을 분석해보는 것은 자신이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에 한걸음 다가서는 길입니다. 수시전형에서는 형식적인 면에서 논술과 구술시험 유형이 있습니다. 논술은 언어논술과 수리논술로 크게 나눠지고, 구술은 기본소양과 전공적성소양 형태로 구분할 수 있지요. 질문 내용을 중심으로 보면 ‘통합교과형’이 줄를 이루고 있습니다.
요즘 거의 모든 대학들이 통합교과형 문제를 출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합교과형 문제란 무엇일까요? 통합교과형은 말 그대로 교과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영어제시문, 국한문혼용제시문, 그림이나 도표, 사진과 영상 등 다양한 텍스트를 제시하는데 특정한 교과범주를 뛰어넘기 때문에 통합형이라고 합니다. 우선 서울대학교 기출문제를 보면서 생각해 봅시다.
서울대학교 2004 정시모집 기본소양평가 (인문계열) 구술문제
※ 다음 제시문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가)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세계화는 국가 간의 障壁을 허물어 사람과 物資와 情報가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세계화 시대에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는데, 이 세계시장은 競爭의 원리에 의해 승리와 패배가 분명하게 구별되는 냉혹한 공간이다. 그 냉혹성은 道德性의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시장에서는 종래의 商品만이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文化와 思想도 일종의 商品으로서 거래 품목이 된다. 이러한 품목들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淘汰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로의 진입은 시장에서의 競爭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획기적으로 확대되고 치열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이 새로운 競爭의 게임을 하여야 한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처절한 노력을 쏟아부어 우리의 商品이 세계 정상의 수준에 도달하게 하여야 한다.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세계적 規模로 전개되는 競爭에 직면하고 있으니, 기꺼이 競爭에 뛰어들어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승리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큰 報償을 얻게 될 것이다.
(나) 子貢이 말했다. “만일 百姓에게 널리 恩惠를 베풀고 뭇 사람들을 救濟하는 사람이 있다면 仁하다고 할 만합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仁하다 뿐이겠느냐? 聖人이라고 할 만하다. 堯 임금과 舜 임금도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로 仁한 사람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이 서게 해 주며, 자신이 이루고자* 할 때 남이 이루게 해 준다. 자기 마음에 비추어 보아 남의 마음을 理解하는 것이 仁을 實踐하는 方法이다.”
* 서다: 사회에서 하나의 도덕적 인격체로서 자립함을 뜻함.
* 이루다: 통달, 성공, 출세 등을 뜻함.
앞을 다투는 길은 좁고 험하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그만큼 길은 넓고 평탄해진다. 기름지고 맛 좋은 음식은 물리기 쉬우니, 조금만 덜 먹으면 그 맛을 오래 즐길 수 있다.
(다) The idea of competition has had a powerful influence on the way we think about our society and on the ways in which we conduct our own personal and economic lives. Consideration of three paradoxes of competition will help organize our thinking on it.
1. Competition is the selfish pursuit of happiness; through competition individual selfishness leads to universal happiness. For example, a selfish shopkeeper gives a better service than the next one to attract customers. If all shopkeepers are equally selfish, then the shopper will get the best of all possible deals.
2. Competition simultaneously creates wealth and poverty. It has made possible the enormous material progress of the past 200 years by unlocking the energies of society, yet it has spelt* misery for the tens of millions of workers involved in the creation of that wealth.
3. Competition means that you as a person can have more but be less. What does it profit a man if he gain the whole world yet suffer the loss of his soul? In any competition, winners are rewarded with prizes. In the contemporary society everyday status attaches to the external trappings* of wealth―the house, the car, etc. We are all too often judged by what we own rather than by what we are.
* spell: 초래하다. * trappings: 장식물.
[질문 1] 제시문 (다)의 요지를 말하시오.
[질문 2] 경쟁에 대한 제시문 (가)와 (나)의 관점을 (다)의 내용에 근거하여 각각 설명하시오.
