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2007년 10월2일-4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글들이다. 지구 최후의 분단국가인 남한과 북한은 정상회담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 회담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을 분석해 보고 토론해 보자.


1. 실효성 있는 ‘평화체제 로드맵’을 / 한겨레 사설 2007-07-19

정부에서 북한 핵문제 진전에 발맞춰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추진하고자 ‘평화체제 로드맵’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남북 장관급 회담을 예정보다 한 달 정도 앞당겨 8월 초에 열자고 북한에 제안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2·13 합의에 평화체제 협상 개최가 규정돼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곧 실효성 있는 평화체제 이행계획이 나오길 기대한다.
본격적인 평화체제 논의는 남북 관계 진전을 전제로 한다. 남북이 경협 등 교류·협력 위주에서 벗어나 군사·정치 문제까지 폭넓게 다뤄야 평화체제의 내용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기존 남북 관계가 질적으로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는 통일부의 문제의식은 타당하다. 그러려면 우선 모회담 격인 장관급 회담부터 논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평화협정의 사전 단계로 거론되는 평화선언 채택 문제도 이 회담에서 논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남쪽이 마련한 평화체제 이행표를 놓고 남북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마련한 뒤 관련국으로 논의를 확대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북쪽은 장관급 회담 조기 개최 제안부터 받아들이길 바란다.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부 부처 사이 이견 여부가 도마에 오르는 것은 유감이다. 통일부는 남북이 먼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외교부는 북한 핵 폐기 진행 상황과 미국 쪽 분위기를 충분히 고려해 논의 틀을 짜야 한다는 쪽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청와대가 평화체제 관련 협상을 직접 관장하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한 논의를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 나라의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이어서, 우리가 잘 대처하지 않으면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곧 열릴 6자 외무장관 회담을 계기로 평화체제 논의가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면 준비 시간이 많지 않다.
6자 회담 진전이 평화체제 논의 수준과 연계돼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양쪽은 선후 관계가 아니라 서로 견인하는 두 바퀴와 같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한 만큼 그렇게 되도록 비슷하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한국은 이제까지 6자 회담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결정적으로 기여해 왔다. 평화체제 논의에서는 아예 그런 고비를 맞지 않도록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2. 노무현·김정일 무엇을 위해 만나나  조선일보 사설 2007.08.08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월 28~30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양측에서 동시에 발표했다. 예상됐던 일이다. 前전 총리부터 대통령의 왼팔이란 측근까지 여권 정치인들이 평양과 중국을 계속 드나들며 북한에 남북 정상회담을 하자고 매달려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얼마 전부터는 그 시기가 8월이 될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 바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정권의 이런 집착으로 볼 때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김 위원장의 서울 答訪답방이 없던 일로 돼버린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평양에 가서 알현하는 식의 정상회담 정례화라면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서 대화하는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다. 다른 어떤 회담보다 북핵 폐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현재 북핵 6자회담은 북한의 핵물질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라는 결정적 단계를 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핵문제 논의에서 남한을 철저히 배제시켜 왔다. 그 문제는 미국하고 나눌 이야기이니 남한은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핵은 미국과의 修交수교 등 미·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 소재이고 미국과 북한의 합의 결과에 따라 남한은 돈만 대라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방침이다. 북한이 이 방침을 바꿨다는 情況정황은 어디에도 없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미국으로 가는 길을 뚫는 데 필요한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이 이 방침을 고수한다면 앞으로 한반도 정세 변화의 主役주역은 미국과 북한이 맡고 한국은 그 뒤나 따라가는 助役조역으로 전락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민족 대단결 운운하는 말 잔치를 되풀이하고 우리는 막대한 잔치비용을 대는 것으로 그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6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 문제에 대해 “전임 사장이 발행한 어음은 후임 사장이 결제하는 거다. 내 임기가 두 달이 남았든 석 달이 남았든 (북한에) 가서 도장 찍고 합의하면 후임(대통령)이 거부 못한다”고 했었다. ‘내 맘대로 일을 저질러도 너희들이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것이 노 대통령의 생각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이런 식으로 되고 정작 한반도 정상화의 출발점인 핵문제는 비켜 간다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대한민국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사실상의 임기가 석 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 중대한 회담의 상식에 벗어나는 일이다. 김 위원장이 지난 4년여 동안 거부하다가 왜 남한 정권의 수명이 다 끝난 지금 이 시점에서 회담을 받아들였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인 시점에 발표됐다. 또 회담은 야당 대선 후보가 확정된 지 8일 뒤에 열린다. 그에 이어서 여당 대선 후보 경선전이 시작되고 곧 대통령 선거다. 야당의 기세엔 찬물을 끼얹고 여당의 상승세는 부추길 수 있는 타이밍이다. 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도 국회의원 총선 투표일 3일 전에 발표된 바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번번이 대한민국의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반복되는 상황에서 남북회담의 政略性정략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은 올해 들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전쟁 난다”는 식으로 남한 대선 결과에 대해 극단적인 초조감을 보여 왔다. 기획 탈당, 간판 세탁 등 온갖 방법이 다 실패한 남측 여권도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만 목을 매고 있었다.
북한은 정상회담으로 남한 정권에 도움을 준 대가를 반드시 요구할 것이다. 2000년 회담 때는 뒷돈으로 5억달러를 챙겼다. 이번 회담 성사의 前後전후 내막 역시 다음 정권이 되면 밝혀질 것이다. 대규모 대북 지원이 미리 제시됐을 가능성도 높다. 그 천문학적인 돈은 결국 남한 국민의 세금이다. 다음 정권에까지 부담을 주는 합의는 이 정권 독단으로 할 수 없다.
이날 남북 정상회담이 발표된 뒤 한국갤럽이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회담 시기가 지금 적절하다(49.1%)는 의견 못지않게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42.8%)는 의견도 많았다. 특히 이 여론조사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둘 것이란 의견은 35.5%에 그쳤고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58.7%에 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국민의 눈을 등 뒤에 지고 평양에 가는 것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3. 남북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 / 한겨레 사설 2007-08-08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남북 당국이 어제 동시에 발표했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7년2개월여 만에 2차 회담이 열리는 셈이다. 회담 개최를 적극 환영하며, 한반도와 관련된 여러 현안을 진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회담은 북쪽 핵문제 해결 노력이 조금씩 성과를 내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지역질서를 모색하는 가운데 열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북쪽이 이번 회담에 합의한 데도 이런 질서 재편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의 이런 노력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넘어서 경제통합과 평화통일의 길을 닦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권력 집중도가 높은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남북 정상회담은 필수적이다.

