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논술 자료함
속도 숭배 사회에 고함
김 문 수 / 소설가·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황소' 선생님에 얽힌 기억
고등학교 때 '황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선생님이 계셨다. 화학 담당인 선생님이었는데 '별명은 길고 본명은 짧은' 법이어서 지금 그 존함은 기억할 수가 없지만 성씨만은 강(康)씨로 알고 있다. 그런데 '황소'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황소처럼 체구가 크거나 힘이 세서가 아니었다. 그 걸음걸이가 황소처럼 느렸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수업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쉬는 시간이 되어도 그치기는커녕 오히려 빗줄기가 심술스럽게 더 세차졌다. 그런데 창문 옆에 앉았던 애들이 무엇 때문인지 밖으로 고개까지 내밀고는 '와아, 와아' 소리를 질러댔다. 달려가 보니 과연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교무실은 교실동에서 20m쯤 떨어져 있는 별채였는데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향하는 선생님들 모두가 한결같이 출석부로 머리를 가리시고 육상 선수들처럼 제각기 다른, 특유의 포즈로 뛰고들 계셨다. 그런데 '황소' 선생님만은 출석부를 옆구리에 척 끼시고는 그 비를 다 맞으며 그야말로 황소걸음으로 느릿느릿 걷고 계신 것이었다. '소나기를 만나도 절대로 뛰지 않는 선생님'이란 소문이 헛소문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시듯이. 그런 일이 있은 뒤, 화학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벼르고나 있었다는 듯이 질문을 퍼부어댔다.
"선생님, 비가 쏟아지는데 왜 안 뛰십니까?"
"뛰시지 않는 뭔 까닭이라도 있으십니까?"
선생님은 한 번 씨익 웃으시고는 대답하셨다.
"뭐하러 바보처럼 뛰어 가서 앞에 내리는 비까지 맞냐!"
그 대답 역시 소문 그대로였다. 우리들이 책상을 치고 발을 굴러 대며 배를 틀어쥐고 있는 사이, 선생님은 '牛步萬里(우보만리)'라고 판서를 하신 뒤, 곧장 수업을 시작하셨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선생님은 50대 초반이셨으니 지금쯤은 백수(白壽)를 누리시며 어딘가에서 건재하실 것 같다. 아마도 이 속도 숭배의 시대, 속도의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세간에서 견딜 수가 없어 어디 으슥한 산골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 구름 같은 삶을 누리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어떤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선생님께서는 정년 퇴직 후 아마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사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느림'으로 이룬 기적
부피에는 50대에 외동아들을 여의고 뒤이어 아내까지 세상을 뜨게 되자 경영하던 농장을 정리하고는 프로방스의 고원 지대 황무지로 들어가 개와 더불어 한가하게 살아가는 것을 낙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곳으로 이사하여 사는 3년 동안에, 그 황무지에다 서둘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꾸준하게 도토리를 심었다. 10만 개의 도토리를 심어 2만 그루의 싹이 텄는데 그 중에서 1만 그루를 산짐승들이 갉아먹어 1만 그루의 떡갈나무만이 살아남았다. 그래도 그는 계속 쇠막대로 낸 구멍에 도토리를 묻었다. 그리고 양들이 어린 떡갈나무의 싹을 먹을까봐 양 대신 벌을 치기 시작했다. 또 자작나무의 묘목도 길러내어 심었다. 그렇게 가꾼 나무들은 10년이 되자 사람 키보다도 훨씬 크게 자라났다. 드넓은 황무지가 차츰차츰 떡갈나무와 자작나무 숲으로 변해 갔고 드디어 새들이 찾아와 깃들기 시작했다. 바싹 말랐던 냇물에 물도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부피에는 87세가 되기까지 조금도 서둘지 않고 꾸준히 도토리를 묻고 자작나무 묘목을 심었다.
