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최근 900억 공금횡령으로 입건된 정몽구 현대자동차회장과 폭력행위로 입건된 김승연 한화구룹 회장 집행유예 판결에 대한 견해를 실은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사법정의는 멀고 먼 길인가? 이렇게 후진적인 판결을 일삼는 사법부는 왜 퇴출되지 않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글을 읽고 왜 이러한 판결이 나오는지, 그리고 사법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해 보자.


1. 사법정의와 거리 먼 ‘정몽구 판결’  한겨레 사설 2007년 09월 06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여기에 사회공헌 약속의 이행과 사회봉사 명령이 덤으로 얹혀진 판결이다.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도 법정구속은 되지 않아 기업 경영을 계속해온 정회장은 이로써 자유의 몸이 됐다. 회삿돈 900억원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000억원의 손해를 끼친 범죄인이 구속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기까지 감옥생활이라곤 겨우 2개월밖에 하지 않은 것이다.
재벌총수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선고가 물론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법원은 그동안 기업인 범죄에 대해 1심에선 실형, 2심에선 집행유예를 내리는 것을 마치 공식처럼 행해왔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2000년 1월 이후 특경가법상 횡령·배임혐의로 기소된 기업인 149명에 대한 선고내역을 조사했더니 83.9%(125명)가 1심 아니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과거에 그렇다고 해서 이번 집유 선고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과거에는 비자금 조성 관행이 있었다”고 집유 사유를 밝혔다. 납득할 수 없는 논리다. 화이트칼라 사건에서 과거 관행이라는 이유로 선처를 베풀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사회공헌과 관련해 “2013년까지 8400억원의 출연을 실행하지 않으면 집행유예를 취소한다”고 못박은 것도 이색적이긴 하나 사법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재판부는 종전의 집유 선고와 다른 엄벌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강조하고 싶겠지만, 국민의 눈에는 돈 가진 사람에게 유리한 또하나의 ‘유전무죄(有錢無罪)’ 선고일 뿐이다.
2006년 2월 두산그룹 오너 일가에 대해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지자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남의 집에 들어가 1억원어치 물건을 훔치면 실형이 선고된다. 그런데 200억~300억원을 횡령한 사람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면 국민이 수긍하겠는가.”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대법원장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선고가 계속되고 있다.  


