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감동의 청룡영화상, 그리고 명계남을 생각하다 / 하재근 컬럼니스트 (2006,12,18 )


1. 감동의 청룡영화상

시작부터 좋았다. <왕의 남자>를 주제로 한 남사당 공연으로 문을 연 제27회 청룡영화상. 옛날에,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스타워즈> 주제가와 예술단 무희들의 춤으로 시작된 시상식이 있었다. 아니, 이 나라는 자기 나라 영화시상식조차 자기 콘텐츠로 채우지 못한단 말인가? 그때 난 모멸감을 느끼며 시상식을 바라봤었다.

영화상뿐만이 아니라 가요상 시상식에 팝송이 등장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얼마 전 대한민국영화대상에 팝송이 나올 때도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봤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한 해를 결산하는 문화행사인데 당연히 우리의 축제여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 스스로 자기를 존중해야 남도 나를 존중하는 법이다. 남의 문화 상품을 굳이 가져와야 행사가 흥겨울 만큼 우리 것이 빈약하지도 않다. 이것은 자의식과 자부심의 문제다. 남사당으로 문을 연 청룡영화상이 반가웠던 이유다.

이런저런 시상들은 별 무리가 없었고 딱히 특기할 만한 것은 없었다. 감동은 남우조연상에서부터 시작됐다. 김윤석, 변희봉, 유해진, 오달수, 이범수 중에 변희봉이 조연상을 수상했다. 브라운관의 악역 조연 전문 배우 변희봉이 늘그막에 스크린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과거 잭 팔란스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광경이었는데, 그때 잭 팔란스가 무대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며 건재를 과시했던 모습보다 변희봉의 의연한 모습이 더 무게감이 있었다.

변희봉이 무대에 선 순간 떠오른 한 마디는 “이것이 연륜이다”였다. 관객, 영화상 관계자, 심사위원 등 감사의 대상을 차근차근 짚어나가는 모습에서 난 우리 기성세대의 ‘예의’를 봤다. 통상적으로 우리 기성세대의 이미지는 지하철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욕심’과 ‘이기심’이다. 하지만 그런 것만 있다면 어떻게 이 나라가 유지됐겠는가? 변희봉에게선 서양의 신사 못지않은 우리 어른들의 품격이 풍겼다. 스산한 근대에 살면서 악착같은 생존의지만 보이는 우리나라 어른들이지만 이런 의연함이 좀 더 우리의 본래 모습에 가깝다고 나는 여긴다.

변희봉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조역 전문 탤런트들의 연기 역량은 대단하다. 영화판의 조연들보다 브라운관에서 연륜을 쌓은 (흔히 주인공의 가족으로 나오는) 조연들이 훨씬 존재감이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저평가되어온 감이 있다. 배우 즉 예술가라기보다 연기 기술자 취급을 받았다고나 할까? 최근 영화판에서 브라운관의 연륜 있는 탤런트들이 많이 조명 받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악역 조연 전문이어서 어린 딸이 상처받을까봐 방송국 일반 직원이라고 딸에게 거짓말을 했었다는 변희봉. 봉준호 감독에게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못해봤다면서 그가 새파란 봉 감독에게 감사를 표하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젊은 감독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잊혀졌던 유산들을 호명하고 있다.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가 미국의 과거 대중문화를 호명하듯이 우리도 젊은 감독들이 한국 문화사를 폭넓게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을 예술가로 호명해 준 감독에게 전하는 감사에선, 뭐랄까, 인생이 느껴졌다.

“정말로 오랜 세월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간직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이런 말은 젊은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지나가겠습니다.” 뭐 너무 좋다거나, 기쁘다거나 이런 것이 아니라 기억은 간직하되 지나간다는 거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변희봉은 마지막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오늘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감격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감격도 결국엔 기억일 뿐, 지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길을 가고 있지만 결국 지나갈 뿐이라는 걸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매 순간순간 우리를 붙드는 미망, 탐욕, 희열, 마치 도박판을 벗어나지 못하는 꾼들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 인생의 절정에서, 감격의 복판에서 지나간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옛날부터 배우로서 변희봉을 좋아하긴 했었지만 그 순간만은 변희봉이 배우 이상의 큰 정신으로 보였다.

남녀 주연상을 받은 안성기, 박중훈, 김혜수는 또 어떤가. 변희봉부터 이 세 사람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부활이다. 공교롭게도 주연상 수상자 세 사람은 모두 당대의 청춘스타 출신이다. 그리고 최근 영화에서 그 성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물론 김혜수야 영화판에서 잃어버릴 성가도 없었지만.