그렇게 40여 년이 흐르는 동안, 텅 빈 마을이나 다름없었던 그곳은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주해와 크게 번창해졌다. 땅값이 비싼 평야 지대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해 와 젊음과 활력과 모험 정신을 가져다 주었다.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건강한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소리내어 웃을 줄 알며 시골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소년 소녀들을 언제나 길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혼자의 힘으로 서둘지 않고 한 해 한 해, 40여 년 동안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기적을 일으킨 부피에는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부피에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단 한 사람의, 긴 세월에 걸친 외로운 노력으로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거대한 숲으로 바뀌고 새와 짐승과 사람들이 어울려 살게 된 이 기적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Jean Giono: 1895-1970)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는 사람이다.
나는 이 책(두레출판사에서 펴낸 김경온 번역본)을 아주 감명깊게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문득 '황소' 선생님 얼굴과 '우보만리'라는 판서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것은, 비록 꾸민 이야기이긴 하나, 그 부피에의 서둘지 않는 꾸준한 외로움 속의 노력(황소 걸음)이 없었다면 황무지를 떡갈나무 숲으로 만든 기적(만릿길)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뿐만 아니라 나는 요즘도 부피에와 '황소' 선생님 그리고 '우보만리'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차와 핸드폰이 없는 이유
요즘은 너나할것없이 모두들 속도전(速度戰)에 임하는 용사 같다. 실은 나 또한 그 속도전에 있어 역전의 용사였고 실은 지금도 악전고투 중이라 할 수 있다. 군대에서는 3년 동안 오줌을 누고도 오줌 나온 곳조차 내려다 볼 새가 없이 바쁘기만 하더니 제대를 하기 무섭게 밥을 벌기 위해 앞만 보고 뛰어야 했으며 그 다음엔 셋방살이를 면하려고, 셋방살이를 면하게 되자 이번에는 그 동안 늘어난 식구들이 제대로 운신할 수 있는 좀 여유 있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뛴 것이다. 그렇게 갑년(甲年)을 넘기기까지의 세월을 흘려 보낸 기분은 참으로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 이제는 '만리'를 뺀 '우보'만을 고집하기로 했다. '만리'까지 욕심부릴 수가 없도록 '빨리빨리'로 너무 많은 세월을 허송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차가 없느냐고. 그러면, 차를 가질 만큼 빨리 서둘 일이 없다고 대답한다. 또 사람들이 권한다. 핸드폰 하나 가지고 다니라고. 그러면 또, 그렇잖아도 일이 많아 줄여야 할 판인데 핸드폰을 갖고 다니면서까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인생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의 말처럼 만일 차를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또 얼마나 바빴을까 생각해 본다. 또 핸드폰을 주머니에 찌르고 다니는 인생이었다면 얼마나 바빴겠는가 생각해 본다. 아마도 그 바쁜 생활 때문에 속도의 노예가 되어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런 내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근황을 묻곤 한다. 바빠서 그게 탈이라고 하면 그들은 부럽다는 듯이 '바쁠 때가 좋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내게는 악담(?)처럼 들린다. 전혀 바쁘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 한적한 산골이나 바닷가 같은 곳에 가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서울 생활을 까맣게 잊고 여유롭게 살아보는 게 꿈이기 때문이다. 그래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런 애기를 하면 모두들 한결같이 귓가로 흘려듣고 만다. 그냥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여생을 그런 곳에서 보내겠다구? 네가?" 하고 코웃음치는 사람들도 많다. 산골이나 바닷가에서는, 내가 여생은커녕 단 한 달도 못 견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그런 판단은 순전히 내 성격 탓인 듯도 하다.
사실 나는 성질이 급한 편이긴 하다. 때문에 고향 사람들은 나를 '돌 충청도'로 여긴다. 그래도 충청도는 충청도여서 충청도가 고향이 아닌 사람들은 용케도 내게서 충청도 냄새를 맡아 내고는 "아버지, 도올 구울러가유우" 하며 놀려댄다. 성질은 급한데도, 내게 어딘가 느려터진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 느려터진 구석을 산골이나 바닷가 같은 곳에 가서 한껏 키워 가며 느긋하게 삶을 누리고 싶다. 나도 모르게 내 몸 속에 파고 든 '빨리빨리' 병의 바이러스를 박멸하고 싶다.
