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
출전: 붉은여우(gymnopedie3) 베품 http://cafe.naver.com/readspeak/15607
1.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원시수프를 생각해보라고 다윈이 이미 명쾌하게 설명했잖아.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그러나 다윈의 “생물은 종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행위하도록 진화한다는 오해라고 생각해, 생물에서 동물의 생활은 대부분 번식에 이바지하고 있고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이타적 자기 행위는 어미가 새끼에게 하는 것이거든. 이타주의가 바람직하다고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타주의의 대상은 가족인가, 국가인가, 인종인가, 종인가, 전체 생물인가, 결국은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싸움에서는 자기네 집단에 동조하게 되지 않겠는가?
2. 자기복제자
진화를 논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진화의 방향에 목적성을 부여하면 안돼, ‘진화라는 게 더 나은 존재 혹은 더 복잡한 개체로 진행한다’.는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 ‘우리가 챔팬지보다 더 진보했다고 할 수 있을까’의 문제는 여기서 논외로 하자구 . 진화에서 승리자는 단지 생존과 번식만으로 판정하는 거야.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야."라는 말이 있어 원시수프에서 출발했지만 복제에 성공적인 개체만이 살아남기 시작한 거라구,
3. 불명의 코일
DNA분자 자체의 물리적인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신을 복제 형태로, 오래된 몸에서 새로운 몸으로 옮겨 다니며 1억년이 넘게 생존 할 수 있어.
유전자는 우리가 오래된 집을 버리고 새 집으로 이사하듯 오래되어 노후한 개체를 버리고 항상 새 집을 찾아 거기에 둥지를 틀고 산다. 그리고 영원 불멸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복제의 수단으로 성과 생식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발명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단순한 복사물이 아니며 아버지의 염색체 절반과 어머니의 염색체 절반을 갖고 태어났지.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염색체 각 절반을 갖고 태어나며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염색체 절반을 가졌어. 따라서 사실상 나의 몸 속의 염색체는 조부모와 외조부모의 것을 모두 포함돼. 그러므로 나는 6분의 유전 인자를 갖게 되는 것. 여기서 더 나가면 조부모님의 각 부모님과 외 조부모님의 각 부모님으로 나가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나의 유전자는 내 수천명 조상들의 염색체를 모두 공유하게 되는 셈 그래서 내가 부모님이 아닌 외증조부의 어떤 점을 닮았다고 해도 그건 결코 놀랄만한 일이 아니지. 어떤 유전자는 불멸의 존재 맞니?
4. 유전자 기계
안드로메다 사람의 이야기. 소름끼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유전자가 불멸의 존재로 우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예라고 생각해. 안드로메다가 얼마나 먼지 알고 있니? 200만 광년, 도저히 계산이 안되는 시간이지. 그 안드로메다 사람이 우주로 암호화된 지령을 발사했지. 그 지령은 멀고도 먼 여행을 떠나 지구까지 왔어. 그 암호를 풀자 프로그램이 실행되었는데 바로 인간을 파멸시키라는 프로그램이야. 여기서 비유를 찾아보자. 안드로메다사람이 보낸 암호는 곧 유전자가 되겠지. 암호를 풀어서 프로그램을 해독하여 실행하는 과학자는 바로 생존기계 우리가 아니겠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유전자의 존속을 위한 생존기계 일 뿐이다. 따라서 지구 상에 존재 하는 모든 생물들의 본능은 영원 불멸한 자신들의 주인인 유전자의 번영을 위해 행동한다."
5. 공격 -안정성과 이기적기계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라는 방식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의 가설적 예에서는, 어느 한 개체는 매파나 비둘기파 중의 어느 한쪽이 된다고 하는 단순한 가정을 했어. 매파와 비둘기파는 우위를 바꾸다가 결국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비율로 됐다. 이래서 매파의 유전자와 비둘기파의 유전자의 안정된 비율이 유전자 풀 내에 확립되는 것.
