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해방을 위한 사랑의 대서사시『춘향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만큼 흔해 빠진 소재는 없을 것이다. 사랑하던 남녀가 이러저러한 사건으로 헤어지고, 그 틈을 이용해 사랑을 탈취하려는 방해자에 의해 숱한 시련을 겪게 되는 연애담. 가깝게는 신파극 『장한몽(長恨夢)』의 심순애에서부터 멀리는 『러브 스토리』의 올리버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이런 이야기는 신물나게 접해왔다. 오늘날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멜로드라마들도 대개 이같은 테마를 재탕 삼탕하고 있는 것들이다. 얼핏 보아 『춘향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데,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 소설을 우리 고전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가?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이, 우리가 이번 이야기에서 함께 찾아나설 최종 목표지점이다.

 

춘향과 이도령은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춘향전』이 오늘날 범람하는 삼류 통속소설을 훌쩍 뛰어넘어 뚜렷한 시대적 의의를 획득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춘향과 이도령이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되어 가던 조선 후기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취했던 삶의 자세에 힘입은 바 크다. 중세사회에서의 사랑에는, 사설시조를 다룰 때 이미 살펴보았듯이, 전일화된 성리학적 규범과 질곡을 뚫고 감성해방과 인간해방의 길로 나아가려는 현실적 에네르기가 종종 잠재되어 있다. 예컨대, 이도령을 떠나 보낸 춘향이는 “산진이 수진이 해동창 보라매/모두 다 쉬어 넘는 동설령(東雪領 ) 고개 너머에/임이 왔다 하면 나는 발벗고 아니 쉬어 넘으리라.”라는 노래를 부른다. 사설시조의 절창에 속하는 이 노래에서 ‘눈 덮인 높은 고개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어넘겠다.’는 구절이, 사랑을 위해 그 어떤 장애도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함축하고 있는 상징적 표현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실제로 춘향은 이 같은 애정의 의지를 변사또의 온갖 억압과 회유와 무력에 맞서 놀라운 분투로써 우리에게 보여 준 둘도 없는 당대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춘향전』이 우리 고전문학 가운데 최고 걸작이라는 지위를 흔들림 없이 지킬 수 있는 진정한 이유가, 단순히 위와 같은 ‘놀라운 애정 성취’를 그려냈다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덧붙여 그같은 문제적 사랑을 다룸에 있어, 이를 감동적으로 형상화하여 당대 독자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던 ‘뛰어난 창작방법’이 뒷받침되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춘향과 이도령이 서 있던 자리

춘향은 천한 기생이고 이도령은 사또의 아들이라는 점은, 우리에겐 이미 상식화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야기를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춘향전』을 읽을 때, 그들의 엄격한 현실적 처지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그건 읽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감미로운 사랑이야기만을 부각시킨 영화나 텔레비전의 현대판 개작물을 보고 『춘향전』을 읽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불필요한 일일 수 없다.

그러면 춘향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던가? 물론 춘향은 미천한 신분의 기생이다. 그렇지만, 이 점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우리는 그녀의 현실적 처지를 절실하게 실감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고작해야 ‘남들에게 놀림받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으니 불쌍한 처지였다’는 정도가 아닐까? 틀린 것은 아니지만, 춘향이가 겪었던 치욕적인 삶의 나날과 그로부터 싹튼 울분에 비하면 이는 턱없이 값싼 동정심에 불과하다. 춘향이를 대하는 변사또의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라.

어, 그년 요망한 년이로고. 너 같은 창기배(娼妓輩)에게 수절이 무엇이며, 정절이 무엇이냐? 네가 수절하면 우리 대부인은 딱 기절을 하겠다. 구관은 전송하고 신관사또 영접함이 법전(法典)에 당연하고 사례에도 당당커든, 고이한 말 내지 마라. 너희같은 천기배(賤妓輩)에게 충렬(忠烈) 두 자 왜 있으리.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던 변사또의 말 속에는 모든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려는 태도가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는 봉건제 사회에서 자신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충이나 열이 춘향과 같은 천한 기생에게 있을 수 없다는 변사또의 말을 듣고 놀랄는지 모른다. 그러나 노예를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말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소나 말과 구별된다고 여겼던 때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더욱이 이를 주색에 탐닉했던 성격 파탄자의 분별없는 망언으로 치부해서도 안된다. 차별적인 인간관에 기초한 중세사회에서 변사또의 이런 태도는 결코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당대 양반들이 흔히 품고 있던 생각을 조금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그들은 기생을 단지 자신들의 향락에 소용되는 노리개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변사또의 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던 춘향의 자세였다. 기생에게 무슨 충렬이냐는 변사또의 면전에다 춘향이 퍼붓던 말이다.