이러한 문제는 인문사회과학적 소양이 충실하다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동서양 고전과 영어, 국한문혼용이 버무러진 글을 정확하게 독해 한 후 공통 주제를 발견하고 제시문간의 관계를 분석하여 질문에 효과적인 답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수험생이 인간 본성과 다양한 사회현상을 이해하려 할 때 근본적으로 대두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인 ‘세계화와 경쟁의 양면성’,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 ‘이기심과 윤리’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세계화 시대에 첨예화되고 있는 경쟁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갖춰져야 합니다. 따라서 평소 세계사적 흐름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소양을 기르고 보편적 가치관이 현대사회 문제와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가다듬어 두어야 하지요. 특히 제시문은 ≪論語≫와 ≪菜根譚≫, 그리고 테리 버크(Terry Burke) 등이 저술한 ≪경쟁의 이론과 실제≫(Competition in Theory and Practice, 1988)에서 발췌된 것으로 동서양 고전과 현대사회 쟁점을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평소 자신의 안목을 키우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3. 그러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구술은 문제에 내재한 갈등의 핵심과 역사성을 파악하는 능력,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노력에 대한 사전 지식과 이해,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논리적 의견 제시 능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구술 시험에 대한 준비는 결코 웅변이나 화술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논쟁적 테마들에 대한 내용적인 자기 견해의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구술은 말로 하는 논술인 셈입니다.
① 대화로서의 구술! - 종합적 의사소통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객관식은 수험생이 소유한 지식의 정도를 측정합니다. 논술은 단순히 보면 지식과 표현력 그리고 독창성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구술은 지식과 표현력과 논의력과 말하는 이의 태도 등이 모두 평가되는 시험양식의 종합예술이라 말합니다.
구술시험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시험은 대면식이기에 쌍방향이고 그런 만큼 서로간의 종합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너무 어렵게 이해할 필요 없이 논의력 혹은 서로 충분히 이해되도록 대화하는 방식으로 알면 될 것입니다. 객관식에서는 알고 있는 문제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란 없습니다. 논술과 같은 시험에서는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표현력이 보다 중요해집니다. 구술시험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단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의 대화 맥락에 맞게 표현하는 것까지 요구됩니다.
다른 시험은 문제를 묻고 답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구술시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한 번의 질문으로 끝나지 않고 반론이 가능하고 실제 대부분의 경우 반론을 펼칩니다. 그 반론의 수위와 방향은 상호작용적이고 유동적입니다. 다시 말해 학생이 어떠한 대답을 했는가에 따라, 그리고 심사관이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따라 그리고 양자의 평소 관심이나 성향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주 미세한 것까지 고려하자면, 수험생 답변 태도가 확정적인가 미온적인가에 따라서도 반론의 수위와 방향은 영향을 받습니다. 상호작용성. 그것이 바로 일방적인 서술과 대화의 차이입니다. 예의바른 태도와 주장의 합리성, 반론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충분한 식견과 그러면서도 어떤 지점에서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수긍하거나 논쟁 속에서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균형감각이 함께 요구되는 것입니다.
②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답은 있지요~!!
객관식 시험이나 단답식 시험과는 달리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시험에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답이 없다는 말이 무슨 견해든 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의 의미나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오는 답은 명확한 '오답'이 됩니다. 다시 말해 정해진 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으며, 정답은 없지만 '더 좋은 답'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의 답은 없지만 일군의 논리적으로 가능한 답의 집합 범위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답의 집합 범위 중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보다 풍부한 논거를 바탕으로 더 설득력 있게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것이 더 좋은 답이 될 것입니다. 정답이 없으므로 모른다고 아예 답을 못하지도 않는 것이 구술시험이지만 안다고 해도 더 수준 높은 답을 할 수 있는가가 더 문제인 시험이 구술시험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구술시험에 대한 대비는 단순한 답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동일한 문제라도 더욱 풍부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의 함양이 핵심인 것입니다. 요컨대, 문제의 난이도가 문제가 아니라 답의 수준이 문제인 것이 구술시험의 특징입니다.
