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기고3  강윤승

   하루를 압축한 나라와 세계의 일기장인 신문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부분을 왜곡하거나 거짓 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언론의 역할은 대중에게 정보를 제공 하는 것이다. 대중은 그 정보를 기반으로 사회적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사회는 발전해 나가는 것이나. 그러나 만약 언론이 자신의 생명인 객관성과 공정성을 져버린다면 그러한 관계는 깨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사회 발전을 저하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언론이 그 기능을 져버리고 있는 것이다. 독재 시절 돈과 권력의 노예였던 다수의 언론은 그릇된 편집이 일상화 되어있다. 이와 더불어 독자의 언론을 대하는 소극적인 태도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대중매체에 종속된 현대인은 언론을 비판적 사고 없이 맹신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실만을 읽는 것이다. 이는 언론의 타락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시민사회의 시대를 맞아 이제 변화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의 허점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언론은 정보 공급자로서 대중의 신뢰를 오래전부터 얻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언론은 그러한 신뢰를 담보로 국민에 대해 일종의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 먼저 그들의 왜곡 행태를 보면, 일본 교과서 못지않은 조작을 가하고 있다. 조선을 ‘침략’ 한것이 아니라 ‘진출’ 했다는 식의 왜곡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일을 놓고 ‘성추행’이 ‘성 모욕 행위’로 순화(?) 되어진 일이 있었다. 이러한 것은 그나마 사건을 보도 하였었다. 모 일보는 효순 미선 사건을 여러 날이 지나도 보도 하지 않았었다. 나중에는 ‘부시 대통령이 사과하였다’ 라는 기사만 강조하여 내보내었었다. 이것 역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그릇된 행위이었지만 사실을 보도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는 아예 있지도 않은 사건을 만들기도 하였다.  북한이 흉작으로 유럽 보험회사에서 엄청난 액수의 보험금을 받았다는 것이 보도 된 적이 있었다. 물론 거짓이었지만 국내 언론은 ‘그 돈을 식량난 해소에 사용하지 않았다’ 는 식의 보도로 반북 감정을 고조 시켰다. 결국엔 국제적으로 망신만 당하였었다. 사실을 조작, 취사선택, 혹은 창조하는 신문의 행태를 알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편집과정의 왜곡을 들 수가 있다. 흔히 기자가 쓴 기사와 신문에 나오는 기사는 큰 차이가 있다. 편집 과정중 위로 부터의 정치적 압력과 광고주의 경제적 압력으로 그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삭제 혹은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신문사의 오랜 정치계와의 유착과 광고로 부터의 소득이 절반 이상 차지하는 신문의 현실이 그 원인이다. 일부 회사에서는 당번을 정해 하루 전에 도시에 배포 되는 1판을 구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다음날 배포할 때 고치도록 강요하고 있다. 한번은 S의료원의 비효율성과 질 낮은 서비스를 비판 하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다음날 배포될 때는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편집 국장은 ‘보도 지침’을 통해 기사를 규제 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에 예속된 신문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건의 유기성의 훼손을 들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읽는 신문에는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가 나뉘어져 있다. 이를 각 분야를 정리하여 독자가 원하는 부분만 읽게 할수 있도록 하는 배려로 볼 수 있지만 한 시각으로 보면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 각 분야를 단절 함으로써 전체적인 사고를 막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노동 파업에 관한 보도가 있으면 사회면을 봄과 동시에 경제면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각 면을 구분하면서 기사를 보도 하면 독자는 우선 선입견을 가지고 기사를 보게 된다. 예를 들어 평양의 열린 민족통일 대 축전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1면은 정치 기사 혹은 매우 중요한 기사’라는 대중의 인식을 이용하여 보도를 하였다. 결국 마녀사냥식의 여론 몰이 기사 보도로 방북단 일부가 구속을 당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읽기를 방해 한다. 따라서 이러한 면 구분을 초월하여 읽을 필요가 있다.