여보 사또님, 듣조시오.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요, 열녀불경이부절(烈女)不更二夫節)을 사또는 어째 모르시오? 사또님 대부인 수절이나 소녀 춘향 수절이나 수절은 일반인데, 수절에도 상하 있소? 사또도 국운이 불행하여 외적이 집정하면 적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임금을 섬기리오? 마오, 그리 마오. 천비 자식이라고 너무 마오.

‘수절은 일반이니 수절에 상하가 있느냐.’는 춘향의 항변은, 인간은 모두 동등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는 자각이 밑받침되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자각은 차별적인 인간관에 기초한 중세 봉건사회의 신분제를 뒤흔들 만한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처했던 굴욕적인 삶을 거부하고자 했던 춘향의 자세에는, 중세적 질곡을 뚫고 나오려는 근대적 충동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적 질곡은 미천한 춘향에게만 가해졌던 것은 아니다. 이도령도 그 같은 질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그 역시 춘향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녀 못지않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양반 자제가 기생과 사랑을 하고, 나아가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는 처사는 자신이 처한 양반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다짐을 실행으로 옮기고자 한다면, 그건 자신이 누리고 있던 양반 신분으로서의 기득권 일체를 포기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춘향과의 사랑을 알게 된 이도령 부친의 꾸짖음은 이같는 사정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양반 자식으로 아비 고을 따라와서 글공부나 할 것이지 밤낮으로 몹쓸 장난. 이 소문이 서울 가면 내 우세는 고사하고, 네 전정이 어찌 되리. 가라 하면 갈 것이지 여쭐 말은 무슨 말. 에라 이것 보기 싫다.

자신의 체모에 손상을 주는 것은 물론 자식의 벼슬길에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되는 것을 들어, 춘향과 이별할 것을 강요하던 부친의 호통이다. 이도령은 부친의 엄명에 의해 이별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호통을 치고 있는 그 자신도, 실은 어릴 때 앞집의 꾀쇠 누님에게 빠져 개구멍으로 드나들다 울타리 가지에 눈퉁이를 찔려 상처가 남아 있는 위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이도령 부친은 봉건 권력의 횡포를 자행했던 변사또와 함께, 중세사회의 모순을 대변하는 또 다른 전형이기도 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도령이 겪어야 했던 이별의 아픔은 이런 모순된 현실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그러기에 그 역시 당대 신분모순의 희생자로 보아도 좋다. 중세 봉건제 사회에 살고 있는 이상, 누구도 자신이 발딛고 있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다.

그리하여 춘향과 이도령은 이별을 강요당하면서 비로소 이 같은 모순을 실감하게 된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존비귀천(尊卑貴賤) 원수로다.”라는 춘향의 한탄과 함께, “원수가 원수가 아니라 양반 행실이 원수로다.”라는 그의 탄식은 이러한 체험에서 체득된 깨달음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인격적 무시를 당하며 살아야 했던 춘향과 엄격한 양반사회의 자기 폐쇄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도령, 이들 두 청춘남녀가 이룩해 가는 성취과정에는 이를 방해하는 중세적 질곡과 그것의 극복이라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담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콧대 높은 기생에서 민중의 대변자로, 방탕한 양반에서 민중의 구원자로

『춘향전』을 값지게 하는 것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사랑이 그토록 막중한 시대적 의미를 감싸안게 되는 과정을 현실적인 생활의 논리로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른바 “사랑은 국경과 나이를 초월한다.”는 격언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하겠는데, 그들의 사랑이 처음부터 진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처음 보았을 때 보였던 태도를 보자.

이도령이 그 말을 듣고 정신이 황홀하여, ‘이애 방자야. 네 말 그러하면 창기가 분명하니, 한 번 보면 어떠하냐? 내 말을 들어 봐라. 꽃 본 나비같이 미친 마음 아무래도 죽겠구나. 네 나를 살려 주면, 내년 수로(首奴)시켜 줄 테니 어서 바삐 불러다고.’