유전학 용어로는 이 상태를 안정 다형(stable polymorphism). 그러나 수학적으로는 다형을 생각하지 않고도 다음과 같이 하여 똑같이 ESS가 달성될 수 있다고 해. 어느 개체 라도 각각의 다툼에 있어서 매파처럼 또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고 하면 전 개체가 같은 확률로, 즉 우리의 예대로 말하면 7/12의 비율로 매파처럼 행동하는 ESS가 달성된다. 실제로 이것은 각 개체가 이때에는 매파처럼 행동할 것인가 비둘기파처럼 행동할 것인가를(대충이기는 하나 7대 5의 비율로 매파편에 많이) 결단하여 각각의 다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것은 이 결단이 매파쪽으로 기울었다고는 하나 어떤 다툼에도 경쟁자는 자기의 상대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를 추정하는 수단이 없다는 의미에서 무작위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7회의 다툼에 계속 매파로 행동하고 다음 계속해서 5회의 다툼에 비둘기파로 행동하는 등등의 방식은 안 된다. 만약 어떤 개체가 이처럼 단순한 순서를 택했다고 하면 그의 경쟁자는 얼른 이 순서를 깨닫고 이용할 것이다. 단순한 순서의 전략을 취하는 상대를 이용하는 방법은 그가 비둘기파로 행동하려고 하는 것을 알았을 때에만 그에게 대해 매파로 행동하는 것이다.
6. 유전자의 친족관계
자식을 살리고 부모가 대신 죽는다고 생각해 봐. 부모와 자식 간에는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어. 그래서 만약에, 부모가 자식 둘을 살리고 죽으면 본전이고, 둘 이상을 살리고 죽을 수 있으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이익이지? 형제간에도 유전자의 공유율이 절반이니까 마찬가지 계산이 될 터인데,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경향이 더 큰 건, 젊은 개체 일수록 새로운 후손(유전자)을 더 많이 낳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거야.
어찌 보면 밥맛 없는 설명이긴 한데 그럴 듯 하지 않어? 덕분에 말이야 우리 식 촌수가 지극히 유전자의 공유율(혹은 피의 동질성)에 바탕을 하고 있는 거구나 하는 것도 되새겨 보게 되었어. 형제간(2촌)은 유전자의 1/2이 동일하고, 이모나 조카(3촌)는 1/4이 동일, 사촌은 1/8, 오촌은 1/16 하는 식으로 희석되어 가는 거야. 영양 무리 얘기로 돌아가서 같은 무리 속의 영양들이 친척들이라고 가정하면 혼자 죽어서 여럿을 살릴 수 있으면 이익이 될 지도(?) 모른다는 거지.
7. 가족계획
애키우기의 결단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할 것이다. "여기에 아기가 하나 있다. 이 아이와 아이와의 근친도는 그저 그렇다. 만일 내가 이 아이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다면 이 아이가 죽어버릴 확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나는 이 아이에게 음식을 주어야 할 것인가?"
한편 애낳기의 결단 형식은 다음과 같다.
"이 세계에 새로운 개체를 하나 낳기에 필요한 여러 단계를 밟을 것인가, 즉 나는 애낳기에 뛰어들 것인가?" 애키우기와 애낳기는 개체가 이용할 수 있는 시간 또는 다른 여러 자원을 둘러싸고 서로 어느 정도 경합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을 지고 있다. 즉, 개체는 다음과 같은 선택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이 아이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따로 하나를 낳을 것인가?"
위와 같은 문제는 인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조류가 기근이나 자연재해를 대비해 개체수를 조절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야. 개개의 어미 동물이 가족계획을 실행하되 그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출생률의 최대 활용화라는 의미에서의 가족계획을 하는 거지. 그들은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자기 새끼의 수를 최대화하려고 힘쓰고 있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새끼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된단다. 그 이유야 뭐.....
8. 세대간의 싸움 .
너희는 엄마를 이기니? 여기에서도 누가 이길 것인가가 팽팽하게 맞서는 이론이 나와. 우
리말에 열손가락 중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는데,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편애를 할 필요가 없지. 유전자를 많이 전달할수록 목적을 달성한 것이니까 하지만 부모는 투자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결정을 한단다. 자원을 투자해야 하니까.
여자의 폐경이나 이유시기가 결정되는 것도 유전자의 힘이란다. 새끼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도 한다. 하지만 어미는 이타적 태도를 보여 양보하여 싸움에 지겠지. 하지만 이타적 행위가 아니라 아이 쪽이 자연선택에서 유리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야.