③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구술에 대비하는 방법은 평소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독서를 통해 독해력을 기르고 이 세계에 출몰하는 수많은 삶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 사색에 깊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세계사 인식을 위한 역사서적과 삶의 쟁점을 다룬 철학서들 그리고 현실문제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해석서들을 폭넓게 탐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내 안에 가득한 사유의 샘물이 차고 오를 때 다양한 이들과 많은 대화와 토론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이들 앞에 나서서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내 생각을 거침없이 말 할 수 있을 때 나는 소양을 갖춘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시사전문 주간지나 월간지 등 잡지를 꾸준히 탐독하면서 시류를 읽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삶의 문제에 대해 전문가의 깊은 식견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비교해보고 사회적 쟁점들을 스스로 발견하여 그 주제에 대해 깊은 사색이 담긴 글을 쓰는 것도 무척 좋은 방안이 됩니다.
가능하다면 뜻있는 친구들끼리 정기적으로 토론을 하는 방법은 매우 훌륭한 공부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두고 다양한 이들의 견해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 생각의 지평이 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은 구술시험을 하기 위한 공부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계획하고 우리 사회와 인류를 위해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고민해 가다보면 사회를 보는 안목이 생기고 자신 있게 발언할 수 있는 내적 힘이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인지학 창시자인 루르 루돌프 슈타이너 선생은 “ 나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에 이르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였지요. 내가 가진 한계를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통해 지식의 세계가 열리고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며, 이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형만(해오름논술아카데미 원장)
1. 대학은 구술 시험을 통해 학생의 어떤 점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일까?
다음 글은 지난 2004학년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정시모집에 지원한 도반이 쓴 시험후기입니다. 이 학생은 서울대 기준으로 내신 5등급이었고, 서울대 언어능력경시대회 국어부문 대상 수상경력이 있습니다. 이 글 속에 구술시험의 면면들이 들어 있으므로 꼼꼼하게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쓴 도반은 현재 서울대 법대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저는 원서를 제출한 후 수시를 위한 기본적인 공부를 하였습니다. 수능 다음날 1차 전형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일주일 조금 넘게 집중적인 대비를 하였습니다. 졸업고사가 일주일간 있었기 때문에 저녁에는 졸업고사를 대비해 공부했고, 대신 낮 시간에는 최대한 집중해서 수시에 대비했습니다.
대비과정에서 선생님과 우리 사회 주요 쟁점과 문제를 논하며 ‘생각의 틀’을 잡기 위해 노력했고, 법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은 따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생각의 틀’을 강조하셨는데 저는 그것을 ‘합리적인 가치관’을 형성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평소 보수적 수구 언론에 의해 길들여진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선생님과 계속 대화를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하나 바꾸어 갔습니다.
심층면접이 있었던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 차를 타고 서울대학교로 갔습니다. 8시 20분쯤 도착하여 대기실로 들어가니 벌써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조교에게 핸드폰을 맡기고, 잠시 그 동안 수업시간에 정리한 노트를 봤습니다. 대기실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긴장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면접을 보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에 8시 40분쯤 면접실 바로 앞 복도에 놓여진 책상에 앉도록 안내받았습니다. 첫 번째 면접을 보는 학생은 그때부터 기본소양과 학업적성 시험지를 받아 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슬쩍 보려 했으나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았고, 어느덧 9시가 되어 첫 번째 학생이 면접실로 들어가고 저는 앞 책상으로 옮긴 뒤 시험지를 받았습니다.
기본 소양은 (가), (나), (다) 세 지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가)는 영어 지문이었는데 10줄 정도로 작년에 비해 길었습니다. 제가 해석을 치밀하게 하지 못한 관계로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말하기 힘들지만, 대충 절대적인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 지문은 국한문 혼용 지문이었고 동일한 운동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릴레이가 각자 ‘제한된 낙하 운동’과 ‘진자 운동’ 이라고 다르게 해석한 예를 들며, 절대적인 진리는 알 수 없고 단지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 의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 지문은 장군과 시종의 대화였는데, 양떼가 일으키는 먼지 구름에 싸움이 일어난 것으로 착각한 장군이 시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내용이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가) 지문을 해석하고 (가)와 (나)의 관계를 말하라는 문제였고, 두 번째 문제는 (다) 지문의 두 인물을 (가)와 (나)의 관점에서 각각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학업 적성은 편견과 가치관 등을 갖고 있는 하나의 인간에 불과한 판사에 의해 내려진 판결은 과연 정의인가? 또한 판사의 판결에 승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였습니다.
