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지 노무현 불가사의에 답하다

                                                                                       출전 : [한겨레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안녕하세요, 상담계의 순결한 열녀문 어준 형님.

저는 평소 형님의 야매상담에 영감을 받아 반 학우들의 고민을 제 마음대로 해결해주고 있는 고등학생 ‘후루꾸’라고 합니다. 지난주부터 학우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비롯된 각종 현상들에 대해 제게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어린 저로서는 그런 현상들이 참 불가사의네요. 이럴 땐 역시 상담은 임전무퇴!를 외치시는 형님밖에 없다 싶어, 질문 모아 드립니다. 꼭 풀어주셔요. 꾸벅.

  노란색 무조건 반입불가 방침? 청와대 주치의에게 문의해

  A 야매의 도, 부디 간단없이 용맹정진하여, 본인처럼 하이타이로 무스 하고 팔만대장경으로 빨래하는 득도의 지경에 하루속히 도달키를 기원하는 바이다. 그럼 이제 그 불가사의들을 한번 풀어보자.

  1.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학우들과 과연 누구에게 그 책임이 있는지를 놓고 토론을 벌이다가 <조선일보> 게시판에 질문을 올렸어요. 결국 명박이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요라고. 그런데 비속어로 삭제를 하더라구요. 대체 뭐가 비속어란 걸까요?

  그분 이름이 비속어라는 거지. 우리는 여기서 조선일보가 상당히 무례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녀석들,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지.

2. 그럼 전직 대통령 몇 분 안 되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께서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으신 이유가 뭔가요?

  그분 재산이 워낙 약소하시어 차비 문제로 참석 못 하시는 건 아닐까 염려가 그렇잖아도 있었다. 하나 그분께서는 당일, 특정 부위 비대증으로 수술을 하시었다 한다. 왜 하필 그날이냐고 시비 거는 소인배들 없지 않으나, 그게 또 상당히 소중한 부위니라. 그 부위라면 마땅히 우리가 이해해 드리는 게 옳다.

3. 그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왜 참석하지 않으셨나요?

사람들이 연락하는 걸 깜빡했지 싶다.

4.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날 보니까 계속 눈을 감고 계시던데, 자신이 정치에 입문시킨 고인과의 과거를 소회하시며 가슴 아파하신 건가요?

그 분이 원래 아무데서나 잘 주무신다.

5. 김대중 전 대통령은요? 그분이야말로 불참해도 이해될 만큼, 불편해 보이시던데?

 그건 이렇다. 전직 두 분 불참에, 참석 전직은 주무시고 현직은 욕 자실 게 자명하니, 어떻게 본인이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가오를 책임져야겠다 싶으셨던 게다. 거기 그분조차 없었다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아찔한가.

6. 추도사는요. 추도사를 한 분께만 맡기는 건 역시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거겠죠? 그리고 영결식에 노란색은 수건조차 반입이 안 됐다고 하던데 그건 왜 그런가요?

 추도사. 초·중·고 담임이 전부 12분이었다고 12명이 주례하더냐. 다 핑계다. 그 꼴 못 봐주겠다는 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라. 노란색 무조건 반입불가 방침을 내린 자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는, 청와대 주치의에게 문의하거라.

7.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 직전에 웃었다는 논란도 있던데요, 정말인가요?

 아니다. 지상파 3사 생중계에 카메라 집중되는 자신의 헌화 순서에 웃다니. 그런 바보는 없다. 그게 아니라 그분 성정이 워낙 해맑다 보니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찌 표정 지어야 할지 감을 못 잡으면, 그렇게 안면근육이 어정쩡하게 협조가 안 될 때가 있느니라. 그런 걸 표정 배달사고 혹은 자연의 신비라 한다. 그러니 그 표정이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건 하나뿐이다. 조금도 슬프지는 않았다는 거.

8.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울었던 건가요? 그리고 사람들이 왜 자꾸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는 거예요?

 사실은 바로 자신도, 무관심과 몰이해로, 그 정치적 타살의 공범이었다는 걸 깨닫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범인들이 너무 시답잖은 자들이라는 게 또 너무 억울하고,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지경에 혼자 갔다는 게 또 너무 아프고, 그 절벽에 섰을 때의 고인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인들이 자신을 대입해 감정이입이 가능한, 유일한 정치인이었기에. 지켜드리지 못했다고 하는 건, 노무현이 상징했던 가치는 누가 대신 지켜주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이 지켰어야 했단 걸 통절했기 때문이다.

9. 정부에선 이제는 고인의 유언대로 화합해야 한다고 하던데 그래야 하는 건가요?

 주요 부위 불어터지는 소리. 피해자의 유언을 빌려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는 가해자들의 가련한 꼬락서니다. 화합 선언의 권리는, 피해자 고유의 것이니라.

10. 그럼 현 정권 출범 이래 대한민국이 가장 크게 바뀐 건 뭔가요.

대한민국은 2008년 2월 25일 이후 섬이 되었다. 이제 사면이 바다다. 서해, 남해, 동해, 그리고 오해.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나는 그를 남자로 좋아했다

   

[매거진 esc] 두번 만나 노무현에게 반했던 김어준, 책상 위에 담배 한갑을 올리다

  1. 그날은 재수학원 대신 당구장에서 종일을 보내던 중이었다. 청문회가 한창이었지만 그 시절 그 신세의 그 또래에게, 5공의 의미는 쿠션 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건 순전히 우연이라 하는 게 옳겠다. 수구 앞에 섰더니 하필이면 티브이와 정면이었으니까. 사연은 그게 전부였으니까. 웬 새마을운동 읍네 지부장 같이 생긴 이가 눈에 들어 왔다. 그가 누군지 알 리 없어 무심하게 시선을 되돌리는 찰나, 익숙한 얼굴이 스쳤다. 다시 등을 폈다. 어, 정주영이네. 거물이다. 호, 재밌겠다. 타임을 외치고 티브이로 달렸다.

