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논술 자료함
2009 연대 모의논술고사 문제
* 아래 제시문을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가)
개인의 가치 판단이 학문적 주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그로 인해 끊임없이 혼동이 야기되었으며, 심지어 사실들간의 간단한 인과관계를 확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주장에 다양한 해석들이 개입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실 문제에 대한 규범적 가치의 공감대를 만드는 것은 결코 겅험적 학문의 과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전혀 무의미하다. 경험적 분석에 근거해서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바람직한 규범으로 도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문화적 가치의 내용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윤리적 의무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종교 뿐이다.
지식의 나무를 먹고 자란 시대에 사는 우리는 세상에 대한 분석 결과로부터 세상의 의미에 대해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는 운명이다. 우리는 경험적 지식이 점점 늘어난다고 해서 인생과 세상만사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 판단이 등장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분명히 인정해야 할 점은, 인생과 세상만사에 대한 보편타당한 견해가 경험적 지식이 축적된 결과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중략> 경험적 지식과 가치 판단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진실만을 추구하는 과학적 의무 이행이 바로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다.
(나)
왕건이 궁예의 여러 장수들 중 하나로서 궁예의 은총을 받아 大兵을 얻게 되자, 드디어 궁예를 쫓아내어 客死하게 하고 또한 이신시군(以臣弑君)의 죄를 싫어하여 전력을 기울여 궁예를 죽이지 않으면 안될 죄를 만들어냈다.
고려의 士官은 ‘궁예는 신라 현안왕의 자식인데, 왕은 그의 생일이 5월 5일임을 미워하여 내다 버렸다. 궁예가 이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쳐서 멸망시키려 하였는데, 그는 어느 절에서 벽에 그려져 있는 헌안왕의 초상화까지 칼로 쳤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더욱 확실한 증거를 만들기 위하여 ‘궁예가 태어난 뒤에 헌안왕이 엄히 명령을 내려 궁예를 죽이라고 하였는데 궁녀가 누대 위에서 아래로 궁예를 던지니, 아래에서 유모가 받아가 그만 잘못하여 손가락이 그의 한쪽 눈을 찔러 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유모가 비밀히 그를 길러냈는데 그가 10여세가 되어 장난이 심하였다. 이에 그 유모가 울면서 “왕이 너를 버리신 것을 내가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몰래 길렀는데, 이제 네가 미친 듯이 멋대로 행동함이 이와 같으니, 만일 남이 알면 너와 나는 다 죽을 것이다.”고 하니, 궁예가 듣고 울며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중략>
만약 사관의 말이 맞는다면, 궁예가 비록 헌안왕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그가 태어난 날 누대 위에서 죽으라고 던진 날부터 이미 父라는 名義가 끊어진 것이니, 궁예가 헌안왕의 몸에 직접 칼질을 하더라도 시부(殺父)의 죄가 될 수 없고, 신라왕의 陵과 도읍을 유린하더라도 조상들을 욕보인 죄를 논할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왕의 초상화를 치고 문란한 신라를 혁명하려고 한 것이 무슨 큰 죄나 논란거리가 되겠는가.
그렇지만 고대의 좁은 윤리관으로는 그 두 가지 일 - 헌안왕의 초상화를 칼로 친 일과 신라에 대한 不恭 - 만으로도 궁예에게는 죽어도 남을 죄가 되는 것이니, 죽어도 죄가 남을 궁예를 중이지 못할 게 무엇이랴.
이리하여 왕건은 살아서 고려의 통치권을 가지고 죽어서 태조 문성의 시호를 받았더라도 추호도 부끄러울 게 없게 된 것이니, 이것이 고려의 사관이 구태여 세달사의 일개 乞僧이던 궁예를 가져다가 고귀한 신라 황궁의 왕자를 만든 이유일 것으로 생각한다.
