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읽기 혁명 REPORT / 토토로 도반



1. 광남고2 김규호

-개요-

주제 : 성숙한 독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Ⅰ. 문제제기 : 주제 설정한 까닭 / 신문 읽기의 어려움과 문제 상황

* 독자들은 신문 보는 행위를 단순히 “기사 읽기” 로만 여긴다.
* 신문 기사 내용을 무조건 고정불변의 객관적 사실로 생각한다.
* 독자들이 사건들을 각각 단절된 사건으로 인식하게 오도한다.
* 전도된 편집이 우리 신문들의 일상적 보도 양식으로 굳어져 있다.

Ⅱ 논의 펼치기 : 문제 신문읽기가 어려운 이유

* 신문은 진실을 가린다.
* 편집하는 과정에서 편집국이 위로부터의 정치권력의 압력을 받는다.
*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 정치. 사회. 경제. 문화 현상들이 면별로 편집되어 있다.
* 진실과는 완전히 반대의 그림을 보여준다.

Ⅲ 논의 마무리(결론) : 성숙한 독자가 되기 위한 방안

* 숨겨진 의도를 읽어야 한다.
* 지면을 입체적으로 읽어야 한다.
* 기사와 진실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다.





<성숙한 독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김규호

Ⅰ.
“신문 읽기의 혁명”이란 책은 신문을 읽는 독자의 대다수가 신문에 대해 무지하고 신문을 잘못 읽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말은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신문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가지고 주제로 정한 것이다.

신문은 일단의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된다. 이 책에서 편집이란 삶의 현실이 신문에 실리기까지 거치게 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편집의 과정을 거쳐 나온 신문을 독자가 읽게 되면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문 읽기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첫 번째 문제는 독자들은 신문 보는 행위를 단순히 ‘기사 읽기’로만 여긴다는 점이다. 현대사회에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읽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기사만 읽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두 번째, 신문 기사 내용을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신문은 전혀 비판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신문을 읽으면서 비판할 것은 적당히 비판을 하고 동조를 할 것은 또 동조를 해야 하는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현대사회에 일어나는 일에만 매달려서 읽기 때문에 신문을 객관적 상관물로 인식하게 된다.
세 번째, 독자들이 신문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각각의 사건들을 단절된 사건으로 인식하게 신문은 오도한다. 면별 편집으로 인해 각각의 사건들을 하나의 사건으로 연관시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Ⅱ.
독자들이 신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나면서 ‘과연 이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의문케 한다. 문제가 일어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신문이 ‘편집’이라는 일단의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신문이 편집이 되면서 취재기자, 편집기자, 편집부장, 편집국장등 많은 사람 손에 거쳐서 사건의 기사를 싣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신문이 오직 진실만을 싣게 된다는 것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신문읽기가 어려운 이유 중 첫 번째는 사건의 진실을 가린다는 점이다. 사건의 진실을 왜 가리게 되는지에 대한 이유는 바로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기 때문이 아니라 신문의 기사 배열 상 광고나 아니면 다른 기사를 실어야 하는 이유나 부담감 때문에 중요한 요점만 기사화시킬 뿐, 사건의 다른 진실은 싣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유이다. 신문은 그가 속한 사회 속의 여러 상호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신문은 언제나 그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과 긴밀한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력의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아주 노골적으로 기사를 내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참신한 표현을 빌리자면 기사를 순화해서 내보내는 것이다. 한마디로, 편집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면보다 1면에 유독 심혈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 여러 가지 신문 중 신문의 1면을 보고 마음에 드는 신문을 구매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할 필요가 더욱 절실하기 때문에 바로 1면에 심혈을 기울인다. 좁은 의미의 편집을 make-up 라고 하는 데 이 단어는 거짓 꾸밈이라는 뜻도 지닌다는 사실이다. 즉, 기사나 사진을 거짓으로 꾸민다는 점이다.  

신문의 구성상의 이유도 들 수 있다. 현재 발행되는 거의 모든 신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으로 나눠진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면별 편집이라고 하는데, 면별 편집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현상들이 실제로는 밀접한 연관 속에 움직이고 있음에도 독자들이 그 현상들을 각각 단절된 사건들로 인식하게 오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옛 “한성순보”나 “독립신문”처럼 기사를 종류에 따라 단순히 나열하는 형태의 편집을 말하는 “유별 편집” 보다 면별 편집의 방식 한계점이 드러난다.

