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우리의 자화상 - 작가의 문제의식

수도여고3 안정현

한국의 거리에 나가 주변을 둘러보면 한국적인 건물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서양의 건축술로 지어진 건물이 모든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전통가옥과 건축술이 사라진 것은 일본의 만행으로 불가피한 일이었던 것처럼 변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러한 주장은 전통을 보존하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건물은 점점 자연의 순리에 맞지 않게 지어지고 사람들은 자연을 파괴하는 건물에서 살며 점점 비인간화 되어 간다.

해방 이후 역사에서 사라진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파고다공원은 그 역사적 가치에 걸맞지 않게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하고 높은 건물 사이에서 고립되어있다. 전통을 복원하기는커녕 전통의 양식은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했고,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의 건물은 서양의 자랑스러운 건물을 베끼는 모사품으로 전락하였다. 전통 기술이 사라진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건물을 짓겠다고 할 때 건축가들은 최대한 서양식으로 비슷하게 흉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인 서울과 부산 등에 있는 역사를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 소개할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건물을 찾아보자면 경복궁과 인사동 등을 들 수 있는데, 경복궁과 인사동 또한 주변이 서양식 건물로 뒤덮여 있다. 꼭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처럼 주변부와 어울리지 못하고 섬처럼 떨어져 있는 건물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는 없다. 서양 건축술로 지어진 건물이 최고의 찬사를 받으니 문화를 감상하는 영화관도, 공공 업무를 담당하는 관공서도, 사람들의 휴식지가 되어야 할 집도 모두 서양 건축술로 지어졌다.

서양 건축술로 지어진 건물이 현대 사회에 잘 맞고 더 좋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곳곳에 세워진 하이테크식 건물은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최고급 아파트라는 타워팰리스와 자연이 허락한 아파트라는 말이 무색하게 유리로 번쩍번쩍하게 포장한 아파트는 창문조차 열리지 않는다. 자연적으로 통풍이 되지 않으니 집 안의 공기는 항상 탁하고, 온도 조절을 위해 사용하는 보일러는 자연을 파괴한다.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최고급의 사람들은 돈을 주고 자연을 파괴하고 그 대가로 천식과 알레르기 같은 병을 사들이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만들어 낸 근본적인 원인은 건축을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온 국민이 건축을 건축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를 늘리는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건물은 점점 더 경제적인 효율성만을 따져서 지어지게 된다. 동대문의 대형 의류매장에는 한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은 통로만이 유일한 빈 공간이다. 건축이 끝난 후에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건물의 실율이 높아지고 모든 건물이 점점 더 높이 지어지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이 건축이 보여주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의 가장 큰 원인이다.

건축물을 부를 창출해 내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가치관을 고치는 것이 잘못된 공간구조를 바로잡는 최선의 방법이다. 건축물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고 한국의 건물을 본다면, 현재 한국의 땅을 파괴하는 건물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자연과 어울리는 공간이 건축물의 가장 큰 가치로 자리 잡는다면, 온통 서양의 건축술로 뒤덮여 있었던 건물이 사라지고 자연과 조화를 중시했던 한국의 전통 건축술이 좁고 복잡하기만 한 현재의 공간을 대신하여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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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여고 3 홍소정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지워가고 있다. 그것은 불과 약 200년간의 역사가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한반도를 뒤흔들어놓은 뒤부터 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수없이 저항도 하였지만, 현재 우리에게 자부심이라는 마음은 전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던 모든 것들은 열강세력들에 의해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가 되었다. 식민사관과 사대주의 자세로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몸, 우리의 생활, 우리의 삶 그 외 어떤 측면으로 보아도, 우리는 단지 “대한민국”이라는 한반도에 태어났을 뿐이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문제의식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말은 건축이 아니라, 우리의 자화상이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겉으로 잘 드러나 있는 건축을 빌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것, 사람이 사는 공간에 주력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세계화의 흐름 앞에서 우리의 것을 잘 지켜내지 못하는, 오직 “돈”만을 고려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인간의 기본생활인 의식주 어떤 측면으로 보아도 결코 떳떳하지 못하다. 그 중, 건축이라는 한 측면에 주력하여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낸 것뿐인데 이다지도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난 한국인으로써의 자부심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여태까지도 나는 그런 내 마음을 충족시킬만한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아주 조심스럽게 끊어질 듯 말듯하게 이어져 가는 “전통”이라는 끈이 있다. 하지만 그 전통은, 사대주의 정신을 힘껏 발휘하는 우리의 전통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런 우리의 자세가 우리의 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분리한다는 생각자체가 무모할 정도이다. 우리에게 우리만의 주체성과 독자성이 있던가? 이런 질문을 내던졌을 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는 떳떳하지 못하지 않다. 기독교만 보아도, 우리는 ‘흡수’하기만 하였지, ‘수용’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저마다 살아있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공부를 하는 이유도 인생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이다. 인생의 목표에 “돈”이라는 목록이 빠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린 소비의 사회이기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어쩔 수 없다고 본다면 끝이 없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삶이 성공하느냐, 성공하지 않느냐의 기준에까지 “돈”을 고려하고 있다. 이런 우리들에게 건축은 하나의 재화의 대상이다. 그런 우리의 자세를 세상에 도배라도 하는 듯이, 오늘날의 건축은 사람이 사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돈 덩어리일 뿐이다.

  우리는 아주 자랑스럽게 우리의 것을 지워가고 있다. 그리고 아주 자랑스럽게 그런 우리의 정신을 고수하고 있다. 처음에는 강제적으로 원치 않았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우리 스스로 원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어떠한 의문점도 없이 그저 그것은 세계화의 한 흐름이라고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이것은 건축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건축에 관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떳떳하지 못하다. 건축은 그런 우리들을 아주 적나라하게 비춰주고 있다.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건축은 그런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순간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습마저 바꾸고 있는 우리의 사회엔 진정한 한국인은 쓴 약 같을지 몰라도,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아직도 간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