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난쏘공을 읽은 독후감을 난쟁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기.
1. 대원외고2 차해리
안녕하세요. 저는 난쏘공을 읽은 독자입니다.
겉표지에서 오는 어려운 이미지 때문에 선뜻 읽을 생각을 못하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아저씨의 사연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부족함 없이 살아오면서도 더 많은 것을 바래오고, 불평해 왔습니다.
또한 입시를 앞둔 학생으로서 이세상의 고통은 다 내가 지고 있는 것처럼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힘듦에는 비할 바가 안 되는 또 다른 힘듦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순식간에 삶의 공간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 그리고 집문서를 되찾아 오겠다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린 영희의 삶,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서의 힘든 삶들을 간접 체험함으로서 그들의 감정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참 부끄럽게만 생각됩니다. 제가 고작 투쟁하고 있는 것은 사회나 타인이 아닌 ‘나’ 라는 자아 한 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생기고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문뜩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하늘에 공을 쏘아 올리고 자살 하셨나요?
저는 사회에 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무척 넓고, 그 속의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에 의해 수많은 변수들을 재치고 이렇게 태어나라 선택 받았던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도 선택 받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낼 것입니다.
아저씨도 제 성공적인 삶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다음에 태어날 때는 운명에 굴복하지 마시길 빌게요. 안녕히 계세요
2. 난쟁이 아버지께 / 경기고2 강윤승
요즘 잘 지내시나요? 어느 덧 여름이 되었군요. 그렇게 가고 싶어 하시던 달나라, 지금 그 달나라에 편히 계시고 있겠죠? 아니면 지금도 거리로 몰아내어지는 많은 철거민을 안타깝게 쳐다 보고 있으신가요? 아저씨께서 계시는 달에 좋은 소식만 들려 주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아저씨께서는 신체적인 장애와, 하층민이라는 신분으로 세상 살아가는데 많이 힘드셨죠? 게다가 조상 분들께서도 노비이셨잖아요. 일부 사람들은 조상의 계급이 무슨 상관이냐 하지만 전 그렇게 보지는 않아요. 양반과 노비의 빈부 격차가 벌어질 만큼 벌어진 때에, 어느날 신분제가 폐지되어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게 되셨잖아요. 돈이 곧 계급과 생존으로 이어지는 이 사회에서, 돈도 없이 불공평한 출발을 하게 되신 거잖아요. 너무 억울 하시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위의 세가지 꼬리표 때문에 성공이 가로 막히고.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노동은 그 누구보다도 심하셨지만 결국은 안정적인 삶을 살지 못하신게 참 안타까워요. 밥을 먹는데 철거꾼들이 들이 닥쳐 집을 허물때 앞이 캄캄 하셨죠? 집이 있어도 힘든데 집도 없어지고 가족에 대한 걱정은 심해지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것에 대해 아예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조금 만 더 참으시지 그러 셨어요. 목숨만 붙어있는 것만 해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저씨께서 달나라로 가겠다 하셨을 때 그 모습은 표면적으로 우습게 보였어요. 그러나 아저씨의 심정을 알고 나면, 아저씨의 절규가 이해되요. 이 불합리한 세상이 너무 싫으셨 겠죠. 이 세상과 동 떨어져 있는 새로운 세계, 달나라에서 소망을 이루고 싶었겠죠.
사회의 개발을 이름으로 철거민을 무참하게 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모순이라고 봐요. 철거민도 사회 구성원인데 그들을 억압하면서 사회 개발이라는 문제를 해결한다...사회 구성원의 억압으로 사회 구성원의 이득을 취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지 않나요?
아저씨께서 하신 두 말씀이 아직도 머리에 맴 돌아요. “그 들에겐 법이 있다.”, “ 너희는 죽은 교육을 받았다.”. 법이란게 무엇이죠? 그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녕을 위한 것이죠? 법안에서는 그 구성원은 마치 가정처럼 보호를 받아야죠. 그러나 법이 마치 기득권 층의 이익을 보장하는 수단과 같이 변하면서 법의 인권과 정의의 수호의 의무가 무의미 해졌죠. 아저씨가 말한 그 들이 바로 기득권 층, 아저씨 집을 허문 계층이죠? 법이라는 면죄부를 지닌 기득권층에 대한 아저씨의 절규는 아무 의미가 없었죠. 법이 아저씨에겐 원망의 대상이죠..