Ⅲ.
이러한 이유로 신문은 읽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가 영원히 미성숙한 독자로 남을 수는 없다. 성숙한 독자는 신문에 써진 사설을 읽는다. 사설이란 말 그대로 신문사의 주장이다. 실제 사설이 독자들에게 주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자신이 구독하는 신문사의 사설을 읽고 난 후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독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신문 사설을 읽으면 편집을 읽는 열쇠를 쥔 것이나 다름없다.
독자들은 기사와 진실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다. 기사는 진실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가려서 보도되었기 때문에 독자는 진실과 비교해가면서 신문을 읽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방안은 지면을 입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문이 면별로 편집이 되어있기 때문에 위에서도 말했듯이 독자들이 사건들을 각각 단절된 사건으로 인식하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1차원적으로 단순하게 읽는 것보다는 2차원적인 입체적으로 사건들을 서로 연관을 시켜보면서 읽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신문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2. 영동고2 문용찬

'맹목적인 신문 읽기는 차라리 신문을 읽지 않느니만 못하다'
여러 미디어를 통해 뉴스가 보도되지만 아직도 신문이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이다. 우리가 여기서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어떻게 신문을 읽느냐이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 사람들 또한 신문 보는 행위를 단순히 기사 읽기로만 여겨졌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사내용이 어떻게 신문지면에 실리는지 몰랐고, 그 기사내용 또한 각 신문사의 같은 내용으로 어느 신문이나 별반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신문읽기의 혁명은 우리가 신문을 보면서 편집을 파악하지 못해서 편집자의 의도대로 우리가 끌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서야 편집자의 의도에서 벗어나 주관적으로 현실을 파악할 수 있을까?
편집이란 삶이 현실이 신문에 실리기까지 거치게 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방대한 자료와 한정된 신문지면 사이에 불가피하게 놓이게 된 여과정치가 바로 편집이다. 편집이란 취사선택의 과정이기도 한 편집에는 따라서 가치 판단이 스며들게 된다. 대부분의 조간신문들은 대체로 하루 최소한 다섯 차례 이상 편집회의를 한다. 이 과정에서 선택과 결정의 과정을 거친다. 신문마다 편집의 눈이 다르기에 한 신문만을 구독하며 그 신문의 보도대로 삶의 현실을 인식할 경우에 그 신문의 편집방향에 세뇌당하기 십상이다. 또 신문은 1판이 5판이 있다. 1판은 소수만이 발행되고 5판은 전국판이므로 권력기관들은 초판을 본 뒤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나 표제가 있을 경우 '개입'을 한다. 물론 밤새 사건이 터지거나 국제기사 가 들어와 기사가 추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권력의 요청에 의해 기사의 왜곡이 되풀이 되고 있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기업들은 광화문에 집결하는 각 신문 초판들을 구입하여 면밀히 분석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는 돈을 통해 신문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이유는 광고의 수입비중이 신문자본의 절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편집이 기사읽기의 열쇠라고 책에서 언급한바가 있는데 사설은 편집을 읽는 열쇠라고 저자는 말한다. 신문은 사실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논평행위를 한다. 사설은 신문사의 주장이기 때문에 신문사가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설이 편집 방향을 좌우하고 있는 사례를 예로 들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북관계상의 사설이 그렇고 문익환 목사의 방북사건에 대한 사설들이 그렇다. 또 많은 사람들이 신문사는 일반 회사와는 달리 공익을 우선시하는 공공기관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신문들의 소유구조는 사주에 의해 전제적인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소유구조는 동아사태를 연이어 세계일보, 국민일보, 문화일보에서도 문제를 야기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책이 제안하는 기사바로읽기의 열쇠는 편집에 있다. 만일 독자들이 신문을 편집적 안목 없이 읽는다면 독자들은 거짓말에 속게 마련이다. 현재는 편집이 독자를 가두고 있지만 거꾸로 편집을 통해 기사를 읽으라는 저자는 우리들이 신문을 올바르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가 한겨레신문을 옹호하고 있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말 그대로 우리에게 혁명적인 책이었다.


3. 중산고 2 김정우


신문은 의심할 여지없이 여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대학 입시에도 논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자, 많은 학교들이 신문사설을 생활 속의 논술교재로 쓰면서 그 중요성이 청소년에게까지 부각되어 졌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우리는 정말로 신문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신문사의 보이지 않는 손의 의도대로 현재 우리 국민들 대부분의 입장에서보다는 먼저 상류지배층의 입장에서 이해관계를 따지기 십상이다. 또한 무비판적 인 수용은 우리의 조상들이 투쟁하여 얻은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를 무의식중에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성숙한 신문독자인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문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신문을 읽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성을 알면서도 제대로 신문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신문읽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이유로 많은 독자들이 생각과는 달리 신문기사는 자연스럽게 편집자의 의도가 개입된다. 신문이 나오기까지 기사는 취재기자, 취재부장, 편집기자,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걸친 편집의 과정을 걸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편집의도가 필연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문기사는 독자들의 기대와 달리 편집자의 의도로 진실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고 왜곡되기도 한다.