2. 돈으로 산 집행유예, 돈에 굴복한 사법정의

김상조 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 / 진보정치 340호  

소송은 분쟁을 해결하는 최후의 수단이며, 법원은 그 사회의 신뢰 관계를 지탱하는 최후의 권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 판결은 시대를 앞서 가는 진보적 내용을 담기보다는 기존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법원이 사회발전의 마지노선마저 무너뜨리는 판결을 내린다면 어찌되겠는가. 법원의 보수적 권위마저 불신받는 상황에서 어떤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수 있겠는가.
지금 한국 사회는 바로 그런 불신과 혼란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과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에게 법원은 잇따라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두 사건만이 아니다. 경제개혁연대가 2000년 이후 최근까지 특경가법상의 배임·횡령죄로 유죄 선고를 받은 기업인들의 판결 내용을 분석한 결과, 83.9%의 범죄자들이 집행유예로 ‘신체적 자유’를 획득했음이 밝혀졌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일반 국민의 법감정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님이 분명히 드러났다.
더구나 집행유예 선고 사유가 천편일률적이다. ‘개인적으로 취한 이득이 없으며, 회사의 손해를 변제했다’는 것이다. 판결문을 읽다보면, 사법고시에 합격한 우리나라 최고 수재들인 판사님들의 상식 이하의 경제 인식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우선, 총수일가의 범죄 동기는 대부분 그룹 지배권의 유지·승계라는 유무형의 사적 편익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직접 주머니에 챙겨 넣은 돈이 없다고 해서 어찌 개인적 이득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또한, 범죄가 적발되고 난 이후에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서 (협의의)회사 손해만 변제하면 그 범죄의 불법성이 경감된다고 보는 것도 문제다. 들키지 않으면 횡재고, 들키면 물어주면 되는 상황에서, 어느 총수가 범죄 유인을 갖지 않겠는가.
이번 정몽구 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우리나라 법원의 그릇된 판결 관행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판사님께서는 택시 기사, 음식점 주인 등 일반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셨다는데, 경제학원론도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이 통계학 공부는 얼마나 열심히 하셨을지 의심스럽다. 주관적 기준, 그것도 지극히 왜곡된 기준으로 판결하는 것이야말로 판사가 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금기사항 아닌가.
또 판사님께서는 “현대자동차를 부도에 이르게 하는 도박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현대자동차가 부도나면 한국경제에 큰 충격이 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가 지난 상반기 사상 최고의 경영실적을 기록했다는 신문기사만 제대로 읽었더라도, 부도 우려 때문에 밤을 지새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재경부 장관도 아닌 판사님께서 경제 걱정은 왜 이렇게 하시는지, 오지랖이 넓다는 느낌뿐이다.
이번 집행유예 선고의 하이라이트는 8400억 원의 사회헌납 등을 조건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미국의 주 법원이 범죄자에게 사회기부를 조건으로 보호관찰(우리나라의 집행유예와 비슷)을 선고한 것에 대해, 연방 대법원이 판사의 이해상충 및 재량권 남용 문제를 이유로 무효화한 것은 남의 나라 일이라 치자. 그 판사님께서 산수를 잘못하여 1조 원을 8400억 원으로 판결문에 쓴 것도 웃어넘길 수 있다.
핵심은, 그 돈이 누구 돈이냐는 것이다. 정몽구 회장이 헌납을 약속한 1조 원은 글로비스에 대한 ‘물량 몰아주기’로 챙긴 부당이득이라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자기 돈도 아니고 훔친 돈으로 생색내는 걸 집행유예 선고의 조건으로 삼았으니, 정말 희극이다. 아니 비극이다.
법 앞의 평등한 정의(Equal Justice under Law), 이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이런 기본적 과제조차 내팽개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이를 대중으로 힘으로 성취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보의 과제이다.


3. 판사가 문제의 핵심이다  

                          창비주간논평. 2007-09-18 /하승수 | 제주대 법학부 교수, 변호사

정몽구, 김승연 두 재벌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 때문에 여론이 떠들썩하다. 막대한 규모의 회사 돈을 빼돌리거나 조직폭력배처럼 집단 보복폭행을 한 재벌회장에게 법원은 이번에도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파이낸셜타임즈에서 '한국의 재벌회장들은 사건만 일어나면 휠체어를 타고 탈출한다'고 비꼰 걸 보면, 이제 한국의 사법은 국제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정몽구 회장에 대한 판결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판결은 판사의 가치관과 양심에 대해 여러가지 면에서 생각할 점을 던져주었다고 본다. 법을 어겨도 심하게 어긴 정몽구 회장에게 '준법에 관한 강연이나 기고를 해서 사회봉사를 하라'는 판결 내용은 그냥 들었으면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시사패러디로 착각했을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별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본다. 다만 그것이 사회봉사명령이라는 제도를 희화화한 것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절도범에게는 '도난 방지에 관한 강연을 하라'고 봉사명령을 내리고, 폭행범에게는 '평화적 갈등 해결에 관한 기고를 하라'고 봉사명령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코미디 같은 사회봉사명령
게다가 재판장은 판결을 선고하면서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정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으면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한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도 참으로 모를 일이지만, 과연 재판장이 실제로 국가경제가 그렇게 걱정이 되어서 그런 내용의 판결을 선고했는지도 의문이다. 국가경제에 대한 걱정이 실형을 집행유예로 감경할 수 있는 사유도 되지 않는데 말이다.
사실 이런 판결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재벌회장뿐 아니라 뇌물을 받은 고위공무원 등 재력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법원은 유독 관대한 판결을 내려왔다. 형사판결만이 문제가 아니다. 각종 기업 관련 소송, 개발사업과 관련된 소송, 정보공개 관련 소송 들에서도 법원은 대기업이나 정부관료조직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 시민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사법부의 그런 판결들에 대해 비판도 계속되어왔다. 그런 비판들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이용훈 대법원장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두 판결을 보면 그것 역시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런 판결들을 더이상 보지 않을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사법제도가 정의와 인권의 편에 설 수 있는가이다.

