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숙이와 나 [출전: 한겨레21 / 2008.10.10 제730호]
[노 땡큐!]
달랑 두 학급밖에 없는 시골 ‘국민’학교의 전교 일등이던 나는 무척 거만한 아이였다. 무리를 지어다니며 맘에 안 드는 아이들을 따돌리고, 그림이든 노래든 뭐라도 나보다 잘하는 친구가 있으면 같이 놀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나를 무척 염려하셔서, 내 일기장에 항상 깨알 같은 글씨로 그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적어주셨지만, 나는 오기가 나 다음날 일기에 선생님 흉을 한가득 적어서 내곤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생각해낸 벌은 나에게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것이었다. 수업을 마친 뒤 나는 교실에 남아 상숙이와 책을 읽어야 했다. 상숙이는 어릴 때 몹쓸 병에 걸려 말이 어눌하고 한글 읽는 법을 완전히 익히지 못한 친구였는데, 나는 공부 못하는 애들과는 잘 안 놀았기 때문에 그전에는 상숙이와 제대로 이야기해본 적도 없었다.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헤매고 깔깔거리던 오후

내가 해야 할 일은 상숙이가 국어책을 읽는 것을 듣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라는 말씀도 없이 선생님은 교실 앞에 앉아 책을 읽으셨고, 상숙이는 영문도 모르는 채 국어책을 읽어야 했다. 처음에 더듬거리는 상숙이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던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 글자씩 고치며 핀잔을 주기 시작했고, 상숙이가 낱말 뜻을 모르면 거들먹거리며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실은 대부분 나도 잘 모르는 낱말이어서 같이 엉뚱한 이야기로 한참을 헤맸고, 말도 안 되는 설명으로 함께 깔깔대는 일이 더 많았다.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시면 우리는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순정만화를 잘 그리는 상숙이가 예쁜 공주님을 그리면 나는 색 분필로 색을 입혔다.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교실에 붙잡혀 있어야 했던 그 시간이 정말 싫다 했는데, 어느덧 익숙해져 즐기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숙이는 점점 더 국어책을 잘 읽게 되었고, 나는 인형 그리는 법을 배워 제법 그럴 듯한 공주님을 그리게 되었다. 상숙이에게 낱말 뜻을 알려주며 으스댈 요량으로 국어사전 찾는 법을 배웠고,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은 척하며 빌려주려고 집에 있던 전집 동화를 다 읽었다(엄마가 그렇게 읽으라고 해도 절대 안 읽던 그 동화책!).

사실 상숙이에게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그 나머지 공부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나보다 ‘못한’ 친구가 아니라 나와는 ‘다른’ 친구 상숙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 알아갈 것이 얼마나 많았던지. 우습게만 생각했던 국어책 속에 사실은 내가 모르는 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선생님은 잔소리 한 번 없이 늦은 오후까지 지켜 앉아 내가 이런 걸 배우는 것을 기다려주셨다.

내가 아는 ‘수준별 학습’은 이런 것이다. 부모에게 비싼 사교육을 시킬 돈과 시간이 없어도,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 하나하나의 ‘문제’를 알아내고 그 ‘수준’을 살펴, 글 읽기가 서툰 아이에게는 글 읽는 법을, 싸가지 없는 반장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그 ‘수준’에 맞게 가르쳐주는.


느린 아이를 기다리던 선생님

이름도 이상한 중학교를 만들어 ‘국제적’인 아이들을 만들어내겠다고, ‘특수 목적’을 가진 (부모들의) 아이들을 모아 서로 머리 터지게 경쟁시켜 결국은 별 특수한 목적 없어 보이는 ‘명문’ 대학생으로 찍어내면서, 결국은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을 ‘특목고 가지 못한 아이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소녀가 부잣집 남자 아이들과 사랑에 빠지는 일본 만화를 드라마로 만든다는데, 그 드라마가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특목고’가 배경이란다. 어느덧 나도 익숙해졌는지, 이제 서울대반도 모자라 아이비리그 준비반이 있다는 그 학교, ‘특수 목적’(듣고 보니 무슨 범죄 집단 이야기 같다)을 가졌다는 그 학교에, 잘사는 집의 잘생긴 남학생들이 많다는 설정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궁금하다. 그 학교에도, 나나 상숙이처럼 둔하고 조금 느린 아이들을 말없이 기다려주실 선생님이 계실까? 야간 자율학습이나 심화반 말고, 늦은 오후 교실에서 낄낄대던 나머지 공부의 추억도, 만들어지긴 할까?

김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