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개인정보 수집, 역감시가 필요하다  

하승창 / 시민운동가, 함께하는 시민행동(창비주간논평. 2007-10-09 )

대통령선거, 남북정상회담, 신정아사건 등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굵직한 뉴스들 틈새로 공적기관들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심각한 범죄가 확인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이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무단 열람하고 유출한 사건이 그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장복심 의원(대통합민주신당)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개인정보를 보험회사에 유출한 사건이 2002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발생해 총 41명이 징계처분을 받았다. 국민연금공단의 경우에는 지난해 1, 2월 두달 동안의 감사에서 691명의 직원이 1647건의 정보를 업무외 목적으로 열람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 정도면 개인정보에 대한 열람 및 유출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많은 직원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같은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 개인정보를 들여다보고 남에게 건네주는 것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단측이 이런 일은 대부분 정치인이나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 차원의 열람이라고 변명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러고 있음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빈발하는 공공기관에서의 개인정보 유출

더구나 한 공단직원이 애인의 과거를 알아봐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전산망에 접근해 임신중절을 받은 진료정보를 빼내 알려준 것이나, 또다른 직원이 조직폭력배가 낀 채권추심업자에게 개인의 재산과 주민등록 자료를 유출한 것은 단순한 열람의 차원을 넘어 범죄와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에 대한 처벌과 징계를 소리높여 외치고 있을 때 더욱 중요한 문제의 본질을 놓칠까 걱정된다.

지난 수년간 이같은 행위가 버젓이 저질러지고 있음에도 자체 내의 징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에 대해 주요 언론들은 한목소리로 엄벌에 처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의 열람 및 유출이 이처럼 일상적인 범위에서 저질러지고 있다면, 엄벌에 처해지더라도 죄의식을 가지기보다 '재수없게 걸렸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마련이어서 미봉책이 될 뿐이다. 개인정보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또 주변의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언제든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이 몇몇 공적기관에만 한정된 것일까? 한달여 전에는 교육부의 네이스(NEIS)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각급 학교에서 학원가로 유출되었다고 추론되고 있는데, 개인정보를 수집한 국가기관도 유사한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특히 국가기관이 언제든 국민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정치사찰이나 민간인사찰처럼 특정 인물의 추적을 통한 정보획득이 아니라, 어느 공적기관이든 아무 때나 특별한 정보취득활동 없이 개인의 사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행정상의 효율과 편의를 위한 행정정보의 집중이다. 특히나 우리의 경우처럼 주민등록번호를 중심으로 개인정보가 국가에 집중된 것은 국가가 언제든 그 정보를 들여다볼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편리한 만큼 위험한 개인정보 집적 및 집중

혹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the State)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액션영화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서는 온갖 정보를 거머쥔 공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정보를 집적·집중하고 있는 권력이 자신 외에는 누구도 그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허락지 않고 그 정보를 독점하여 권력을 위해 사용할 때 개인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보여주는 것이다(물론 영화는 미국영화 특유의 결론대로 개인이 악한 권력을 이기는 것으로 끝난다). 지금의 사태를 이 영화에 견줄 수는 없지만, 중요한 점은 행정의 편의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개인정보의 집적·집중이 그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의 막연한 '선의'에만 기댈 뿐이어서 언제나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단순히 사적 영역을 제한하고 사찰한다는 의미 이상으로, 이번 사례에서 보듯이 인권침해 및 범죄에의 악용 소지까지 열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정보를 이용한 범죄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정보의 집중과 집적 대신 정보의 분산 관리가 필요하다. 즉 특정한 목적을 위해 수집된 정보는 다른 기관에서 다른 목적으로 수집된 정보와 통합되지 않고 분리된 상태로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금융정보와 건강정보를 비롯한 모든 정보들을 볼 수 있도록 한 곳에서 관리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그러나 효율과 편의라는 이름 아래 개인정보를 집중하고 집적하는 씨스템의 구축을 피할 수 없다면, 씨스템 자체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즉각 시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OECD의 프라이버씨 보호 및 개인정보의 국제적 유통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나오는 '공개의 원칙'이기도 하다. 공적기관들의 편의와 효율을 위해 개인정보를 집중·집적한다면 당연히 그 기관들은 그런 효율적 이용에 따르는 감시와 견제라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말하자면 정보의 집적·집중을 피할 수 없다면 그런 기관들에 대한 역감시체계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공무원 혹은 공적기관은 공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늘 자신들이 선(善)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번 사례에서 보듯이 그렇지 않음은 명백하다. 우리가 감시카메라 뒤의 사람이 도둑을 감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누리고 있는데도 이를 알 수 없었다는 것은 이미 외국의 예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어디든 공적기관들이 개인의 정보를 집중하고 집적하거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이라면 그들의 행위를 견제하고 감시할 감독체계로서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

사실 2000년부터 진보넷이나 '함께하는 시민행동' 같은 시민단체들은 이같은 사태를 예견하고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지금 이들 단체가 제안하고 몇몇 의원의 이름으로 발의된 개인정보보호법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한나라당이 이들 공적기관이 이명박 후보의 개인정보를 열람했다며 정치적 탄압이라 열내고 있는 것을 보면, 할 일을 제때 안하고 뒤늦게 방귀뀐 놈이 성낸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개인정보는 한 사람의 일생이 좌우될 수도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이명박 후보의 개인정보든 필부의 것이든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진실로 자신들의 후보를 보호하거나 공적기관들이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범죄적 행위를 근절하고 싶다면 개인정보보호법을 즉각 제정해야 한다. 이번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의 일부 범죄적 행태는 다시금 이 법의 제정이 시급함을 말해준다. 그저 징계나 처벌로 끝낼 일이 아니다.

창비주간논평/ 2007.10.9 ⓒ 하승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