정의와 인권에 둔감한 법관의 탄생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현재의 사법씨스템 전반과 관련되어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여러가지 문제가 존재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핵심이 다가오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문제의 핵심은 그런 판결을 내리고도 태연하게 '비판은 달게 받겠다'고 말할 수 있는 판사에게 있다. '비판은 달게 받겠다'는 것은 겸손한 태도가 아니라 오만 그 자체이다. 그것은 비판을 하든 말든 자신이 가진 특권적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오만일 것이다.
사실 법원에 사법권이 귀속되는 이상 법관의 신분은 보장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임용된 법관에게는 개별적인 재판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그래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은 아니지만, 사법부는 '견제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이런 오만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핵심은 법관을 제대로 임용하고 그들의 권한을 재배분하며 그들을 견제·감시할 수 있는 씨스템을 확대해가는 데 있다. 우선 지금처럼 인권과 정의에 둔감하고 기득권 옹호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쉽게 판사가 될 수 있는 씨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인권과 정의의 의미를 경험하고 고민하기보다는 실정법 지식과 법기술만 터득하면 판사가 될 수 있고, 판사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시험성적'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법관 임용방식을 변혁해야
이런 상황에서 판사에게 올바르고 균형잡힌 가치관, 인권과 정의에 대한 신념을 지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게다가 판사가 되면 외부로부터 대단한 대우를 받게 되고, 퇴임하면 변호사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보장되어 있다. 그런 판사가 사회에서 기득권 의식을 갖게 되고, 역시 이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관을 어떻게 뽑고 그들을 어떻게 견제·감시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되는 것이다. 로스쿨이 도입된다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관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가시화된 것이 없다. 로스쿨이든 사법연수원이든 수료하고 시험성적으로 법관을 뽑는 씨스템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법관에게 필요한 것은 법전과 판례를 외는 능력이나 특수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라기보다는 인권의식, 정의에 대한 신념, 공익과 사회를 위한 봉사의식일 것이다.
이제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의 활동을 통해 인권의식과 가치관 등이 검증된 사람 중에서 법관을 뽑아야 한다. 그런 씨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게다. 그리고 법관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전관예우는 아직도 존재하는 법조계의 문제이다. 이를 뿌리뽑아야 한다. 더구나 요즘에는 대형 로펌들이 고위법관 출신을 영입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주로 돈있는 사람들과 대기업에 자문하는 이들 로펌이 고위법관 출신을 거액의 연봉을 주고 데려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 점에서 전관예우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신화를 재생산하는 우리 사법씨스템의 핵심적 문제이기도 하다.

국민의 사법참여로 사법개혁의 흐름을 이어나가자

한편 법관의 권한을 재분배하고 법관을 견제·감시하는 것은 국민의 사법참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내년부터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현재의 제도는 중범죄에만 제한적으로 그리고 피고인이 원할 경우에만 적용되는 제도이다. 앞으로 국민의 사법참여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대폭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국민의 사법참여는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제어하는 기능도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사법의 실체를 경험하고 사법에 대한 자신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며 사법에 대한 견제·감시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법개혁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법원과 정부관료조직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두 재벌회장 판결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것은 '즉자적인 분노'가 그냥 식지 않고 사법개혁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시민사회의 몫일 것이다.


4. 법관이 왜 경제 걱정을 하나?