내실 있는 회담 돼야
이번 회담이 내실 있는 성과물을 만들어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회담 의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크게 세 갈래가 될 것으로 정부 안팎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첫째는 북한 핵문제다. 6자 회담 2·13 합의에 따라 북한 핵시설 불능화 논의가 시작됐으나 참가국들 안에서는 북한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이번 정상회담은 핵 포기라는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확인함으로써 6자 회담 논의를 활성화하는 동력이 돼야 한다.
둘째는 남북 관계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일이다. 한 세기 전 구한말이나 광복 직후처럼 한반도·동북아 질서가 새롭게 짜이는 시기에 남북이 핵심 주체로 자리잡으려면 양쪽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간 남북 관계는 경협과 인도적 사업, 민간 교류를 중심으로 양적으로 크게 팽창했으나 질적으로는 개성공단 사업을 정점으로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남북 모두 이제까지의 교류·협력 방식에서 벗어나 한반도 경제권을 염두에 둔 중장기적인 새 구도를 모색해야 할 때다. 정상회담은 이를 위한 산파 구실을 해야 한다.
더 중요한 의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기본틀을 짜는 것이다. 평화체제 논의는 6자 회담 ‘북-미 관계 정상화’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실무그룹에서도 상당 부분 이뤄지겠지만, 전체 틀을 만들고 논의 기조와 속도를 조절할 책임은 어디까지나 남북에 있다. 게다가 군비통제 등 남북이 직접 관련된 여러 군사·정치 사안은 당사자인 남북만이 다룰 수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정치 사안 논의 진전을 위한 기본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의 앞단계로 평화선언을 채택함으로써 평화체제로 가는 주춧돌을 놓기를 바란다.

초당적 협력 얻기 위한 노력을
정부는 지난번 정상회담 때의 대북 비밀송금 파문을 의식해서인지 이번 회담의 개최 합의 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회담 개최 시기도 핵문제 진전 상황과 한반도 관련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적절하다는 평가가 많다. 대통령 선거를 넉 달 앞둔 시점이라고는 하나 선거를 이유로 국가적 과제를 미룰 수는 없다. 그런데도 회담 개최 발표 직후 한나라당이 부정적 논평을 내는 등 노골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낸 것은 집권을 바라보는 원내 제1당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정부 또한 이번 회담이 초당적 협력 아래 민족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노 대통령이 각 당 지도부를 직접 만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의 장소가 다시 평양으로 잡힌 것은 유감이다. 북쪽의 뜻을 고려했다고는 하나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폐쇄적이지는 않다. 노 대통령 자신이 밝혔듯이, 남북 정상이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최대한의 성과를 내고 회담을 정례화 정상회담,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의무다. 다음 정권에도 좋은 유산이 됨은 물론이다.


4. 노대통령이 평양에서 지켜야 할 마지막 선 조선일보 사설: 2007.08.09

남북정상회담 실무 준비가 시작됐다. 그 주변에서 예사롭지 않은 얘기들이 들려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조정,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과 같은 문제를 논의할 것이란 說설이 그것이다. 세 가지 모두가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것들이다. 남북정상회담 성사 과정 자체가 북한의 主導주도에 의한 것이라는 느낌이 짙은 만큼, 이 문제들을 노 대통령이 양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번 회담에서 NLL을 건드려 사실상 북측에 영토를 넘겨주는 결과를 만든다면 그 후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는 노 대통령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 일각에서 NLL 문제에 대한 연구 검토가 진행되고 있고, 일부 인사들이 “절대 불변의 線선은 아니다”는 식의 언급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NLL은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북측도 인정한 남북 간의 움직일 수 없는 경계선이다.
북한은 남한 비디오를 보았다고 주민을 공개처형하고 있다. 그런 북한이 국보법 폐지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불과 얼마 전에도 북한 간첩이 붙잡힌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앞으로 북한이 우리의 국보법에 해당하는 북한의 형법과 당 규약을 바꿀 경우, 우리 사회 내부의 논의를 통해 그에 상응하는 국보법의 改廢개폐 문제를 검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북의 요구에 의해 폐지를 논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 기간은 한미 합동 군사연습인 을지포커스렌즈 훈련과 겹친다. 북한이 일부러 날짜를 이렇게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 노 대통령을 평양에 불러 놓고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데 남쪽에선 미국과 전쟁훈련을 하느냐”고 다그칠 계산이란 것이다. 지금 정부는 오래전에 잡힌 훈련 일정을 바꾸는 문제를 검토한다고 한다. 그 자체로 이미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어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사람들이 어떻게 軍군이 북한을 假想가상 상대로 한 중요한 훈련을 하는 도중에 국군 통수권자가 상대방 진영으로 넘어가 있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북한은 核핵과 함께 휴전선 장사정포라는 칼을 우리 목 밑에 대 놓고 있다. 이 위협을 억지하려면 한·미 군 간의 정밀하고 복잡한 협조체계를 점검하는 훈련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군사 위협이 없어지면 한·미 합동 훈련의 필요성도 자연히 줄어든다. 북의 위협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노 대통령이 한·미 훈련의 정당성만 약화시키는 논의에 말려들 경우 그 피해는 온 국민이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중대한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사실상 임기가 석 달여 남은 대통령이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 문제들이 남북정상회담 의제가 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5. 기대보다 걱정이 큰 남북 정상회담 / 중앙일보 사설 2007.08.09

남북 정상회담이 8월 28~30일 평양에서 개최된다고 정부가 어제 발표했다. 그동안 정상회담을 부인해 왔던 정부로서는 결과적으로 거짓말한 게 드러난 셈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한 사회는 물론 한반도 정세 전반에 파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아직 요원한 데다, 남측 대통령 선거를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북핵 완전 포기 및 이행 착수’ 등 긍정적 성과가 있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우리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는 후폭풍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은 남북 간 대결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보다는 우려가 훨씬 크다. 정상회담 추진 전반에 걸쳐 의혹을 자아내는 대목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회담
우선 시기 면에서다. 북한은 2000년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약속을 지금까지 어겨 왔다. 수년간에 걸친 DJ와 현 정권의 정상회담 제의도 무시했다. 이랬던 북한이 남쪽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갑자기 정상회담에 응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평양지도부는 공개적으로 수차례에 걸쳐 한나라당 집권을 결사 반대해 왔다. 이러니 이를 어떻게 ‘남북관계 확대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남측 대선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결정적 카드를 쓴 것으로 봐야 한다.
남측 정부도 오락가락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이후 남북 정상회담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북핵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불과 두 달 전에도 “북핵 문제가 걸려 있는 동안에는 북한이 한국의 대통령을 만나 득 볼 것이 없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정상회담에 대한 근본 입장을 일거에 바꿔 버린 것이다. 이러니 ‘8월 정상회담’은 ‘12월 남쪽 대선’을 의식한 남북 당국의 ‘정략적 합의’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이 우리 정치 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

 정상회담 추진 절차와 내용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 우선 정상회담 장소로 다시 평양을 택한 것은 ‘2000년 답방 합의’에 어긋난다. 특히 ‘장군님을 만나 뵈러 남측 대통령이 또 평양에 왔다’는 식으로 북한의 정치적 선전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두 정상이 만나 무엇을 논의하려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남북 실무접촉에서 의제가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래 정상회담이란 실무회담에서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이룬 뒤 열리는 게 상식이다. 회담을 불과 보름 앞두고 이제부터 의제를 논의한다니 이런 식의 회담이 있을 수 있는가. 이 정부 들어 5년이 다 되도록 가만히 있다가 왜 임기 말에 이런 일을 벌이려 하는 것일까. 이러니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우려가 불식되려면 정상회담에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성과가 나와야 한다. 특히 북핵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만약 ‘손에 잡히는 실질적 성과’가 없다면 심각한 안보 위기가 올 수 있다.

