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2006.03.09 02:55:04 (*.153.211.109)
10804
엔트로피를 읽고
해오름 중등논술지도자 25기 과정 김나현
자연현상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 사용 할 수 있는 형태에서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질서가 있는 것에서 질서가 없는 것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것이 질서가 있고 사용가치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하고 사용가치가 없는 상태로의 변환을 의미 한다. 이것이 엔트로피 법칙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는 감소하고 우리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는 증가하는 것이다.
현대사회가 기계화 사회, 정보화 사회, 소비적인 사회임을 비춰볼 때 엔트로피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엔트로피>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끝없는 이윤추구, 고속성장, 환경오염 등 현대사회에서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을 나열하여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지속 가능한 참다운 인류 발전을 위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답을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 도시 집중현상의 해결, 산업주의 제거 등을 꼽고 있다. 엔트로피 증가의 문제, 즉 우주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유용한 에너지가 고갈되어 혼란 속에서 종말 할 것인지, 아니면 복잡한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 질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소비의 삶이 아닌 살림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개념은 확실히 잡게 해준 책이다.
잘 산다는 것, 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더불어 살아가기가 아닐까?
물을 같이 오래 먹기 위해 폐식용유로 만든 물고기가 죽지 않는 세제를 쓰며, 식초로 머리를 감는다. 오래 같이 나누어 먹기 위해 먹을 만큼만 장을 봐서 버리는 음식이 없도록 한다. 손님들이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다들 냉장고가 왜 이리 텅텅 비었냐고 한다. 이틀이상 먹을 것을 재어 두지 않는 나의 습관 탓이다. 농민과 함께 살기 위해, 낭비를 줄이기 위해 농민 직거래를 이용하여 일정한 양과 비용만 들여 식품과 재생용품을 사용 한다. 이것이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해 하는 실천이다. 하지만 아직 실천하지 못해 못살고 있는 것도 많다. 우선 두 가지만 꼽는다면 자동차와 외식이다. 시간절약을 핑계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만‘없었을 때도 살았는데’하는 마음이 늘 자리 한다. 한달에 두 번 하는 가족외식은 가족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내가 못살고 있은 이런 이유들이 언제 잘 사는 이유로 바뀌게 될지는 모르지만 <엔트로피>를 접한 이상 계속 나를 따라 다니며 괴롭힐 것임은 분명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무총리 이해찬씨가 골프장사건으로 뉴스와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삼일절이라는 역사적인 민족해방운동 기념일에 골프를 친 것이며, 둘째 이유는 철도노조파업이 시작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한가로이 골프를 친 것이다. 아직 정확히 밝혀 진 것은 아니지만, 부적절한 접대목적의 만남이라는 또 다른 이유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확실한 세 번째 이유를 추가 해준다면 환경파괴의 원인이 되는 골프장을 즐겼다는 죄목을 넣고 싶다. 골프장은 멀쩡한 산을 깎아 흙을 파내고 모래와 바위가루를 섞은 것을 덮어 땅을 메운다. 그래야 벌레가 살지 못하는 잔디를 가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잔디에 벌레가 생길까봐 농약을 뿌리는데 이 농약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하천으로 흘러가 지하수나 저수지 물을 오염시킨다.
우리는 엄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가스가 공기를 죽이고, 내가 쓰는 샴푸가 물고기와 물을 죽이고, 내가 먹는 고기가 더 많은 동물을 죽이는 죽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살림위주의 삶을 사신 우리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셨다.
“너는 살림만 하며 살지 마라. 쓰고 싶은 것 쓰고, 먹고 싶은 것 먹고 편히 살아라.” “하지만 어머니, 당신들의 살림이 인류를 지켰었습니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바뀔 수 있다. 즉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얻을 수 있는 것에서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질서가 있는 모임에서 질서가 없는 모임으로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근본적으로 모든 것은 질서가 있고 값어치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하고 값어치가 없는 상태로의 한 방향으로만 변할 수 있음을 뜻한다.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사용할 없는 형태로 얼마나 변했는가에 대한 척도가 바로 엔트로피이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우주의 어느 한 곳에 질서가 더 생기는 것은 다른 곳에서 이보다 더한 무질서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역사를 발전으로 보는 개념을 무너뜨릴 것이며, 과학과 기술이 보다 질서 있는 세계를 만든다는 생각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뉴튼의 기계적 세계가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대치하게 될 때처럼 이런 엔트로피 법칙은 현재의 세계관을 대치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에는 많은 에너지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열에너지, 화학에너지, 전기 에너지 이외에도 아직 확인 되지 않은 에너지들이 이 우주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무릇 무엇이든지 정량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공식화 하는 것을 좋아하지여 ^^ .. 즉 에너지의 정량적인 표현을 온도와 압력으로 표시하고자 엔트로피를 도입하게 된 것입니다.
