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 주를 이어가며 심야에 영화 감상을 즐겼다.

실미도 보러 갔다가 표가 없어서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았는데

고교 캠퍼스에 흥건히 물든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폭력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더라.

'잔혹사~?' 라 붙이기엔 내가 경험한 70년대 고교생활을 비교해 보았을 때

어이없는 공포와 폭력, 키치적인 헤프닝으로만 가득한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감상들로 화면이 메워져 있어서 고소가 나왔다.

더구나 권상우의 근육질을 확대과장한 클로즈업만 아마도 남한의 아줌마들을 현혹하기에

바빴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교실에서 벌어지는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비인간적인 관계와

난폭하고 역겨운 언어, 학교권력의 주구가 된 선도부들의 잔혹한 행패,

질식할 듯한 학교규율에 저당잡힌 아이들 모습 등

황폐화 된 학교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측면은 나름대로 공감이 갔다.

그러나

시대의식, 혹은 역사의식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

'살인의 추억'이라는 걸출한 작품과 비교해 보았을 때 '유하'감독의 서술능력은

최저점에서 서성거리는 꼴이었다.

권력의 횡포가 직조해 놓은 폭력적인 질서가

어떻게 수 많은 이들을 무의식적 상태로 내몰고 있었는지,

그리하여

체제에 순응하거나 오히려 권력에 빌붙는 것이야말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는 진리를

아이들이 체득해 가는 과정을 정밀하게 구현하지 못 함으로써

오히려 과거 70년대를 아련한 향수 정도로만 귀환시키는데 그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런 측면에서 '실미도'감상을 하면서 영화에서

'감독'의 역량이 얼마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지를 실감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