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의 제국을 읽고

                            - 잘 살기에 대한 나의 생각 -
                                                           중등25기 박윤숙

  Ⅰ .   < 햄버거에 대한 에피소드 >

첫 번째 : 한명 기르기도 벅찬 주제에 15개월 차이로 둘째를 낳은 후 , 내가  예방 접종 이외의 목적으로 첫외출을 했던 건 아이가 백일이 겨우 지난 어느날 ‘롯데리아’ 에 갔던 일이다. 그곳의 시끄러운  음악과 어수선함 ,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아직도 세상 속에  함께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두 번 째 : 지금부터 6년 쯤 전에 홍콩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 시절이 패스트푸드를 가장 많이먹었던 시절이다. 일요일 점심은 당연히  맥도날드에 갔고 ,주중에도 한번은 하디스에 갔다. 햄버거를 아주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내 가 아이들 손을 잡고 하디스에 갔던 건 서울에 대한 향수 때문 인 듯 하다.
  ‘익숙한 메뉴와 익숙한 분위기’ , 그곳에서는 ‘홍콩’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종업원 중에  그리고 손님 중에도 나이가 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꽤 있었다는 사실 정도.

세 번째 : 이번 과제를 하기위해 서점에서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산 다음 할인점에 갔었다.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1층의 롯데리아에 먼저 들렀다. 오랜만에 불고기버거를 하나 먹고 싶었는데 , 책의 제목으로보나 얼핏 들춰 본 내용으로 보나 햄버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들어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마음속의 갈등이 심했다. ‘눈딱감고 한번 먹을까?’  ‘ 아니지, 책을 손에 들고서도 먹는다면 다른 때는 더 갈등없이 먹을 테니까 , 참자’
그런 마음속의 갈등의 결과 밀크 셰이크만 마셨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컸다. 남편이 빈말로라도 “햄버거도 먹을까? ”  하고 물어 주었다면 묻는 사람의 성의를 봐서 못이기는  척하고 먹었을 텐데......


Ⅱ. 패스트 푸드의 제국을 읽으며

‘패스트푸드의 제국’ 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향수까지 느꼈던 매장 분위기, 리필이라는 유혹에 쉽게 넘어가곤 했던 나의 행동,  이런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들이 고도의 계산의 결과 였다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나의 자율적 선택과 판단이 사실은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아주 일반적 유형에 속한다는 것, 자본을 어마어마하게 소유한 기업주가 원하는 행동 패턴을 내가 아주 그대로 따라 주었다는 사실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비싸지도 않고 한끼 식사 대용으로는 좀 부족하다 싶은 몇가지 메뉴들 속에 그토록 복잡한 사연들 - 예를 들면 쇠고기 정육공장 노동자들의 말할수없이 열악한 근무조건, 저렴한 패스트푸드의 값이 사실은 언어도 통하지 않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의 결과였다는 것,  매장 점원들이 왜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는 지 등등- 이 숨어 있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 까지 참으로 다양한 생각이 교차했다.
아울러 그렇게 열심히 힘들게 사는데도 최저 생활을 유지하고 살기도 벅찬 이들이 많은 세상에서 그리 열심히 살지도 않는 내가 그럭저럭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Ⅲ  잘 산다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  

그러면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내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언뜻 해답도 보이지 않고 복잡해 보이기만한 이 문제의 답은 의외로
단순한지도 모른다.
‘나’만 잘 살수 있는 방법을 찾기 보다는 ‘함께’ 잘 살수 있는 쪽으로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그리고 ‘함께’ 의 대상은 나의 주변 사람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 또 자연 까지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것.
왜냐하면 인적 물적 교류가 왕성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생산과 소비 ’ 역시 이동 범위가 넓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 양상을 달리 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폭우와 산사태, 중국에서의 가뭄과 홍수에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개의 경우, 우리가 값싸게 사용하는 물건속에는 제3세계 노동자들의 눈물과 고통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진실로 잘 살아갈 수 있는 길, 그것은 검소한 삶, 나누는 삶에 있다. 그것이 나를, 우리를, 세상을, 자연을 오래도록 잘 살아가게 하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방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