북핵 폐기 등 실질적 성과 있어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해 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한 차원 진전시킨다’는 미망에 빠져 우리 헌법과 영토를 손상시키는 어떤 논의에 응해선 결코 안 된다. 서해북방한계선 재설정이 한 예다. 또 정상회담 결과를 비롯한 추진 과정 전반도 국회에 보고해 국민적 동의도 얻어나가야 한다.
국민들도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국민들은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이라는 희망에 가득 찼었다. 그러나 경협 측면에서의 일부 진전을 제외하곤 남북 화해에 근본적 변화는 없었다. 이런 측면에 유념, 정상회담의 결과를 비롯한 전반을 냉정하게 지켜봐야 한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이 대선이라는 국내 정치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6. 소아병적인 ‘남북 정상회담 경계론’ / 한겨레 사설  2007-08-09  

이달 말 열릴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일부에서 이번 회담의 의미와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회담이 잘 되도록 하기보다는 대통령 선거에 미칠 파장을 더 염두에 두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적 과제를 정파적 이해로 재단하는 이런 태도가 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유독 과민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회담 개최가 발표되자마자 대변인 이름으로 반대 논평을 냈다가 이후 ‘적극 반대하지는 않지만 대선에 악용돼선 안 된다’는 쪽으로 다소 물러섰다. 대선을 모든 판단의 중심에 놓고 저울질하는 모습이다. 증거도 없이 정상회담 관련 뒷거래 의혹을 부풀리려는 움직임도 집권이 유력한 원내 제1당답지 않다. 얼마 전 ‘한반도 평화비전’이라는 전향적 대북정책을 내놓을 때의 분위기와도 걸맞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나라의 주요 사안을 두고 정치권이 우려하는 만큼 허술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한 긴급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75.6%가 정상회담 개최에 찬성하지만 회담이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응답은 35.5%에 그쳤다. 회담 필요성과 예상 결과 사이에 큰 틈이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북한 핵문제 해결과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면 이 틈이 줄어들도록 함께 노력해야 옳다. 그러면 이번 회담이 대선에 줄 영향을 걱정할 이유도 없고,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도 더 높아질 것이다.
일본이 이번 회담을 두고 경계심을 나타내는 것은 유감스럽다. 남북 정상회담은 6자 회담 진전과 동북아 평화체제 논의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은 북한과의 양자 사안인 납치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주된 흐름에서 밀려나고 있다. 국내 정치적 손익 계산을 앞세운 탓이다. 미국 정부가 이번 회담의 주된 의제로 북한 핵 폐기를 주문한 것은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남북한 사이에는 다른 여러 중요한 의제가 있음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정상회담의 성과는 이념과 정파를 넘어서 우리 국민과 한반도 전체에 도움이 된다. 정치 노선이 다르더라도 회담을 경계하기보다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할 건 협력해야 할 이유다. 이번 회담이 혹시라도 남남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정부가 사전에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야 함은 물론이다.


7. 김정일 위원장이 결단해야 할 것 / 한겨레 칼럼 2007년8월13일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하며,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는 전 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민주주의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해나가야 하겠습니다.”
북쪽 사람들은 이런 말을 남쪽 사람에게 심심찮게 한다. ‘건국’은 ‘통일’로 바꿔서. 위 인용문은, 1945년 10월14일 젊은 김일성이 평양 시민 앞에 처음 나타나 ‘모든 힘을 새 민주조선 건설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한 연설의 일부분이다.
북쪽 사람들은 여전히 수십년 된 운동론적 관점으로 남북 관계를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인식이 객관적 조건을 따라잡지 못해 공허하다. 잘사는 남쪽이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돈을 내놓는 건 당연하다고 강조하면, 남쪽 자본이 효과적으로 투자될 수 있도록 북쪽 체제를 바꿔나가야 할 당위성은 은폐되기 마련이다. 북쪽이 이른바 민족모순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쪽은 미국과의 관계만 진전되면 모든 문제가 풀릴 듯이 행동한다. 미국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도 실제로는 미국에 기대는 꼴이다. 하지만 미국은 자신의 안보 이해와 패권 유지·강화에 치중할 뿐 북한 주민의 삶에는 큰 관심이 없다. 치열한 자구 노력 없이 북쪽이 미국으로부터 얻을 건 별로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10여년 경제·사회 분야에서 여러 시도를 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본적 식량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고 탈북 행렬은 계속된다. 미국의 압살 정책에 맞서느라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미 6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앞날을 생각해 봐야 할 나이다.
이런 때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에 소중한 기회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임기 중 핵 문제를 해결하고 대북 관계를 정상화하려 한다. 한국과 중국은 북한의 변화 노력을 뒷받침할 준비가 돼 있다. 일본의 적대적 대북 정책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과거 중국의 덩샤오핑이나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한 것과 같은 김 위원장의 결단이다.
첫째, 핵 포기 뜻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북쪽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전 주석의 유훈이라고 되풀이해서 말해 왔다. 우선 과거와 현재의 핵 계획과 시설·물질·무기 등을 상세히 밝힘으로써 다른 나라가 의심을 가질 여지를 없애야 한다. 북쪽의 안보와 체제 보장에 대한 우려는 핵 포기 의지만 확실하면 어렵지 않게 풀린다. 6자 회담 자체를 뒤집을 수 있는 세력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
둘째, 개혁·개방 의지를 구체화해야 한다. 한민족의 역사적 당위인 한반도 경제공동체 구축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제로 한다. 남북 상생 구조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협은 오래갈 수 없다. 북쪽은 지금 개혁·개방이라는 말을 꺼린다. 체제동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개혁·개방의 길을 걸은 중국과 베트남의 집권세력은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셋째, 한반도와 관련된 모든 사안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는 사실을 흔쾌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그래야 실속 있게 진척된다. 북쪽이 강조하는 ‘우리 민족끼리’ 원칙은 남쪽을 핵심에 놓지 않는 한 비현실적 수사에 그친다. 북쪽을 일관되게 지원할 수 있는 나라는 남쪽뿐이다. 90년대 이후 한반도 관련국들이 어떤 행태를 보였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쪽보다 북쪽의 앞날에 훨씬 중요하다. 김 위원장은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8. 남성만의 남북 정상회담? / 한겨레 칼럼 2007-08-13

김정수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상임대표

7년 만에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오는 28~30일 평양에서 열릴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전국을 다시 한번 흥분시켰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두고 국민들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남북경협의 안정적 확대 등의 기대를 걸고 있다. 평화통일 관련 시민단체들 역시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바라는 환영을 담은 논평을 발표했고,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역시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정착의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표명했다.
이런 환영과 기대의 물결 속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편으로 쓸쓸해지는 것을 감출 수 없다. 지난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인 현장에서 여성들의 얼굴을 거의 볼 수 없었던 것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난 정상회담에서 남쪽 대표단의 여성인사는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를 제외하고 단 한 명이었다. 민족의 비극인 분단의 역사를 평화의 역사로 전환시키는 첫 출발점이던 역사적 현장에 온통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들의 웃는 모습만 가득했던 게,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여성들에게 준 큰 실망과 자괴감을 주었다.

