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권정생, 그의 반역은 끝났는가


                                                                        경향신문 2007년 05월 23일

경향신문 문화부는 지난 17일 출판사로부터 부음 하나를 전해들었다. 그리고 두어 시간 지나 망자(亡者)를 돕는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정으로 쓸 사진이 없다면서 경향신문에 게재됐던 그의 사진을 보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영정으로 쓸 사진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그는 누구인가. 평생 살아온 5평짜리 흙담집은 남김없이 헐어 자연상태로 되돌려 놓고, 인세로 들어올 돈은 북한·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어린이에게 나눠주고, ‘나를 기념하지 말라’며 나이 일흔이 남긴 흔적을 이 세상에서 말끔히 지워버리려는 그는 누구인가. 권정생. 도쿄 혼마치 빈민가 뒷골목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분단과 전쟁, 굶주림의 골짜기를 넘은 그는 제대로 배우지도 먹지도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무장수·고구마장수·담배장수를 했고, 10대에 결핵·늑막염·폐결핵·신장결핵·방광결핵을 앓았다. 그래도 살아남아 경상도를 떠돌며 걸식을 했고, 운좋게도 가난한 예배당 종지기 자리를 얻었다. 그의 거처는 예배당 부속 토담집.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그 곳에는 찢어친 창호지로 개구리가 들어와 놀다갔고, 잠자는 밤에는 쥐가 발가락을 깨물고 돌아갔다. 그는 거기에서 동화를 썼다.

-문학을 통해 세상에 맞서-

그리고 어지러운 세상을 담아내기 턱없이 부족한 지면에서도 그의 부음이 한 구석을 차지할 정도로 그는 꽤 알려지게 되었다. 어느새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을 쓰는 유명 아동문학가가 된 것이다. 그는 자기 인생처럼 못나고 버림받고, 가난하고 하찮은 것들에 관해 써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이 풍지고 흐벅진 세상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추억의 당의정이 입혀진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시절’의 이야기로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동화는 세상을 예쁘게 포장한 선물세트가 아니다. 그 것은 그가 살아온 방식도, 글쓰는 방식도 아니다. 그는 전사였다. 그는 살아 숨쉬는 동안 생활이라는 최전선에서 그가 보고 듣고 알고 겪은 모든 모순과 부딪치며 하루도 쉬지 않고 싸웠다. 그는 농민들이 낫과 곡괭이를 들고 착취계급에 저항하다 실패한 역사를 슬퍼했다. 물질이 한정된 세상에서 몇 사람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 나머지는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사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승용차를 버리면 기름 걱정안하고 전쟁할 이유가 없어지고, 우리가 파병을 안해도 된다고 믿었다. 미국은 절대악이었다. 약탈과 살인으로 강국이 되고, 전세계 인구의 5%가 세계 자원의 50%를 소비하는 미국은 그의 눈에 악마였다. 그리고 그 악에 맞선 테러리즘을 “새끼 빼앗긴 엄마 닭이 적한테 자기 목숨을 내놓고 달려드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가!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의 서슬이 퍼렇던 1985년에는 ‘초가집이 있던 마을’을 썼다. 아버지는 월북하고, 남은 복식이는 동족을 살상하는 무기를 들 수 없다며 징집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가 주제이다. 이게 그가 스스로 꼽은 최고작품이다. 석유·자동차·전쟁·미국·자본주의와 터럭만큼의 타협도 용서도 화해도 하지 않았다. 신채호·장준하·함석헌을 존경하는 그는 히틀러를 죽이기 위해 암살단을 조직한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를 닮고 싶어했다. 물론 그는 안중근처럼 권총도 없고, 화염병을 던지지도 않고, 테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것들을 했다. 저 깊은 곳에서 울렁거리는 분노를 삭이고 녹여, 그 진액을 짜내 시와 동화, 산문을 쓴 것이다. 그는 탐욕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이 세상의 전복을 꿈꿨다. 이 세상의 한 구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 대한 반역을 꿈꿨다. 욕망의 체계인 자본주의 한 가운데에서 그는 무욕, 절제, 가난을 무기로 정면 대결했다. 사람들이 그의 베스트셀러 ‘우리들의 하나님’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모르지만, 31쪽에는 “함께 일해 함께 사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올바른 사회주의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끝이 아닌 평화의 길로…-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리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왜 그의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닌 평화를 느끼게 할까. 그에게 소멸은 무엇이기에 슬프기보다 아름다워 보일까. 한 줌의 흙, 한 포기 풀과 같이 살았기 때문일까. 그는 “싸움이라는 삶이 끝났을 때라야 평화라는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지지배배 짖던 작은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듯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전사에게만 돌아가는 휴식이다.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