9. 암수의 다툼
부부간의 치열한 전쟁 ‘장미의 전쟁’이라는 예-ㅅ- 날 영화가 생각나는구나. 부부도 유전자 전쟁을 하는구나. 이혼할 때 이제는 자식을 서로 떠맡기기도 하기도 하지만 유전자 전달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맡아야 겠지.
배우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같은 자식에 대해 서로 똑같이 50%의 유전자를 투자하고 있다는 것뿐.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들의 자식에게 투자한 50%의 유전자의 복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결국 서로 협력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양자 모두에게 어느 정도 유리한 셈이다. 그렇다면 의문? 바람둥이 유전자가 어떻게 없어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는가, 바꾸어 말하면 여자들이 왜 바람둥이를 좋아하는가 하는 문제에도 재미있는 답을 던져. 자신이 낳는 아들이 바람둥이 유전자를 타고 나서 더욱 유전자를 퍼뜨릴 기회를 높이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다시 말하지만 승자를 결정하는 건 유전자의 생존과 번성이니까 결과로만 보면 그렇다는 거지. 근데 말이야, 바람둥이 하는 짓 보면 밉잖아?(왜 미워지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고. 유전자 입장에서) 어쨌던, 바람둥이를 몰아내기 위해 사회적인 압력을 가한다고 해 봐. 그러면 안 맞아 죽을라고 바람둥이 짓 하는 놈들이 한동안 줄긴 하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잠잠하던 집단에서 바랑둥이 하나가 활동을 재개하면 단기간적으로는 엄청난 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거야.
10. 내 등을 긁어 다오. 나는 네 등을 타고 괴롭히겠다.
그 책에 담긴 무수한 예 중에 또 기억에 남는 건 사회생활을 하는 곤충들 얘기야. 벌과 개미, 성실의 대명사이잖아. 그런데 일개미와 일벌들은 유전자를 남기지도 못하면서 어찌 그리 헌신적으로 일을 하느냐 이거지
암캐미는 두 벌의 염색체를 갖는데 비해 수캐미는 원래 염색체가 한 벌밖에 없기 때문에, 같은 아버지를 가진 일개미라면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전자는 정확히 똑같고, 어머니인 여왕 개미로부터 받은 유전자는 절반이 동일하니까, 아버지가 같은 일개미간에는 3/4 만큼 유전자가 동일해. 따라서 유전적으로 1/2만큼 동일한 여왕개미보다는 동료 일개미가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거야. 그렇게 보면 여왕개미는 자신과 유전자의 동일율이 더 높은 일개미 자매들을 더 많이 만드는 유용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시고 사는 거 아닐까 하는 거지. 아니 어쩌면 여왕이 아니라 씨받이 개미라고 불러야 할런지도?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개념하나가 나와. 다음 장의 주 메인 테마이지만 ...유전적인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 곧 '진'이라면, 문화적 진화의 단위가 밈이 되는 셈이다. 유전자는 정자나 난자를 통해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복제된다. 이에 비해서 밈은 모방을 통해 한 사람의 두뇌에서 다른 사람의 두뇌로 복제된다. 결국 밈은 유전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모방을 통해 전해지는 문화의 요소. 좀 이상하지. 생물학자가 웬 문화까정.
11.밈 -자기복제자
생명체가 유전자 복제를 통해 자신의 형질을 후손에게 전하듯, 밈도 스스로를 복제하고 널리 전파되면서 진화한다. 유행이나 문화의 전승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결국 생물의 유전자와 닮은 점이 적지 않은 셈이다. 물론 유전자와 다른 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유전자는 반드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물려 주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 유전자를 전해 받는 후손의 개체수도 제한된다. 그러나 밈의 복제는 모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록 복제의 정확성은 유전자에 비해 떨어지지만, 무척 빠른 시간 안에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다른 개체들에게 전파, 확산시킬 수 있다.
밈(meme)은 은유적으로서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내 마음에 풍부한 밈을 실었다면 문자 그대로 여러분은 내 머리에 기생한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유전적 메커니즘으로 기생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밈이 전파되는데, 이때 뇌는 중간 매개물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단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사후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에 관한 밈은 실제로 수많은 시간이 지남 후에, 세계 곳곳의 개인들의 신경계 속에 어떤 물리적인 구조로서 현실화된다. 세계는 하나, 실감나지. 밈의 전파!