속도 숭배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
이 시대를 일러 '무한 경쟁 시대', '고도 성장 시대' 등등으로 일컫는다. 그런 시대, 그런 사회이다 보니 남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기 위해, 아니 낙오될 것이 두려워 사람들은 일 분 일 초를 가만히 있지 못한다. 모두들 올림픽 강령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운동 선수들처럼 '더 빨리! 더 편히! 더 많이!'를 가슴 깊이 새겨 놓고들 산다. 무슨 수단, 어떤 방법으로든 남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세를 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남보다 편하게 살아야 하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언제부턴가 현대인의, 우리네의 생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외국 사람들이 우리를 일러 '빨리빨리 족(族)'이라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중국 사람을, 굼뜨고 느리다며 '만만디(漫漫的)'라고 욕하는 우리에게 붙은 대명사 '빨리빨리'는 과연 '만만디'보다 윗길인가. 우리 속담에 '총총들이 반 병'이라는 말이 있다. 병에 무엇을 부을 때 급히 하면 반밖에 채울 수가 없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는 이 속담의 교훈을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고들 있다.
어느 결에 우리 사회는 속도 숭배의 사회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빨리빨리'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이미 오래 되어 '빨리빨리' 병의 중증 환자들이 되고 말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88고속도로에서 대형 사고가 일어나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사고 원인은 '빨리빨리'병의 중증 환자들이 저지른 추월 행위 때문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대형 사고·사건이 아니더라도 '빨리빨리'병 환자들은 우리 주변에 무진장 널려 있다. 속도 숭배의 사회 풍조가 '빨리빨리'병 환자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나도 분명 이러한 '시대의 과오' 때문에 많은 세월을 '빨리빨리' 허송했다. 그러느라고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갖지 못했으며 세상도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만 살아온 것이다.
여태까지 그토록 바삐 살다 보니 인생에 있어 결손을 본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많다. 자연과 멀어진 생활을 한 것은 손해 중에서도 아주 큰 손해이다. "자연은 모든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자연은 궁극적인 유일무이한 창조자이다. 예술가는 우선 자연에 다가가 자연을 탐구해야 한다…근대의 교육은 사람들의 정신 속에 감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지 못한다. 오히려 일찍부터 사이비 학자로 만들어 버린다. 예술가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은 심미학에 관한 책을 읽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연에 의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라는 로댕의 애기(『예술의 숲』, 돋을새김 발행, 원제는 '말'임)를 다시금 음미해 본다. 예술의 한 장르에 종사하는 나로서는 로댕의 이 말이 아니더라도 예술에 미치는 자연의 영향이 지대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삐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연을 등진 생활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큰 손실인가. 이것은 물론 예술 분야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전 인류가 자연과 합일을 이룰 때만이 그 세상은 온전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하기야 '빠름'이 무조건 나쁘다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다. 창조주는 이 세상을 만들 때 대칭적 균형의 대 원칙을 정해 놓았다. 선(善)과 악(惡)이 있고 희(喜)와 비(悲)가 있으며 고(高)와 저(底)가 있고 완(緩)과 급(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느림'은 좋고 '빠름'이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빨리빨리 서둘러야 할 때는 느려터지게 행동하고, 여유를 가지며 생각하고 또 그것을 꼼꼼히 실행해야 할 때는 터무니없이 바쁘게 서둘러 졸속을 범하는 일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사건들이 모두가 그 원인을 캐고 보면 졸속 때문이 아닌 게 얼마나 되는가. 또 그런 졸속으로 위험에 처한 것들을 서둘러 시정하고 개선하지 않아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사고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백화점이 무너진 것, 다리가 끊어진 것, 숱한 아이들이 불에 타 숨진 것, 고속도로 등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대형 참사, 시화호 방조제, 동강댐…. 어찌 그 숱한 것들을 이 지면에 다 소개할 수 있겠는가.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삶을 꿈꾸며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의 환경·자연·생태계 문제가 심각함을 여기서 말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한 마디 덧붙인다면 '개발'이란 이름을 내걸고 '빨리빨리'를 넘어 번개치듯 벌이는 숱한 사업들로 환경·자연·생태계의 파괴는 이제 다시금 일어나지 않아야 되며, 설혹 시행 착오로 그런 우를 범했다면 무었보다도 우선적으로 그리고 그야말로 '빨리빨리' 시정하거나 복원해야만 한다.