이번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평양에 여성들도 함께 가기를 바란다. 여성들이 남북 정상회담 대표단에 포함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보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대표성이 이번 대표단 구성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여성들의 평화통일 염원을 반영하자면 방북 대표단에 여성 참여율이 최소한 30% 이상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여성계가 요구하고 있는 성인지적 평화·통일정책을 참여정부가 성의있게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의 참여는 또한 통일과 화해, 평화 창조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확대시켜 나가기 위해 필요하다. 1970년대 이후 여성들은 민주화, 인권, 통일,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1991년 분단 이후 최초로 민간 차원에서 판문점을 왕래하여 성사시킨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남·북·일본 여성 참여) 이래 꾸준히 남북 여성교류를 진행시켜 왔고, 평양에서 열린 3차 토론회(1992년 가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남북 여성들의 공동의제로 채택하여 지금까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여성들의 연대를 지속하고 있다. 아울러 현재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여성본부’에 여성단체 48곳이 참여하여 북쪽 여성과 만남과 교류, 소통과 이해의 과정을 넓혀가고 있다. 이런 역사와 경험을 돌이켜 볼 때 한반도 평화 정착에 중요한 전환의 계기를 맞이하게 될 제2차 남북 정상회담 남쪽 대표단에 여성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평화통일을 위한 여성들의 적극적 역할을 더욱 확장시키기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또한 ‘평화협상 및 평화합의 이행 과정에 여성들의 참여를 권고한 유엔안보리 결의안(UNSCR) 1325’(2000)를 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을의 협상테이블에서 국제적 협상테이블까지!’란 여성 평화운동의 구호는 남성과 여성의 경험이 통합됨으로써 평화의 미래를 가꿔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분쟁지역의 평화협상에서 여성들의 주체적 참여는 유엔과 국제적 차원에서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미래를 일궈가는 일에도 여성들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해야 할 것이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평양에서 남쪽 대표단으로 참여한 여성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


9. 남북 합의, 야당 후보와도 미리 협의하라 /중앙일보 사설 2007.08.13 01:42


이달 말 남북 정상회담은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겨우 6개월 남겨 놓은 시점에 열린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합의한 내용을 실제 이행할 주체는 차기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합의가 차기 정부로 이어져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6월 중순 한 인터뷰에서 “전임 사장이 발행한 어음은 후임 사장이 결제하는 것이며, 내 임기가 두 달이 남았든 석 달이 남았든 북한에 가서 도장 찍고 합의하면 후임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합의를 뒤집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한 대통령이 합의했다고 반드시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건 아니다.
외교적 합의도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국민에게 큰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경우 국회의 동의를 받아 효력을 발휘하도록 돼 있다(헌법 제60조). 남북 간의 합의라고 다를 수 없다. 그러니 남북 정상 간 합의도 국민적 공감대를 벗어나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정상회담에 앞서 노 대통령이 여야 정치인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공감대를 넓혀 놓는 것이 좋다.
여권 주장대로 남북 정상회담은 초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야당이 지적했듯 무엇을 합의하려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협조만 하라는 건 곤란하다. 더구나 노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이번 회담에서는 차기 정부에 큰 재정적 부담을 떠안기는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 합의를 ‘누가 감히 거부할 수 있느냐’는 배짱으로 밀어붙이는 건 대통령으로서 온당한 처신이 아니다.
다행히 한나라당은 다음주 초 대통령 후보를 결정한다. 의지만 있다면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와 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여건이다. 이런 절차를 정상회담 전략 노출이란 부담으로 볼 게 아니라 남북관계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수순으로 여긴다면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이런 우리 내부의 모습이 임기 말 노 대통령의 대북 협상력을 높일 수도 있다.


10.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진전이 두려운 사람들 / 한겨레 사설 2007-08-14  

오는 28~30일 열릴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쪽 준비접촉이 어제 개성에서 있었다. 항공편을 이용한 1차 회담 때와는 달리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 기자단 모두 경의선 도로를 통해 방북하기로 한 것은 그 자체로 일정한 진전이다. 필요하다면, 정상회담 합의서에 큰 갈래로만 잡아놓은 의제를 좀더 구체화는 데 도움이 될 추가 접촉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 세력은 정상회담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아 실망스럽다. 북한 핵문제 진전은 이번 회담의 전제조건이자 주요 목표다. 회담에서 북쪽의 핵 포기 의지를 확인하고 회담 성과 역시 핵문제 해결을 뒷받침해야 한다. 하지만 정상회담 자체가 핵문제 협상 자리는 아니다. 핵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 협상은 국제 틀인 6자 회담에서 이뤄진다. 이번 회담은 정전체제를 대체할 평화체제의 기본틀을 짜고 경협 강화를 통해 남북 경제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할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도외시하고 핵문제만을 강조하는 것은 이번 회담을 6자 회담의 하위 개념으로 끌어내리려는 것과 같다.
정상회담 기간에 잡혀 있던 화랑·충무 훈련을 정부와 군 당국이 9월 이후로 연기한 것을 두고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 세력이 비난하는 모습은 치졸해 보인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도록 여건을 만드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데도 낡은 대결 논리만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북쪽이 회담 기간 중 대규모 군사훈련을 한다면, 이들은 북쪽의 양면성을 지적하며 회담 취소까지 거론할지 모른다. 구체적 의제가 되기 어려운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문제를 회담과 관련시켜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정부는 군사적 신뢰가 지금보다 더 진전된 다음에야 북방한계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혀 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북방한계선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은 평화체제 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정상회담은 무엇보다 평화체제 논의와 경협 등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이는 핵문제 해결과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진전이 두렵지 않다면 이번 회담이 성공하도록 모두 대승적으로 협력해야 마땅하다.


