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   꽃


    서 정 윤


어디에서 피어

언제 지든지

너는 들꽃이다



내가 너에게 보내는 그리움은

오히려 너를 시들게 할 뿐,

너는 그저 논두렁 길가에

피었다 지면 그만이다.



인간이 살아, 살면서 맺는

숱한 인연의 매듭들을

이제는 풀면서 살아야겠다.

들꽃처럼 소리 소문없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피었다 지면 그만이다.



한 하늘 아래

너와 나는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아직은 살 수 있고

나에게 허용된 시간을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냥 피었다 지면

그만일 들꽃이지만

홀씨를 날릴 강한 바람을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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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가슴 짜안해지는  시입니다.

서정윤님의 고운 시편들 중

오늘따라 흥얼거리고 싶은 시였지요.


내가 나임을 확인하는 때

내가 들꽃처럼

늘 나를 일깨우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생각할 때

이 시를 떠올려 봅니다.


내일이면 한가위라고

그 많던 식당들이 문을 죄다 닫아버렸네요.

저녁을 먹으려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결국

송편 두어개 사먹고

물 한모금 마시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한가로운 거리에 서면

원래 이런 삶이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병상에 누워 고통과 싸우고 있는 많은 환자들

떠나버린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울음 머금고 있을 외로운 이들

고향에 가고 싶지만 일에 얽매여 고향에 가지 못 하는 노동자들

군에서 국방을 맡아 국민된 도리를 하느라 고향을 그리워만 할 군인들

먼 나라에까지 와서 돈 많이 벌어 가서 가족들 행복하게 하겠다고

이 땅에 험하디 험한 노역에 지친 외국인 노동자들

아, 모두들에게 들꽃처럼 강한 희망이 싹트길 바라며

한가한 저녁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