아저씨의 말대로 우리는 죽은 교육을 받은 것 같아요.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신 아저씨 께서 우주를 바라볼 때, 비교도 안되는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한 저희에겐 우리 나라, 멀어야 주변 국가 밖에 안 보였거든요. 이러한 기계식 같은 교육, 이런 사회 기득권 층에 의해 굳어 버린 사회 구조를 깨어 버리긴 커녕 계속 심화 시키는 교육도 아저씨의 원망의 대상인 것 같기도 해요.
아저씨께서 돌아가신지 수 십년이 지난, 바로 오늘에도 철거민 인권 침해에 대한 기사가 눈에 보이네요. 아저씨가 겪은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지금, 마음 편히 계시지는 못하실 것 같아요. 아저씨가 웃으며 달나라에 사실 수 있도록 우리가 열심히 노력을 할테니 아저씨께서는 계속 지켜봐 주시고 함께 싸워 주세요!
- 강 윤 승 올림
3. 천국 유토피아시 낙원구 행복동에 계신 난쟁이 아버지에게
영동고2 임형민
아저씨께서 돌아가시고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사회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자동차도 많아졌고 건물들은 더욱 높아졌고 냉방시설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좋은 옷도, 악기도 더 많이 생겼습니다. 아 참 강력한 자본가들에 대항하는 강한 노동 조합도 생겼어요. 그런데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더군요. 그것은 어쩜 아저씨 때부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아직까지 존재 해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불행하게도 앞으로 극복하기도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게 뭐냐구요?
아직 우리 사회에 살고 아저씨 같은 난쟁이들입니다. 그들만은 사라지지 않고 항상 어딘가에 있더군요. 20년 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고 똑같은 모습으로요. 저는 이제 고등학생이라서 조금은 먼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있어요. 어느 대학에 갈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아직 고등학생인 저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아직도 난쟁이들은 당장 내일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걱정하면서 살고 있더군요. 그런데 왜 그들은 아직도 그렇게 아저씨처럼 살고 있는 걸까요?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왜 스스로를 도시의 하층민이 라고 비하하죠? 그들도 분명히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을 추구하게 될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아저씨는 성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노예들을 이끌고 떠나는 이야기를 보면 하느님은 그들이 40년 동안에 광야에서 생활을 하게 하는데 왜 하필이면 그들이 죄인도 아니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인데 40년씩이나 광야에서 살게 했을까요? 그건 이미 많은 노예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세대 교체를 위한 것은 아닐까요? 사실 이집트를 처음 떠날 때 많은 이스라엘 노예들이 떠나기보다는 노예로 남아서 살기를 원했거든요. 저도 그런걸 하나 갖고 있어요. 무다리 의식이라고 해야하나? 바지만 사로 가면 입어보기도 전에 난 저런 거 못 입어 하고 생각하고 포기하죠. 어쩌면 난쟁이들은 지금 난쟁이 의식에 젖은 것이 아닐까요? 스스로는 난쟁이라고, 난쟁이는 난쟁이로만 살아야 된다고. 가족 부양이 문제인데 무슨 저항을 한다고. 물론 자신에게 익숙하고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기가 어렵겠죠. 갑자기 이런 영화 대목이 생각나네요. ‘때로는 더 큰 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은 포기해야 됩니다.’라는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려는 영웅 스파이더맨의 말이요..
난쟁이가 힘들게 살아야되는 것이 전적으로 난쟁이들의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어쩌면 그보다 외부적인 요인이 더 많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럴수록 난쟁이들 스스로 더 노력해야 되는 게 아닐까요. 힘들고 지쳐도 노력해야 난쟁이들이 사랑하는 이들이 더 이상 난쟁이로 살 수 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상의 난쟁이들을 위로하는 또 하나의 난쟁이가
1. 대원외고2 차해리
안녕하세요. 저는 난쏘공을 읽은 독자입니다.