자신의 눈을 황홀케 하던 춘향이 기생 월매의 딸임을 알고 나서 불러오라 안달하는 이도령의 태도에서, 당대 양반들이 기생이란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다 놀 수 있는 존재로 여겼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현재 남아 있는 『춘향전』 이본 가운데 이도령을 호협방탕하게 술집을 드나들던 인물로 그려 놓고 있는 것이 많은 걸 보면, 그는 일반적인 양반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인물이라 할 만하다. 따지고 보면, 춘향이 방자를 따라와 이도령을 만났던 것도 애정이 있어서라고 보기 어렵다. 그럴 만한 계기도 그녀에게는 없었다. 자기를 데리러 온 방자에게 욕을 해 대며 펄펄 뛰던 그녀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진 것은, 자신을 부른 사람이 사또 자제라는 말을 듣고서부터다. 당당한 명문귀족의 자제요, 풍류남아인 이도령을 후리면 평생 호강할 수 있다는 ‘유혹’과 부름에 응하지 않으면 그 화가 모친에게까지 미칠 것이라는 ‘협박’을 기생 춘향으로서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맘에 드는 양반을 만나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욕구와 위압적인 양반의 요구를 감히 거부할 수 없던 처지, 그것은 춘향만이 아니라 당대 기생이면 누구나 꿈꾸고 감수해야 했던 현실이었으리라.

그런데 한낱 천기에 불과했던 춘향이 양반 자제 이도령과 함께,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서 결국 봉건적 질곡을 넘어서는 데까지 나가게 된다는 데 『춘향전』의 탁월함이 있다. 이도령과 1년 남짓한 기간을 함께 지내며 싹튼 애정, 이별하던 이도령과의 굳은 약속, 자신의 애정을 강탈하려 드는 변사또의 강제적인 폭압을 겪으면서 그녀는 새로운 현실에 눈떠 갔던 것이다. 변사또에게 모진 형별을 겪고 난 그녀는 이제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춘향이 독난 눈을 똑바로 뜨고, ‘여보, 사또. 애민선치(愛民善治 )하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고 공사를 바로 하여, 목민하는 도리지요. 음행을 본받아 치는 것으로 줏대를 삼으니 다섯 대만 더 맞으면 죽을 터인즉, 죽거들랑 사지를 찢어내어 굽거나 지지거나 가진 양념의 주무르거나 잡수시고 싶은 대로 잡수시고, 머리를 베어다가 한양성 보내시면 우리 낭군 만나겠소. 어서 바삐 죽여 주오.’

탐학한 수령의 횡포를 계기로 천기 춘향의 가슴 속에는 이도령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이를 가로막는 변사또의 횡포에 대한 항거가 이미 굳게 결합되어 있었음을, 위의 인용문은 보여 준다. 이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이도령에 대한 소박한 애정이나 변사또의 수청 차원을 휠씬 뛰어넘어서게 된다. 신분적 질곡과 봉건통치배의 횡포에 대한 단호한 극복의지까지도 담게 되었던 것이다. 남원 농민들이 변사또의 가렴주구와 춘향에 대한 부당한 처사를 같은 맥락에서 이해했던 것도, 춘향의 이같은 변모된 모습에서 가능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춘향을 한 남자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련한 여인의 형상으로서만이 아니라, 탐욕스런 수령의 침탈에 맞서 분투하는 당대 민중의 한 전형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춘향의 형상이 이같이 변모해 가는 과정에서, 이도령 역시 새로운 인물로 발전되어 간다. 춘향을 만나면서 새롭게 눈뜬 순수한 애정, 이를 가로막던 신분적 질곡과 맞서 싸우던 춘향의 놀라운 의지와 그것의 바탕이 된 진실된 사랑에 대한 확인, 그리고 당대 남원 농민이 겪던 현실의 체험 등이 그로 하여금 탕아적인 면모를 쇄신하고 점차 민중과 연대된 인물로 변화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당대 민중들은 이도령의 과거급제와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오는 것에, 고난에 처한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 내려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는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처럼 여겨졌고, 실제로 그는 그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죄한 이 인생들, 횡액을 만나 형문(刑問)치고 곤장 치니 살과 뼈가 다 상한다. 큰 칼 쓰고, 고착(錮著)하니 똥 오줌을 눌 수 있나? 이슬 같은 이 목숨이 거품같이 꺼질 것을 일월 같은 우리 임금 명견만리(明見萬里)하시든가 명백하신 어사또를 체천행명(遞遷行命) 보내셨네.