재벌에게만 관대한 법원 (고태진 탈럼 /오마이뉴스 2007.09.11)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우리 대법원에 가면 '정의의 여신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 '정의의 여신상'은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무섭게 서 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는 않고 감고 있으며,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앉아 있다. 조금 다른 셈이다.
그래서 그런가? 애초에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대상이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만인에게 공평한 판결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예전에 인혁당 사건 때는 고문 당해 만신창이가 된 무고한 피고들의 참상과 억지 자백으로 작성된 진술서에는 정작 눈을 찔끔 감았다. 그런데 요즘 우리 법원에서는 감고 있는 눈을 살짝 뜨고는 누구인지 확인하고 판결을 하는 모양이다.

안대 두르지 않고 앉아있는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또한 법원은 추상같은 판결로 사회 정의와 인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의 정의의 여신상에는 정의와 인권을 지키는 날카로운 칼이 없다. 힘센 자를 심판하기 위해서는 날카롭고 위압적인 칼이 필요한 법이다.
회사 돈을 빼돌려 기소됐던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9월 6일 집행유예로 풀려난 데 이어, 보복폭행으로 기소됐던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도 9월 11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9000억 원대의 회사 돈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100억 원대의 손실을 끼친 정몽구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해 맞고 들어온 아들의 보복폭행에 나선 김승연 회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니 아마도 정몽구 회장의 범죄사실을 더 무겁게 본 듯하다.
어차피 집행유예는 실질적으로 똑같이 풀려나는 것이니, 각각의 사회봉사명령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몽구 회장이 돈을 내놓기로 한 것은 판결 전에 약속한 것이므로 제쳐두자. 정몽구 회장은 전경련 회원들 대상으로 강연 및 신문 기고을 명령받은 데 비해, 김승연 회장은 복지시설 및 대민봉사 활동 200시간을 명령받았다.
아마 김승연 회장으로서는 이 부분이 난감하지 않을까 싶다. 만인에 공평하지 않는 법이 재벌간에도 그 재벌의 규모에 따라 공평하지 않은 셈이다. 김승연 회장도 전경련 강연이나 신문기고로 사회봉사명령을 내리지 않은 재판부에 불만을 가지지 않을까?
재벌 총수가 아닌 사람이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면 정몽구 회장이나 김승연 회장이 받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몽구 회장에게 판결한 이재홍 부장판사는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대차가 경제에 미칠 영향이 꺼려진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경우는 또 어떤가? 지난 6월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은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삼성이 가지는 무게, 이건희 회장이 가지는 무게가 일반 사건과는 좀 다르다”며 이건희 회장에 대한 조기 수사 의지가 없음을 밝혔다. 검찰이 기소차원에서 '신중'을 기하느라, 이건희 회장은 아예 법원까지도 가기가 힘들어 보인다.
법원이 법과 양심이라는 판결의 기준만이 아니라 법 외적인 요인들에 너무 많은 고려를 하고 있다. 법관이 죄지은 대로 판결을 하면 되지, 왜 현대자동차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오버'를 하는가? 경제 걱정은 행정부의 경제 당국에 맡기면 된다.
김승연 회장에게는 재벌회장으로서의 특권 의식을 버리고 땀으로 봉사하라면서, 버젓이 집행유예라는 특권적 판결을 내려주는건 또 뭔가? 김승연 회장에 대한 관대한 판결에서도 아마 '경제 걱정'이라는 법 외적인 요인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물신주의와 재벌주의의 폐해에 물든 법원
최근 재벌 총수들에 대한 관대한 처벌은 단순히 유전무죄라는 현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박힌 물신주의와 재벌주의의 폐해에 정의와 인권의 보루인 법원까지 물든 것이다. '재벌이 우리 국가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는 착각, '재벌총수가 대기업의 주인'이라는 전근대적 기업관을 그 분야의 비전문가인 법관들이 맹신하고 있는 결과인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의 눈에 안대를 둘러야 한다. 그래야 법관들이 '사이비 경제 걱정'의 환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손에 든 저울에 범죄의 무거움과 가벼움만을 달아서 엄정하게 판결하게 될 것이다.
'정의의 여신상'의 손에 칼을 들리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인, 재벌총수 등 권력자들을 굽어보며 추상같은 판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동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법관들의 의식이 바뀌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5. 현직 판사 "신정아의 거짓말? 우린 떳떳한가"