엔트로피는 에너지를 지배하는 또 다른 인자인데 쉽게 생각하면 규칙성이 증가하면 엔트로피는 상승하고 규칙성이 작으면 엔트로피는 줄어듭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 우주의 모든 현상은 소비 적이고도 무질서하게 나아가므로 엔트로피는 증가하겠져?? 다시 말한다면 자발적인 반응.. 즉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우리가 걷는 것 등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거의 대부분의 모든 활동은 자발적이며 엔트로피를 상승시키는 것입니다...
엔트로피는 우리 인간이 임의로 만든 기호 체계인데...이 우주의 거의 모든 반응과 활동은 스스로 즉 자발적으로 일어나며 엔트로피는 증가합니다. 더 쉽게 생각해 보면 엔트로피를 쓰레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숨을 쉬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져?? 즉 쓰레기가 나오는 것이니까 자발적 반응이며 사람이 먹으면 응가를 누니까 이것도 자발적 반응이라고 봅니다. 즉 쓰레기이지요.
entropy는 질서와 무질서의 개념 즉 질서는 감소 무질서는 증대, 또는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쓸 수 없는 에너지로 바뀌는 것을 말 합니다. 열역학 제 2법칙은 엔트로피는 증대하는 방향으로만 흐른 다는 것입니다. 즉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릅니다. 그러나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릅니다. 이 현상들은 비가역적입니다 즉 자연적으로는 절대로 반대의 현상이 일어 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손을 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식물의 광합성작용 같은 것은 얼핏 반대의 현상으로 보입니다만 이것도 결국은
큰 개념으로 볼 때는 증대의 개념을 본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작은 하나의 아미노산이 인간이라는 복잡한 개체로 변한 진화라는 현상도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위배 된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 entropy라는 것으로 책을 하나 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수선해지며, 그 변화를 다시 되돌리기는 너무도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엔트로피 법칙'이 자주 인용되지요. 엔트로피 법칙은 자연현상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는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였으며,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무질서도'로 해석되는 엔트로피는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클로드 섀넌은 '정보 엔트로피'의 개념을 만들어 냈으며, 그 외에도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그리고 예술에 이르기까지 엔트로피의 개념과 법칙이 다양한 모습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엔트로피가 원래의 엄격한 과학적 정의에서 벗어나 좀 더 폭넓게 적용될 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유용함과 함께 부적절한 해석을 통한 개념의 혼란과 부작용의 위험도 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엔트로피에 대한 개략적 이해 / 신석민(서울대 교수·화학부)
<엔트로피>는
사회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이 엔트로피 법칙의 개념을 원용하여 현대 물질문명을 비판한 저서이다. 리프킨은 엔트로피 법칙을 유용한 에너지가 감소하고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가 증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가 변화를 위하여 에너지와 물질을 계속 사용하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에너지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열 종말'과 사용할 물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물질 혼돈'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천명한다.
기계론적인 세계관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물질만능주의와 과학만능주의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고 역설한다. 현재 우리는 산업 시대를 통하여 고에너지 사회를 지속해온 결과로 화석연료의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고엔트로피의 거대한 분수령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제 막다른 기로에 서서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엔트로피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리프킨은 다양한 분석과 논리 전개의 근거로 엔트로피 법칙을 내세우고 있으나, 때로는 지나치게 자의적인 확대 해석으로 흐른 점이 아쉽다고 하겠다. 엔트로피 법칙이 제시하는 자연 변화의 궁극적인 종착점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모든 유용한 에너지와 물질이 고갈된 무질서한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일리야 프리고진 등의 주장처럼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연일 급등하는 원유가를 걱정하며 급속한 자원의 고갈,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와 식량의 부족,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 우리를 둘러싼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이행되는 변화의 시대에 무언가 혼란스럽고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리프킨의 경고와 그 의미를 나름대로 음미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엔트로피>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생각해보아야 할 여러 가지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인류 발전을 위한 세계관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인간성의 과학', 그리고 '생태주의적' 또는 '유기론적' 패러다임을 강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엔트로피 사회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해오름 중등논술지도자 25기 과정 김나현
자연현상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 사용 할 수 있는 형태에서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질서가 있는 것에서 질서가 없는 것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것이 질서가 있고 사용가치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하고 사용가치가 없는 상태로의 변환을 의미 한다. 이것이 엔트로피 법칙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는 감소하고 우리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는 증가하는 것이다.