면접실은 그리 크지 않았고 쇼파에 교수님 세분이 나란히 앉아 계셨습니다. 앞에 탁자가 있었고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M: 가운데 계셨고 호의적이었던 노교수님
L: 왼쪽에 계셨고 호의적이었던 젊은 교수님
R: 오른쪽에 계셨고 약간 비판적이었던 젊은 교수님
나: 안녕하십니까?
M: 여기 앉게. 문제를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게.
나: 다시 읽어보고 나서 대답 드려도 되겠습니까?
M: 그러게
나: (가) 지문은 절대적인 진리를 구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사실주의 역사학과 유사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M: 그럼 (나)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나: (가)에서는 절대적인 진리를 구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서는 인간이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 의해 현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를 알기 힘들다는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M: 그래서 한마디로 어떤 관계인가?
나: <이전 발언에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했어요> 기본적으로 진리를 밝혀야 한다는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립이라고 말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L: 패러다임이 무엇인가? 뜻을 한번 설명해 보게.
나: 과학자 사회에서 그 집단 성원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율하는 인식의 체계라고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뉴턴의 역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넘어온 것은 물리학계에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을 규율한다는 측면에서는 법과도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L: 그렇다면 과거 아리스토텔레스나 갈릴레이의 주장은 현대 사회에서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인가?
나: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진리는 변화해 왔고, 현재 우리가 진리라 믿고 있는 이론 또한 먼 미래에는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진리의 변화과정을 고찰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M: 그렇다면 진리가 여러 가지란 말인가?
나: 아, 제가 어휘선택을 잘못했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분명히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리는 거대한 빙산에 비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수면 위의 빙산은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절대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은 이러한 빙산의 일각과 같은 진리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전체적인 빙산의 모습, 즉 절대적인 진리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이러한 다양한 모습의 ‘일부분’들을 진리의 전체 모습이라고 오해하여 진리가 여러 가지인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M: 절대적인 진리를 결국 알 수 없다면 그래도 그것을 추구해야 하나?
나: 예. 서정주 시인의 ‘추천사’에 볼 수 있듯이 인간이 비록 절대적인 진리를 끝내 성취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추구해가는 과정 자체가 인간에게 살아가는 이유를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R: 그럼 두 번째 문제를 풀어보게
나: 예. 장군은 공명심에 사로잡혀 양떼가 일으키는 먼지 구름을 전쟁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명심은 앞서 말씀드린 패러다임과 같은 일종의 색안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시종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사실을 정확히 바라보고 장군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기본소양에서 몇 가지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간 것 같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M: 자네, 초록색 종이 받았지? <학업 적성 평가 시험지가 초록색이었습니다.>
나: 예.
M: 판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 예. 판사는 법을 가치 체계의 최상위에 두고 판결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법이 정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판결 또한 정의롭고 그에 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 법이 왜 정의로운가?
나: 법은 한 국가 국민들의 일반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법은 48년 국민 투표라는, 국민들의 일반 의지가 표현될 수 있는 수단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제헌 국회에서 제정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L: 국민들의 일반의지를 담고 있다고? 현 사회에서 법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은가?
나: 물론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법과 그에 따른 판결이 정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법이 모든 국민들로부터 정의롭다는 인정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린 것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어떤 절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법이 정의롭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R: 그 절대자는 누구인가?