      현재 신문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 현실의 왜곡, 편집의 비리, 면 구분 등은 독자의 제대로 된 읽기를 방해 하고 있다. 독자는 이제 그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문계 자체가 변화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실제 사회에서 실행하기에는 독자의 변화가 보다 더 현실적이다. 독자는 신문에 대한 맹신을 버리고 항상 ‘왜’ 라는 질문을 가지며 비판적인 시각을 키워야 한다. 결국 사회는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지 언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편집과정에 나타나는 비리를 깨닫고 그것을 염두하며 기사를 접해야 한다. 기사의 글씨 크기가 아닌 자신의 주관에 따라 기사의 중요성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합적인 인식을 해야 한다. 경제와 사회를 따로 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존 우리 시민은 독재의 억압으로 자유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였다. 시민 사회가 충분히 성숙한 우리사회는 이제 비판적인 사고로 신문을 읽고 사회에 참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와 언론계의 바람직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신문의 사설을 읽고 끄덕이는 것보다는 사설을 직접 쓰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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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지고3 백소영

  수많은 신문 독자들은 기사를 과연 어떻게 읽고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그 전날 일어난 주요 사건을 정리한 단순한 기사로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신문의 제작과정에 개입되는 요소들은 무수히 많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신문이 제시하는 틀에 갇혀서 신문을 읽는다면 현실에 대한 자신의 판단조차 신문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신문의 편집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신문의 편집은 편집부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곳에서는 신문에 표제,사진,기사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를 정하게 된다. 이런 편집 과정에는 편집기자의 가치 판단력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또한 표제를 정하는 과정에서는 표제 그 자체에서부터 글자의 크기까지도 그의 가치관이 개입된다. 그러므로 아무런 비판 의식없이 신문을 읽는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가치판단을 수용하게 된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면별편집을 들 수 있다. 모든 신문 지면은 경제, 정치, 사회등 각각의 분야로 나뉘어서 구성된다. 이런 면별편집은 독자들이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 영향도 있다. 그러나 면별 편집을 하게 되면 기사의 중요한 정도가 무시된다. 이미 배정되어 있는 불필요한 지면 탓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기사가 빠지게 되는 경우도 생길뿐더러, 정작 중요한 일이 없는데도 배정된 지면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기사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바로 ‘종합 편집’론이다. ‘종합 편집’론이란 1면을 중심으로 몇 몇의 지면들만 종합 뉴스면으로 설정하여 그날의 중요한 기사들을 가치에 따라 편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잘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의 필요성은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도 면별 편집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면별편집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문제가 각각 개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 현상 속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인데, 따로 따로 편집을 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각각의 사건들이 단절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신문 편집은 사실과 완전히 반대의 내용을 보여주는 경우도 생긴다. 심지어 이런 전도된 편집이 우리 신문들의 일상적 보도양식으로 굳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신문 편집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정치 권력이라는 것도 신문 읽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정치권력자들은 신문 1판이 나오자마자 분석한 뒤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보면 편집국에 수정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삭제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권력은 독자들의 가치판단을 좌지우지 하게 되고 독자들이 사건을 올바르게 보는 것을 방해하게 된다. 이처럼 신문의 편집과정에서 독자들의 시야를 가리는 요소들이 사사건건 개입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신문을 성숙하게 읽을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먼저 면별 편집으로 인해 나뉘어진 각 분야의 기사를 입체적으로 읽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제면에 기사가 있다고 해서 그 사건은 경제와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문화분야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 사건과 관련된 부분을 함께 읽음으로써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또한 편집 기자들의 가치 판단이 개입된 지면 구성과 표제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표제와 기사 사이, 그리고 기사와 진실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권력의 의도가 숨겨진 기사 속에서 그들의 의도를 읽어내고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 그러려면 독자 스스로가 편집자의 입장이 되어서 지면의 편집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볼 필요가 있다. 잘못된 정보들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사실 왜곡으로 얼룩진 신문을 편집의 측면에서 보고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독자들을 자신의 가치판단에 끌어들이려는 언론에 대한 주권을 지키는 지름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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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지고 3 신현지

주제: 성숙한 독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Ⅰ.문제제기: 신문읽기의 어려움과 문제 상황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읽는다. 대다수의 독자들은 신문에 게재된 기사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 로 여기고 기사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나 다양한 측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신문사가 경제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정치권력의 하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며 신문의 의도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문 편집의 효율성을 위한 면별 구조로 인해 각 사건을 독립적이고 단절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편집은 매우 보편화 되어 신문을 읽는 사람들의 사고의 틀을 제한 할 수 있다.