현대사회가 기계화 사회, 정보화 사회, 소비적인 사회임을 비춰볼 때 엔트로피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엔트로피>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끝없는 이윤추구, 고속성장, 환경오염 등 현대사회에서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을 나열하여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지속 가능한 참다운 인류 발전을 위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답을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 도시 집중현상의 해결, 산업주의 제거 등을 꼽고 있다. 엔트로피 증가의 문제, 즉 우주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유용한 에너지가 고갈되어 혼란 속에서 종말 할 것인지, 아니면 복잡한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 질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소비의 삶이 아닌 살림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개념은 확실히 잡게 해준 책이다.
잘 산다는 것, 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더불어 살아가기가 아닐까?
물을 같이 오래 먹기 위해 폐식용유로 만든 물고기가 죽지 않는 세제를 쓰며, 식초로 머리를 감는다. 오래 같이 나누어 먹기 위해 먹을 만큼만 장을 봐서 버리는 음식이 없도록 한다. 손님들이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다들 냉장고가 왜 이리 텅텅 비었냐고 한다. 이틀이상 먹을 것을 재어 두지 않는 나의 습관 탓이다. 농민과 함께 살기 위해, 낭비를 줄이기 위해 농민 직거래를 이용하여 일정한 양과 비용만 들여 식품과 재생용품을 사용 한다. 이것이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해 하는 실천이다. 하지만 아직 실천하지 못해 못살고 있는 것도 많다. 우선 두 가지만 꼽는다면 자동차와 외식이다. 시간절약을 핑계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만‘없었을 때도 살았는데’하는 마음이 늘 자리 한다. 한달에 두 번 하는 가족외식은 가족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내가 못살고 있은 이런 이유들이 언제 잘 사는 이유로 바뀌게 될지는 모르지만 <엔트로피>를 접한 이상 계속 나를 따라 다니며 괴롭힐 것임은 분명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무총리 이해찬씨가 골프장사건으로 뉴스와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삼일절이라는 역사적인 민족해방운동 기념일에 골프를 친 것이며, 둘째 이유는 철도노조파업이 시작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한가로이 골프를 친 것이다. 아직 정확히 밝혀 진 것은 아니지만, 부적절한 접대목적의 만남이라는 또 다른 이유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확실한 세 번째 이유를 추가 해준다면 환경파괴의 원인이 되는 골프장을 즐겼다는 죄목을 넣고 싶다. 골프장은 멀쩡한 산을 깎아 흙을 파내고 모래와 바위가루를 섞은 것을 덮어 땅을 메운다. 그래야 벌레가 살지 못하는 잔디를 가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잔디에 벌레가 생길까봐 농약을 뿌리는데 이 농약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하천으로 흘러가 지하수나 저수지 물을 오염시킨다.
우리는 엄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가스가 공기를 죽이고, 내가 쓰는 샴푸가 물고기와 물을 죽이고, 내가 먹는 고기가 더 많은 동물을 죽이는 죽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살림위주의 삶을 사신 우리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셨다.
“너는 살림만 하며 살지 마라. 쓰고 싶은 것 쓰고, 먹고 싶은 것 먹고 편히 살아라.” “하지만 어머니, 당신들의 살림이 인류를 지켰었습니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바뀔 수 있다. 즉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얻을 수 있는 것에서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질서가 있는 모임에서 질서가 없는 모임으로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근본적으로 모든 것은 질서가 있고 값어치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하고 값어치가 없는 상태로의 한 방향으로만 변할 수 있음을 뜻한다.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사용할 없는 형태로 얼마나 변했는가에 대한 척도가 바로 엔트로피이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우주의 어느 한 곳에 질서가 더 생기는 것은 다른 곳에서 이보다 더한 무질서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역사를 발전으로 보는 개념을 무너뜨릴 것이며, 과학과 기술이 보다 질서 있는 세계를 만든다는 생각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뉴튼의 기계적 세계가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대치하게 될 때처럼 이런 엔트로피 법칙은 현재의 세계관을 대치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에는 많은 에너지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열에너지, 화학에너지, 전기 에너지 이외에도 아직 확인 되지 않은 에너지들이 이 우주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무릇 무엇이든지 정량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공식화 하는 것을 좋아하지여 ^^ .. 즉 에너지의 정량적인 표현을 온도와 압력으로 표시하고자 엔트로피를 도입하게 된 것입니다.