나: 분명 법의 정당성을 논할 수 있는 절대자는 추상적인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합리적이고 온건한 가치관을 가진 다수의 선량한 일반 국민들의 관점을 그러한 절대자의 관점과 유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법 조항들이 지켜지고 있고, 위반 시에 제제가 가해지는 현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데에는 그러한 다수 국민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L: 자네, 노동자들이 요즘 자살까지 하며 사용자들에 맞서 강경하게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사용자들은 법을 지키고 있네. <이때 선생님과 함께 토론했던 ‘노동자의 임금 압류' 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건에 대한 규정이 없을 수도 있고 국가 보안법과 같이 시대에 맞지 않는 법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이른바 법의 흠결이 존재합니다. 사용자들이 법 조항을 악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에 속합니다. 이러한 법의 흠결은 구체적인 재판과정에서 형성된 판례를 통해 보다 정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의롭지 못한 법이 생긴다는 말인가?
나: 예.
M: 그럼 법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 아닌가?
나: 처음 법이 제정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법 조항에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법의 흠결을 이유로 전체 법체계의 정당성이 부정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법 조항들은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분적인 결함들은 국민의 동의를 얻은 정당한 입법 활동, 또는 구체적인 판례가 쌓임으로써 보다 정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분적인 흠결을 문제 삼아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현 사회체제의 지속은 불가능할 것이며 보다 큰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몇 가지 대화가 더 오고 갔지만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교수님들과 저의 대화는 저의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
위 시험 후기에서 볼 수 있듯이 구술시험은 수험생의 학업적성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학에서 학문을 탐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와 소양 그리고 학업적성능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우선 기본소양과정은 전공과 상관없이 수험생 모두에게 적용하는 질문입니다. 서울대와 연세대, 이대 등에서 기초소양과정 질문을 해왔는데 문제 범주는 교과 전영역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유형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영어 제시문과 국한문혼용 제시문, 사진이나 그림, 도표 등 다양한 형식의 질문을 통해 수험생의 기초소양을 평가합니다.
기본소양평가는 대학에서 학문을 익히는 데 필수적인 기초지식과 적성을 갖추었는지 알아보기 위한 평가로서, 제시된 지문과 질문들을 통해 폭넓은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사고력과 종합적인 판단 능력, 그리고 적절한 표현력을 측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위 시험후기를 쓴 학생이 풀었던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다음 제시문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서울대학교 2004학년도 수시2 기출문제)
(가) We historians have a responsibility to historical facts in general, and for criticizing the abuse of history in particular. I need say little about the first of these responsibilities. I would not have to say anything, but for two developments. One is the current fashion for novelists to base their plots on recorded reality rather than inventing them, thus fudging the border between historical fact and fiction. The other is the rise of postmodernist intellectual fashions in universities, particularly in departments of literature and anthropology, which imply that all facts claiming objective existence are simply intellectual constructions ― in short, that there is no clear difference between fact and fiction. But there is. And for historians, the ability to distinguish between the two is absolutely fundamental. We cannot invent our facts. Either Elvis Presley is dead or he isn't. The question can be answered unambiguously on the basis of evidence, in so far as reliable evidence is available.
*fudge: 왜곡시키다
(나) 아주 옛적부터 사람들은 끈이나 사슬에 매달린 무거운 돌이 흔들리다가 멈추는 것을 보아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운동을 제약된 落下 운동으로, 즉 무거운 돌이 그 자체의 本性에 의해 높은 位置에서 낮은 位置로 움직여 정지 상태에 이르는 운동으로 보았다. 반면, 갈릴레오는 그것을 동일한 동작이 무한정 되풀이되는 振子 운동으로 보았다. 그러한 시각의 轉換이 왜 일어났을까? 그것은 갈릴레오가 돌의 움직임을 더욱 정확하게, 더욱 客觀的으로 觀察한 데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知覺도 그만큼 정확했다. 제약된 落下 운동을 振子 운동으로 보는 變化는 운동에 대한 理論(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과학자들은 단지 제약된 落下 운동이나 振子 운동을 볼 수 있었을 뿐이며 그보다 더 기초적이고 그들의 理論으로부터 독립된 경험을 할 수는 없었다.
