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는 한반도의 미래다

출전: 한겨레21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서해는 냉전의 바다였다. 1953년 정전협정에서 해상경계선에 대한 합의를 누락하면서 분쟁의 씨앗을 제공했다. 군사적 충돌도 있었다. 서해는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화해와 협력으로부터 비켜서 있었다. 동해에서 금강산 관광선이 운행되던 1999년과 2002년, 서해에서는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동해가 미래로 가고 있을 때, 서해는 과거로 돌아갔다. 동해가 협력의 바다로 변할 때, 서해는 적대의 현실이었다.

성공 여부는 합의 사항 이행에 따라
서해는 남북관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다. 열차 운행과 한강하구 공동개발과 같은 군사적 보장이 필요한 경협 사업은 서해 해상경계선을 둘러싼 남북한의 입장 차이로 묶여 있다. 그리고 서해를 넘어서야 군사적 신뢰 구축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과연 이번 정상회담의 합의로 서해가 냉전의 바다에서 평화와 공동 번영의 바다로 전환할 수 있을까?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은 많다. 8개항으로 구성된 합의는 남북관계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합의문의 이행 구조는 하나로 모아진다. 남북한의 정치적 신뢰도, 평화 정착의 가능성도, 경제협력의 진화도 결국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 달려 있다. 왜 그런가?

남북 정상은 3자(남북한과 미국) 혹은 4자(중국 포함) 정상회담을 한반도 내에서 열어 한반도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음을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
오는 11월 국방장관 회담의 성패도 서해에 달려 있다. 그동안 1차 정상회담 이후 여섯 번의 장성급 회담이 있었다. 비무장지대(DMZ)의 선전물을 철거하고,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조치에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해상경계선 문제가 부각됐다. 장성급 회담은 개점휴업으로 들어갔다. 회담이 열려도 진전은 없었다. 국방장관들이 앞으로 1992년에 합의한 불가침부속합의서를 하나하나 실천하기 위해서는 일단 서해 평화 정착부터 진전시켜야 한다.
남북경협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에 경제협력 조항들이 많다. 개성공단에서 ‘3통 문제’(통행·통신·통관)를 해결하고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며, 화물열차를 운행하고, 나아가 경의선 북쪽 구간과 개성~평양 간 도로의 개·보수 등을 하기로 했다. 이 많은 사업들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군사적 보장이 필요한 사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개방의 정치적 효과에 우려를 표시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경제협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성공 여부는 결국 많은 정상회담 합의 사항의 이행과 직결돼 있다. 그러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살펴보자. 이 제안은 해상경계선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경제협력을 통해 서해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남쪽의 구상이다. 북한이 이 제안을 수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바로 평화 정착과 경제협력의 선순환을 제시한 것이다. 해주특구를 개발하고 인천~해주 항로를 활성화하며, 공동어로를 통해 바다에서 호혜적 경제구조를 만들고, 한강하구를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신뢰가 쌓이고, 서로가 이익을 나누어가질 수 있다면, 긴장은 완화될 것이다. 결국 경계선도 대립의 선이 아니라, 협력을 위한 평화의 회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남북관계의 성격을 변화시킬 것이다. 1차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가 교류협력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평화경제 시대가 열린다. 서해는 바로 평화경제 시대의 입구다.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무역항 해주의 재발견
한반도에서 평화경제의 1막은 개성이었다. 개성(開城)은 한자로 ‘성을 열다’는 뜻이다. 굳게 닫혔던 DMZ의 문이 열리고, 지뢰가 폭파되고, 길이 났다. 공단이 조성되면서 북한 군대는 뒤로 빠졌다. 경제가 평화를 가져왔고, 평화가 경제를 도약시켰다.