정영진 판사 연이어 쓴소리... "재벌총수 관련 재판, 거짓말 됐다"  
오마이뉴스 이경태 (sneercool)기자   2007.09.17

  
▲ 왼쪽부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006년 2월 4일 김포공항),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2006년 7월 10일 서울중앙지법),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2007년 9월 11일 서울중앙지법). <정몽구/김승연 사진제공 연합뉴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12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재벌그룹 회장의 잇따른 집행유예 선고에 대해 사법부의 자성을 촉구하는 글을 올린 정영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쓴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정 부장판사는 17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신 모씨 관련 파문이 사법부에 주는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신 모씨 관련 파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는 관련자들의 거짓말"이라며 "거짓말과 싸우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사법부가 진실되지 못하고 '법대로' 재판이나 사법행정을 하지 않는 경우 참혹하게 추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사법부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법원이 그동안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고수해왔고 전국 5개 고법과 18개 지법의 형사항소심 재판장들이 2심에서 1심의 선고형량을 감형해주는 온정주의 관행을 없애겠다고 했지만 최근 재벌 총수 관련사건 재판 결과는 그와 완전히 배치돼 거짓말이 됐다."
정 부장판사는 "이와 관련해 폐쇄적인 사법관료 시스템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며 그 예로 '고등법원부장판사 승진제도'를 꼽았다.
"(재벌 총수 관련사건 재판 결과와 관련해) 재판 결과들이 그 전의 선례를 추종한 것들이 많다. 거의 판에 박은 듯 한 양태를 띈 것들도 있다. (중략) 적어도 사법관료 시스템 내에서는 선례를 따르는 것은 안전한 방패막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사법관료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고등법원부장판사 승진제도는 실제 운용상으로도 폐지되어야 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일반 법관의 상위 직급으로 규정한 것으로 동기 가운데 3~4명이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면 나머지는 탈락과 동시에 용퇴하는 관행 때문에 법관들을 중도에 쫓아내는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대법원은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직급 개념에서 보직 개념으로 바꾸고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일반법관에 차등 책정됐던 보수를 단일화하는 '법관 단일호봉제'를 도입했지만 아직까지 운용상 고등법원부장판사 승진제가 잔존해 있다. 정 부장판사는 지난 2월에도 법원 내부게시판에 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법관승진제도가 '법대로' 재판 힘들게 한다"
정 부장판사는 "이미 수차 지적해온 것처럼 고등법원부장판사 직급이 사법부 내에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인사발령 형식이 전보발령이라 적법하다는 주장은 양심적이어야 할 사법부와는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규칙에 고등법원 부장판사 직급이 엄연히 규정돼 있고, 내부 통신망을 통한 법관조회 결과 법관의 주요 경력란에 직위(직급) 항목에 명백히 표시되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사법부 내외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차관급 대우의 고위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는 말 그대로 승진제도로 하급법원 법관들로 하여금 장차 고등법원 부장판사라는 고위직에 도달하기 위해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동인이 되어왔다"며 "이것이 법관승진제의 긍정적인 면이기는 하나, 이 제도 안에서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기보다 인사권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법관징계 시스템의 엄정한 운용, 법관재임명의 실질화를 통해 나태하고 무능한 법관들을 충분히 여과해낼 수 있다"며 "이는 현재 법관근무평정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는 고등법원부장판사 이상의 법관들에 대한 통제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부장판사는 "지금까지 제기한 문제들은 직접적으로 대부분 법관들과 관계된 것임에도 법관들의 의견표명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법원행정처나 대법원장도 이해당사자인 법관들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다"며 논쟁의 참여를 촉구했다.
"요즈음은 법관들도 판결 이외의 의사표현도 상당히 하고 외부 언론 기관의 기자들에게도 의사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법관들이 아무런 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사법시스템과 관련된 중요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대하여 국민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겠나?"