(다) 시종과 함께 길을 가던 기사의 눈에 길 위로 커다란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내 운명이 날 위해 준비해 둔 커다란 행운이 이제야 날 찾아왔구나. 기사의 모험에 대한 역사책에 기록된 대로 나는 오늘 실력을 발휘해서 후세에 영원히 빛나는 명예를 얻게 될 것이다. 저기를 보거라. 저 엄청난 먼지 구름은 바로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진군하면서 일으키고 있는 것이니라.
저쪽 말고 이쪽에서도 먼지가 일어나고 있는데요.
기사가 고개를 돌려보니 사실이었다. 그는 이 두 군대가 맞부딪쳐 격렬한 전투를 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사가 너무 확신하고 있었기에 시종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죠?
어쩌긴, 당연히 약한 편을 도와야지.
그러나 두 무리가 가까이 오자 먼지를 일으키는 것이 양떼였음이 드러났다. 시종이 말했다.
아이고, 세상에. 내 눈에는 주인님이 말씀하신 군대는커녕 기사나 말의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또 다시 마법에 걸리셨나 봅니다.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말이 울부짖는 소리며 진군 나팔과 북 소리가 안 들린다는 말이냐?
“양떼가 움직이는 소리밖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데요.
“이런 겁쟁이 같으니라구. 눈앞에 보이는 것도, 확연히 들리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하다니. 필경 두려움에 눈이 멀고 귀까지 멀었나 보구나.
그러면서 기사는 말에게 박차를 가하며 약한 편을 구하려고 양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질문 1] 제시문 (가)의 요지를 말한 뒤, 제시문 (가)와 (나)의 관계(일치, 대립, 예시 등)를 설명하시오.
[질문 2] 제시문 (가)와 (나) 각각의 입장에서, 제시문 (다)에 나오는 두 인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다음으로 전공소양과 적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자신이 전공하려는 전공에 대해 어떤 태도와 소양이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함이지요. 그래서 수험생이 공부하려는 학문세계에 대해 얼마나 깊고 뚜렷한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또한 전공학문에 관한 적성이 적합성을 보이는지도 정밀하게 측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공학문에 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를 심층적으로 질문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양을 평가한다는 것이지요.
전공소양을 보는 대학은 서울대와 연세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서강대, 이대, 경희대 한의대 등이 있고 문제 난이도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서울대학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전공소양준비를 한답시고 대학 전공 개론서를 탐독하거나 경시대회 수준의 높은 난이도의 문제를 열심히 공부하기도 하지만, 헛 공을 들이는 셈이지요. 따라서 수험생들은 전공부문에 대한 자신의 마인드를 갖출 필요가 있으며 학문에 대한 당당하고도 뚜렷한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2. 어떤 질문들이 구술시험 문제로 출제되는가?
수시전형 유형을 분석해보는 것은 자신이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에 한걸음 다가서는 길입니다. 수시전형에서는 형식적인 면에서 논술과 구술시험 유형이 있습니다. 논술은 언어논술과 수리논술로 크게 나눠지고, 구술은 기본소양과 전공적성소양 형태로 구분할 수 있지요. 질문 내용을 중심으로 보면 ‘통합교과형’이 줄를 이루고 있습니다.
요즘 거의 모든 대학들이 통합교과형 문제를 출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합교과형 문제란 무엇일까요? 통합교과형은 말 그대로 교과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영어제시문, 국한문혼용제시문, 그림이나 도표, 사진과 영상 등 다양한 텍스트를 제시하는데 특정한 교과범주를 뛰어넘기 때문에 통합형이라고 합니다. 우선 서울대학교 기출문제를 보면서 생각해 봅시다.
서울대학교 2004 정시모집 기본소양평가 (인문계열) 구술문제
※ 다음 제시문을 읽고 질문에 답하시오.
(가)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세계화는 국가 간의 障壁을 허물어 사람과 物資와 情報가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세계화 시대에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는데, 이 세계시장은 競爭의 원리에 의해 승리와 패배가 분명하게 구별되는 냉혹한 공간이다. 그 냉혹성은 道德性의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시장에서는 종래의 商品만이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文化와 思想도 일종의 商品으로서 거래 품목이 된다. 이러한 품목들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淘汰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로의 진입은 시장에서의 競爭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획기적으로 확대되고 치열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이 새로운 競爭의 게임을 하여야 한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처절한 노력을 쏟아부어 우리의 商品이 세계 정상의 수준에 도달하게 하여야 한다.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세계적 規模로 전개되는 競爭에 직면하고 있으니, 기꺼이 競爭에 뛰어들어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승리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큰 報償을 얻게 될 것이다.