(다)
작가는 우선 그의 독자들에게 거짓되지 않은 것, 진실한 것만을 말하고 보여주기로 애초부터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진실은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삶에 깊이 관계된 것입니다. <중략>
그러면 우리들의 그 삶의 진실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물론 행복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보다 더 풍족하고 의롭고 정직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보다 더 사람다운 삶에 관계하는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을 소설로써 고발하는 것, 외롭지 못한 일을 증언하는 것, 우리의 삶을 부당하게 간섭해 오거나 병들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비인간적인 제도와 억압에 대항하여 싸우고 그것들을 이겨나갈 용기를 모색하는 것, 소위 새로운 영혼의 영토를 획득해 나가고 획득된 영토를 수호해 나가려는 데 기여하는 모든 문학적 노력이 종국에는 다 우리의 삶을 보다 더 윤택하고 행복스럽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삶의 진실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가 그의 작품으로 그런 삶의 진실을 위해 싸운는데 독자가 그것을 배척하고 외면할 리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가장 깊고 큰 진실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을 가장 삶다운 삶으로 돌아가 살게 하는 옳은 질서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어떤 평론가 한 사람은 우리의 삶을 삶답지 못하게 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풍습과 제도와 문물이 사고를 통틀어 우리 삶을 ‘억압’하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만, 우리 삶의 그 억누름으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한 삶, 본래의 자유롭고 화창한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질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유의 질서입니다. 이 자유의 질서야말로 우리의 가장 크고 깊은 삶의 진실이 아닐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라) 제시문은 첨부파일을 참고하셔요.
아래 표는 미국의 언어학자 chatm키가 미국의 주요 신문들이 국가 간 분쟁에 대해 <대량학살 genocide>이라는 표현을 얼마 많이 사용했나를 비교한 것이다.(분석의 대상이 된 신문은 <로스엔젤레스타임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타임> 등이다)
문 1 / 제시문 (가), (나), (다)의 주장을 비교하고, 제시문 (가)의 주장이 타당한지 따져보시오. / 1500자 / 60점
문 2 / 제시문 (라)의 표를 제시문 (가), (나), (다)의 주장과 관련지어 해석해보시오 / 1000자
* 아래 제시문을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가)
개인의 가치 판단이 학문적 주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그로 인해 끊임없이 혼동이 야기되었으며, 심지어 사실들간의 간단한 인과관계를 확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주장에 다양한 해석들이 개입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현실 문제에 대한 규범적 가치의 공감대를 만드는 것은 결코 겅험적 학문의 과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전혀 무의미하다. 경험적 분석에 근거해서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바람직한 규범으로 도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문화적 가치의 내용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윤리적 의무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종교 뿐이다.
지식의 나무를 먹고 자란 시대에 사는 우리는 세상에 대한 분석 결과로부터 세상의 의미에 대해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는 운명이다. 우리는 경험적 지식이 점점 늘어난다고 해서 인생과 세상만사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 판단이 등장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분명히 인정해야 할 점은, 인생과 세상만사에 대한 보편타당한 견해가 경험적 지식이 축적된 결과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중략> 경험적 지식과 가치 판단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사실에 근거한 진실만을 추구하는 과학적 의무 이행이 바로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다.
(나)
왕건이 궁예의 여러 장수들 중 하나로서 궁예의 은총을 받아 大兵을 얻게 되자, 드디어 궁예를 쫓아내어 客死하게 하고 또한 이신시군(以臣弑君)의 죄를 싫어하여 전력을 기울여 궁예를 죽이지 않으면 안될 죄를 만들어냈다.