6.  정몽구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의 뜻  
(중앙일보 사설 2007.09.08)

회사 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항소심 공판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법원은 정 회장에 대한 공소 사실에 대해 1심 판결과 같이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정상을 참작해 실형을 사는 대신 사회봉사명령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재판을 담당한 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죄인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재능 있는 사람은 재능으로,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사회에 실질적인 공헌을 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봉사 명령”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재능 없고 돈 없는 사람만 감옥에 가야 하는가? 이 점에서 그 논리가 명쾌하지는 않다. 가진 자에 대한 특혜나 면죄부로 비칠 수도 있다.
물론 정 회장 처벌을 두고 ‘법 앞의 평등’과 ‘현실적 고려’ 사이에서 재판부가 고민했을 것이다.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재판부는 여론에서 찾았다. 이 판사는 정 회장 사건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에서 “부유층보다 서민층이 집행유예를 강하게 주장했다”면서 “이는 서민들이 얼마나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민들의 감정은 이른바 ‘유전무죄(有錢無罪)’에 대한 반감보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릴 기회를 주자는 현실론으로 기울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정 회장은 재판부가 아니라 국민이 살려준 것이다. 회사를 통해 그 빚을 갚으라는 명령으로 들어야 한다. 이것을 면죄부나, 재벌회장에 대한 특혜로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간의 잘못을 처절하게 반성하고 경영에 매진하라는 채찍이자, 더 큰 족쇄다. 현대차는 지금 안팎으로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현대차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도록 이끌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정 회장에게 걸려 있다. 경영 전반에 걸쳐 과거의 불미스러운 관행을 불식하고 국민에게 떳떳하게 내보일 수 있을 만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사회환원 약속도 꼭 지켜야 한다. 국민들은 정 회장의 처신과 행보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7. 재벌 회장과 휠체어 마술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  2007.09.13

휠체어는 일반사람에게는 보행을 도와주는 보조기기에 불과하지만 재벌 회장들에게는 큰 곤경을 빠져 나오게 하는 마술을 부릴 수 있게 해준다. 재벌 회장들의 ‘휠체어 마술’은 메뉴도 다양하다. 편법 상속 의혹 흐리기용 마술이 있고, 정경 유착의 X파일 의혹 회피용 마술이 있다.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돌파용 마술이 있으며, 최근에는 폭행과 폭력배 동원 우회용 마술이 선을 보였다. 삼성이 그랬고, 현대자동차와 한화가 그랬다.
물론 실제로 이들 회장들이 걷기 힘들 만큼 몸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재벌 회장들이 곤경에 처할 때면 으레 휠체어에 탄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오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져 버렸다.
사법 당국이 재벌 회장들의 불법 행위에 대하여 집행유예의 솜방망이 처벌을 계속하는 것 또한 ‘휠체어 마술’의 결과 아닐까. 나는 사법부가 항상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결을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재벌 회장에 대한 판결은 법과 국익 사이에서 진지한 고민을 한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배경 설명이나 판결 내용으로 판단할 때 법보다는 경제 국익을 우선하여 내린 판결인 듯하다. 재벌 회장의 판결에 대해 사법부가 고민하는 이유는 재벌 회장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벌 회장이 구속되면 당장 중요한 투자 결정이 연기되고, 해당 기업의 매출이 하락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직접적인 손해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이미지와 신인도 하락에 따른 무형의 손실이 엄청날 수 있다. 또한 대부분 당사자들이 깊이 반성한다는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엄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법보다 국익을 앞세우는 듯한 사법부의 판단 기준에 대한 논의는 별개로 하더라도 국익을 우선한다고 할 때 사법부의 국익 계산 과정은 오류가 있다고 판단된다.
재벌 회장이 구속되면 단기적으로 해당 기업은 손실을 볼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사법부의 엄정한 판결은 해당 재벌로 하여금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단기적 손실을 초과할 정도로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어정쩡한 처벌은 재벌이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나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불법 행위로 인한 손실 가능성보다 이로부터 받게 되는 기대 이익이 더 클 때 불법 행위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사법부의 관대한 처분은 불법 행위에 의한 손실 가능성을 낮춤으로써 다른 기업에 대하여 불법 행위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법부는 재벌 회장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관대한 형량을 부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벌 회장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더욱 더 엄중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들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불법으로 얼룩진 기업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가 없다.
재벌 회장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한국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 중의 하나이며 또한 한국 사회의 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부를 존경할 수 있는 문화이며, 재벌 회장들은 그들이 가진 부만큼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기업이 발전할 수 있고,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으며, 한국에서 시장경제가 꽃필 수 있다. 한국의 재벌 회장들이 가장 존경받는 존재가 될 때 한국의 시장경제에 희망이 있다.
더 이상 재벌 회장들의 ‘휠체어 마술’과 여기에 들러리 서는 듯한 사법부도 보고 싶지 않다. 진정으로 재벌 회장에게서 보고 싶은 것은 존경받는 기업가의 돈 버는 마술이요, 진정으로 사법부에서 보고 싶은 모습은 법을 세워 나라를 세우는 모습이다.