 일해 성금의 강제성 여부를 묻는 질의에 “안 주면 재미없을 것 같아” 줬다 답함으로써 스스로를 군사정권의 일방적 피해자로 둔갑시키며 모두에게 공손히 ‘회장님’ 대접을 받고 있던 당대의 거물을, 그 촌뜨기만은 대차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몇 놈이 터트리는 탄성. “와, 말 잘 한다.” 그러나 내게는 달변이 문제가 아니었다. 거대한 경제권력 앞에서 모두가 자세를 낮출 때, 그만은 정면으로 그 힘을 상대하고 있었다. 참으로, 씩씩했다. 그건 가르치거나 흉내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를 알았다.

   2. 이후, 난 그를 두 번 만났다. 부산에서 또 실패한 직후인 2000년 봄, 백수가 된 그를 후줄근한 와룡동 사무실에서 만난 게 처음이었다. 낙선 사무실 특유의 적막감 속에 팔꿈치에 힘을 줄 때마다 들썩이는 싸구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그때 오갔던 말들은 다 잊었다. 아무리 기를 써도 기억나는 건, 담배가 수북했던 모조 크리스털 재떨이, 인스턴트 커피의 밍밍한 맛, 그리고 한 문장뿐이다.

   “역사 앞에서, 목숨을 던질 만하면 던질 수 있지요.”  

   앞뒤 이야기가 뭔지, 왜 그 말이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 말을 기억하는 건, 오로지 그의 웃음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저만의 레토릭이 있다. 난 그런 수사가 싫다. 같잖아서. 저 하나 제대로 건사해도 다행인 게 인간이다. 역사는 무슨. 주제넘게. 너나 잘하셔. 그런 속내. 그가 그때 적당히 결연한 표정만 지어줬어도, 그 말도 필시 잊고 말았을 게다. 정치인들은 그런 말을 웃으며 하지 않는 법이다. 비장한 자기연출의 타이밍이니까. 그런데 그는 웃으며 그 말을 했다. 그것도 촌뜨기처럼 씩씩하게. 참 희한하게도 그게 정치적 자아도취 따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진심으로 내게 전해진 건, 순전히 그 웃음 때문이었다. 난 그때 그렇게, 그에게 반했다.

   두 번째 만남은 그 이듬해 충정로 해양수산부 장관실에서 대선후보 인터뷰로 이뤄졌다. 그 날 대화 역시 잊었다. 기억나는 건 이번엔 진짜 크리스털이었다는 거, 질문은 야박하게 했다는 거 - 그게 그에게 어울리는 대접이라 여겼다. 사심으로 물렁한 건 꼴불견이니까. 그런 건 그와 어울리지 않으니까 - 그리고 이 대목이다.

   “시오니즘은 국수주의다. 인류공존에 방해가 되는 사고다.”

   놀랐다. 그 생각이 아니라 그걸 말로 해버렸단 사실에. 정치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안전하지 않은 건 눙치고 간다. 그런데 그는 유불리를 따지지 않았다. 한편으론 그게 현실 정치인에게 득이 되는 것만은 아닌데 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통쾌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다. 이런 남자가 내 대통령이면 좋겠다고,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그 후 대통령으로 내린 판단 중 지지할 수 없는 결정들, 적지 않았으나 언제나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씩씩한 남자였다. 스스로에게 당당했고 같은 기준으로 세상을 상대했다. 난 그를 정치인이 아니라, 그렇게 한 사람의 남자로서, 진심으로 좋아했다.

   3. 그래서 그의 투신을 받아들 수가 없었다. 가장 시답잖은 자들에게 가장 씩씩한 남자가 당하고 말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억울하건만, 투신이라니. 그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종일 뉴스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담배 한 대를 찾았다는 대목에서 울컥 눈물이 났다. 에이 씨바… 왜 담배가 하필 그 순간에 없었어. 담배도 없이, 경호원도 없이,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혼자가 되어, 그렇게 가버렸다. 그 씩씩한 남자를 그렇게 마지막 예도 갖춰주지 못하고 혼자 보내버렸다는 게, 그게 너무 속이 상해 자꾸 눈물이 났다.

   그러다 어느 신문이 그의 죽음을 사거라 한 대목을 읽다 웃음이 터졌다. 박정희의 죽음을 서거라 하고 그의 죽음을 사거라 했다. 푸하하. 눈물을 단 채, 웃었다. 그 믿기지 않을 정도의 졸렬함이라니. 그 옹졸함을 그렇게 자백하는 꼴이 가소로워 한참이나 웃었다. 맞다. 니들은 딱 그 정도였지. 그래 니들은 끝까지 그렇게 살다 뒤지겠지. 다행이다. 그리고 고맙다. 거리낌 없이 비웃을 수 있게 해줘서. 한참을 웃고서야 내가 지금 그 수준의 인간들이 주인 행세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뼛속 깊이 실감났다. 너무 후지다. 너무 후져 내가 이 시대에 속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을 정도로.

    4. 내가 예외가 없다 믿는 법칙은 단 하나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거. 그가 외롭게 던진 목숨은, 내게 어떻게든 되돌아올 것이다. 그게 축복이 될지 부채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그만한 남자는, 내 생애 다시 없을 거라는 거.

   이제 그를 보낸다.

 잘 가요, 촌뜨기 노무현.

 남은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PS - 사진 한 장 출력해 붙이고 작은 상 위에 담배 한 갑 올려놨다. 언제 한번 부엉이 바위에 올라 저 담뱃갑을 놓고 오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