11. 노무현 대통령에 바란다 / 한겨레 칼럼 2007년 8월15일

문규현/신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대표

2차 남북 정상회담이 곧 평양에서 열린다. 1989년 8월15일, 평양 청년학생 대축전에 참가한 임수경과 함께 판문점을 넘어 북에서 남으로 넘어왔던 나로서는 감회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분단 이후 민간인이 판문점을 통과한 것은 처음 있었던 일인지라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했던 그 사건으로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 하여 3년6개월여 감옥에 있어야 했다.
마침내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6·15 선언이 발표되는 것을 감격스럽게 지켜보았다. 이제 다시 2차 남북 정상회담이라니, 개인적으로 겪었던 여러 고통들은 오히려 영광이고 축복이다. 그동안 남과 북을 잇고자 분단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평화통일의 길에 투신하고 희생을 다했던가.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하고자 제 몸 바쳐 다리를 만들어준 수많은 까치와 까마귀들 이야기, 그 오작교 전설처럼 말이다. 정상회담에는 이들의 염원과 바람이 투영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경협을 통한 신뢰구축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건 진정한 의지만 있다면 주무부처에서 얼마든지 알아서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어렵게 이뤄진 정상회담이라면 그 이름과 품위에 걸맞은 획기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7·4 공동성명, 남북 기본합의서, 6·15 선언을 이어가고 확고히 하는 의미가 있다. ‘신뢰’라는 단어 뜻을 새삼 찾아보니 ‘굳게 믿고 의지함’이라고 나와 있다. 외적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그러자면 남북 사이 불신의 장벽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데 필요한 합의와 실천이 필요하다. 사실 그동안 여러 역사적인 선언들이 나왔음에도 핵심에는 여전히 접근하지 못하는 상태 아닌가.
1989년 8월, 판문점을 통해 남쪽으로 넘어오기 전 나는 주한미군이 남한에서 나가줄 것과 평화협정 체결을 호소하였다. 남쪽을 지키는 판문점의 주인은 명백히 미군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또한 믿을 수 없게도 여전히 우리는 잠시 휴전이라는 정전협정의 살얼음판 위에서, 서로 총부리 겨누는 것이 당연한 전시체제를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단세월이 62년을 넘어가고 남북 정상이 두 번째 만나는 이 시점에도, 그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 더없는 수치이고 상호불신의 극명한 현장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할말은 하겠다던 그 초심을 이번만큼은 과감하게 발휘해주기 바란다. 한반도에 자주와 평화,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역사적 대업을 이뤄달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평화협정 체결과 그 이행 과정에서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켜 한반도 자주를 실현하겠다는 것, 그에 맞춰 남쪽에 드리워진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군축도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기 바란다. 아울러 통일 방안과 민족 통일기구 구성에 대한 진전도 이뤄주길 기대한다.
이런 역사적 대업을 이뤄준다면 나는 진심으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큰 박수를 보낼 것이다. 나를 두 번씩 감옥에 넣었던 보안법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고, 내가 있는 성당의 신도인 한 선생님이 학교 아이들에게 통일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그 법에 엮여 고초 겪는 걸 지금도 아프게 지켜보고 있다. 이토록 모순된 상황 속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시끄러운 현실도 일단 접어두련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통일과 자주국가를 향한 확고한 의지와 실천 방향에 합의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12. 남북 정상회담, 연기된 김에 더 착실한 준비를 /한겨레 사설 2007-08-19  
  

이달 말로 예정됐던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10월 초로 연기됐다. 수해 복구가 시급하다는 북한의 요청 때문이다. 실제 지난 7일부터 계속된 북한 지역의 집중호우 피해는 알려진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한다. 농경지와 수송·에너지·통신시설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기고, 이재민도 수십만명에 이른다. 평양 시내까지 침수되는 바람에, 손님을 맞으려야 맞을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특히 곡물 손실이 심각해, 예상 피해규모를 45만톤으로 추산하는 기관도 있다. 수해 이전에도 올해 식량 부족분이 50만톤인 북한으로선 예사 문제가 아니다. 북한 사회 전체가 감당하기 힘든 재난에 직면한 것이다.
북한이 회담 연기를 요청하면서 “많은 피해를 입어 수해 복구와 주민 생활 안정이 급선무”라고 밝힌 것도, 이런 어려운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으로 봐야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서둘러야 할 때다. 회담 연기의 배경을 두고 이런저런 억측을 하기엔 북한의 사정이 너무 참담하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돈 문제 때문에 회담일이 하루 늦춰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르다.
물론, 정상회담이 연기된 것은 아쉽다. 회담이 예정대로 이달 28일 시작되게 됐다면, 9월 초부터 본격화할 6자 회담을 앞두고 남과 북의 협력을 통한 선도적 구실도 기대할 수 있었다. 정상회담이 늦춰지면서 회담 결과를 구체화하고 제도화할 수 있는 시간과 동력이 줄어들게 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회담 날짜가 대통령 선거일에 좀더 가까워짐에 따라, 정상회담을 통해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는 게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도 커질 수 있다.
하지만 한층 내실있는 준비가 가능해졌다는 장점도 있다. 이달 초 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된 뒤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으로는 제대로 된 여론수렴이나 체계적 대비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남은 기간을 잘 활용해 여론수렴에 좀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회담 뒤 여러 부문에서 회담 성과를 한층 빠른 속도로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9월 중에는 북한 핵 문제에서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남과 북의 정상은 좀더 편한 상황에서 남북관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늘어난 준비 기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회담의 성과가 달려 있다.



13. ‘거리’를 둘 줄 아는 지혜 / 한겨레 칼럼 2007-08-20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남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은 햇볕정책의 효율성을 입증했지만, 햇볕정책을 좀더 넓은 맥락에서 본다면 반쪽 성공 이상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북한과 평화 공존의 기초를 잘 닦아 놓았지만 전반적으로는 한국의 대미 종속은 지난 10년 동안 심화됐을 뿐이다. 미국이 이라크, 아프간 침략에 주력하는 상황이어서 동아시아에서의 위기를 여태까지 모면할 수 있었지만 미국과의 예속적 관계가 달라지지 않는 한 햇볕정책의 성과들은 외부 충격으로 쉽게 무너질 모래성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과 같은 격의 미국의 하위 파트너인 사우디와 파키스탄이 각각 이라크 침략과 아프간 침략 직전에 미국을 비공식적으로 말렸다고 해서 미국이 침략을 접었던가? 북-미 2·13 합의가 한국의 노력이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이란에 주력하겠다는 미국 의지의 결실이었던 것처럼, 대미 예속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대북 도발에 대한 미국의 결정을 역시 한국의 노력으로 바꾸기가 힘들 것이다.
‘미국 문제’의 핵심은, 세계적 일극 체제 안에서 중심 역할을 하기에는 미국 자체로서 힘이 달린다는 것이고,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지금으로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유일한 부문은, 세계 전체 군비의 46%나 먹어버리는 군수 복합체뿐이다. 미국이 이 유일한 특장을 활용하여 2003년부터 유전지역 점령을 시도해 봤는데, 그 결과는 참패였다. 침략군과의 ‘비대칭적 전투’에서 쓸 수 있는 현대적 무기가 이제 전세계 곳곳으로 보급돼 이라크 침략과 같은 식민지 전쟁의 성공률은 낮아졌다. 그러나 미국 금융권의 부실이 노출되고 지속적으로 가치가 하락하는 달러화의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위치가 약화되는 등 금융에 의한 미국의 세계 지배력이 계속 상실돼 가는 만큼, 앞으로도 자원지역에 대해 직간접으로 침략할 가능성이 높다. 고갈돼 가는 원유값이 안정적으로 배럴당 60달러를 상회하는 요즘 상황에서는, 유전에 손을 뻗치는 것은 미국 지배자들에게 계속 ‘남는 장사’로 인식될 듯하다.
이렇게 되면, 아프간, 이라크, 레바논에서 ‘높은 나라’의 부름에 이미 순순히 응한 대한민국은 또 언제, 어느 전장으로 불려갈지 미지수다. 미국이 다르푸르에서의 종족 갈등과 인권 문제를 핑계로 삼아 수단이라는 중국의 ‘기름줄’을 자르려 해도, 석유 대금을 달러 대신에 이제 유로화로 받는데다 중-러 중심의 상하이협력기구와 가까워진 이란을 ‘핵무기 개발’과 같은 핑계로 치려 할 때도, 대한민국을 당장 호출할 확률이 높다. 대한민국이 이와 같은 호출에 바로 달려가는 자세를 견지할 경우, 미국과 중-러 블록의 군사 충돌과 한반도 전장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까지 가지 않아도, 이슬람권에서의 한국인들을 피랍위험에 노출시키는 일부터 북한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의 협력을 어렵게 만들어 햇볕정책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까지 온갖 불이익을 다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보수 정계와 관료집단한테는 미국의 심부름에 응하는 것은 반사작용에 가까운 일이다. 저들이 ‘국익’을 들먹이지만, 사실 자기 집단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을 동일시하여 행동하는 듯하다.
살육 이외에 ‘리더십’을 행사할 도구가 없는 초강대국의 들러리가 되는 것은 망국적 재앙을 초래할 일이다. 우리가 진정 ‘동아시아의 이스라엘’이 되려고 하는가? 햇볕정책의 목표인 한반도 평화공동체 구축을 달성하자면,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초강대국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박노자 글방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  


14. 남북 정상회담, 차기 정권에 넘기는 게 順理다 /동아사설 2007.08.19


28일로 예정됐던 남북 정상회담이 10월 2일로 연기됐다. 북한이 홍수 피해를 이유로 연기를 요청해 왔고, 우리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결과다. 물러나는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불과 2개월 남짓 앞두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마주 앉게 된다니 생산적인 회담이 될지 의문이다. 회담이 북핵 문제를 비롯한 제반 현안에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졸속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차기 정권으로 넘기는 것이 순리다.