8. 사회봉사명령

조선일보. 강인선 논설위원 insun@chosun.com  2007.09.12

수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작년 3월 가정부를 폭행한 혐의로 뉴욕에서 체포됐다. 가정부는 캠벨이 청바지가 없어졌다고 화를 내며 던진 휴대전화에 머리를 맞아 네 바늘을 꿰맸다. 지난 1월 법원은 캠벨에게 사회봉사를 닷새 하고 분노 다스리기 강좌를 이틀 들으라고 했다. 캠벨은 지저분한 유니폼을 입고 쓰레기처리장 벽과 바닥을 하루 7시간씩 걸레로 닦고 나서 “앞으로 성질 죽이고 겸손하게 살겠다”고 했다.
얼마 전 사망한 호텔 재벌 리오나 햄슬리는 1980년대 말 탈세로 징역을 18개월 살고도 750시간 사회봉사를 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는 봉사 일 일부를 부하 직원들에게 시켰다가 150시간을 더 봉사해야 했다. 배우 위노나 라이더는 2002년 베벌리힐스 백화점에서 몇 천 달러짜리 옷을 훔친 죄로 봉사명령을 받아 480시간을 자선병원에서 일한 뒤 영화계에 복귀했다.
사회봉사명령은 범죄자가 무보수로 일정기간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게 하는 제도다. 1972년 영국에서 시작됐고 우리나라에선 1989년 청소년에게만 시켰다가 어른으로 확대됐다. 한 해 3만~4만명이 거리 청소와 수해 복구, 장애인 돕기 등에 나선다. 최근 열차역에서 160시간을 청소한 40대 남자는 “처음엔 너무 부끄럽고 힘들었지만 속이 후련하고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수기를 썼다.
법원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 이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도 집행유예와 함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했다. 정 회장에겐 전경련 같은 경제단체에서 경제인들에게 준법경영을 2시간 이상 강의하고 준법경영에 관해 일간지와 경제 잡지에 한 차례씩 기고하라고 했다. 김 회장에겐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 200시간을 봉사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특권의식을 버리고 사회공동체 일원으로서 자신의 땀을 통해 범행을 속죄하고 사회에 기여하라”고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12일 “한국 재벌총수들은 곤란할 때마다 휠체어를 탄다”고 꼬집었다. 두 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오더니 결국 집행유예 판결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이 신문은 “한국 법원은 재벌들이 안 보이는 데서 어떤 일을 하건 경영을 계속하게 도와주는 것이 국익에 맞는다고 믿는 것 같다”며 “재벌들이 제대로 행동하고 모든 국민에게 공평한 사법체계를 갖추는 것이 국익에 더 맞지 않느냐”고 했다. 성심껏 사회봉사를 해내야 냉소적 시선들을 그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9. 김승연 회장 집행유예 판결, 일반인에게도 그럴까?

