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에는 우리 민족이 가장 기대하는 명절이 함의되어 있는 것 같다.

드디어 기나긴 한가위 이어놀기 버전이 가동되었다.

고향길을 떠난 이들과 객지에 남은 이들,

생산현장에서 아직 노동으로 지새우는 이들과

가고 싶어도 가지 못 하는 이주노동자나 외국인 노동자.

병상에서 병마와 싸우며 고통을 즐기고 있을 이들과

고향을 잃어버려 갈 곳 없는 유민들.

그리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다가 양심수로 복역 중인 이 땅의 정의로운 청년들과

지식인, 노동자들~!

이 들에게도 한가위가 풍성하고 즐거움으로 가득 넘치는 날들이 되었으면

얼매나 좋을까?


고향 길을 나선 기나긴 행렬을 보면서

나도 떠나갈 고향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오가며 힘들겠지만 그 안에서 가족끼리 나누지 못한 정담도 나누고

사촌형제들이나 친척들 소식도 염탐해보며 우리가 어쩌면 이리도 질기게

한 핏줄이어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곰씹어 보고 싶다.


이 시기에 많은 중고생들은 중간고사를 앞두고 혹은 입시를 앞두고

치열한 책상머리와의 투쟁을 일삼고 있을 것이니

이 들에게도 풍성한 하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염원한다.

아, 그리고 내 딸 예진아~!

외할머니랑 송편을 빚으면서 한 두마디 나누는 정담이야말로

시험준비에 쏟아붓는 시간보다 더 귀중하다는 것을

슬며시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리고 평소 만나지 못하는 사촌들이랑 즐겁게 노는 일이야말로

공부에 열중하는 것보다 몇 배의 가치가 잇다는 것도 생각해 주길 바란다.

시험공부는 평소에 하는 것,

혹은 시험 공부는 시험보기 전날 초치기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류가 온 정성을 기울여 합의한 대진리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지혜를 가져보렴.

하루하루 일상이 중요한 것이지

어느 날 다가오는 하루가 무척 중요할 것이라는 착각은

우리 일상을 파괴하거나 일상의 가치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이들이 만들어 낸

음험하면서도 교묘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빨리 깨우치길 바란다.

송편을 빚고 식혜를 만들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귀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기쁨이

이 한가위에 불쑥 솟아나길 기대한다.


매년 한가위가 다가오면 그저 쓸쓸해하는 것만으로 떼울 많은 이들에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늘 안타깝다.

그래서 나도 쓸쓸함으로 기나긴 이어놀기를 가득 채워 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