연기 경위부터 석연치 않다. 북한이 그제 오전 9시 20분 “10월 초로 연기하자”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오자 정부는 오후 2시에 관련 회의를 열어 이를 수용했다. 그 짧은 시간에 무엇을 따져 보고, 무엇을 검토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 하고 북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남북 정상회담은 대통령의 평양 소풍이 아니다. 시기와 의제, 준비 절차 등 모든 것이 격에 맞아야 한다.
북한 측의 설명대로 북 전역에 수재가 발생한 것은 맞다. 강성대국 운운하면서도 치산치수(治山治水)엔 손 놓아 400∼500mm의 비에 국토와 주민을 떠내려 보내는 북한 정권의 한심한 국가관리능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아무튼 수해가 유일한 이유라면 10월 정상회담은 더더욱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북의 능력으로는 그때까지 복구 작업을 마치기도 어렵다. 차라리 북에 충분한 시간을 준 뒤에 회담을 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회담은 갖가지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범여권에선 벌써 “정상회담 분위기가 대선 직전까지 연장됨으로써 선거에 유리하게 됐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경계심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북한이 대선에 개입하기도 더 쉬워진다. 자칫하면 선거전이 정상회담 찬반 논전(論戰)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더욱이 10월 초 북에선 경축행사가 이어진다. 8일은 김 위원장의 노동당총비서 취임 10주년, 9일은 핵실험 1주년, 10일은 노동당 창건 62주년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하필 그 무렵에 평양에 가면 북의 정치적 선전에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15. 정상회담, 차기 정부 이관도 검토해야 /중앙일보사설 2007.08.20

28일 개최키로 합의됐던 남북 정상회담이 10월 초로 연기됐다. 평양을 비롯해 북한 곳곳에서 발생한 물난리 때문이라는 것이 남북 당국의 설명이다. TV 화면에 비친 평양시 모습은 홍수 피해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복구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평양 지도부로선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치르기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정상회담 연기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정상회담 자체에 대해 ‘새로운 검토’가 필요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상회담이 남측의 12월 대통령 선거와 6자회담 등에 이전과는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우선 회담 시기에서다. 원래 8월 말 정상회담 자체도 무리수였다. 남측 대선에 개입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정상회담 요구를 7년간 무시해 왔다. 그런 북한이 남측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정상회담을 덜컥 수용한 것을 어떻게 순수하게 봐줄 수 있겠는가. 그런 정상회담을 이번엔 대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둔 10월 초로 연기한다니 국민적 의혹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수해가 정상회담 연기의 유일한 이유일까 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정상회담의 순수성이나 투명성이 더욱 훼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는 10월 정상회담에 더욱 차분하고 사려 깊게 임해야 한다. 남남갈등을 증폭시키고 국민의 납세 부담이나 가중시킬 합의를 추진해선 안 된다. 북방한계선(NLL) 재설정이나 수십조원에 달하는 경협 제공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야당을 설득해 초당적 합의를 기반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해 간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성과가 나오는 법이다. 회담이 연기된 만큼 시간도 충분하다.
10월 초면 노무현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는 불과 두 달 반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설사 정상회담에서 어떤 합의가 나온다 해도 그 실천은 차기 정부가 담당할 수밖에 없다. “전임 사장이 사인하면 후임 사장이 결제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은 오만에 찬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남북 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추진해야 하는 민족적 과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순리를 따르는 것인지 답이 나온다. 그것은 정상회담을 다음 정부로 넘기는 것이다. 이왕에 연기됐으니 이런 측면을 정부가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 주길 기대한다.


16. 남북 정상회담, 대타협의 예술을 / 한겨레 칼럼 2007년 8월22일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10월 2∼4일 평양에선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이 열린다. 김대중-김정일의 첫 만남 때 품었던 설렘을 넘어 이번엔 미리 회담 준비·의제·파장들을 차분히 사려해 보자. 먼저 회담 준비단계에서는 지지, 반대세력을 가리지 말고 견해를 경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지하는 쪽 견해만 듣는다면 정치적 파당성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회담이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6자 회담 중간에 열리기에 관련국들의 견해도 청취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회담의제다. 대략 △비핵화·평화·군축 △통일 △경제협력 △인도주의 △남북관계 제도화 등 다섯 가지로 뭉뚱그릴 수 있을 것이다. 합의의제와는 별개로 일단 이들은 전부 회담의제로 삼아야 한다. 다행히 회담개최 합의서에는 ‘한반도 평화, 민족 공동번영, 조국통일’ 셋이 전부 들어있다. 금번 회담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중대 현안이 존재하는 가운데 열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1차 정상회담에서 빠진 평화·비핵화·군축의제는 논의와 합의 자체로 향후 남북을 강력히 구속함은 물론, 6자 회담 진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평화협정·평화체제나 정전체제 종식에 관한 평화선언은 남북의 평화의지를 확고히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분단고착의 평화를 지향할 수는 없기에 통일의지 표명 역시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비핵화·평화·통일이란 삼중 과제를 함께 실현해야 하는 세계사 초유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과제에 더해 경제협력 심화, 인도주의 문제 해결의 진전, 남북관계 제도화를 위한 상주대표부 설치에 합의한다면 남북관계는 성큼 도약할 것이다.
국내 차원의 경우 여야 공히 정치적 유·불리, 특히 12월 대선을 의식하면 안 된다. 2000년 정상회담 발표와 총선, 2002년 2차 북핵위기와 대선에서 보듯 이벤트로서의 남북문제는 이제 국내 정치지형과 선거국면을 좌우하지 못한다. 정상회담 발표라는 대형 남북이슈를 생산하고도 여당은 2000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북핵 위기라는 중대 안보 의제에도 2002년 대선에서 보수 후보는 진보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민주화의 심화가 남북문제와 내부의제를 분리시킨 동시에, 더는 전자가 후자를 결정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 때문에 보수 진영이 금번 정상회담을 찬성해야 할 근거는 충분하다. 첫째 노무현-김정일의 합의내용에 따라 차기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북한과 초기 힘겨루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보수의 손을 들어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보듯, 남북문제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진보세력의 주장만을 수용하지는 않았다. 둘째 노무현 정부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로 말미암아, 국회 보고나 여야 동의 없는 정권 차원의 독자적 남북 프로그램을 가동시킬 수 없다. 셋째 2000년 총선과 2002년 대선처럼 더는 남북관계가 국내정치를 좌우하는 단계는 넘어섰다.
남쪽의 지속적인 대북지원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깊은 감사 표시는 진보와 보수를 포함한 남한 동포의 마음을 열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을 개성공단에 나와 환영·환송한다면 개성공단을 평화와 협력의 상징으로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남한이야말로 북한을 도와줄 가장 믿음직한 상대요, 남한 없는 경제회복과 세계진출은 어렵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곧, 남한을 발판삼아 체제발전과 국제진출을 이루라는 것이다. 그 대가로 민족과 세계엔, 우리와 함께 평화와 비핵화만 선물하면 된다. 이번 회담에서 이 쉬운 교환을 위한 역사적 대타협의 예술을 이루길 기대한다.