이도령이 죄없이 감옥에 갇혔던 남원 군민을 풀어 주자, 이들이 입을 모아 그의 명명백백한 처사를 송축하며 부르던 노래다. 이제, 이도령도 더 이상 광한루에서 창기의 미모에 빠져 호들갑을 떨던 방탕한 양반의 자제가 아니다. 변사또와 맞서 홀로 싸우고 있는 춘향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생각했던 것처럼, 이도령은 민중이 겪고 있던 고통을 풀어주는 구원자로 어느새 변모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춘향과 이도령이라는 두 주인공이 작품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자기 변모와 발전이 결국은 사랑의 힘에 의해 가능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애당초 자기 자신만의 안락함을 위해 시작한 춘향의 사랑은 분명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 그녀는 이도령이 걸인이 되어 돌아왔다고 해서 자신의 사랑을 바꾸지 않았고, 자신을 회유하고 협박한다고 해서 자신의 사랑을 굽히지 않았다. 이 같은 춘향의 태도에서 우리는 이타적이고 숭고한 사랑으로의 승화를 확인하게 되는데, 사랑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우이다. 그리고 사랑이 당대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을 깨부수는 현실적 무기로 전화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순간 가능했던 것이리라.

 

수많은 조선 후기 인물들, 그들의 살아 있는 초상

『춘향전』에서 소홀히 지나칠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은 춘향과 이도령, 그리고 이들의 애정을 가로막던 변사또만이 아니라,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사건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는 여러 유형의 군상이다. 춘향의 늙은 어미 월매와 이도령의 부친, 이도령과 춘향의 시중을 들던 방자와 향단이, 사또의 책방(冊房)으로 있던 목낭청(睦郎廳), 관아에 딸린 사령이나 기생들, 그리고 남원의 여러 농민과 아낙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조선 후기를 살다 간 이름 없는 자들의 초상처럼 언뜻언뜻 얼굴을 내밀었다 사라지곤 하는데, 그 기능은 사뭇 다채롭다.

물론 그들은 대개 익살맞은 행동으로 해학적인 웃음을 유발한다든가, 의뭉스런 행동으로 쓴웃음을 자아내는 조역들이다. 그럼에도 때론 조선 후기의 세태에 대한 희극적 도발을 감행하거나, 일상적 삶의 지평에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개성적인 형상으로 작품 전면에 클로즈업되기도 한다, 『춘향전』의 이런 면모는 거창한 명분과 관념적 열정에 지배되는 영웅의 세계로부터 세속적 삶의 지평에로 서사적 관심이 이동하면서 포착한 당대적 현실성의 일부이며, 중세적 관념의 틀이 편의적으로 배제했던 인간존재에 대한 새로운 주목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먼저 방자라는 인물을 보자. 그는 재담과 계략을 통해 상전의 위엄을 추락시켜 희극적 효과를 일으키는 익살스런 장난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익살의 심각성은 그 같은 웃음의 배후에 중세적 명분주의와 엄숙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잠복시키고 있다는데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이도령이 광한루에서 그네 타는 춘향을 보고 반하여 방자에게 불러 달라고 안달을 하자, 그는 반상분의(班常分義)를 따지지 말고 자기를 형이라고 불러 주면 갔다 오겠다고 한다. 이런 제의를 받은 이도령은 자기가 종으로 부리던 방자를 형이라 부르기 난처하여 망설인다. 그러자 방자는 “양반의 마음을 못 버리고 무슨 오입이냐?”며 대놓고 핀잔을 주어, 결국 형 대접을 받고서야 비로소 춘향을 부르러 간다. 작품 전반부에서 방자가 이도령을 희화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예는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 이도령을 밤에 춘향집으로 인도하면서는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게까지 만들어 놓는 지경에 이른다.