겉표지에서 오는 어려운 이미지 때문에 선뜻 읽을 생각을 못하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아저씨의 사연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부족함 없이 살아오면서도 더 많은 것을 바래오고, 불평해 왔습니다.
또한 입시를 앞둔 학생으로서 이세상의 고통은 다 내가 지고 있는 것처럼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힘듦에는 비할 바가 안 되는 또 다른 힘듦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순식간에 삶의 공간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 그리고 집문서를 되찾아 오겠다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린 영희의 삶,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서의 힘든 삶들을 간접 체험함으로서 그들의 감정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참 부끄럽게만 생각됩니다. 제가 고작 투쟁하고 있는 것은 사회나 타인이 아닌 ‘나’ 라는 자아 한 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뚜렷한 의식이 생기고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문뜩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하늘에 공을 쏘아 올리고 자살 하셨나요?
저는 사회에 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무척 넓고, 그 속의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에 의해 수많은 변수들을 재치고 이렇게 태어나라 선택 받았던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도 선택 받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낼 것입니다.
아저씨도 제 성공적인 삶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다음에 태어날 때는 운명에 굴복하지 마시길 빌게요. 안녕히 계세요
2. 난쟁이 아버지께 / 경기고2 강윤승
요즘 잘 지내시나요? 어느 덧 여름이 되었군요. 그렇게 가고 싶어 하시던 달나라, 지금 그 달나라에 편히 계시고 있겠죠? 아니면 지금도 거리로 몰아내어지는 많은 철거민을 안타깝게 쳐다 보고 있으신가요? 아저씨께서 계시는 달에 좋은 소식만 들려 주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아저씨께서는 신체적인 장애와, 하층민이라는 신분으로 세상 살아가는데 많이 힘드셨죠? 게다가 조상 분들께서도 노비이셨잖아요. 일부 사람들은 조상의 계급이 무슨 상관이냐 하지만 전 그렇게 보지는 않아요. 양반과 노비의 빈부 격차가 벌어질 만큼 벌어진 때에, 어느날 신분제가 폐지되어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게 되셨잖아요. 돈이 곧 계급과 생존으로 이어지는 이 사회에서, 돈도 없이 불공평한 출발을 하게 되신 거잖아요. 너무 억울 하시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위의 세가지 꼬리표 때문에 성공이 가로 막히고.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노동은 그 누구보다도 심하셨지만 결국은 안정적인 삶을 살지 못하신게 참 안타까워요. 밥을 먹는데 철거꾼들이 들이 닥쳐 집을 허물때 앞이 캄캄 하셨죠? 집이 있어도 힘든데 집도 없어지고 가족에 대한 걱정은 심해지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것에 대해 아예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조금 만 더 참으시지 그러 셨어요. 목숨만 붙어있는 것만 해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저씨께서 달나라로 가겠다 하셨을 때 그 모습은 표면적으로 우습게 보였어요. 그러나 아저씨의 심정을 알고 나면, 아저씨의 절규가 이해되요. 이 불합리한 세상이 너무 싫으셨 겠죠. 이 세상과 동 떨어져 있는 새로운 세계, 달나라에서 소망을 이루고 싶었겠죠.
사회의 개발을 이름으로 철거민을 무참하게 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모순이라고 봐요. 철거민도 사회 구성원인데 그들을 억압하면서 사회 개발이라는 문제를 해결한다...사회 구성원의 억압으로 사회 구성원의 이득을 취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지 않나요?
아저씨께서 하신 두 말씀이 아직도 머리에 맴 돌아요. “그 들에겐 법이 있다.”, “ 너희는 죽은 교육을 받았다.”. 법이란게 무엇이죠? 그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녕을 위한 것이죠? 법안에서는 그 구성원은 마치 가정처럼 보호를 받아야죠. 그러나 법이 마치 기득권 층의 이익을 보장하는 수단과 같이 변하면서 법의 인권과 정의의 수호의 의무가 무의미 해졌죠. 아저씨가 말한 그 들이 바로 기득권 층, 아저씨 집을 허문 계층이죠? 법이라는 면죄부를 지닌 기득권층에 대한 아저씨의 절규는 아무 의미가 없었죠. 법이 아저씨에겐 원망의 대상이죠..