"현대 산업 사회는 광신적 종교 집단이나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온갖 생명 시스템을 먹어치우고 독살하고 파괴하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차용 증서에 우리는 서명하는 셈이다…우리는 지구상에 사는 마지막 세대라도 되는 양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 나의 가슴 속에, 마음 깊숙이, 자신의 비전 한 가운데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지구는 숯처럼 타 황막한 금성처럼 종말을 맞게 되리라"는 호세 안토니오 루첸버거(Jose Antonia Lutzenberger)의 말(「선데이타임즈」 1991년 3월호 재인용)을 우리 모두는 '빨리빨리' 가슴 깊숙이 새겨 근본적으로 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인류가 현재 생존을 위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중에서 환경·자연·생태계 문제보다 우선하는 것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속도 숭배자들이 빨리빨리 살기 위해 몰고 나온 차들이 엉켜 도로를 아예 주차장으로 만들고 그 차들이 뿜어 대는 매연을 맡으며 오늘도 나는 '우보만리'라는 판서와 "뭣하러 바보처럼 뛰어가서 앞에 비까지 맞느냐"고 하시던 '황소'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장 지오노에 의해서 탄생된 엘제아르 부피에의 고결한 인격과 그의 서둘지 않는 느긋한 성격을 부러워하며 나는 오늘도, 느긋하게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희망해 본다.
김문수
동국대 국문과 졸업, 국민대 대학원 문학 석사(현대문학 전공).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대문학상·한국문학작가상·동인문학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현 소설가,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자문위원. 소설집 『증묘·미로학습』, 『바람아 이 영혼을』, 『만취당기』 등.
김 문 수 / 소설가·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황소' 선생님에 얽힌 기억
고등학교 때 '황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선생님이 계셨다. 화학 담당인 선생님이었는데 '별명은 길고 본명은 짧은' 법이어서 지금 그 존함은 기억할 수가 없지만 성씨만은 강(康)씨로 알고 있다. 그런데 '황소'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황소처럼 체구가 크거나 힘이 세서가 아니었다. 그 걸음걸이가 황소처럼 느렸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수업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쉬는 시간이 되어도 그치기는커녕 오히려 빗줄기가 심술스럽게 더 세차졌다. 그런데 창문 옆에 앉았던 애들이 무엇 때문인지 밖으로 고개까지 내밀고는 '와아, 와아' 소리를 질러댔다. 달려가 보니 과연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교무실은 교실동에서 20m쯤 떨어져 있는 별채였는데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향하는 선생님들 모두가 한결같이 출석부로 머리를 가리시고 육상 선수들처럼 제각기 다른, 특유의 포즈로 뛰고들 계셨다. 그런데 '황소' 선생님만은 출석부를 옆구리에 척 끼시고는 그 비를 다 맞으며 그야말로 황소걸음으로 느릿느릿 걷고 계신 것이었다. '소나기를 만나도 절대로 뛰지 않는 선생님'이란 소문이 헛소문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시듯이. 그런 일이 있은 뒤, 화학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벼르고나 있었다는 듯이 질문을 퍼부어댔다.
"선생님, 비가 쏟아지는데 왜 안 뛰십니까?"
"뛰시지 않는 뭔 까닭이라도 있으십니까?"
선생님은 한 번 씨익 웃으시고는 대답하셨다.
"뭐하러 바보처럼 뛰어 가서 앞에 내리는 비까지 맞냐!"