평화경제의 2막은 서해다. 우선 해주를 열어야 한다. 해주는 북한의 해군기지가 있는 곳이다.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해주특구를 제안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국방위원회 관계자를 불러 해주를 열어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군사적으로 민감한 해주를 받아들인 것은 서해의 평화 정착에 대한 북한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해주는 바다의 개성공단이 될 것이다. 대립과 분쟁의 바다였던 서해에 사람과 물자가 넘나드는 평화의 뱃길이 생긴다. 그동안 해주는 북한의 입장에서 무역항으로서의 의미가 없었다. 해주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령도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백령도가 남쪽 처지에서 안보의 섬이었다면, 해주는 북쪽에서 안보의 항구였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공단 후보지로 처음 거론한 곳도 해주였지만, 이런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해에 평화가 증진되면 해주의 재발견은 가능하다. 해주는 인천에서 직선 거리로 20km 떨어져 있고, 개성과는 75km 떨어져 있으며, 중국의 칭다오나 웨이하이에서 닭 울음소리를 들었다던 한반도의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해주는 개성공단의 무역항이 될 수 있다. 개성공단이 2단계, 3단계로 확장되면 수출항구가 필요하다. 이미 전문가들은 개성~인천을 연결하는 육상물류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해주항이 무역항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인천을 보완하는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주는 동시에 인천과 더불어 광역 해상 경제특구가 될 수 있다. 해주가 경제특구로 개발되면, 인천(영종도)경제특구의 생산기지가 될 수 있다. 20km 정도 떨어진 두 개의 해상공단이 서로 분업 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경쟁력이 생긴다. 개성∼해주∼인천을 잇는 새로운 삼각경제 지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서 중요한 지역은 또 있다. 개성에 인접해 있는 예성강과 서울을 바다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한강하구다. 고려시대 예성강 하구에는 벽란도가 있었다. 아라비아 상인들도 실어나르던 당시의 무역항이었다. 20리 떨어진 개성은 벽란도가 있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상업도시로서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서울 역시 한강하구를 통해 서해로 통할 수 있었다.
한강하구는 환경친화적으로 개발돼야 할 것이다. 분단의 상징이던 임진강이 평화의 뱃길이 되고, 서울은 바다로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한강 선착장에서 쾌속 유람선을 타고 백령도로 인당수로 장산곶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서해가 안보관광지에서 평화관광지로, 생태관광지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해양평화공원의 사례도 실천할 필요가
그동안 접경지역으로 근접하기 어려웠던 이 지역에 평화경제 사업이 본격화된다면 도시가 달라질 것이다. 서울은 냉전시대 한강하구에서 분단돼 있다. 오죽하면 말도 안 되는 경인운하를 뚫어 서해로 통하자고 했겠는가? 이제 한강하구 공동개발을 통해 화물선이 서해를 거쳐 한강선착장까지 올 수 있다면 서울의 물류는 다양해지고 도시 기능 역시 변화될 것이다.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바다를 지배한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한강하구에서 백령도까지 서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은 냉전시대에 얼어붙어 있었다. 이제 서해안 시대가 열릴 것이다. 서해가 인접해 있는 중국의 경제특구들은 대부분 동부 연안 지역에 몰려 있다. 한국 기업이 집중적으로 진출해 있는 지역도 바로 칭다오, 웨이하이, 다롄 등 서해 인접 지역이 아닌가? 서해의 평화경제는 결국 새로운 환황해 경제권의 시대를 여는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개발시대에 낙후돼 있던 서해 중남부 지역도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을 재발견할 것이다.
1999년과 2002년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의 원인은 꽃게였다. 남쪽의 어부나 북쪽의 어부나 꽃게를 쫓다 보니 경계선을 넘었다. 군함이 쫓아오고, 서로 근접하다가 충돌이 발생했다. 이후 남북은 해상에서의 군사적 충돌 방지 조치에 합의했다. 충돌의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자는 약속이었다. 결국 남쪽 어부들은 북방한계선 아래에 그어놓은 새로운 어로한계선을 넘을 수 없었다. 눈앞의 꽃게는 중국의 어선들이 잡아갔다. 남과 북의 해군이나 해경은 충돌을 두려워 지켜만 보아야 했다. 그것이 서해 바다의 현실이었다.
그러면 이번 정상회담 합의로 어떻게 달라질까? 그동안 공동어로 방안에 대해 남북한은 입장 차이를 보였다. 남쪽은 공동어로 수역을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각각 남과 북의 동일 수역을 제시했고, 북쪽은 NLL 이남 지역을 주장했다. 앞으로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면 다시금 공동어로 수역을 실무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평화의 바다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법이 필요하다. 인천과 백령도 사이의 서해 전체에 공동어로 수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준선을 정해야 한다. 해상경계선 문제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작은 수역이나마 시범적으로 운영해볼 필요가 있다. 서해에서 신뢰가 정착되면 공동어로 수역은 점차 넓어질 것이다.