12.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
죄수의 딜레마의 결론이 어떻게 났었지. 학자들에 따라 다르게 인용하기 때문에 머리에 쥐가 날 지경, 도킨슨의 경우는 각 개체에게 이익이 되므로 협조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어 .
논술시간에 박쥐같은 존재가 되지 말라고 누누이 말하지만 이글을 읽으면 박쥐에 대한 오해를 사과해야 할 듯. 박쥐가 헌혈가라는 사실이야. 그런데 박쥐를 굶겨가면서 실험을 해본 결과 같은 동굴에서 온 박쥐에게 헌혈을 한다는 사실. 왜 그런지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말했지만 당연히 친근도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어.
그럼 이렇게 수해가 나서 성금을 내는 것도 결국은 협력하여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거지. 진짜루 야박하지.
13. 유전자의 긴 팔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생물 개체의 존재를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 각각의 부분이 극히 일체화되고 통합된 방법을 서로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에 관한 물음은 보통 생물 개체에 관한 물음이다. 생물학자는 생물개체가 돼 그것을 하고, 또 왜 저것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종종 생물 개체가 왜 모여서 사회를 이루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들은 왜 - 본래 그렇게 물어야 하는데 - 생물 물질이 무엇 때문에 모여서 생물체를 구성 하느냐고는 묻지 않는가? 왜 바다는 아직도 자유로이 독립된 자기 복제자들의 원초적인 투쟁의 장이 아닌가? 왜 태고의 복제자들은 모여서 묵직하게 작동하는 로봇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 같은 로봇 - 생물 개체의 몸, 당신과 나 - 은 이처럼 크고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일까?
정답은 확장현 표현형, 도킨스의 다음 책이다. 천재는 책 속에서 광고를 하고 있다. 명료한 설명뿐 아니라 효과적인 광고도.
유전자는 왜 세포 속에 집단을 이루고 있는가? 세포는 왜 집단을 이루고 다세포체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생물체는 왜 내가 '병목을 가진 형'이라고 하는 생활환(life cycle)을 채용했는가?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 화학공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DNA 분자는 단백질을 만든다. 단백질은 효소로 작용하고 특정한 화학 반응을 촉매한다. 종종 하나의 화학 반응만으로는 유효한 최종 산물을 합성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하나의 유효한 화학 물질을 합성하는데 있어 인간의 제약 공장에서는 생산 라인이 필요하다. 출발점이 되는 화학 물질에서 원하는 최종 산물로 직접 변환될 수는 없다. 일련의 중간 산물이 엄밀한 순서로 합성되어야만 한다. 대부분의 화학 연구자들은 출발점이 되는 화학 물질에서 유효한 최종 산물의 합성을 달성할 수 없다. 하나는 원료에서 최초의 중간 산물로의 변환을 촉매하고 또 하나는 최초의 중간 산물에서 제2의 중간 산물로의 변환을 촉매한다. 결국 이런 방식에 의해 완전한 세트의 효소가 필요하다.
두 번째의 질문의 대답으로는 협력의 관한 또 하나의 문제이다. 크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체가 크다면 작은 생물에게 먹히는 것을 피할 수는 있다. 공룡은 아마 유전자가 원하는 가장 큰 개별 개체였겠지.
그리고 마지막 병목형의 생활사, 병목형이란 코끼리의 크기와 상관없이 수정란은 좁은 병목이고 아무리 많은 세포를 가진 개체라도 단일 세포인 수정란으로부터 만들어지고 단일세포인 수정란을 만들기에 힘쓰는 것을 의미한다.
병목형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설명했는데 첫째는 제도판으로 되돌아가기 쉽다는 거야, 새로운 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많다. 둘째는 달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생활사가 반복되듯 유전자에게도 달력같은 주기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야. 셋째 돌연변이 세포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배발생시의 조건으로 되돌아가게 되므로 돌연변이가 개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적어진다는 것이지.
자기 복제자는 바닷 속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거대한 군체(개체의 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표현형 효과의 결과는 세계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같은 개체에 응결해왔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낯익은 개체의 몸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이론은 아니었다. 우주의 어떤 장소이든 생명이 생기기 위해 존재해야만 했던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이다.
