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칼럼] 아담 스미스의 로드맵
출전: 경향신문   2008년 09월 11일
 
애덤 스미스는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의 시장경제를 확립한 경제학의 아버지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밑의 분들도 스미스를 신처럼 믿을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국가가 지켜야 할 의무가 단 세 가지뿐이라고 한 스미스의 다음 말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첫째는 국가를 방어할 의무다. 둘째는 개인을 불의와 억압으로부터 보호하여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최소한의 권력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행사할 의무다. 셋째는 개인이 사적인 이익을 독점할 수 없는 공공사업과 기관, 즉 모든 국민의 기회 평등과 공정성이라는 사회정의를 보장하는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유지할 의무다.

이는 모든 것을 시장, 아니 재벌이나 부유층에게 맡긴다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왜곡된 재벌특권주의나 부유층 특혜주의와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 그 왜곡된 재벌과 부자를 국가가 보호하는 관치경제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자유주의는 재벌주의나 부자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어떤 나라의 신자유주의도 재벌주의나 부자주의가 아니다. 미국도 일본도 그렇다. 도리어 재벌이라는 거대한 괴물은 자유로운 시장경쟁에 가장 큰 적이다. 진정한 자유주의라면 생산과 판매를 독과점하는 재벌을 해체하고 부자를 제한하여 그야말로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는 자유시장경제를 이룩해야 한다.

- 불평등 해소가 자유주의 전제 -

스미스는 큰 재산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커다란 불평등이 생긴다고 보았다. 그는 한 명의 부자가 있으면 수백명의 빈민이 생기고, 부자의 부는 빈민의 화를 불러 빈민은 결핍의 충동에 의해 부자의 소유물을 침범하는 결과가 생긴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그는 이를 자연의 법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그러한 결과를 막기 위해 자연의 법칙에 맞는 자유제도를 창설해야 불로소득이나 투기소득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근면과 절약에 의해 자본의 축적이 가능해져 나라가 부유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스미스가 말하는 자유방임주의다. 따라서 스미스는 무엇보다 불평등의 양극화 해소를 자유주의의 전제라고 보았다. 이런 자유주의를 우파니 보수주의니 하며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비난하는 좌파나 진보주의가 주장하는 평등이야말로 도리어 자유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야바위 천민자본주의를 스미스가 자유주의의 적으로 나라의 경제를 망치는 것으로 보았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주장하는 괴상한 물꼬정책, 즉 부자가 더 잘 살아야 경제가 성장하고 그러면 빈민도 자동적으로 부유해진다는 식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최근의 재벌이나 부유층 중심의 규제완화나 감세, 민영화정책은 스미스의 자유주의에 존재하기는커녕 도리어 스미스가 강력히 비난한 관치국가주의적 특혜경제의 표본일 뿐이다.

물론 국가가 강제한 관치평등주의가 결코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경험했다. 특히 우리 국민 모두의 관심사인 교육은 국가주의의 구태를 완전히 벗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교육의 발전은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생 사이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택과 경쟁에 의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한 전제는 교육부나 교육위원회 등 국가기관을 아예 철폐하거나 그 결정권한을 최소한으로 제한하여 학교교육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교사와 교육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강요된 관치 국가교육에 의해 파괴된 우리의 교육을 정상적인 자유교육으로 회복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 ‘재벌·부자주의’로 왜곡한 MB -

자유주의가 우파니 보수주의니 골보수니 하는 비난을 받아온 것은 우리의 자유주의 역사가 갖는 심각하고 불행한 문제점이다. 그 전적인 책임은 지난 60년 자유주의를 표방한 세력들이 저지른 온갖 정치적·경제적 야욕과 야만에 있지만, 그로 인해 자유주의를 적대시한 지식인 등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18세기의 스미스는 좌익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진보였다. 우리는 그의 로드맵에서 가짜 자유주의에 대항해 참된 자유와 평등을 위한 새로운 지혜를 찾아야 한다.

<박홍규|영남대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