나아가 중동 평화에서 핵심적 구실을 했던 홍해 해양평화공원의 사례를 서해에서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이미 백령도 인근 해역 등은 해양생태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다. 공동어로 수역과 해양평화공원을 묶어서 평화수역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평화수역이란 무엇인가? 평화수역은 바다의 비무장지대다. 군함은 들어갈 수 없다. 해상재난이 발생하면 구조선이 들어가고, 해양생태계를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한 탐사선이 들어가는 곳이다. 오직 평화로운 바다 위에서 남과 북의 어부들이 뱃노래를 부르는 곳이다.
평화의 바다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직항로를 허용하고 공동어로를 만들면, 북한의 잠수정이 인천 앞바다까지 온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은 선동적 거짓말에 불과하다. 평화수역은 말 그대로 군함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남북 해군은 백령도와 장산곶의 입구에서 중국의 불법 어선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공동협력을 해야 할 것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
서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다. 정상회담이 끝나자, 근거 없는 트집 잡기가 만연하고 있다. 서해의 평화 정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한다면, 결국 과거 냉전 시기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서해가 한반도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고 있는 현재,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서해의 평화 정착으로 NLL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분명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해상경계선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우회적 접근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서해의 평화 정착 과정에서 해상경계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NLL은 분단을 전제로 한 대립의 경계였다. 일부 사람들은 NLL을 영토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육상에서 국경이라고 하지 않고 군사분계선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단의 경계는 결국 통일이 되면 사라진다. 남북한은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해나가는 잠정적 특수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해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립의 경계는 신뢰가 정착되고, 경제적 호혜가 늘어나면, 평화의 공간으로 변할 것이다. 통일이 되면 그 경계도 점차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서해의 평화 정착은 본격적인 군사적 신뢰 구축의 시대를 열 것이다. 1992년 불가침 부속합의서에서 합의했던 많은 합의들이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DMZ의 초소들을 후방에 배치하자는 우리 쪽 제안에 김정일 위원장은 이르다고 답했다. 결국 이런 의제들도 서해 평화 정착의 결과에 따라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이 군사적 신뢰 구축을 진전시킬 수 있다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어 만들어갈 수 있다.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우리는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이제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오랜 역사적 과제를 우리가 주인이 되어 해결해나갈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왔다. 이제는 당면한 서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그곳에 한반도의 미래가 있다.


Ⅱ. NLL을 넘어 평화수역으로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남북을 가르고 남한 내부를 가르는 해상의 DMZ,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몇 년 전 백령도에 간 적이 있다. 인천에서 쾌속선을 타고 4시간 이상을 달렸다. 참으로 멀었다. 백령도의 언덕에 올라 북쪽 바다를 보니, 너무 가까웠다. 심청이가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졌던 인당수가 코앞에 보인다. 몽금포타령의 첫머리에 나오는 장산곶도 아주 가깝다. 먼 바닷길이 아니라, 육지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에서 해주로 그리고 장산곶까지 황해도 구경을 하고, 그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백령도를 유람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합의된 군사분계선이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 의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평화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반도에서 평화가 당장 필요한 곳은 서해다. 1999년과 2002년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남북한은 그동안 해상경계선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대립해왔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되면서, 해상경계선 문제는 우리 사회 내부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됐다. 역사적 사실과 냉전시대의 ‘만들어진 기억’ 사이에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이념의 믿음으로 기억을 만들어보려 하는 사람들은 북방한계선(NLL)을 말한다. NLL은 남과 북을 가르고, 이제는 남쪽 내부의 이념적 경계선이 됐다.