출전: 붉은여우(gymnopedie3) 베품 http://cafe.naver.com/readspeak/15607
1.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원시수프를 생각해보라고 다윈이 이미 명쾌하게 설명했잖아.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그러나 다윈의 “생물은 종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행위하도록 진화한다는 오해라고 생각해, 생물에서 동물의 생활은 대부분 번식에 이바지하고 있고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이타적 자기 행위는 어미가 새끼에게 하는 것이거든. 이타주의가 바람직하다고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이타주의의 대상은 가족인가, 국가인가, 인종인가, 종인가, 전체 생물인가, 결국은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싸움에서는 자기네 집단에 동조하게 되지 않겠는가?
2. 자기복제자
진화를 논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진화의 방향에 목적성을 부여하면 안돼, ‘진화라는 게 더 나은 존재 혹은 더 복잡한 개체로 진행한다’.는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 ‘우리가 챔팬지보다 더 진보했다고 할 수 있을까’의 문제는 여기서 논외로 하자구 . 진화에서 승리자는 단지 생존과 번식만으로 판정하는 거야.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야."라는 말이 있어 원시수프에서 출발했지만 복제에 성공적인 개체만이 살아남기 시작한 거라구,
3. 불명의 코일
DNA분자 자체의 물리적인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신을 복제 형태로, 오래된 몸에서 새로운 몸으로 옮겨 다니며 1억년이 넘게 생존 할 수 있어.
유전자는 우리가 오래된 집을 버리고 새 집으로 이사하듯 오래되어 노후한 개체를 버리고 항상 새 집을 찾아 거기에 둥지를 틀고 산다. 그리고 영원 불멸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복제의 수단으로 성과 생식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발명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단순한 복사물이 아니며 아버지의 염색체 절반과 어머니의 염색체 절반을 갖고 태어났지.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염색체 각 절반을 갖고 태어나며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염색체 절반을 가졌어. 따라서 사실상 나의 몸 속의 염색체는 조부모와 외조부모의 것을 모두 포함돼. 그러므로 나는 6분의 유전 인자를 갖게 되는 것. 여기서 더 나가면 조부모님의 각 부모님과 외 조부모님의 각 부모님으로 나가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나의 유전자는 내 수천명 조상들의 염색체를 모두 공유하게 되는 셈 그래서 내가 부모님이 아닌 외증조부의 어떤 점을 닮았다고 해도 그건 결코 놀랄만한 일이 아니지. 어떤 유전자는 불멸의 존재 맞니?
4. 유전자 기계
안드로메다 사람의 이야기. 소름끼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유전자가 불멸의 존재로 우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예라고 생각해. 안드로메다가 얼마나 먼지 알고 있니? 200만 광년, 도저히 계산이 안되는 시간이지. 그 안드로메다 사람이 우주로 암호화된 지령을 발사했지. 그 지령은 멀고도 먼 여행을 떠나 지구까지 왔어. 그 암호를 풀자 프로그램이 실행되었는데 바로 인간을 파멸시키라는 프로그램이야. 여기서 비유를 찾아보자. 안드로메다사람이 보낸 암호는 곧 유전자가 되겠지. 암호를 풀어서 프로그램을 해독하여 실행하는 과학자는 바로 생존기계 우리가 아니겠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유전자의 존속을 위한 생존기계 일 뿐이다. 따라서 지구 상에 존재 하는 모든 생물들의 본능은 영원 불멸한 자신들의 주인인 유전자의 번영을 위해 행동한다."
5. 공격 -안정성과 이기적기계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라는 방식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의 가설적 예에서는, 어느 한 개체는 매파나 비둘기파 중의 어느 한쪽이 된다고 하는 단순한 가정을 했어. 매파와 비둘기파는 우위를 바꾸다가 결국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비율로 됐다. 이래서 매파의 유전자와 비둘기파의 유전자의 안정된 비율이 유전자 풀 내에 확립되는 것.