17. 기구한 정상회담 /한겨레 칼럼 김효순 대기자 2007년8월23일

“북한 같은 나라와는 수뇌 사이에 직접 대화하지 않으면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보다도 미국이다.”
국내 인사가 이런 말을 하면 얼마 전만 해도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며 해코지를 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앞에 인용한 부분의 화자는 지난해 9월 일본 총리직에서 물러난 보수정객 고이즈미 준이치로다. 그는 5년5개월이라는 장기 재임기간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몇 차례 강행해 한국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았으나, 미국과의 사전 조율 없이 평양을 방문해 꽉 막힌 북-일 관계의 숨통을 트려했던 점은 평가할 대목이 있다. 부시 행정부의 견제와 일본인 납치문제의 역풍으로 북-일 관계 정상화 꿈을 접은 그는, 작년 6월 말 퇴임을 앞두고 부시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멤피스 생가를 함께 찾는 등 돈독한 우의를 과시했다. 북한과 직접대화를 하라는 고이즈미의 마지막 설득에 대한 부시의 답은 “직접 대화에 응하면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 뿐”이었다고 한다.
2001년 9·11 사건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부시의 권세도 임기 말이 되면서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언론에 불리한 정보를 흘리지 않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치던 부시 진영의 전열도 너덜너덜해졌다. 최근에는 불똥이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던 팀에 번졌다. 부시 행정부의 통치를 상징하는 몇몇 표현을 놓고 전직 참모진들 사이에 공을 가로챘느니 하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다툼 대상이 된 표현의 하나가 2002년 초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등장한 ‘악의 축’이다. 주장이 엇갈리는 대목이 있기는 하나, 연설문 초안을 작성한 데이비드 프럼은 이라크 공격을 정당화하는 최선의 이유를 부각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의회에 선전포고를 요구했던 연설을 참조했다고 한다. 이라크를 중심으로 하는 테러 지원국의 모임을 2차대전 당시의 독일·이탈리아·일본의 3국 동맹 추축에 견주어 처음에는 ‘증오의 축’이라고 썼다. 하지만 부시 주변의 보수적 복음주의 분위기가 작용해 증오가 악으로 바뀌었다. 애초에는 이라크가 표적이었으나,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안보보좌관의 의견으로 이란이 추가됐고, 최종단계에서 북한이 들어갔다고 한다.
악의 축이란 표현의 지적 소유권을 놓고 부시의 옛 참모들이 드잡이를 하는 데는 관여할 바 아니나, 그 말의 함의가 한반도 정세에 가져온 악영향은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단순한 적대관계가 선과 악의 도덕적 대치구조로 바뀌면 차원이 달라진다. 악의 세력을 섬멸해야 하는 ‘십자군’적 발상에 서면 타협의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 남북대화 기조가 뒤틀리고 북한이 작년에 핵실험 강행이라는 극단적 카드까지 사용한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부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힘자랑을 하다가 제풀에 지쳤는지 지난해 하노이 아펙 정상회담 무렵부터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외적으로 여러 주제를 놓고 잃어버린 세월 논쟁이 유행하고 있지만, 정말로 아쉬운 것은 이 분야다. 대북 강경론과 퍼주기 논란 속에 금쪽 같은 시간을 흘려버린 끝에 6·15 선언 이후 7년여 만에 후속 정상회담이 잡히는가 했더니 다시 연기됐다. 어렵게 성사된 회담이 자연재해 때문에 미뤄질 수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미뤄진 날이 35일이라고 하지만, 나라 안팎의 정세변화를 보면 너무 길다.


18. 종전선언과 대담한 경협으로 가자 / 한겨레 칼럼 2007년 8월23일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9월에는 6자 회담이 재개된다. 북한 핵의 폐기를 위한 다자간 협력체제인 이 회담이 성공해야 한다는 점에는 전혀 이견이 없지만, 이 회담의 성공만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분단 극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관련 당사국들의 목표는 한반도의 현상유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남북 간에 전쟁이 나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일정 수준의 긴장과 대립은 상존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남북한이 해야 할 몫은 따로 있어야 하며, 10월로 연기되어 열리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은 중요하다.
필자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 채택되길 희망한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 이후 50여년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휴전’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은 공식적으로 끝나야 한다. 종전선언은 현실을 크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추인하는 의미를 가지기에 남북 정부에 부담이 적다.
종전선언은 단지 법적·제도적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남북 간의 관계가 공식적으로는 ‘휴전’ 상태라는 이유 때문에 남북한 사람은 오랫동안 사고와 행동에서 많은 제약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적은 여전히 우리를 노리고 있다”라는 체제의 논리가 사라질 때 남북 두루 합리적 이성은 대폭 신장될 것이다. 좌파적 사상과 실천을 ‘이적’으로 몰아 처벌할 수 있는 남쪽의 국가보안법이나, 김일성·김정일의 사진을 깔고 앉는 행위조차도 처벌할 수 있는 북한 형법 모두 비이성의 표현이 아닌가? 그리고 종전선언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평화·군축에 기여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다음으로 남북의 경제협력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넘어 확장·심화되도록 하는 대담한 합의가 필요하다. 남북의 존재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북한 사회의 존속에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도록 하고, 남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북한이라는 시장과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개성공단 같은 지역이 여럿 만들어져 그 지역이 도대체 누구 땅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이 바로 통일의 지름길이 아닐까?
북한 체제의 억압성에 대한 비판은 정당이나 시민사회의 몫이지, 북한과 대화하며 협상을 끌고 가야 하는 남한 정부의 주된 몫은 아니다. 정부는 이데올로기 대립을 흐물흐물하게 만들 수 있는 남북 간 상호이익 체제를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 북한 정권의 생경한 구호성 주장도 들어 넘기며, 꾸역꾸역 공통의 이익을 만들어내야 한다. 사실 북한에 대한 과감한 경제지원은 통일 한국의 기반을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국제협력단’(KOICA)이 이념을 떠나 벌이는 개발도상국 경제개발과 복지구축 지원사업을 북한을 위해서도 전개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러한 종전과 경협이라는 목표가 분명해질 때 북한 정권을 핵의 불능화로 이끄는 것도 훨씬 용이해질 것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완고한 반대자였던 한나라당도 근래 ‘한반도평화비전’을 발표하면서 변화된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명박 후보는 과거의 강경 대북정책을 부활시키려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한나라당이 현재의 지지도에 도취되지 말고 ‘한반도평화비전’에 충실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한반도 정세와 국민의 의식을 고려할 때 대결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은 정치적 자해행위이기에. 또한 한나라당은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을 편 미국 부시 정부의 낭패와, 부시 정부의 입장전환조차도 무시하고 강경책을 고수한 일본 아베 내각의 선거 패배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 NLL 수역 평화정착 노력해야 / 한겨레 칼럼 2007년 8월 27일