고려의 士官은 ‘궁예는 신라 현안왕의 자식인데, 왕은 그의 생일이 5월 5일임을 미워하여 내다 버렸다. 궁예가 이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쳐서 멸망시키려 하였는데, 그는 어느 절에서 벽에 그려져 있는 헌안왕의 초상화까지 칼로 쳤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더욱 확실한 증거를 만들기 위하여 ‘궁예가 태어난 뒤에 헌안왕이 엄히 명령을 내려 궁예를 죽이라고 하였는데 궁녀가 누대 위에서 아래로 궁예를 던지니, 아래에서 유모가 받아가 그만 잘못하여 손가락이 그의 한쪽 눈을 찔러 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유모가 비밀히 그를 길러냈는데 그가 10여세가 되어 장난이 심하였다. 이에 그 유모가 울면서 “왕이 너를 버리신 것을 내가 차마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몰래 길렀는데, 이제 네가 미친 듯이 멋대로 행동함이 이와 같으니, 만일 남이 알면 너와 나는 다 죽을 것이다.”고 하니, 궁예가 듣고 울며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중략>
만약 사관의 말이 맞는다면, 궁예가 비록 헌안왕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그가 태어난 날 누대 위에서 죽으라고 던진 날부터 이미 父라는 名義가 끊어진 것이니, 궁예가 헌안왕의 몸에 직접 칼질을 하더라도 시부(殺父)의 죄가 될 수 없고, 신라왕의 陵과 도읍을 유린하더라도 조상들을 욕보인 죄를 논할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왕의 초상화를 치고 문란한 신라를 혁명하려고 한 것이 무슨 큰 죄나 논란거리가 되겠는가.
그렇지만 고대의 좁은 윤리관으로는 그 두 가지 일 - 헌안왕의 초상화를 칼로 친 일과 신라에 대한 不恭 - 만으로도 궁예에게는 죽어도 남을 죄가 되는 것이니, 죽어도 죄가 남을 궁예를 중이지 못할 게 무엇이랴.
이리하여 왕건은 살아서 고려의 통치권을 가지고 죽어서 태조 문성의 시호를 받았더라도 추호도 부끄러울 게 없게 된 것이니, 이것이 고려의 사관이 구태여 세달사의 일개 乞僧이던 궁예를 가져다가 고귀한 신라 황궁의 왕자를 만든 이유일 것으로 생각한다.
(다)
작가는 우선 그의 독자들에게 거짓되지 않은 것, 진실한 것만을 말하고 보여주기로 애초부터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진실은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삶에 깊이 관계된 것입니다. <중략>
그러면 우리들의 그 삶의 진실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물론 행복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보다 더 풍족하고 의롭고 정직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보다 더 사람다운 삶에 관계하는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을 소설로써 고발하는 것, 외롭지 못한 일을 증언하는 것, 우리의 삶을 부당하게 간섭해 오거나 병들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비인간적인 제도와 억압에 대항하여 싸우고 그것들을 이겨나갈 용기를 모색하는 것, 소위 새로운 영혼의 영토를 획득해 나가고 획득된 영토를 수호해 나가려는 데 기여하는 모든 문학적 노력이 종국에는 다 우리의 삶을 보다 더 윤택하고 행복스럽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삶의 진실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가 그의 작품으로 그런 삶의 진실을 위해 싸운는데 독자가 그것을 배척하고 외면할 리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가장 깊고 큰 진실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을 가장 삶다운 삶으로 돌아가 살게 하는 옳은 질서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어떤 평론가 한 사람은 우리의 삶을 삶답지 못하게 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풍습과 제도와 문물이 사고를 통틀어 우리 삶을 ‘억압’하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만, 우리 삶의 그 억누름으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한 삶, 본래의 자유롭고 화창한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질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유의 질서입니다. 이 자유의 질서야말로 우리의 가장 크고 깊은 삶의 진실이 아닐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라) 제시문은 첨부파일을 참고하셔요.
아래 표는 미국의 언어학자 chatm키가 미국의 주요 신문들이 국가 간 분쟁에 대해 <대량학살 genocide>이라는 표현을 얼마 많이 사용했나를 비교한 것이다.(분석의 대상이 된 신문은 <로스엔젤레스타임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타임> 등이다)
문 1 / 제시문 (가), (나), (다)의 주장을 비교하고, 제시문 (가)의 주장이 타당한지 따져보시오. / 1500자 / 60점
문 2 / 제시문 (라)의 표를 제시문 (가), (나), (다)의 주장과 관련지어 해석해보시오 / 1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