유전학 용어로는 이 상태를 안정 다형(stable polymorphism). 그러나 수학적으로는 다형을 생각하지 않고도 다음과 같이 하여 똑같이 ESS가 달성될 수 있다고 해. 어느 개체 라도 각각의 다툼에 있어서 매파처럼 또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고 하면 전 개체가 같은 확률로, 즉 우리의 예대로 말하면 7/12의 비율로 매파처럼 행동하는 ESS가 달성된다. 실제로 이것은 각 개체가 이때에는 매파처럼 행동할 것인가 비둘기파처럼 행동할 것인가를(대충이기는 하나 7대 5의 비율로 매파편에 많이) 결단하여 각각의 다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것은 이 결단이 매파쪽으로 기울었다고는 하나 어떤 다툼에도 경쟁자는 자기의 상대가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를 추정하는 수단이 없다는 의미에서 무작위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7회의 다툼에 계속 매파로 행동하고 다음 계속해서 5회의 다툼에 비둘기파로 행동하는 등등의 방식은 안 된다. 만약 어떤 개체가 이처럼 단순한 순서를 택했다고 하면 그의 경쟁자는 얼른 이 순서를 깨닫고 이용할 것이다. 단순한 순서의 전략을 취하는 상대를 이용하는 방법은 그가 비둘기파로 행동하려고 하는 것을 알았을 때에만 그에게 대해 매파로 행동하는 것이다.
6. 유전자의 친족관계
자식을 살리고 부모가 대신 죽는다고 생각해 봐. 부모와 자식 간에는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어. 그래서 만약에, 부모가 자식 둘을 살리고 죽으면 본전이고, 둘 이상을 살리고 죽을 수 있으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이익이지? 형제간에도 유전자의 공유율이 절반이니까 마찬가지 계산이 될 터인데,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경향이 더 큰 건, 젊은 개체 일수록 새로운 후손(유전자)을 더 많이 낳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거야.
어찌 보면 밥맛 없는 설명이긴 한데 그럴 듯 하지 않어? 덕분에 말이야 우리 식 촌수가 지극히 유전자의 공유율(혹은 피의 동질성)에 바탕을 하고 있는 거구나 하는 것도 되새겨 보게 되었어. 형제간(2촌)은 유전자의 1/2이 동일하고, 이모나 조카(3촌)는 1/4이 동일, 사촌은 1/8, 오촌은 1/16 하는 식으로 희석되어 가는 거야. 영양 무리 얘기로 돌아가서 같은 무리 속의 영양들이 친척들이라고 가정하면 혼자 죽어서 여럿을 살릴 수 있으면 이익이 될 지도(?) 모른다는 거지.
7. 가족계획
애키우기의 결단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할 것이다. "여기에 아기가 하나 있다. 이 아이와 아이와의 근친도는 그저 그렇다. 만일 내가 이 아이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다면 이 아이가 죽어버릴 확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나는 이 아이에게 음식을 주어야 할 것인가?"
한편 애낳기의 결단 형식은 다음과 같다.
"이 세계에 새로운 개체를 하나 낳기에 필요한 여러 단계를 밟을 것인가, 즉 나는 애낳기에 뛰어들 것인가?" 애키우기와 애낳기는 개체가 이용할 수 있는 시간 또는 다른 여러 자원을 둘러싸고 서로 어느 정도 경합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을 지고 있다. 즉, 개체는 다음과 같은 선택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이 아이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따로 하나를 낳을 것인가?"
위와 같은 문제는 인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조류가 기근이나 자연재해를 대비해 개체수를 조절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야. 개개의 어미 동물이 가족계획을 실행하되 그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출생률의 최대 활용화라는 의미에서의 가족계획을 하는 거지. 그들은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자기 새끼의 수를 최대화하려고 힘쓰고 있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새끼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된단다. 그 이유야 뭐.....
8. 세대간의 싸움 .
너희는 엄마를 이기니? 여기에서도 누가 이길 것인가가 팽팽하게 맞서는 이론이 나와. 우
리말에 열손가락 중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는데,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편애를 할 필요가 없지. 유전자를 많이 전달할수록 목적을 달성한 것이니까 하지만 부모는 투자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결정을 한단다. 자원을 투자해야 하니까.
여자의 폐경이나 이유시기가 결정되는 것도 유전자의 힘이란다. 새끼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도 한다. 하지만 어미는 이타적 태도를 보여 양보하여 싸움에 지겠지. 하지만 이타적 행위가 아니라 아이 쪽이 자연선택에서 유리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야.