이도령이 이런 수모를 감수해야만 했던 것은 기생에게 넋이 나간 자신의 약점을 방자가 훤히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가 아니면 일을 성사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방자는 이도령을 적당히 골려 먹으면서, 한편으론 자신의 실질적 이익도 착실히 챙기려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방자가 당대 민중들의 건강한 의식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도령과 주고받는 희극적 대화를 통해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위선과 허위의식, 나아가 그들이 완강하게 지키고자 했던 규범과 권위를 난장판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그의 작품 내적 기능은 더 없이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방자와 비슷한 사회적 위치에 있고 역할도 유사한 듯하지만, 서로 구별되는 인물이 있다. 목낭청이 바로 그 같은 인물인데, 사또 밑에서 비서 역할을 하면서 삶을 영위하던 자이다.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던가?

사또 목낭청을 부르니, 목낭청 대답하고 들어온다. 사또 희색이 만면하여, ‘자네 거기 앉소.’ ‘앉으라면 앉지요.’ ‘문장 났네.’ ‘문장 났지요.’ ‘무던하지?’ ‘무던하지요.’ ‘자네 뉘 말인지 알고 대답하나?’ ‘글쎄요.’ ‘에이, 이 사람. 헛대답을 하였네. 우리 아희 말일세.’ ‘예, 장하외다.’

이도령이 책을 읽다 춘향을 못 잊어 ‘보고지고’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낮잠을 자다 깬 부친은, 아들이 열심히 과거 공부를 하는 줄로만 알고 흐뭇해 한다. 부친은 그 기쁨을 혼자 즐기기에 아까워 목낭청을 불러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다. 위에 인용한 대목은 바로 그 때, 그가 목낭청과 주고받던 대화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태를 정반대로 해석하며 즐거워하는 부친을 통해 한껏 웃게 된다. 이는 기생의 미모에 빠져 있는 이도령의 현재 모습과 부친이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상의 대조가 불러일으키는 어긋남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젊은 세대의 현실에 눈이 어두운 부친의 어리석은 행위도 한 몫을 차지한다. 그런 점에서 부친은 심각한 희화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방자에 의해 이도령이 일방적으로 희화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목낭청 역시 희화의 대상이다. 이도령 부친의 터무니 없는 아들 자랑에 사태의 전말을 모르면서 무조건 맞장구치며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목낭청의 태도가 희극적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그는 “예”, “그렇지요”, “글쎄요”만 알지 “아니오”라는 낱말을 모르는, 이른바 예스맨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을 창조하고 향유했던 당대 민중의 날카로운 현실인식의 단면을 확인하게 된다. 기실, 목낭청이란 사또가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보필해야 할 의무가 있던 관청에 딸린 지식인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패한 수령의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을 뿐이고, 그 때 이미 그들은 민중과 다른 편에 서 있던 기생(寄生) 지식인에 다름 아니었다. 희화의 대상인 목낭청은 바로 이 같은 당대 지식인의 일그러진 초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품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여러 유형의 인물들이 모두 풍자적 기능을 맡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군상이 있는데, 그건 철저히 세속적 삶과 욕망에 의해 행동하고 사고하는 부류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춘향의 어미 월매이다. 그녀는 퇴기라는 신분에 걸맞게 세속의 이치에 밝아서 확실한 현실적 대가를 행동목표로 삼는다.

‘구관 자제라니 참말인가, 헛말인가? 얼씨고나 왠말인가 내 몰랐네, 내 몰랐네. 인제 춘향이 살았구나. 지화자 좋을 씨고. 어서 들어오게.’

‘내 집 꼴 된 것 보소. 누구 때문에 이리 되었나? 얼굴도 뻔뻔하지. 저 지경이 되어 가지고 무엇하러 찾아왔나? 이런 놈의 일이 있나? 애고 애고 저런 것을 시시때때 바랐더니, 걸인 오기 바랐던가? 꼼짝없이 죽었구나. 지낸 일을 생각하면, 깨물어 먹어도 시원치 아니하지.’

이도령이 거지 행색을 하고 춘향집을 찾았을 때, 그를 맞이하던 월매의 상반된 태도다. 앞의 인용문은 대문 앞에서 이도령을 맞이하던 때이고, 뒤의 것은 방안에 앉혀 놓고 촛불 아래서 그의 행색을 확인했을 때이다. 우리는 이처럼 급변하는 월매의 태도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유지ㆍ확장해야 한다는 절박한 욕망을 안고 행동하는 자가 불러일으키는 웃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월매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목낭청처럼 생계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넘긴 자들을 대할 때와는 다른 태도를 갖게 된다. 주인공인 춘향이의 삶과 죽음이라는 절박함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어서도 그렇겠지만, 비록 그녀가 교활하고 비천한 기생 퇴물이기는 하지만 그 같은 행동의 내면에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개인적 필연성’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딸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였던 범상한 어머니라면 누군들 그렇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우리는 월매와 같은 세속적 인물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나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해도, 그 자체가 곧바로 바람직한 가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한계를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 뒤편에는 생존의 절박한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근원적 동기와 욕구가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형상은 조선 후기의 힘겨운 삶을 숱한 굴곡과 함께 헤쳐 나가야 했던 민중 자신의 또 다른 초상이기도 했던 것이다.