(나) 子貢이 말했다. “만일 百姓에게 널리 恩惠를 베풀고 뭇 사람들을 救濟하는 사람이 있다면 仁하다고 할 만합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仁하다 뿐이겠느냐? 聖人이라고 할 만하다. 堯 임금과 舜 임금도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로 仁한 사람은 자신이 서고자* 할 때 남이 서게 해 주며, 자신이 이루고자* 할 때 남이 이루게 해 준다. 자기 마음에 비추어 보아 남의 마음을 理解하는 것이 仁을 實踐하는 方法이다.”
* 서다: 사회에서 하나의 도덕적 인격체로서 자립함을 뜻함.
* 이루다: 통달, 성공, 출세 등을 뜻함.
앞을 다투는 길은 좁고 험하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그만큼 길은 넓고 평탄해진다. 기름지고 맛 좋은 음식은 물리기 쉬우니, 조금만 덜 먹으면 그 맛을 오래 즐길 수 있다.
(다) The idea of competition has had a powerful influence on the way we think about our society and on the ways in which we conduct our own personal and economic lives. Consideration of three paradoxes of competition will help organize our thinking on it.
1. Competition is the selfish pursuit of happiness; through competition individual selfishness leads to universal happiness. For example, a selfish shopkeeper gives a better service than the next one to attract customers. If all shopkeepers are equally selfish, then the shopper will get the best of all possible deals.
2. Competition simultaneously creates wealth and poverty. It has made possible the enormous material progress of the past 200 years by unlocking the energies of society, yet it has spelt* misery for the tens of millions of workers involved in the creation of that wealth.
3. Competition means that you as a person can have more but be less. What does it profit a man if he gain the whole world yet suffer the loss of his soul? In any competition, winners are rewarded with prizes. In the contemporary society everyday status attaches to the external trappings* of wealth―the house, the car, etc. We are all too often judged by what we own rather than by what we are.
* spell: 초래하다. * trappings: 장식물.
[질문 1] 제시문 (다)의 요지를 말하시오.
[질문 2] 경쟁에 대한 제시문 (가)와 (나)의 관점을 (다)의 내용에 근거하여 각각 설명하시오.
이러한 문제는 인문사회과학적 소양이 충실하다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동서양 고전과 영어, 국한문혼용이 버무러진 글을 정확하게 독해 한 후 공통 주제를 발견하고 제시문간의 관계를 분석하여 질문에 효과적인 답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수험생이 인간 본성과 다양한 사회현상을 이해하려 할 때 근본적으로 대두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인 ‘세계화와 경쟁의 양면성’,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 ‘이기심과 윤리’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세계화 시대에 첨예화되고 있는 경쟁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갖춰져야 합니다. 따라서 평소 세계사적 흐름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소양을 기르고 보편적 가치관이 현대사회 문제와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가다듬어 두어야 하지요. 특히 제시문은 ≪論語≫와 ≪菜根譚≫, 그리고 테리 버크(Terry Burke) 등이 저술한 ≪경쟁의 이론과 실제≫(Competition in Theory and Practice, 1988)에서 발췌된 것으로 동서양 고전과 현대사회 쟁점을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평소 자신의 안목을 키우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3. 그러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구술은 문제에 내재한 갈등의 핵심과 역사성을 파악하는 능력,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의 노력에 대한 사전 지식과 이해,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논리적 의견 제시 능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구술 시험에 대한 준비는 결코 웅변이나 화술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논쟁적 테마들에 대한 내용적인 자기 견해의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구술은 말로 하는 논술인 셈입니다.