그 대답 역시 소문 그대로였다. 우리들이 책상을 치고 발을 굴러 대며 배를 틀어쥐고 있는 사이, 선생님은 '牛步萬里(우보만리)'라고 판서를 하신 뒤, 곧장 수업을 시작하셨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선생님은 50대 초반이셨으니 지금쯤은 백수(白壽)를 누리시며 어딘가에서 건재하실 것 같다. 아마도 이 속도 숭배의 시대, 속도의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세간에서 견딜 수가 없어 어디 으슥한 산골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 구름 같은 삶을 누리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어떤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선생님께서는 정년 퇴직 후 아마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사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느림'으로 이룬 기적
부피에는 50대에 외동아들을 여의고 뒤이어 아내까지 세상을 뜨게 되자 경영하던 농장을 정리하고는 프로방스의 고원 지대 황무지로 들어가 개와 더불어 한가하게 살아가는 것을 낙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곳으로 이사하여 사는 3년 동안에, 그 황무지에다 서둘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꾸준하게 도토리를 심었다. 10만 개의 도토리를 심어 2만 그루의 싹이 텄는데 그 중에서 1만 그루를 산짐승들이 갉아먹어 1만 그루의 떡갈나무만이 살아남았다. 그래도 그는 계속 쇠막대로 낸 구멍에 도토리를 묻었다. 그리고 양들이 어린 떡갈나무의 싹을 먹을까봐 양 대신 벌을 치기 시작했다. 또 자작나무의 묘목도 길러내어 심었다. 그렇게 가꾼 나무들은 10년이 되자 사람 키보다도 훨씬 크게 자라났다. 드넓은 황무지가 차츰차츰 떡갈나무와 자작나무 숲으로 변해 갔고 드디어 새들이 찾아와 깃들기 시작했다. 바싹 말랐던 냇물에 물도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부피에는 87세가 되기까지 조금도 서둘지 않고 꾸준히 도토리를 묻고 자작나무 묘목을 심었다.
그렇게 40여 년이 흐르는 동안, 텅 빈 마을이나 다름없었던 그곳은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주해와 크게 번창해졌다. 땅값이 비싼 평야 지대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해 와 젊음과 활력과 모험 정신을 가져다 주었다.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건강한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소리내어 웃을 줄 알며 시골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소년 소녀들을 언제나 길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혼자의 힘으로 서둘지 않고 한 해 한 해, 40여 년 동안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 기적을 일으킨 부피에는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부피에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단 한 사람의, 긴 세월에 걸친 외로운 노력으로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거대한 숲으로 바뀌고 새와 짐승과 사람들이 어울려 살게 된 이 기적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Jean Giono: 1895-1970)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는 사람이다.
나는 이 책(두레출판사에서 펴낸 김경온 번역본)을 아주 감명깊게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문득 '황소' 선생님 얼굴과 '우보만리'라는 판서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것은, 비록 꾸민 이야기이긴 하나, 그 부피에의 서둘지 않는 꾸준한 외로움 속의 노력(황소 걸음)이 없었다면 황무지를 떡갈나무 숲으로 만든 기적(만릿길)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뿐만 아니라 나는 요즘도 부피에와 '황소' 선생님 그리고 '우보만리'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차와 핸드폰이 없는 이유
요즘은 너나할것없이 모두들 속도전(速度戰)에 임하는 용사 같다. 실은 나 또한 그 속도전에 있어 역전의 용사였고 실은 지금도 악전고투 중이라 할 수 있다. 군대에서는 3년 동안 오줌을 누고도 오줌 나온 곳조차 내려다 볼 새가 없이 바쁘기만 하더니 제대를 하기 무섭게 밥을 벌기 위해 앞만 보고 뛰어야 했으며 그 다음엔 셋방살이를 면하려고, 셋방살이를 면하게 되자 이번에는 그 동안 늘어난 식구들이 제대로 운신할 수 있는 좀 여유 있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뛴 것이다. 그렇게 갑년(甲年)을 넘기기까지의 세월을 흘려 보낸 기분은 참으로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 이제는 '만리'를 뺀 '우보'만을 고집하기로 했다. '만리'까지 욕심부릴 수가 없도록 '빨리빨리'로 너무 많은 세월을 허송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차가 없느냐고. 