9. 암수의 다툼
부부간의 치열한 전쟁 ‘장미의 전쟁’이라는 예-ㅅ- 날 영화가 생각나는구나. 부부도 유전자 전쟁을 하는구나. 이혼할 때 이제는 자식을 서로 떠맡기기도 하기도 하지만 유전자 전달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맡아야 겠지.
배우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같은 자식에 대해 서로 똑같이 50%의 유전자를 투자하고 있다는 것뿐.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들의 자식에게 투자한 50%의 유전자의 복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결국 서로 협력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양자 모두에게 어느 정도 유리한 셈이다. 그렇다면 의문? 바람둥이 유전자가 어떻게 없어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는가, 바꾸어 말하면 여자들이 왜 바람둥이를 좋아하는가 하는 문제에도 재미있는 답을 던져. 자신이 낳는 아들이 바람둥이 유전자를 타고 나서 더욱 유전자를 퍼뜨릴 기회를 높이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다시 말하지만 승자를 결정하는 건 유전자의 생존과 번성이니까 결과로만 보면 그렇다는 거지. 근데 말이야, 바람둥이 하는 짓 보면 밉잖아?(왜 미워지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고. 유전자 입장에서) 어쨌던, 바람둥이를 몰아내기 위해 사회적인 압력을 가한다고 해 봐. 그러면 안 맞아 죽을라고 바람둥이 짓 하는 놈들이 한동안 줄긴 하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잠잠하던 집단에서 바랑둥이 하나가 활동을 재개하면 단기간적으로는 엄청난 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거야.
10. 내 등을 긁어 다오. 나는 네 등을 타고 괴롭히겠다.
그 책에 담긴 무수한 예 중에 또 기억에 남는 건 사회생활을 하는 곤충들 얘기야. 벌과 개미, 성실의 대명사이잖아. 그런데 일개미와 일벌들은 유전자를 남기지도 못하면서 어찌 그리 헌신적으로 일을 하느냐 이거지
암캐미는 두 벌의 염색체를 갖는데 비해 수캐미는 원래 염색체가 한 벌밖에 없기 때문에, 같은 아버지를 가진 일개미라면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전자는 정확히 똑같고, 어머니인 여왕 개미로부터 받은 유전자는 절반이 동일하니까, 아버지가 같은 일개미간에는 3/4 만큼 유전자가 동일해. 따라서 유전적으로 1/2만큼 동일한 여왕개미보다는 동료 일개미가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거야. 그렇게 보면 여왕개미는 자신과 유전자의 동일율이 더 높은 일개미 자매들을 더 많이 만드는 유용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시고 사는 거 아닐까 하는 거지. 아니 어쩌면 여왕이 아니라 씨받이 개미라고 불러야 할런지도?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개념하나가 나와. 다음 장의 주 메인 테마이지만 ...유전적인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 곧 '진'이라면, 문화적 진화의 단위가 밈이 되는 셈이다. 유전자는 정자나 난자를 통해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복제된다. 이에 비해서 밈은 모방을 통해 한 사람의 두뇌에서 다른 사람의 두뇌로 복제된다. 결국 밈은 유전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모방을 통해 전해지는 문화의 요소. 좀 이상하지. 생물학자가 웬 문화까정.
11.밈 -자기복제자
생명체가 유전자 복제를 통해 자신의 형질을 후손에게 전하듯, 밈도 스스로를 복제하고 널리 전파되면서 진화한다. 유행이나 문화의 전승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결국 생물의 유전자와 닮은 점이 적지 않은 셈이다. 물론 유전자와 다른 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유전자는 반드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물려 주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 유전자를 전해 받는 후손의 개체수도 제한된다. 그러나 밈의 복제는 모방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록 복제의 정확성은 유전자에 비해 떨어지지만, 무척 빠른 시간 안에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다른 개체들에게 전파, 확산시킬 수 있다.
밈(meme)은 은유적으로서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내 마음에 풍부한 밈을 실었다면 문자 그대로 여러분은 내 머리에 기생한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유전적 메커니즘으로 기생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밈이 전파되는데, 이때 뇌는 중간 매개물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단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사후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에 관한 밈은 실제로 수많은 시간이 지남 후에, 세계 곳곳의 개인들의 신경계 속에 어떤 물리적인 구조로서 현실화된다. 세계는 하나, 실감나지. 밈의 전파!