안성기는 고목나무에 꽃이 피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했고, 박중훈은 앞으로 조역, 단역 가리지 않겠다고 했다. 전에 <라디오스타> 글에서 극중 최곤의 부활이 배우 박중훈의 부활과 겹친다고 했었는데, 반가운 일이다. 돌아온 그들에게서도 인생이 느껴졌다. 이런 구도가 일부러 배치된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진 모르겠으나 암튼 올해 청룡상 연기상의 주제는 감동이다.

수상자가 발표되고 <타짜> 음악에 맞춰 무대로 걸어나오는 김혜수의 모습은 또 얼마나 빛나던지. 김혜수는 재능에 비해 그동안 너무 영화운이 없었다. <타짜>를 만나 비로소 배우의 아우라를 찾은 그에게 박수를 보낼밖에.

2. 명계남

청룡상을 보면 명계남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청룡상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그가 떠오른다. 그가 2001년 12월 12일에 쓴 글 때문이다. 그 글의 제목은 “조선일보에서 주는 청룡영화상을 거부합니다”였다.

내가 만약 영화제작자에 영화배우라면 조선일보 기자와 밤마다 술을 먹겠다. 내가 만약 영화제작자에 영화배우라면 조선일보 데스크가 나에게 손을 내밀 때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받들어 모실 것이다. 문화판에서 기자는 하늘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하늘 위에 있는 하늘이다. 명계남은 어쩌자고 그런 선언을 했는지 나라면 절대로 못할 일이다. 아래는 그 선언문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분단의 비극으로 고통을 겪은 분들에게) 고통을 준 주체에는 조선일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통일을 저해하고 안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분단지향적이며, ‘할 말은 하는 신문’이 아니라 ‘하고픈 말만 왜곡보도하는’ 깡패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표현과 사상의 자유는 가차 없이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영화제에 들러리를 선다는 것은 영화인들의 자부심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행위에 다름없습니다.”

“제작비의 절반이 마케팅에 쓰일 정도로 언론홍보의 비중이 커진 영화계가 특정언론을 반대하고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영화인들의 양심과 자부심에 호소합니다. 결단을 내릴 시간입니다. 조선일보가 영화의 표현의 자유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화인이라면 분노하고 청룡 영화상을 거부해야 합니다.”

난 명계남이 현재 참여정부를 옹위하는 걸 좋지 않게 생각한다. 2004년 총선 이후 난 공공성 강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여권은 실용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좋다고, 경제가 안 좋은 것은 다 조중동 프레임이라는 참여정부에게 난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내 감각으론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 진보매체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비판매체에 글을 쓰는 사람 중에 나처럼 참여정부의 (사학개혁을 제외한) 교육개혁 일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참여정부 교육정책 하나하나마다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사람은 나뿐이므로 내가 지금 명계남을 말하는 것에 정파적인 이해관계는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고 믿어도 좋다.

난 지금 사람으로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난 사람으로서 청룡상을 보면서 감동 받았다. 난 사람으로서 변희봉과 안성기, 박중훈, 김혜수의 수상을 보며 감동 받았다. 그리고 난 사람으로서 명계남의 청룡상 거부를 보며 감동 받는다. 그리고 지금 명계남이 영화도 못 만들 정도로 힘들어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 안타깝다.

내가 지금 참여정부를 반대하는 것과 별개로 노무현 사람들에 대한 기득권층의 이지메는 지나친 감이 있다. (물론 나는 피눈물을 뿌리며 박살나는 민중들의 처지가 더 참혹하다고 여긴다.) 난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들에게 감동 받는다. 영화사가 조선일보를 거부한다는 건 자폭과도 같은 사건이다. 지금 이스트필름은 영화 제작비도 구하기 힘든 처지라고 한다.

어서 빨리 이스트필름의 다음 작품을 보고 싶다. <초록물고기>같은 명작영화여도 좋고, 아니면 돈 좀 벌 수 있는 오락영화여도 좋다. 빨리 다음 작품이 나오길 기원한다. 그리고 인문, 문화인이 조선일보와 척을 지고도 먹고 살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원한다. 조선일보 치하의 이 나라는 너무나 숨이 막힌다.

▲ 하재근 칼럼니스트. 전 서프라이즈 편집장, 현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블로그       (http://blog.naver.com/oolj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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