그러면, 차를 가질 만큼 빨리 서둘 일이 없다고 대답한다. 또 사람들이 권한다. 핸드폰 하나 가지고 다니라고. 그러면 또, 그렇잖아도 일이 많아 줄여야 할 판인데 핸드폰을 갖고 다니면서까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인생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의 말처럼 만일 차를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또 얼마나 바빴을까 생각해 본다. 또 핸드폰을 주머니에 찌르고 다니는 인생이었다면 얼마나 바빴겠는가 생각해 본다. 아마도 그 바쁜 생활 때문에 속도의 노예가 되어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런 내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근황을 묻곤 한다. 바빠서 그게 탈이라고 하면 그들은 부럽다는 듯이 '바쁠 때가 좋을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내게는 악담(?)처럼 들린다. 전혀 바쁘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 한적한 산골이나 바닷가 같은 곳에 가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서울 생활을 까맣게 잊고 여유롭게 살아보는 게 꿈이기 때문이다. 그래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런 애기를 하면 모두들 한결같이 귓가로 흘려듣고 만다. 그냥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여생을 그런 곳에서 보내겠다구? 네가?" 하고 코웃음치는 사람들도 많다. 산골이나 바닷가에서는, 내가 여생은커녕 단 한 달도 못 견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그런 판단은 순전히 내 성격 탓인 듯도 하다.
사실 나는 성질이 급한 편이긴 하다. 때문에 고향 사람들은 나를 '돌 충청도'로 여긴다. 그래도 충청도는 충청도여서 충청도가 고향이 아닌 사람들은 용케도 내게서 충청도 냄새를 맡아 내고는 "아버지, 도올 구울러가유우" 하며 놀려댄다. 성질은 급한데도, 내게 어딘가 느려터진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 느려터진 구석을 산골이나 바닷가 같은 곳에 가서 한껏 키워 가며 느긋하게 삶을 누리고 싶다. 나도 모르게 내 몸 속에 파고 든 '빨리빨리' 병의 바이러스를 박멸하고 싶다.
속도 숭배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
이 시대를 일러 '무한 경쟁 시대', '고도 성장 시대' 등등으로 일컫는다. 그런 시대, 그런 사회이다 보니 남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기 위해, 아니 낙오될 것이 두려워 사람들은 일 분 일 초를 가만히 있지 못한다. 모두들 올림픽 강령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운동 선수들처럼 '더 빨리! 더 편히! 더 많이!'를 가슴 깊이 새겨 놓고들 산다. 무슨 수단, 어떤 방법으로든 남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세를 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남보다 편하게 살아야 하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언제부턴가 현대인의, 우리네의 생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외국 사람들이 우리를 일러 '빨리빨리 족(族)'이라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중국 사람을, 굼뜨고 느리다며 '만만디(漫漫的)'라고 욕하는 우리에게 붙은 대명사 '빨리빨리'는 과연 '만만디'보다 윗길인가. 우리 속담에 '총총들이 반 병'이라는 말이 있다. 병에 무엇을 부을 때 급히 하면 반밖에 채울 수가 없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는 이 속담의 교훈을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고들 있다.
어느 결에 우리 사회는 속도 숭배의 사회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빨리빨리'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이미 오래 되어 '빨리빨리' 병의 중증 환자들이 되고 말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88고속도로에서 대형 사고가 일어나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사고 원인은 '빨리빨리'병의 중증 환자들이 저지른 추월 행위 때문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런 대형 사고·사건이 아니더라도 '빨리빨리'병 환자들은 우리 주변에 무진장 널려 있다. 속도 숭배의 사회 풍조가 '빨리빨리'병 환자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나도 분명 이러한 '시대의 과오' 때문에 많은 세월을 '빨리빨리' 허송했다. 그러느라고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갖지 못했으며 세상도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만 살아온 것이다.
