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의 죽음은 시대의 당위였다?    

                 박유진

아큐는 보잘 것 없는 하층민으로 무능한 사람이다. 게다가 아는 것도 없으며 비굴하기까지 하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그가 사형되는데 처음엔 불쌍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자신이 혁명에 가담했기 때문에 자신이 대단하다는 근거 없는 자부심이 그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말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큐는 성안의 사람들이 장등을 조등이라고 부른다며 무시하는 그런 식의 근거 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식의 근거없는 자부심은 상대방을 무시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인간관계의 파괴 그리고 사회적 파괴를 불러온다. 지역주의와 혈연주의와 같은 사회적 조화를 거부하는 생각도 나타나게 한다.

아큐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현실을 외면하려고 한다. 현재는 빈곤한 자신이 예전에는 잘 살았다고 말하며 남을 무시하며, 건달패에게 맞았을 때도 좀 억지스러울 정도로 자기암시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만족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정신적인 승리법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않으며 문제를 뒤로 미룸으로서 더 큰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 예를 들자면 자신이 한 잘못보다 상대방의 잘못을 더 크게 본다거나, 자신이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해 자기 자신을 합리와 시키는 것이 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않으려 하면 개인의 발전이 저해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고 이상만을 추구 하게 되는 것이다.

아큐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때문에 털보에게 덤볐다가 꼼짝없이 당하고, 자신보다 약한 여승을 마구 희롱한다. 이런 태도는 사회가 부정부패와 비리로 가득찬 세상을 만든다. 흔히 판타지나 무협소설을 보면 강자지존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실제로 그런 강자지존의 사회에서 강자가 반인류적이거나 자신의 권력유지에 힘쓴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은 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올바른 주장을 펼치기 보다는 강자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강자의 눈에 들어서 좋은 직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것은 오늘날의 혈연, 지연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가회에서는 사회정의의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약자와 강자의 경계가 생겨나면서 평등해질 수 없다. 오히려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선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외강내유'가 더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아Q정전을 읽다가 옛날에 보았던 영화 '마지막 황제'가 떠올랐다. 이 영화로 인해 아큐정전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각각의 책과 영화는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한다. 신해혁명 때 나타난 혁명당은 역량이 미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보수세력과 타협하게 되었고
민주국가를 이룰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신해혁명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기'의 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은을 수출하고 아편을 수입해오면서 중국에는 아편으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가 심했다. 어린 아기에서 부터 나이든 어른까지 아편에 찌들어 살게 되기도 했다. 아편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아편에 의지함으로서 그 시대의 어려움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아편을 통해 정신적인 안도감을 느끼는 여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아큐의 모습은, 당시 중국의 모습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사형은 그 당시의 중국뿐 아니라, 미래에 생겨날 아큐에 대한 거부감을 뜻한다. 작가는 아큐를 사형시킴으로서 '정신적인 승리법' 이나'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한 것' 이나 '근거없는 자부심'에 대한 종지부를 찍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