문제는 NLL이 아니다. 서해 평화 정착이다. NLL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찬반을 떠나, NLL은 합의된 군사분계선이 아니다. 분쟁의 씨앗은 정전협정에 있다. 정전협정은 육상경계선, 즉 군사분계선을 명확히 했지만, 해상경계선 문제는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NLL과 관련해 실효적 지배를 강조하는 논거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남북한이 NLL을 합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엔사에 오랫동안 근무한 이문항(미국명 제임스 리)씨가 분명히 밝혔지만, 1953년 7월 군사정전위원회 1차 본회의부터 마지막 회의였던 1991년 2월 459차 본회의까지 유엔사가 ‘북방한계선’을 거론한 적은 없다. 40여 년의 세월 동안 북한의 서해 해상침투 사건, 납치 사건을 비롯해 다양한 해상에서의 도발이 있었다. 그러나 판문점에서 열렸던 모든 회의, 전화, 서신, 그 어디에서도 ‘NLL 침범’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NLL은 합의된 개념이 아니다. 정전협정 15항에 근거해 우리 쪽 인접 해면의 침입을 협정 위반이라고 따진 것이다.
그렇다고 서해경계선 문제를 지금 논의할 수 있을까? 서로가 상이한 경계선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계선을 재확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2006년에 4차 장성급 회담, 그리고 올해에 5차와 6차 장성급 회담을 했지만, 남북한의 견해 차이는 분명하다. 해법의 근거는 결국 1992년에 합의한 남북 불가침 부속합의서 3장 제10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남과 북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협의가 가능한 환경은 포괄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노력이 병행될 때 만들어질 수 있다. 남북 군사당국 간 신뢰를 쌓고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성과를 보일 때, 해상경계선 문제도 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경계선을 확정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이 지역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선 서해 평화 정착은 군사적 충돌 방지에서 시작할 수 있다. 2004년 6월 2차 장성급 회담에서 남북한은 합의했다. 함정들이 서로 대치하지 않도록 하고, 상대 함정에 물리적 행위를 하지 않으며, 오해를 줄이기 위해 통신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임시방편이지만 군사적 신뢰구축의 첫걸음이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서해경계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이전에는 긴장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따라서 현재의 합의를 좀더 구체화하고, 완충수역에서의 물리적 접근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주직항로, 왜 안 되나
더 중요한 것은 서해에서 호혜적 이익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공동 어로와 직항로 문제는 현재 상태에서도 풀어갈 수 있다. 서해에서 공동 어로는, 1999년과 2002년의 군사적 충돌이 결국 꽃게잡이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하다. 현재 남북한은 공동 어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기준수역을 어떻게 정하느냐다. 남쪽은 NLL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고, 북쪽은 NLL 남쪽 지역을 공동어로 구역으로 주장하고 있다. 역시 NLL 문제다. 필자는 지금 상황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가겠다고 우겨서 결국 둘 다 못 가는 형국이다.
북한도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NLL 이남으로 오기를 꺼리고, 남쪽 역시 NLL 밑에 어로한계선을 지정해 우리 어선이 월선하지 않도록 어업지도를 하고 있다. 매년 꽃게철이 되면 남북한은 신경전을 벌이고, 그사이로 중국의 저인망 어선들이 새까맣게 출동해 꽃게를 잡아간다. 이제는 남북한 해군이 힘을 합쳐, 중국 어선들이 오는 것을 막고, 공동 어로를 합의해야 한다. 서해5도 전 해역에 기준수역을 정하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시범적인 공동 어로 구역을 설정해 운영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이 영토, 영토 하는데, 만약 어로한계선 이북수역에 들어가 어로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영토가 늘어나는 것이지 줄어드는 건 아닐 것이다. 공동 어로의 기준수역을 정할 때 신축성이 필요하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우리가 양보하면 마치 북한의 잠수정이 인천 앞바다까지 올 것처럼 얘기하는데, 분명한 것은 공동 어로가 가능한 평화수역에는 당연히 군사적 목적의 함정은 드나들 수 없다.