아저씨의 말대로 우리는 죽은 교육을 받은 것 같아요.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신 아저씨 께서 우주를 바라볼 때, 비교도 안되는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한 저희에겐 우리 나라, 멀어야 주변 국가 밖에 안 보였거든요. 이러한 기계식 같은 교육, 이런 사회 기득권 층에 의해 굳어 버린 사회 구조를 깨어 버리긴 커녕 계속 심화 시키는 교육도 아저씨의 원망의 대상인 것 같기도 해요.
아저씨께서 돌아가신지 수 십년이 지난, 바로 오늘에도 철거민 인권 침해에 대한 기사가 눈에 보이네요. 아저씨가 겪은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지금, 마음 편히 계시지는 못하실 것 같아요. 아저씨가 웃으며 달나라에 사실 수 있도록 우리가 열심히 노력을 할테니 아저씨께서는 계속 지켜봐 주시고 함께 싸워 주세요!
- 강 윤 승 올림
3. 천국 유토피아시 낙원구 행복동에 계신 난쟁이 아버지에게
영동고2 임형민
아저씨께서 돌아가시고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사회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자동차도 많아졌고 건물들은 더욱 높아졌고 냉방시설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좋은 옷도, 악기도 더 많이 생겼습니다. 아 참 강력한 자본가들에 대항하는 강한 노동 조합도 생겼어요. 그런데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더군요. 그것은 어쩜 아저씨 때부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아직까지 존재 해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불행하게도 앞으로 극복하기도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게 뭐냐구요?
아직 우리 사회에 살고 아저씨 같은 난쟁이들입니다. 그들만은 사라지지 않고 항상 어딘가에 있더군요. 20년 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고 똑같은 모습으로요. 저는 이제 고등학생이라서 조금은 먼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있어요. 어느 대학에 갈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아직 고등학생인 저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아직도 난쟁이들은 당장 내일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걱정하면서 살고 있더군요. 그런데 왜 그들은 아직도 그렇게 아저씨처럼 살고 있는 걸까요?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왜 스스로를 도시의 하층민이 라고 비하하죠? 그들도 분명히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을 추구하게 될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아저씨는 성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노예들을 이끌고 떠나는 이야기를 보면 하느님은 그들이 40년 동안에 광야에서 생활을 하게 하는데 왜 하필이면 그들이 죄인도 아니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인데 40년씩이나 광야에서 살게 했을까요? 그건 이미 많은 노예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세대 교체를 위한 것은 아닐까요? 사실 이집트를 처음 떠날 때 많은 이스라엘 노예들이 떠나기보다는 노예로 남아서 살기를 원했거든요. 저도 그런걸 하나 갖고 있어요. 무다리 의식이라고 해야하나? 바지만 사로 가면 입어보기도 전에 난 저런 거 못 입어 하고 생각하고 포기하죠. 어쩌면 난쟁이들은 지금 난쟁이 의식에 젖은 것이 아닐까요? 스스로는 난쟁이라고, 난쟁이는 난쟁이로만 살아야 된다고. 가족 부양이 문제인데 무슨 저항을 한다고. 물론 자신에게 익숙하고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기가 어렵겠죠. 갑자기 이런 영화 대목이 생각나네요. ‘때로는 더 큰 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은 포기해야 됩니다.’라는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려는 영웅 스파이더맨의 말이요..
난쟁이가 힘들게 살아야되는 것이 전적으로 난쟁이들의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어쩌면 그보다 외부적인 요인이 더 많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럴수록 난쟁이들 스스로 더 노력해야 되는 게 아닐까요. 힘들고 지쳐도 노력해야 난쟁이들이 사랑하는 이들이 더 이상 난쟁이로 살 수 있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상의 난쟁이들을 위로하는 또 하나의 난쟁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