연이은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논란, 법원이 해결해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2007-09-11

오늘 폭행혐의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항소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항소1부 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하였다. 지난 7월,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된 1심 판결과 달리 집행유예가 선고됨에 따라 재벌총수에게 관대한 처벌 아닌가라는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작년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일가에 대한 관대한 처벌과 지난 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판결에 이은 이번 판결은 법관들이 공정하게 법의 잣대를 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의문스럽게 한다.
재판부는 김승연 회장이 구치소에서 치료할 수 없을 수준으로 우울증과 충동증세가 심해졌다며 지난 8월 구속집행을 정지한데 이어, 이번 집행유예 판결의 이유로도 건강악화를 제시했다. 참여연대는 유죄가 인정되는 피고인이더라도 실형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건강상태라면, 실형을 대체할 다른 방안으로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도 가능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길이라 본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논란이 되는 것은, 정치인이나 재벌총수와 같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지 않은 일반인이 비슷한 조건에 처해있을 경우에도 집행유예 판결이나 사회봉사명령이 선고되었겠는가하는 의문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이들이 걸핏하면 건강악화를 이유로 보석 또는 구속집행정지, 집행유예형을 선고받는데 반해, 일반인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사회통념이고 실제 그런 사례들이 빈번했다. 구치소 수감 중 지병이 심해져 문제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주의 정몽구 회장 판결처럼 국가경제우려 등과 같은 양형참작사유가 될 수 없는 것을 양형사유로 인정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유라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계층에게는 쉽게 인정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계층의 범죄자에게는 잘 적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법관들이 재벌총수와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이들의 형량을 정할 때 억지로 이것저것 참고하는 것도 벗어나야 할뿐만 아니라, 진실로 고려해주어야 할 양형사유는 사회경제적 지위와 무관하게 공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법원이 될 것이고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질 것이다. 끝.
10. “돈과 사법정의를 맞바꾼 판결을 거부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2007-09-12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18번째 판결비평 대상으로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강연과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전제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집행유예형을 선고한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을 선정하고, 오늘(12일) 이 판결을 비판하는 공개좌담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참여연대는 이 판결에 대한 비평칼럼을 묶은 “광장에 나온 판결 2007-06”도 발행했다.
지난 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의 판사들은(재판장 이재홍, 이상원, 호제훈, 사건번호 2007노586), 수 백억원 대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유죄가 인정된 정몽구 회장에게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전국경제인연합회 강연과 언론기고를 명령하고 검찰 수사도중에 밝힌 개인 재산을 사회에 기부키로 한 ‘사회공헌약속’을 지킬 것을 전제로 하여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정 회장에게 선고된 강연과 언론기고 활동이 실형 선고를 대체할 만한 사회봉사활동이라고 전혀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대가로 실형을 면제해주었다는 점에서 ‘돈으로 사법정의를 사고 판 재판’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참여연대도 이 판결은 재벌총수를 위해 사법정의를 걷어 차버리고 돈과 맞바꾼 판결이며, 이렇게 불법경영을 한 재벌총수에게 사실상의 면죄부를 주고 경영일선에 바로 복귀토록 하는 것이야말로 건전한 국가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최악의 판결이라 평가한다. 이같이 돈과 사법정의를 맞바꾼 판결은 사회적으로 도저히 수용될 수 없는 판결이라 보고 이를 비판하는 좌담회를 개최하였다.
이 판결을 주제로 한 좌담회에 참석한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도 정몽구 회장 한 사람을 실형에 처하게 하면 국가경제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재판부의 주장은, 근거도 불확실한 막연한 가정에 불과한데 이를 이유로 관대하게 처벌한 것은 법관들의 ‘나라경제염려증’이 도져나온 것이라 비판했다. 아울러 이 같은 경제걱정은 사법기관이 할 일이 아니고, 재정경제부나 한국은행 같은 기관이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오늘 오전에 열린 판결비평 좌담회 ‘법정 밖에서 본 판결’에는 한상희 교수(건국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정남구 논설위원(한겨레), 김주영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 전성인 교수(홍익대 경제학), 하태훈 교수(고려대 법학,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이 참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