12.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
죄수의 딜레마의 결론이 어떻게 났었지. 학자들에 따라 다르게 인용하기 때문에 머리에 쥐가 날 지경, 도킨슨의 경우는 각 개체에게 이익이 되므로 협조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어 .
논술시간에 박쥐같은 존재가 되지 말라고 누누이 말하지만 이글을 읽으면 박쥐에 대한 오해를 사과해야 할 듯. 박쥐가 헌혈가라는 사실이야. 그런데 박쥐를 굶겨가면서 실험을 해본 결과 같은 동굴에서 온 박쥐에게 헌혈을 한다는 사실. 왜 그런지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말했지만 당연히 친근도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어.
그럼 이렇게 수해가 나서 성금을 내는 것도 결국은 협력하여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거지. 진짜루 야박하지.
13. 유전자의 긴 팔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생물 개체의 존재를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 각각의 부분이 극히 일체화되고 통합된 방법을 서로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에 관한 물음은 보통 생물 개체에 관한 물음이다. 생물학자는 생물개체가 돼 그것을 하고, 또 왜 저것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종종 생물 개체가 왜 모여서 사회를 이루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들은 왜 - 본래 그렇게 물어야 하는데 - 생물 물질이 무엇 때문에 모여서 생물체를 구성 하느냐고는 묻지 않는가? 왜 바다는 아직도 자유로이 독립된 자기 복제자들의 원초적인 투쟁의 장이 아닌가? 왜 태고의 복제자들은 모여서 묵직하게 작동하는 로봇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 같은 로봇 - 생물 개체의 몸, 당신과 나 - 은 이처럼 크고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일까?
정답은 확장현 표현형, 도킨스의 다음 책이다. 천재는 책 속에서 광고를 하고 있다. 명료한 설명뿐 아니라 효과적인 광고도.
유전자는 왜 세포 속에 집단을 이루고 있는가? 세포는 왜 집단을 이루고 다세포체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생물체는 왜 내가 '병목을 가진 형'이라고 하는 생활환(life cycle)을 채용했는가?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 화학공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DNA 분자는 단백질을 만든다. 단백질은 효소로 작용하고 특정한 화학 반응을 촉매한다. 종종 하나의 화학 반응만으로는 유효한 최종 산물을 합성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하나의 유효한 화학 물질을 합성하는데 있어 인간의 제약 공장에서는 생산 라인이 필요하다. 출발점이 되는 화학 물질에서 원하는 최종 산물로 직접 변환될 수는 없다. 일련의 중간 산물이 엄밀한 순서로 합성되어야만 한다. 대부분의 화학 연구자들은 출발점이 되는 화학 물질에서 유효한 최종 산물의 합성을 달성할 수 없다. 하나는 원료에서 최초의 중간 산물로의 변환을 촉매하고 또 하나는 최초의 중간 산물에서 제2의 중간 산물로의 변환을 촉매한다. 결국 이런 방식에 의해 완전한 세트의 효소가 필요하다.
두 번째의 질문의 대답으로는 협력의 관한 또 하나의 문제이다. 크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체가 크다면 작은 생물에게 먹히는 것을 피할 수는 있다. 공룡은 아마 유전자가 원하는 가장 큰 개별 개체였겠지.
그리고 마지막 병목형의 생활사, 병목형이란 코끼리의 크기와 상관없이 수정란은 좁은 병목이고 아무리 많은 세포를 가진 개체라도 단일 세포인 수정란으로부터 만들어지고 단일세포인 수정란을 만들기에 힘쓰는 것을 의미한다.
병목형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설명했는데 첫째는 제도판으로 되돌아가기 쉽다는 거야, 새로운 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많다. 둘째는 달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생활사가 반복되듯 유전자에게도 달력같은 주기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야. 셋째 돌연변이 세포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배발생시의 조건으로 되돌아가게 되므로 돌연변이가 개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적어진다는 것이지.
자기 복제자는 바닷 속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거대한 군체(개체의 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표현형 효과의 결과는 세계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같은 개체에 응결해왔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낯익은 개체의 몸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이론은 아니었다. 우주의 어떤 장소이든 생명이 생기기 위해 존재해야만 했던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