두 번째 이유로, 신문사의 궁극적 목적도 이윤추구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독자들의 눈길을 가장 끌면서 구매의 단계까지 이끌기 위해 선정적인 광고를 1면에 배치하는 스포츠 일간지가 있다. 이는 신문사가 자사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쉽게 언론의 정의를 저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한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신문사는 각각의 특정기업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기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써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이는 독자들이 신문을 제대로 읽는데 큰 방해요소가 된다.

세 번째 이유는 재벌위주로 이루어지는 신문사의 경영체계에 있다. 실제로 신문사를 실질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재벌들은 기사로써의 경력이 거의 없다. 이에 따라 경영인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제보하기보다는 돈벌이로서 보는 경향이 크다. 또한 현재 몇몇 신문을 제외한 신문들은 국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류층의 사람들보다는 상류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이는 아직 사건을 분석할 줄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지배적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사회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문은 여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이다. 이를 악용하여 정치권이나 대기업에서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기위해 왜곡된 기사를 내보내도록 압력을 가하거나 비리를 저지르면서 신문사를 악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은 천지차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문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성숙한 독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는 무엇보다 신문사의 숨겨진 의도를 읽어야 한다. 즉, 이익 때문에 진실을 포장하고 왜곡하는 신문사의 의도를 편집을 통해 파악해야 한다. 편집자가 편집을 통해 진실을 포장하고 왜곡한다면, 독자들 역시 편집을 통해 포장된, 왜곡된 진실을 읽을 수 있다. 이에 우리는 무엇보다 ‘편집’을 읽을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신문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종류의 신문만 읽으면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는 것보다는 여러 신문사의 견해를 비교, 대조하면서 읽는 것이 성숙한 독자가 되기 위한 혁명의 또 다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


신문 읽기의 혁명 (개요)

양인수

주제 : 성숙한 독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1.문제제기(도입):이 주제를 설정한 까닭 밝히기 / 신문 읽기의 어려움과 문제 상황
  *미숙한 독자들은 대부분 신문사 편집국의 편집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조차 잘 모르고 있다.
  *취재와 편집의 과정을 거치면서 왜곡된 현실을 실제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지면의 편집을 그대로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그 지면을 구성한 편집자의 가치판단을 수용하게 된다.
  * 정치권력과 신문 사이의 관계를 잘 모르고 있다.


2. 논의 펼치기(전개) : 문제 신문읽기가 어려운 이유
*신문은 진실을 숨기고 있다. 편집할 때 원래 사실(진실)이 왜곡되기도 한다.
*별도로 면이 배정되어 있는 탓에 정치면에 별다른 뉴스거리가 없음에도 마치 중요한 기사라도 되듯이 1면에 실려 있어서 실제로 중요한 기사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정치권력이나 재벌그룹들이 신문사에 요청하는 협조요청 등으로 인해 사실이 알려지지 않거나 왜곡되고 축소되어 지지만 외면상으로는 언론보도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설도 논설위원들 개개인의 소신이 그대로 실리지 않고 주필에 의해 편집되어서 신문사의 의견이나 주장을 담고 있다. 또 신문사의 사익에 따라 글이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신문사가 자신들의 잘못된 편집방향을 사설을 통해 여론화해나가려는 것을 모른 채 독자들은 그 사설을 옳은 글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어버린다.

3. 논의 마무리(결론) : 성숙한 독자가 되기 위한 방안
* 신문에 실려있는 글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말고 그 글을 비판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
* 편집자에 의해 편집되어있는 글을  나 스스로가 편집자가 되어서 상대방의 편집의도를 읽으며 지면을 읽어야 한다.
* 편집의 틀부터 재구성 하고, 기사의 가치를 스스로 판별해야 한다.
* 한 신문만을 보기보다는 성격이 다른 여러 신문을 보며 삶을 현실을 더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 왜곡된 편집을 독자 스스로가 지면을 재편집하여 읽어야한다.