엔트로피는 에너지를 지배하는 또 다른 인자인데 쉽게 생각하면 규칙성이 증가하면 엔트로피는 상승하고 규칙성이 작으면 엔트로피는 줄어듭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이 우주의 모든 현상은 소비 적이고도 무질서하게 나아가므로 엔트로피는 증가하겠져?? 다시 말한다면 자발적인 반응.. 즉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우리가 걷는 것 등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거의 대부분의 모든 활동은 자발적이며 엔트로피를 상승시키는 것입니다...
엔트로피는 우리 인간이 임의로 만든 기호 체계인데...이 우주의 거의 모든 반응과 활동은 스스로 즉 자발적으로 일어나며 엔트로피는 증가합니다. 더 쉽게 생각해 보면 엔트로피를 쓰레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숨을 쉬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져?? 즉 쓰레기가 나오는 것이니까 자발적 반응이며 사람이 먹으면 응가를 누니까 이것도 자발적 반응이라고 봅니다. 즉 쓰레기이지요.
entropy는 질서와 무질서의 개념 즉 질서는 감소 무질서는 증대, 또는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쓸 수 없는 에너지로 바뀌는 것을 말 합니다. 열역학 제 2법칙은 엔트로피는 증대하는 방향으로만 흐른 다는 것입니다. 즉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릅니다. 그러나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릅니다. 이 현상들은 비가역적입니다 즉 자연적으로는 절대로 반대의 현상이 일어 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손을 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식물의 광합성작용 같은 것은 얼핏 반대의 현상으로 보입니다만 이것도 결국은
큰 개념으로 볼 때는 증대의 개념을 본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작은 하나의 아미노산이 인간이라는 복잡한 개체로 변한 진화라는 현상도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위배 된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 entropy라는 것으로 책을 하나 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수선해지며, 그 변화를 다시 되돌리기는 너무도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엔트로피 법칙'이 자주 인용되지요. 엔트로피 법칙은 자연현상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는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였으며,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무질서도'로 해석되는 엔트로피는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클로드 섀넌은 '정보 엔트로피'의 개념을 만들어 냈으며, 그 외에도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그리고 예술에 이르기까지 엔트로피의 개념과 법칙이 다양한 모습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엔트로피가 원래의 엄격한 과학적 정의에서 벗어나 좀 더 폭넓게 적용될 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유용함과 함께 부적절한 해석을 통한 개념의 혼란과 부작용의 위험도 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엔트로피에 대한 개략적 이해 / 신석민(서울대 교수·화학부)
<엔트로피>는
사회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이 엔트로피 법칙의 개념을 원용하여 현대 물질문명을 비판한 저서이다. 리프킨은 엔트로피 법칙을 유용한 에너지가 감소하고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가 증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가 변화를 위하여 에너지와 물질을 계속 사용하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에너지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열 종말'과 사용할 물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물질 혼돈'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천명한다.
기계론적인 세계관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물질만능주의와 과학만능주의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고 역설한다. 현재 우리는 산업 시대를 통하여 고에너지 사회를 지속해온 결과로 화석연료의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고엔트로피의 거대한 분수령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제 막다른 기로에 서서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엔트로피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리프킨은 다양한 분석과 논리 전개의 근거로 엔트로피 법칙을 내세우고 있으나, 때로는 지나치게 자의적인 확대 해석으로 흐른 점이 아쉽다고 하겠다. 엔트로피 법칙이 제시하는 자연 변화의 궁극적인 종착점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모든 유용한 에너지와 물질이 고갈된 무질서한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일리야 프리고진 등의 주장처럼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연일 급등하는 원유가를 걱정하며 급속한 자원의 고갈,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와 식량의 부족,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 우리를 둘러싼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이행되는 변화의 시대에 무언가 혼란스럽고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리프킨의 경고와 그 의미를 나름대로 음미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엔트로피>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생각해보아야 할 여러 가지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인류 발전을 위한 세계관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인간성의 과학', 그리고 '생태주의적' 또는 '유기론적' 패러다임을 강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엔트로피 사회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