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 * 박윤영 (진선여고2)

두꺼운 빨간 표지의 책.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때, 교회에서였다. 그날 설교를 하시던 전도사님께서 이 책을 들고 나와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된다. 하지만 중학생이던 나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남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에 대한 그 두꺼운 평전은 전혀 흥미를 끌지 못했고, 그저 그런 책이 있다 정도로만 인식되어 왔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이 책에 대한 얘기를 점점 더 자주 접하게 되면서,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빌려다가 책장을 펼치게 되었다. 처음 100p 정도는 정말 천천히, 별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못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차츰 나는 이 책에 빠져들었고, 새벽에 시간가는 줄 모르면서 읽게까지 되었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후에 체 게바라 라고 불리게 되는, 지구 반대편에서 나와 전혀 관계없는 독립운동에 한 평생을 바친 사람. 이 사람이 나의 흥미를 끌게 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시대적으로 많이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사실 흔히 보게되는 위인전이나 평전은, 나보다 훨씬 이전에 살았던 사람에 대해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게바라의 실제 사진도 많이 실려 있으며, 아직 살아있는 그의 주변인물들에게서 얻은 생생하고 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쓰여진 책이었다. 이 점은 나에게서 많은 호기심과 흥미를 자아냈다.

책은 그의 출생과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서술하면서 시작된다. 놀랍게도 그는 어려서부터 천식과 잔병으로 고생하던 병약한 아이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격렬한 운동인 럭비, 축구, 수영 등을 열심히 했고, 체스나 장대높이뛰기 선수권 대회에도 출전했다고 한다. 또한 공부에서도 재능을 드러내어,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에게 인정받고 그 아래에서 연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놀라우리만큼 짧은 시간 내에 의학박사 학위를 획득했다. 이대로 나갔더라면, 정말 평범하고 행복한 생활이 보장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피델 카스트로 라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모든 관심은 쿠바의 독립과 혁명 운동에 쏠렸다. 쿠바는 그의 조국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전혀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해방시키고자 목숨을 내건 그의 행동에서 나는 많은 감동을 받았다.

책은 그와 그의 게릴라 부대를 따라 쿠바의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반 이상의 분량은 그의 전쟁 얘기에 할애되고 있었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그 내용의 상세함과 생동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등등의 사항이 놀랄만큼 자세히 다 나와 있었고, 심지어 그들을 배반한 그 지방 농부의 이름까지도 나와 있어 나를 경탄하게 만들었다.

체는 그 특유의 냉철함과 뛰어난 전술, 거기에 의사로서의 활약상까지 더하여 게릴라 부대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 되었고, 결국 쿠바를 해방시키기에 이르렀다.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의 소련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고 필자는 말하고 있다. 체는 제국주의를 반대했으며, 쓰러져가는 소련을 보고 또 다른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쿠바를 해방시킨 뒤 떵떵거리며 살 수 있던 기회를 다시 한 번 내버린 체는, 이번에는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약간 무모한 점도 있었지만, 아프리카를 해방시키겠다는 의지와 신념으로 볼리비아로 들어간 체는, 결국 1967년 10월 9일 서른아홉의 나이로 사살되고 만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기록이 나에게 이처럼 큰 감동과 흥분을 준 일은 처음인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위인전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가장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총칼을 든 적과 대치중이라는 상황에서 천식으로 숨쉬기도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책을 놓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언제나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주변 사람들을 가르쳤고, 또 자신도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학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공부도 하기 싫어하고 요령을 피우는 나로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체의 행동 하나하나와 그의 말 한마디에 감탄했다. 특히 그가 한 말들은 내게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정말 큰 감명을 주는 것들이었다. 그는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 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모두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한다" 라는 얘기라고 한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인가! 그는 언제나 온화한 얼굴이었다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하고 있었는데, 그 또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흔히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던 '게릴라'의, 그것도 대장이던 체였지만 인간적인 면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내용도 많고, 내가 정리해서 얘기하기에 다소 무리를 느끼기는 한다. 그러나 만일 누가 이 책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추천해 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나는 내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혼자서는 도저히 깨우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체의 가장 유명한 말에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정말 내 가슴속에 뭔지 모를 흥분과 설레임을 주는 말이다. 체 게바라. 내가 지금껏 알게 된 인물들 중 가장 독특하고 놀라운 인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그가 나에게 준 감동을 다 말로 전하느니, 얼른 책방으로 달려가 이 빨간 책을 손에 쥐라고 말해주고 싶다.

* 이 글을 쓴 박윤영 도반은 지금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 3학년에 재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