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백승종의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와 기록의 중요성이 새삼 되새겨진다.
논술교사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과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 존재하기 위해 쓰는 글,
불일치와 일치의 쌍곡선이 늘 줄타기를 해 왔다.
한참동안이나 쉬고 있었던 일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함을 깨닫는다.
내 삶의 궤적을 혼쾌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글쓰기이므로.


기록과의 대화/백승종


역사가로 산다는 것은 읽고 쓰기가 본업이란 뜻이다. 그런데 내가 무슨 주제를 정해 글을 쓰기도 어렵지만, 남이 써둔 글을 읽고 사실 관계와 의미를 알아내기는 더욱 어렵다. 오늘은 역사가로서 자료 읽기의 어려움을 토로할까 한다. 일종의 신세한탄이다.
대개 기록이란 저마다 할 말이 있고, 그것도 자기 입장에서 반드시 후세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들이 공을 들여 이룩한 일종의 변론서 또는 팜플렛 같은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글쓴이의 의도에 끌려 다니기 십상이다. 하물며 조선시대의 사관들은 수사법에 있어서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란 측면에서 고도로 훈련된 선비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기록을 남겼다. 평생 한문으로 훈련되고 무장된 그들이 남긴 기록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러 모로 녹록하지가 않다.

첫째, 한문에 약한 우리로서는 문면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쉬운 것도 어렵게 서술한 부분이 적지 않은 터라 글의 뜻을 정확히 알기 어렵고, 글에 담긴 수사학적 의미를 읽어내기도 지난하다. 하물며 그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원론적으로는 반히 알지만 세부적으로는 능력부족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기록자들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쓰면서도 언제나 객관을 가장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 점에 있어 막강하다. 그들은 언제나 "술이부작 (述而不作)" 즉, 서술은 하였으나 자신의 의견을 보태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물론 새빨간 거짓이다. 어떤 자료를 선택하는가 하는 결정부터가 주관적이요, 뚜렷한 목적 아래 일어나는 역사가의 창작행위다.

셋째, 기록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데 조금이라도 지장을 초래하는 문서가 있으면 송두리채 무시하거나 왜곡한다. 으례 있는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망실된 문서를 수색해서 찾아내거나 왜곡된 사실관계를 바로 잡을 수단이 별로 없다. 대개의 경우 우리 앞에 던져진 단 한 가지 기록에 의지해야만 된다.

  이처럼 자료 읽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자료의 함정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궁리한 지도 꽤 오래 되었다. 30년 이상 되었다. 그 동안 내가 생각해낸 해결책이란 사실상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이다.
그 하나는 우선 글쓴이의 의도를 짐작하는 작업이다. 왜, 이 글을 썼을까를 먼저 생각한 다음에 자료를 읽어야 한다. 글쓴이가 사실관계를 왜곡한다면 어떤 지점일까를 미리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글쓴이가 제거해버렸을지도 모르는 다른 자료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지를 상상해보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글쓴이에게서 사소한 모순을 발견하는 것이다. 설명의 공백을 찾아내는 것이다. 앞뒤 논조의 혼란을 캐내는 작업이다. 바로 그런 지점에 진실의 싹이 숨어 있다. 반전의 가능성이 있다. 글쓴이가 애써 숨기려드는 역사의 진실이 가리워져 있을 지도 모른다.
끝으로, 글쓴이의 저술 의도에서 벗어나 우리가 알고 싶은 사건의 전개와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해당 사건과 인물에 관해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만 가능한 작업이다. 이래서 하나의 자그만 주제를 다룰 때에도 우리의 지식은 그것보다 몇 배 넓은 영역을 포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이 알수록 상상력도 풍부해진다. 참 희한한 노릇이지만 우리의 경험상 틀림없는 이야기다.

역사가로 산다는 것은 기록과 대화하는 것이다. 글자 또는 활자로 화석화된 사물로부터 사람의 혼을 불러오고 잊혀진 사건을 복원(이것은 물론 매우 과장된 표현이다)해내는 역동적인 작업이다. 오늘도 책상머리에 앉아 또 누구의 진실을 밝혀야할지를 고민하는 나는 초로의 역사가로서 이렇게 한가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내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