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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의 기원 /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
내일은 5월1일 메이데이이다. 이날은 만국 공통의 국제노동절로서 세계의 노동자들이 국제적인 연대를 다지고 축하하는 날이다. 메이데이는 8시간 노동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태어났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태어난 곳은 바로 미국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에서는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운동이 광범하게 나타났다. 1886년 5월1일은 최초의 메이데이 날이었다. 이날 미국노동연맹은 8시간 노동제 도입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파업을 선언했고,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5월3일 시카고 경찰은 파업중인 노동자들에게 실탄을 발사하여 4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쳤다. 다음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집회가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렸는데 누군가가 폭탄을 던져 경찰관 70명이 다치고 7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집회를 구경하던 시민들에게까지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여러 명이 죽고 200여명이 다쳤다.
경찰은 현장에서 폭탄을 던진 범인을 찾지 못하자 그 후 노동운동 지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작전을 벌여 수백명을 구금하였으며 그중 8명을 재판에 회부했다. 이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의 시위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으나 복수심에 불타는 경찰은 누군가 희생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폭탄사건과 관련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자 이들은 결국 급진적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모두 유죄판결을 받아 그중 4명은 교수형을 당하고, 1명은 감옥에서 자살했으며, 나머지 3명은 국제적인 항의운동의 결과로 나중에 석방되었다.
‘시카고의 8인’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세계 각국의 많은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1890년부터 전세계에서 5월1일을 기하여 이 사건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노동운동 행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5월1일은 국제적인 노동자들의 연대를 다지는 날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막상 메이데이가 탄생한 나라인 미국에서는 메이데이의 역사가 기묘한 길을 걷게 된다. 미국 정부는 노동자들이 시위 등 불온한 행동을 하는 날이라는 이유로 메이데이를 공휴일로 지정하기를 거부했다. 그 대신 9월 첫 월요일을 노동절로 지정했다. 미국의 노동절은 노동자의 연대를 다지는 의미보다는 애국심을 고취하고 가족의 화목을 다지는 날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한국에서도 메이데이는 굴곡의 역사를 걸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도로 처음 시작되었다. 이날 약 2000여명의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실업 방지 등을 주장하며 최초의 메이데이 행사를 벌였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대한노총이 창립되면서 대한노총이 메이데이 기념식을 주최했지만, 이미 이는 일반 노동자들과는 상관없는 행사에 불과했다.
1957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3월10일 대한노총 창립일이 ‘근로자의 날’이란 이름으로 지정되었으며 메이데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경축일이라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들은 메이데이를 다시 노동절로 지정하도록 요구하였으며 오랜 투쟁 끝에 1994년 국회는 근로자의 날을 3월10일에서 5월1일로 옮기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절’이라는 이름은 찾지 못한 채 ‘근로자의 날’이란 이름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이날도 근무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최초의 메이데이 당시 노동자들이 외쳤던 “하루 8시간 노동”이라는 요구는 120여년이 지난 현재도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