직항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미 예성강이나 해주 인근 해역에서 모래를 싣고 오는 남쪽 배들은 직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선박들이 해주항으로 들어오려면 백령도를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해 차선모 남북해운협력 북쪽 대표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남북경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물류비를 낮춰야 하고, 그러려면 항로를 단축해 운행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선모 대표는 오히려 반문했다. 직항로 문제는 사실 북쪽이 남쪽에 요구하고 싶은 사항이라면서, 해주 직항로 문제를 거론했다. 민간선박에 한정해서 직항로를 허용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군함의 통행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협력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서해평화경제지대의 창설을 제안하고자 한다. 수산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평화수역, 한강 하구의 공동 개발, 해양평화공원, 그리고 해주항의 개방과 산업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평화수역은 시범구역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한강 하구 공동 개발은 이미 남북한이 합의했고, 정전협정에서도 민간선박의 운항을 허용했기 때문에,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

홍해처럼 해양평화공원을

일제 시기까지 한강은 바다로 통하는 강이었다. 전쟁과 분단으로 한강은 임진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끊어졌다. 남북한은 이미 2006년 6월 12차 경제협력 추진위에서 한강 하구의 골재 채취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한강 하구 개발은 친환경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남북합의문에 공동 개발이라는 포괄적 용어가 있음에도, 골재 채취라는 표현을 쓴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한강 하구는 희귀생물, 습지 등 생태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환경단체들도 이 지역의 생태보전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이제 남북 경제협력 과정에서도 환경과 개발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막대한 양의 토사가 하구로 유입되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한강에서 서해까지 배가 다니려면 준설작업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업을 추진하기 이전에 종합 환경조사를 충분히 거치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이다. 분단이 준 유일한 선물은 사람의 접근을 차단해서 환경을 보호한 것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은 한강 하구 공동 개발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해양평화공원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백령도와 연평도 등 해안 접경수역은 연안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물범과 저어새 등 각종 보호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홍해 해양평화공원의 사례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홍해 해양평화공원은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맺은 평화협정의 산물이다. 당시 평화협정에서는 양국의 인접 해면인 아카바만의 군 병력을 철수시키고, 항행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며, 관광 증진을 위한 공동 협력과 해양 생태환경의 보전을 합의했다. 특히 아카바만 산호 생태계의 보호를 위해 해양평화공원을 만든 것이 주목된다. 세계적인 분쟁지역에는 긴장을 완화하고, 공동 협력을 추구하며, 함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평화공원이 많다. 한반도는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다. 분쟁의 바다 서해에 해양평화공원을 만든다면, 그것이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줄 것이며, 국제적인 평화관광 지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해군기지가 있는 해주를 평화협력 단지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해주만의 생태적 가치를 고려할 때, 해주항만을 환경친화적 공간으로 만들고, 위탁가공 위주의 해상 공단을 조성한다면, 그것이 중국의 연안 지역과 남쪽의 서해 산업단지를 묶는 새로운 황해경제권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개성에서 옹진반도, 해주로 이어지는 육로를 개방해, 이곳을 관광지대로 확장하고 배후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면, 그것은 서해 평화 정착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 냉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서해를 평화와 공동 번영의 프레임으로 볼 때가 왔다. 그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서해가 평화의 바다, 공동 번영의 바다로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Ⅲ. 점점 달아오르는 북방한계선


정상회담 예상 의제 가운데 논란의 중심…국민적 공론화 없는 상태에서 풀 수 있을까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회담 의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예상 가능한 의제 가운데 단연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건 북방한계선(NLL) 문제다. <조선일보>는 8월9일치에 실린 ‘노 대통령이 평양에서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NLL은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북측도 인정한 남북 간의 움직일 수 없는 경계선”이라고 썼다. 이 신문은 “일부 인사들이 ‘절대 불변의 선은 아니다’는 식의 언급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만약 이번 회담에서 NLL을 건드려 사실상 북측에 영토를 넘겨주는 결과를 만든다면 그 후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는 노 대통령 스스로가 잘 알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북방한계선, 그 ‘터부’를 둘러싼 논쟁이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분단체제 극복의 출발점”