Ⅱ.논의 펼치기: 신문읽기가 어려운 이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측면과 관련 되어있는데 신문 편집의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그 사건들은 각 면의 주제에 맞추어 분류되어 ,개개의 사건이 갖는 상호성과 유기성이 간과될 수 있다. 이로 인하여 독자들은 특정 사건을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기사 하나가 신문에 실리기까지 는 여러 관문이 존재 한다. 취재를 하는 기자 자신, 편집기자, 편집국장 등의 손을 거쳐 가면서 하나의 기사는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둔갑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또한 큰 사건은 작게, 작은 사건은 크게 부각함으로써 진실이 외면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문사의 행태는 언론사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 사주 ,대주주의 하중에서 기인한다. 사주. 대주주, 정치인 등 우리사회의 기득권자라 할 수 있는 이들의 구미에 맞춘 보도는 결국 그들의 특권을 연장시키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신문 구독료보다 수입이 좋은 광고수입을 위해 신문기자들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과는 다른 기사를 쓰면서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신문사는 경제적 이익. 기득권자들은 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이해관계에서 일어나는 수요와 공급, 그 속에서 언론사가 가져야 할 보도의 공정성과 진실성은 철저히 외면당하게 되고 상부 세력의 ‘보이지 않는 손’ 이 사회의 여론 등을 어느 한 쪽으로 편향 할 수 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신문사의 잘못된 풍조가 계속된다면 신문사마저 공정성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저버린 채 사적인 이윤추구만 좇는 영리단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Ⅲ.결론: 성숙한 독자가 되기 위한 방안

신문은 결코 우리에게 객관적인 진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하나의 사건을 단락의 크기를 이용해 사건자체의 중요성을 조작하기도 하며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기득권자들의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를 주입함으로써 한 사건을 진실에서 떨어 뜨려 놓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신문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길러야 할 것 이다. 또한 한 사건을 분류된 하나의 기준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개개의 사건이 가진 유기적이고 상호적인 관계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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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창덕여고3 이경원

성숙한 독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당신은 과연 신문을 온전히 읽고 있는가?’ 사람들은 신문은 항상 공정한 보도와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저자는 과연 그럴까? 라는 어찌보면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다. 언론은 국민의 여론, 즉 국민의 목소리를 내는 목적의식을 갖춘 기관이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은 이와 모순된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주입시키고 있다. 정치권력과 이익집단에 사로잡혀 국민들에게 모순된 사실을 국민적 염원으로 몰아가는 언론은 진정한 언론의 면모를 퇴색한지 오래다. 조작된 편집하에 이루어진 신문의 면들은 국민들을 수동적인 객체로 전락시킴으로서 우리들의 의식을 잠재워버린다.
진실이 왜곡된 언론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우리는 결코 사실을 바로 볼 수 없다. 신문을 통해 보는 진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작업들을 걸쳐서 가공해낸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정치권력과 자본에 의해 휘둘리는 언론. 소신 있는 소수의 기자들이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하더라도 이는 바로 묻히고 만다. 그리고 그 기자들은 현실에 직면하고 바로 이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이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데에 아무런 죄의식도 갖지 못한다. 전도된 편집이 일상적 보도 양식으로서 굳어진 것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왜곡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진정한 독자로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우선은 기자들의 노력이다. 기자들이 전부 부패하고 타락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 좌절하고 일어나지 못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민중의 잠재된 의식을 깨울 수 있음을 자각하고 좀더 발 벗고 뛰어야 할 것이다. 독자들도 자신들의 책임을 자각해야한다. 당신이 신문 편집자라는 잠재적 의식 속의 재편집을 통해 신문을 대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많은 언론들이 왜곡된 진실을 이야기하고 권력과 타협한다 해도 이를 꿰뚫을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요즘 정보통신의 발달과 시민들의 의식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사람들이 언론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이 다양해졌다. 그런데도 앉아서 부패한 기자나 언론사들만을 탓한다면, 이는 누워서 침뱉기일 뿐이다. 우리들의 권리는 우리들이 취하고 나아가 그 권리를 외칠 때 존중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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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영외고3  박범조