 

민중의 염원을 담아내는 대단원, 그리고 그 이후

춘향과 이도령의 극적인 해후,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춘향전』의 대단원이다. 우리 누구나 축하해 주는 이 곳에 이르면, 진실한 남녀간의 사랑을 가로막으려던 신분적 질곡이나 수령의 탐욕스런 강압은 더 이상 발붙일 여지가 없다. 이제 그런 비인간적 횡포는 박물관에 보관할 유물일 따름이다. 그런데도 천여 년이 넘도록 이들을 이용해 중세적 특권을 누리고 끝없는 향락에 빠져 있던 자들의 말로를 『춘향전』은 어떻게 그려내고 있었던가?

구례 현감 오줌 싸며 쥐구멍에 상투박고, ‘누가 날 찾거든 벌써 갔다고 하여다고.’ 전주 판관 갓을 뒤집어 쓰고 ‘어느 놈이 갓 구멍을 막았단 말이냐?’ 하며 개구멍으로 달아나고, 본관은 똥을 싸고 내아(內衙)에 들어가서 다락에 들어앉아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대부인도 똥을 싸고 실내부인 똥을 싸서 온 집안이 똥빛이라. 하인 바삐 불러, ‘거름장사 바삐 불러 똥을 대강이나 치워다고.’

똥오줌을 질질 싸며 허둥대는 남원 현감, 전주 판관, 그리고 남원 사또의 추한 행태와 몰골들. 그들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호랑이들이었던가? 민중들은 이 대목을 힘차고 빠른 휘모리 장단에 얹어 흥겹게 불렀다. 그건 신명나는 민중의 한바탕 축제였다. 다시는 이들이 자신들 위에서 군림하며 위세를 부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그들은 벌써 오래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민중들은 또 다른 형태로 인간적 존엄성을 훼손당하고 있고, 조선 후기 민중이 일궈 낸 ‘인간 해방을 위한 사랑의 대서사시’조차 값싼 상품으로 팔려 나가고 있다.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지닌 진지한 시대적 의의를 탈색시킨 채, 달콤한 사랑놀음으로 거듭 각색하는 것도 이 같은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혹, 불의에 대항하여 폭발했던 춘향의 그 ‘경이로운 영웅성’의 부활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는지.

 

◐ 생 각 거 리 ◑

1. 본문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춘향과 이도령이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되어 가던 조선 후기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취했던 삶의 자세가 무엇이었는지 밝혀 보자.

2. 춘향과 이도령의 현실적 처지는 어떠했는가?

3. 필자는, 변사또를 단지 주색에 탐닉했던 성격 파탄자로 보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변사또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4. 춘향과 이도령의 원래 성격은 어떠하다고 했는가?

5. 춘향의 성격이 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6. 방자와 목낭청, 그리고 월매의 성격이 어떠한지 파악해 보고 차이점을 말해 보자.

7. 글의 마지막 부분의 소제목에 보면 ‘민중의 염원’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민중의 염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지 본문 속엣 찾아 정리해 보자.

8. 윗글을 토대로 춘향전의 가치를 정리해 보고 아래 글에 나오는 ‘값싼 상품’과 ‘경이로운 영웅성의 부활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토의를 해 보자.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그들은 벌써 오래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민중들은 또 다른 형태로 인간적 존엄성을 훼손당하고 있고, 조선 후기 민중이 일궈 낸 ‘인간 해방을 위한 사랑의 대서사시’조차 값싼 상품으로 팔려 나가고 있다.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지닌 진지한 시대적 의의를 탈색시킨 채, 달콤한 사랑놀음으로 거듭 각색하는 것도 이 같은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혹, 불의에 대항하여 폭발했던 춘향의 그 ‘경이로운 영웅성’의 부활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