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비 내리고

바람 일렁거리더니

마알간 하늘이 그 선연한 쪽빛으로 성큼 가을임을 알리고 있다.

한강변을 따라 학원으로 출근하는 길에

줄곧 내 곁을 따라붙는 하늘은 어느 때보다 더 곱고 아름답웠다.

간간이 고운 하늘빛을 시샘하는 구름이 작은 몸짓으로 내 시선을 어지럽히지만

깊고 푸르게 드러난 하늘을 모두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가을은 하늘 빛으로부터 다가오고 있는 것.

들판으로 나가보지 않아서

온갖 곡식들이 가을 빛으로 물들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내 마음은 이미 깊은 가을빛으로 출렁이고 있음이라.


여름학기가 끝나고 다시 가을학기가 시작되었다.

굳이 가을학기라고 붙여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지만

입시를 코 앞에 둔 고3들 종종대는 걸음걸이며

그들의 누렇게 탈색된 고된 노동의 흔적이 켜켜이 얼굴에서부터 드러날 때면

가을학기는 전쟁처럼 거칠게 다가오기도 한다.


어느 한 계절이라고 편히 여유만만하게 맞이한 적은 없다.

그래도 이 맑은 하늘을 한껏 보여주며 다가오는 가을은

그것만으로도 많은 여유를 가지게 한다.


나만 이러는 것일까?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 모습에는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과의 치열한 싸움을 다 치루어 낸 병사들마냥

지친 모습으로 역력하다.


곧 다가 올 2학기 수시전형을 앞두고

도반들이 보내 오는 자기소개서 글을 첨삭하면서

도반들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글 속에 담긴 초조함을 읽는다.

그리고

도반들과 함께 이번 전형에서 다뤄질 주제들을 정리하면서

올 한해 동안 일어난 수 많은 사건이 우리 삶을 핍박하면서도

좀 더 넓게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하는 일들이 많았음을 되새겨 본다.



이제 75일 정도를 남겨놓은 수능시험~!

막바지 정리에 전력투구하고 있을 도반들을 생각하면서

마음 속으로나마 우리 도반들이

마지막까지 잘 버티어서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고3 수업을 마무리 하면서 헤어진 많은 도반들 얼굴이 하나씩 떠 오른다.

그리고 올 해 새롭게 다시 도전하는 도반들 모습도 생생하게 떠 오른다.

모두들 건강하게 이 가을을 알차게 보내어서

각자가 꿈꾸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되면서

고1, 2 도반들 수업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있다.

사정상 수업을 그만두는 도반들과

새로 시작하려는 도반들.


이 가을에 열심히 책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즐기기.

지금 시기에 하는 고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이므로

깊고깊은 사색의 시간을 충분히 즐겨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오랫 동안 음악을 가르쳐왔던 선생님께서

앙징맞도록 귀여운 실로폰 하나를 주셨다.

내 방에 두고 가끔씩 선율을 느껴보는데

루돌프슈타이너 선생님이 직접 고안한 실로폰이어서 그런지

그 음색이 맑고 청아함에 내 영혼이 저절로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도반들에게 한 곡씩 선율을 선사하는 기쁨이

끊어지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