① 대화로서의 구술! - 종합적 의사소통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객관식은 수험생이 소유한 지식의 정도를 측정합니다. 논술은 단순히 보면 지식과 표현력 그리고 독창성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구술은 지식과 표현력과 논의력과 말하는 이의 태도 등이 모두 평가되는 시험양식의 종합예술이라 말합니다.
구술시험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시험은 대면식이기에 쌍방향이고 그런 만큼 서로간의 종합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너무 어렵게 이해할 필요 없이 논의력 혹은 서로 충분히 이해되도록 대화하는 방식으로 알면 될 것입니다. 객관식에서는 알고 있는 문제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란 없습니다. 논술과 같은 시험에서는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표현력이 보다 중요해집니다. 구술시험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단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의 대화 맥락에 맞게 표현하는 것까지 요구됩니다.
다른 시험은 문제를 묻고 답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구술시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한 번의 질문으로 끝나지 않고 반론이 가능하고 실제 대부분의 경우 반론을 펼칩니다. 그 반론의 수위와 방향은 상호작용적이고 유동적입니다. 다시 말해 학생이 어떠한 대답을 했는가에 따라, 그리고 심사관이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따라 그리고 양자의 평소 관심이나 성향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주 미세한 것까지 고려하자면, 수험생 답변 태도가 확정적인가 미온적인가에 따라서도 반론의 수위와 방향은 영향을 받습니다. 상호작용성. 그것이 바로 일방적인 서술과 대화의 차이입니다. 예의바른 태도와 주장의 합리성, 반론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충분한 식견과 그러면서도 어떤 지점에서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수긍하거나 논쟁 속에서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균형감각이 함께 요구되는 것입니다.
②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답은 있지요~!!
객관식 시험이나 단답식 시험과는 달리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시험에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답이 없다는 말이 무슨 견해든 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의 의미나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오는 답은 명확한 '오답'이 됩니다. 다시 말해 정해진 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으며, 정답은 없지만 '더 좋은 답'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의 답은 없지만 일군의 논리적으로 가능한 답의 집합 범위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답의 집합 범위 중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보다 풍부한 논거를 바탕으로 더 설득력 있게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것이 더 좋은 답이 될 것입니다. 정답이 없으므로 모른다고 아예 답을 못하지도 않는 것이 구술시험이지만 안다고 해도 더 수준 높은 답을 할 수 있는가가 더 문제인 시험이 구술시험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구술시험에 대한 대비는 단순한 답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동일한 문제라도 더욱 풍부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의 함양이 핵심인 것입니다. 요컨대, 문제의 난이도가 문제가 아니라 답의 수준이 문제인 것이 구술시험의 특징입니다.
③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구술에 대비하는 방법은 평소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독서를 통해 독해력을 기르고 이 세계에 출몰하는 수많은 삶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 사색에 깊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세계사 인식을 위한 역사서적과 삶의 쟁점을 다룬 철학서들 그리고 현실문제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해석서들을 폭넓게 탐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내 안에 가득한 사유의 샘물이 차고 오를 때 다양한 이들과 많은 대화와 토론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이들 앞에 나서서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내 생각을 거침없이 말 할 수 있을 때 나는 소양을 갖춘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시사전문 주간지나 월간지 등 잡지를 꾸준히 탐독하면서 시류를 읽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삶의 문제에 대해 전문가의 깊은 식견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비교해보고 사회적 쟁점들을 스스로 발견하여 그 주제에 대해 깊은 사색이 담긴 글을 쓰는 것도 무척 좋은 방안이 됩니다.
가능하다면 뜻있는 친구들끼리 정기적으로 토론을 하는 방법은 매우 훌륭한 공부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두고 다양한 이들의 견해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 생각의 지평이 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은 구술시험을 하기 위한 공부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계획하고 우리 사회와 인류를 위해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고민해 가다보면 사회를 보는 안목이 생기고 자신 있게 발언할 수 있는 내적 힘이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인지학 창시자인 루르 루돌프 슈타이너 선생은 “ 나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에 이르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였지요. 내가 가진 한계를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통해 지식의 세계가 열리고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며, 이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