서주석(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전 청와대 안보수석)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성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부 장관이 이를 ‘영토 개념’이 아니라 ‘안보 개념’에서 보아야 한다고 한 발언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 등은 곧 있을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 포기 및 해상경계선 재설정에 관해 논의할 용의를 표명한 것으로 간주하고 질타를 가하기도 했다.
과연 이 북방한계선은 영토 개념에서 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는 영해선, 곧 우리 영토의 해상 한계선이라는 것인데, 과연 그런가? 두 차례 교전, 특히 2002년 서해교전에서 이 선을 지켜내고자 필사의 노력을 했던 우리 젊은 군인들이 아깝게 희생되면서 이를 영해로 보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널리 퍼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인식이 보편타당성을 얻으려면 관련 사실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를 따르면 육지에 인접한 북방한계선 남북의 수역은 모두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이 선이 영해선을 의미한다고 하면 위헌적 주장이 된다. 1953년 정전협정에서 육상의 군사분계선만 규정했을 뿐 해상경계선을 따로 정하지 않아 휴전 직후 유엔군사령관이 북방한계선을 설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제 그것이 영해선이라면 우리 영토를 유엔군사령관이 지정한 셈이 된다. 또 이 선이 영해선이라면 육상의 군사분계선도 국경선이라고 해야 할 텐데 정작 그런 주장은 없다.
정전협정에서 해상경계선이 배제된 것은 1952년 초 판문점 휴전협상에서 유엔군 쪽과 공산군 쪽이 영해의 범위를 둘러싸고 벌인 논란의 결과였다. 당시 압도적 해군력을 보유하면서 휴전 후에도 북한을 압박하기를 원했던 유엔군은 3해리 영해를 주장했고 해상 활동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를 바랐던 공산군 쪽은 12해리 영해를 주장했다. 회의가 연일 열렸지만 견해가 좁혀지지 않자 양쪽은 아예 규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북방한계선 설정 뒤인 55년에 북한은 12해리 영해를 규정한 내각 결정을 채택했고, 우리는 77년에 12해리 영해를 규정한 영해법을 선포했다. 영해법에 우리의 영해기선은 덕적도 서남쪽의 소령도까지 직선기선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법리상 그 이북의 영해기선은 육지 및 섬의 저조선이다. 서해 5도까지 직선기선을 연장한다면 40해리가 넘는 소청도∼연평도 구역은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이는 “어떠한 국가도 타국의 영해를 공해 또는 배타적 경제수역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법으로 직선기선 제도를 적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유엔해양법협약 규정 7조 6항과도 배치된다.
휴전협상 당시의 논란을 상기한다면 이 수역 모두를 자신의 영해로 주장하는 북쪽의 태도도 문제지만, 우리도 이를 영해선으로 설정하기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 북방한계선은 이미 남북의 실질적 해상 경계선이며 군사 분계선이다. 가끔 긴장이 발생해도 충돌이 매일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남북 모두 이를 인식하면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는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주장이 크게 달라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쉽게 획정될 수는 없지만 이미 존재하는 구역에 대한 현상유지는 가능하다. 당면한 남북 정상회담과 후속 협의를 통해 경계선 재설정에 대한 무모한 논의보다 이 위험한 수역을 ‘평화의 바다’로 재창조하기 위한 호혜적 노력이 집중되기를 기대한다.


20. 인질 사태와 남북 정상회담 /한겨레 칼럼  2007-08-30  김지석 논설위원

40여일 동안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는 탈냉전 시대 한국 외교의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력으로는 세계 10위권에 진입했으나 외교에서는 중간 수준인 나라가 부닥칠 수밖에 없는 딜레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21세기 한국 외교의 좌표가 결정될 것이다.
우선 세계화 수준과 외교 자원 사이의 딜레마다. 지난해 한국인 국외여행자 수는 전년보다 15.2% 늘어난 1161만 명을 기록했다. 국민 4.2명 가운데 한 명 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외교관 수는 2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보다 인구가 적고 경제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의 3분의 1 수준이다. 어쩔 수 없이 곳곳에서 외교 공백이 생긴다. 최근 납치 사건이 잇따르는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많은 나라는 외교 불모지나 다름없다.
둘째, 외교 과제와 역량 사이의 딜레마다. 이번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을 능숙하게 풀어나가려면, 현지 정부를 비롯해 관련국들의 전폭적 협력을 이끌어내고 국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어야 한다. 또한 상대에게는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힘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우리 뜻을 관철시켜야 한다. 지금 한국 외교 역량은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사태에 대처하기에도 한참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분명한 외교 목표와 방식에서 비롯된 딜레마다. 세계는 이미 한국을 상당한 강국으로 생각한다. 한국인을 납치한 탈레반은 애초 한국이 미국과 아프간 정부에 요구해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런 착각의 주된 이유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명료한 외교 행태를 보여주지 못한 데 있다. 탈레반은 한국과 미국이 한 몸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이런 상황에서 빚어진 비극이다.
우리 외교는 이제 자원을 확충하고 역량을 키우고 목표와 방식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특히 미국에 편승해 주요 외교과제를 달성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독자 역량을 확충하는 쪽으로 분명히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인질 사태에서 얻은 이런 교훈은 오는 10월 초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상회담의 의제는 남북 합의서에 명시한 대로 ‘한반도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이다. 의제에 대한 협의가 부족했다고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명쾌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평화·번영·통일이라는 세 의제에서 균형있게 실질적 합의를 끌어내는 일이다.
정상회담에서 핵문제에만 집중해야 한다거나 회담을 대선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은 인질 사태의 해결을 미국에 맡겼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것과 같다. 우리 자신의 문제를 미국의 눈을 통해 보고 미국이 만든 틀 속에 우리 외교를 집어넣으려 하는 근시안적 태도다. 우리가 애써 벗어나야 할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은 초강대국이지만 때때로 구조적인 문제에서 무력하고 심심찮게 오판을 되풀이한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이라크전 철수를 베트남전 철수에 빗댄 것이 좋은 사례다. 이미 실패한 이라크전에 집착하다 보니 인식과 의사결정 시스템마저 왜곡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얼마 전까지 대북 정책에서도 그랬다.
미국의 잘못된 대테러 전쟁에 무비판적으로 동참한 것이 인질 사태의 간접적 원인이 됐듯이, 미국의 대북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한반도 전체가 인질이 될 수 있다. 독자적 외교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남북 관계 역시 핵문제에 종속되지 않고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정상회담의 임무는 엄중하다.

** 토론논제 **

1. 왜 남북정상회담이 열려야 하는가?

2.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이 각각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3. 남북정상회담 필요성과 의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내용은 무엇인가?

4. 남북정상회담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5.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꼭 다루어야 할 의제는 무엇인가?

6. 남북정상회담이 향후 우리 사회와 국제사회에 끼칠 영향을 정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