북방한계선은 1953년 8월30일 유엔군사령관이 해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했다. 육상분계선을 해상으로 연장한 것에 불과했지만, 이후 남북 양쪽은 이를 ‘사실상’의 해상군사분계선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북방한계선이 남과 북의 국제법적 영토경계선이 아닌 ‘임시방편’일 뿐임을 남도 북도 잘 알고 있다. 1991년 12월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와 그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에서 이와 관련한 상세한 내용을 명문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 11조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또 1992년 9월17일 발효된 기본합의서 제2장 부속합의서 9조에선 “남과 북의 지상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어 10조에선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하지만 북방한계선 대체를 위한 논의는 남북 관계의 진전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 7월24~26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6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파행을 거듭한 것도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다. 당시 남북은 서해상에서 군사적 충돌 방지와 공동어로 실현, 경제협력·교류의 군사적 보장 문제에 대해 중점 협의했으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회담을 마쳤다. 남쪽은 “지난 50여 년간 실질적인 해상 군사분계선 역할을 해온 북방한계선을 존중·준수하는 가운데, 이미 남북 간 합의한 충돌 방지 관련 합의사항들을 성실히 이행하면서, 개선이 필요한 실질적 조치들을 합의해나갈 것“을 제의했다. 반면 북쪽에선 북방한계선을 ‘불법·무법의 선’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해상경계선 설정 문제를 협의할 것을 고집했다. 남이나 북이나 이전의 논쟁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것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방한계선 문제는 군사적 신뢰 구축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한다. 북방한계선의 태동 자체가 남쪽 어선의 북상을 막는 ‘한계선’이었지,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선’은 아니었다는 게다. 구 교수는 “북방한계선 자체가 한반도 분단체제의 여러 가지 성격을 그대로 담지하고 있다”며 “때문에 분단체제 극복의 출발점이기도 하다”고 진단한다. “군사적 신뢰 구축의 한 형태로 북방한계선 문제를 적극 풀어 공동어로 구역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분쟁의 바다가 군사적 긴장 완화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게다.
북방한계선은 남북 경제협력 확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북 철도 상시 운행과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한 통행·통관 문제 해결, 한강 하구 공동 개발은 모두 군사적 안전 보장이 전제가 돼야 한다. 이들 지역이 모두 군사분계선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 전문가들이 “북한이 군사적 보장이 필요한 경제협력 사업을 해상경계선 문제와 연계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평화도 경제협력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방한계선 문제가 남북 관계의 질적 도약을 가로막고 선 셈이란 게다.
현재로선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 관련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리더십 스타일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고, 이번 정상회담은 두 지도자가 폭넓은 주제를 굉장히 솔직하게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사전에 나름대로 조율하겠지만, 의제에 구애받지 않고 논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이미 1차 정상회담에서 한 번 걸러진 문제로, 심각하게 거론될 것으론 보지 않는다”며 “국가보안법 문제도 서로 나름의 논리가 서 있는 상태여서, 결국 걸리는 문제는 북방한계선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회담의 무게중심은 군사적 긴장 완화·신뢰 구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남북 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취임 초기부터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를 강조해온 노 대통령도 이 문제에 적극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참여정부가 일찌감치 서해상에서 신호체계를 만들어 남북 함정 간 충돌 방지대책을 마련하는가 하면, 비무장지대에서 상호 비방선전판도 철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노 대통령이 군사적 긴장 완화·군비 통제 등을 제안할 경우, 김 위원장은 북방한계선이란 ‘근본 문제’부터 풀자고 할 공산이 크다.
사실 해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영토경계선이므로 논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는 남쪽의 주장과 “임시방편이므로 당장 재설정해야 한다”는 북쪽의 주장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내면 된다. 결국 남북 관계 발전 방향의 기본틀로 자리매김한 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우리 정부로선 그간의 원칙이 있고, 이를 고스란히 북쪽이 받아들이긴 어렵다. 논의가 ‘합의’로 결말을 짓기 위해선 남쪽의 ‘양보’가 선행돼야 하는 구조다.

벼락치기로 숙제 풀 수 있나
서동만 상지대 교수가 “일단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 공론화 등 사전 정지작업이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 교수는 “남북 관계가 소강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불쑥 정상회담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고 당위적으로 올바른 일임에도 성과가 거꾸로 역작용을 낼 수 있는 딜레마가 있다”며 “해결해야 할 과제임엔 분명하지만 불쑥 꺼내들기엔 그 부담을 고스란히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지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남쪽 내부의 합의 수준이 취약한 상태에서 북방한계선 문제에 대해 북과 일정한 합의를 하거나, 기존 입장에서 바뀐 방향으로 섣불리 나아갔다간 되레 남남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다. 국민적 공론화란 ‘숙제’를 게을리 했던 노무현 정부가, 정상회담이란 ‘시험’을 맞아, 북방한계선이란 ‘난제’를 벼락치기로 풀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