신문 읽기의 혁명 - 리포트 / 양인수
                          
주제 : 성숙한 독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이 책 속에는 성숙한 독자는 이렇다고 단순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신문에 대한 진실을 밝힘과 신문 구독자가 알아야할 정보와 사실을 제공함으로써 성숙한 독자가 되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서 성숙한 독자가 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 놓았다. 따라서 성숙한 독자는 어떻게 탄생하는 가? 라는 주제는 이 책 속의 내용에서 독자가 성숙한 독자가 되는 과정을 알아차리고 그 과정을 거쳐서 나아가 성숙한 독자로 탄생한다는 의미에서 설정했다. 미숙한 독자들은 대부분 신문의 편집뿐만 아니라 신문사 편집국의 편집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조차 잘 모르고 있다. 또한 신문에 실린 기사는 취재와 편집의 과정을 거치면서 왜곡된 현실인데 그것을 실제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지면의 편집을 그대로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그 지면을 구성한 편집자의 가치판단을 수용하게 된다. 게다가 신문 뒤에 숨겨진 정치권력과 신문 사이의 관계를 잘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신문 읽기가 어려운 그 대표적인 이유는 신문은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편집할 때 원래의 사실(진실)이 왜곡되기도 한다.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기사가 쓰여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진실을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리고 별도로 면이 배정되어 있는 탓에 정치면에 별다른 뉴스거리가 없음에도 마치 중요한 기사라도 되듯이 1면에 실려 있어서 실제로 중요한 기사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전혀 큰 일이 아닌데도 커다란 표제와 사진과 함께 맨 앞면에 실려 있으면 그 기사에 눈이 가게 되고 중요한 일인가보다 라고 여기게 된다. 신문 뒤에서는 정치권력이나 재벌그룹들이 신문사에 요청하는 협조요청 등으로 인해 사실이 알려지지 않거나 왜곡되고 축소되어 지지만 외면상으로는 언론보도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독자들은 정치권력이나 재벌그룹의 어두운 면을 일부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가 그 신문을 읽게 되기 전날의 로비와 압력을 독자들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독자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사설도 논설위원들 개개인의 소신이 그대로 실리지 않고 주필에 의해 편집되어서 신문사의 의견이나 주장을 담고 있다. 그 사실을 독자들은 잘 모를뿐더러 신문사의 사익에 따라 쓰인 글과 신문사가 자신들의 잘못된 편집방향을 사설을 통해 여론화해나가려는 것을 간파하지 못하기 쉽다.
신문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성숙한 독자가 되어 신문을 볼 필요가 있다. 신문에 실려 있는 글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말고 그 글을 비판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 그리고 편집자의 가치판단에 의해 편집되어 있는 글을 나 스스로가 편집자가 되어서 상대방의 편집의도를 읽으며 지면을 읽어야 한다. 편집의 틀부터 재구성 하고, 기사 가치를 스스로 판별해야 한다. 왜곡된 편집을 독자 스스로가 지면을 재편집하여 읽어야하고 한 신문만을 보기보다는 성격이 다른 여러 신문을 보며 삶을 현실을 더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신문 뒤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런 면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며 신문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실천했을 때 우리 독자들은 성숙한 독자가 될 뿐 아니라 현실사회를 바로 볼 수 있고 주체적인 독자가 될 수 있다.
신문읽기의 혁명 / 유호준