여태까지 그토록 바삐 살다 보니 인생에 있어 결손을 본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많다. 자연과 멀어진 생활을 한 것은 손해 중에서도 아주 큰 손해이다. "자연은 모든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자연은 궁극적인 유일무이한 창조자이다. 예술가는 우선 자연에 다가가 자연을 탐구해야 한다…근대의 교육은 사람들의 정신 속에 감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지 못한다. 오히려 일찍부터 사이비 학자로 만들어 버린다. 예술가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은 심미학에 관한 책을 읽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연에 의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라는 로댕의 애기(『예술의 숲』, 돋을새김 발행, 원제는 '말'임)를 다시금 음미해 본다. 예술의 한 장르에 종사하는 나로서는 로댕의 이 말이 아니더라도 예술에 미치는 자연의 영향이 지대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삐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연을 등진 생활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큰 손실인가. 이것은 물론 예술 분야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전 인류가 자연과 합일을 이룰 때만이 그 세상은 온전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하기야 '빠름'이 무조건 나쁘다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다. 창조주는 이 세상을 만들 때 대칭적 균형의 대 원칙을 정해 놓았다. 선(善)과 악(惡)이 있고 희(喜)와 비(悲)가 있으며 고(高)와 저(底)가 있고 완(緩)과 급(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느림'은 좋고 '빠름'이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빨리빨리 서둘러야 할 때는 느려터지게 행동하고, 여유를 가지며 생각하고 또 그것을 꼼꼼히 실행해야 할 때는 터무니없이 바쁘게 서둘러 졸속을 범하는 일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사건들이 모두가 그 원인을 캐고 보면 졸속 때문이 아닌 게 얼마나 되는가. 또 그런 졸속으로 위험에 처한 것들을 서둘러 시정하고 개선하지 않아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사고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백화점이 무너진 것, 다리가 끊어진 것, 숱한 아이들이 불에 타 숨진 것, 고속도로 등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대형 참사, 시화호 방조제, 동강댐…. 어찌 그 숱한 것들을 이 지면에 다 소개할 수 있겠는가.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삶을 꿈꾸며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의 환경·자연·생태계 문제가 심각함을 여기서 말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한 마디 덧붙인다면 '개발'이란 이름을 내걸고 '빨리빨리'를 넘어 번개치듯 벌이는 숱한 사업들로 환경·자연·생태계의 파괴는 이제 다시금 일어나지 않아야 되며, 설혹 시행 착오로 그런 우를 범했다면 무었보다도 우선적으로 그리고 그야말로 '빨리빨리' 시정하거나 복원해야만 한다.
"현대 산업 사회는 광신적 종교 집단이나 다를 게 없다. 우리는 온갖 생명 시스템을 먹어치우고 독살하고 파괴하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차용 증서에 우리는 서명하는 셈이다…우리는 지구상에 사는 마지막 세대라도 되는 양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 나의 가슴 속에, 마음 깊숙이, 자신의 비전 한 가운데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지구는 숯처럼 타 황막한 금성처럼 종말을 맞게 되리라"는 호세 안토니오 루첸버거(Jose Antonia Lutzenberger)의 말(「선데이타임즈」 1991년 3월호 재인용)을 우리 모두는 '빨리빨리' 가슴 깊숙이 새겨 근본적으로 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인류가 현재 생존을 위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중에서 환경·자연·생태계 문제보다 우선하는 것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속도 숭배자들이 빨리빨리 살기 위해 몰고 나온 차들이 엉켜 도로를 아예 주차장으로 만들고 그 차들이 뿜어 대는 매연을 맡으며 오늘도 나는 '우보만리'라는 판서와 "뭣하러 바보처럼 뛰어가서 앞에 비까지 맞느냐"고 하시던 '황소'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장 지오노에 의해서 탄생된 엘제아르 부피에의 고결한 인격과 그의 서둘지 않는 느긋한 성격을 부러워하며 나는 오늘도, 느긋하게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희망해 본다.
김문수
동국대 국문과 졸업, 국민대 대학원 문학 석사(현대문학 전공).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대문학상·한국문학작가상·동인문학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현 소설가,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자문위원. 소설집 『증묘·미로학습』, 『바람아 이 영혼을』, 『만취당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