정보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터넷이나 다른 정보획득 매체가 많이 발달하였으나, 아직까지 신문은 가장 손쉽게 세상의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배달되어지는 신문을 꼬박꼬박 받아 읽음으로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민주시민이라 자부하는 현대인들에게 읽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확 들어오는 신문의 모순 된 부분들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신문 자체의 구조와 형성 과정에 대하여 무지한지, 또 단순히 신문을 올바른 정보로만 인식하여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위의 글에 대하여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잘하는 일명 ‘딴지걸기’를 신문에 일일이 하면 되지 않느냐‘식의 말이 나올 법하다. 그렇지만 조금만 자신들의 생각과 다를 경우 거부반응부터 보이는 젊은 세대들이 여태까지 신문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여 본다면, 신문을 읽어도 딴지를 걸 이유와 마음이 없었고, 없고, 없을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무지’, ‘무비판’, ‘무심’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사람들은 신문을 단순히 ‘기자들의 기사가 모여 만들어진 정보의 매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한 부의 신문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재창조, 재구성, 재배열의 과정, 즉 ‘편집’이 어떻게 행하여지는지 모르는 사람이 과반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문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해주는 매체라고 굳게 믿어왔었고, 신문은 비교적 정치와는 연계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신문이 현 사회의 정보를 다루는 이상, 사회와 긴밀한 연관이 없을 수는 없다. 즉, 신문은 수직관계 피라미드 구조의 정점인 정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것에 대하여 너무 무지했다. 정부의 정치권력과는 별 연관이 없을 것이라는 ‘무지에서 비롯된 믿음’은 현대인들이 신문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없이 너그럽게 만들었다.

두 번째 문제는 매일매일 보는 신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만 한 점에서 발생하였다. 사람들은 무지로 인해 신문에 대해 관대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런 무비판적인 시선은 특정한 가치관과 정치권력의 개입으로 인한 편집의 과정을 거친 왜곡된 현실을 실제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사설 같은 특정한 가치관과 사회표현 방식이 들어있는 신문을 무비판적으로 매일매일 보다보면 세뇌작용 같은 현상이 생겨, 결국 지면의 편집을 그대로 따라 자신도 모르게 그 지면을 구성한 편집자의 가치관에 동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제는 ‘무심’에 관한 문제이다. 무지와 무비판적 수용에 의해 그 신문이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가치관에 동조하는 의식이 형성되어버린 현대인들은 이제 신문을 보아도 별 감흥이 없다. 그저 신문의 내용이 사실이겠거니 하면서 사회의 정보를 편집자의 가치관을 통해서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편집자의 가치관에 따라 무심히 넘어가게 되었고, 자신의 신문 읽는 방식에 대하여 의문이 들어도 그저 덤덤하게 넘어갈 뿐이다. 사람은 관심이 없어지면 안주하는 법이다. 현사회의 신문들에게는 진실의 왜곡과 상황의 과장, 정치권력과의 연계로 인한 허위·과대 표현 등 수많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무심히 넘어가면 현대 우리들의 신문은 영원히 권력의 산물, 부정의 선도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신문은 우선 자신들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면서, 정치권력과 연계하여 편집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반드시 사실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그리고 신문이 여론을 형성하는 도구라는 것을 인지하여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독자적인 신문편집의 틀 형성과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신문읽기에 참여하여, 궁극적으로 독자와 신문간의 역피라미드 관계를 형성하고자 노력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