  신문을 읽는데 있어서, 미숙한 독자들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한다. 그들은 신문기사가 마치 고정불변의 객관적 사실인 양 아무 생각 없이 신문기사를 받아들인다. 대중매체는 원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이런 미성숙한 독자들은 언론에 의해 끌려 다니는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였다. 미숙한 독자에서 탈피하려면 우선 신문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취재와 편집의 과정에서 사실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주관성은 개개인마다 다르고, 언론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상반된 의견이 나오는 등 시각차가 생긴다. 시각차뿐만 아니라, 하루가 지나면 상품가치가 사라지는 신문의 특성상 언론사들은 독자들의 눈을 더 끌기 위해 노력한다. 선정적인 기사나 과대포장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실은 왜곡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은 사실에 근거를 둔 창작이라 불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은 대부분 언론에 의해 그려진 것이다.
  또한, 신문은 분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기사의 배열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기사의 배열은 역시 독자의 눈길을 끄는 위주로 편집된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이 신문의 얼굴인 1면에 자리 잡는가 하면, 오히려 가장 중요한 기사가 조그맣게 자리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되면 무엇이 실제로 중요한지 알기 어렵다. 단지 1면에 실려 있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신문은 외부세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정치권력은 언론을 탄압하거나 소식통으로 사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 언론의 본질을 훼손한다. 일제시대와 군사정권시절이 이러한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업주나 광고주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신문사에 기사 삭제를 요청한다. 광고가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신문사로서는 결국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러한 비리는 신문의 초판과 재판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초판에는 있었던 관련기사들이 재판에서는 사라지는 것이다. 신문사도 하나의 기업이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기피하고 싶겠지만,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한 사기업의 의미만 있을 뿐, 언론에 대한 온갖 특혜와 배려는 더 이상 인정 할 수 없다.
  신문은 단순히 객관적 보도나 광고전달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논평의 기능도 한다. 사설은 논평행위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설에 때라 신문사의 입장이 결정되고, 그날의 신문 기사가 선택된다. 하지만 사설도 왜곡이 심하다. 특히 불확실한 사실에 관한 사설들은 거의 억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외부세력이 개입하면 왜곡은 점점 더 심화된다. 역시 그들은 기업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꾸는 비겁한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스스로가 편집자가 되어 기사 속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 내고, 비판적으로 읽음으로써 주관적으로 신문을 재해석하고 대중매체 시대에 주체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신문들을 읽어보며 서로를 비교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독자들이 이렇게 성숙하게 되면, 더 나아가서 신문 편집자들은 독자들을 따라오게 되고, 그것이 신문 편집의 왜곡을 바로 잡고, 건강한 여론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신문읽기의 혁명         조연지

많은 사람들이 판단을 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언론에 의해 주어지거나 그 영향을 받은 자료에 근거해서 생각한다. 특히 신문은 모든 정보매체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미디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대다수가 신문에 대해 무지하고 신문을 잘못 읽고 있다. 그들은 신문 보는 행위를 단순히 기사 읽기로만 여기고 신문 기사 내용을 고정불변의 객관적 사실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무비판적인 수용 때문에 독자들이 편집자의 의도대로 사건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것이 권력화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우리는 신문을 바로 읽을 줄 아는 성숙한 독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신문을 바로 읽기는 쉽지 않다. 신문이 진실만을 그대로 보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문은 편집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데, 편집이란 삶의 현실이 신문에 실리기까지 거치게 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신문기사는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 우선 현장을 취재하면서 취재기자의 시각에 따라 그 사건의 진상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기사도 취재부장에 의해 수정되거나 삭제되기도 한다. 또, 신문은 분량에 한계가 있어 기사들을 골라내고 배열하는 편집기자가 있는데, 그들이 기사를 어떻게 배열하고 크기를 정할지, 표제를 어떻게 할지에 따라 그 사실이 크게 달라진다. 그리고 독자들이 표제를 먼저 읽는 것을 생각하면 그 영향은 훨씬 크다. 그런데 그 표제 또한 편집부장에 의해 수정 또는 삭제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편집국장을 거친다. 따라서 신문에는 필연적으로 여러사람의 가치관이나 편집의도가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신문은 정치권력과도 관련이 깊다. 신문도 사회 속의 여러 상호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신문이 정치권력으로부터 기사를 제한당하는 등 억압을 받게 되어 정당한 기사를 쓰지 못하게 되거나 스스로 권력이 되어 왜곡된 편파적인 보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력 외에도 다른 외부세력, 특히 광고주들의 영향으로 그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수정되고 왜곡될 수 있는 것은 신문이 여러판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날 편집이후의 놓치거나 새로 생긴 사건을 다시 집어넣을 수 있어서 더 정확한 보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전날 저녁에 미리 나오는 1판을 다른 권력들이 확인하고 자신들에게 안 좋은 기사가 나오면 신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결국 다음 판에 나올 때는 다시 편집되어 왜곡되어 나오는 것이다.
사설은 ‘편집 읽기의 열쇠’이다. 신문은 사실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논평행위를 하는데, 사설은 신문사의 주장이기 때문에 사설이 편집방향을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고, 신문사의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신문사의 기업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 사설은 심각하게 왜곡된다. 신문사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이기 때문에 이차적인 공정하고 진실한 편집은 신문사의 이윤을 저하시키거나 그런 가능성이 있을 경우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신문읽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독자들은 오히려 왜곡된 편집을 통해  신문사의 숨겨진 의도와 왜곡된 진실을 읽을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신문의 평면의 기사로 입체적 편집을 읽을 수 있는 편집적 안목을 가져야한다. 이러한 성숙한 독자들 각자가 바르게 신문을 읽어나갈 때 신문편집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