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1998학년도 정시 논제

논제 : 다음 글은 어느 소설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것이다. 이 글은 ‘복서’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암시하고 있다. 어떤 문제들이 이 글에 암시되어 있는지 글의 내용에 근거하여 밝히고, ‘복서’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자의 견해를 논술하라. (160분.  1,600자 내외(띄어쓰기 포함, ±200자)로 쓸 것. )


(제시문)

복서는 발굽이 나아지자 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사실 모든 동물들은 그 해에 노예처럼 많은 일을 했다. 농장에서 각자 해야 하는 일이 있었을 뿐 아니라 풍차를 다시 만들어야 했고, 3월부터 시작된 새끼 돼지의 교실을 짓는 작업도 있었다. 넉넉하게 먹지도 못하면서 오랜 시간 일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견딜 수 없이 힘들었겠지만 복서는 결코 굽히지 않았다. 그는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았다. 단지 겉모습이 조금 달라 보일 뿐이었다. 그의 피부는 전과 같이 매끄럽지 못했고 커다란 궁둥이가 약간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복서는 봄이 와서 풀이 새로 자라면 다시 살찌게 될 겁니다.”
다른 동물들은 말했다. 그러나 봄이 왔는데도 복서는 살이 찌지 않았다. 그가 채석장 꼭대기로 올라가는 비탈길에서 커다란 돌이 굴러 내리지 않게 받치고 있을 때에는 오로지 인내의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은 ‘더 열심히 일하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클로버와 벤자민은 복서에게 몸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충고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열두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그는 퇴직 연금을 받기 전에 돈은 충분히 모아 놓기만 한다면 다른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느 여름날 저녁 늦게 복서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문이 갑자기 농장 안에 퍼졌다. 그는 풍차가 서 있는 곳으로 돌덩이를 옮겨 놓기 위해 혼자서 일터로 나간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비둘기 두 마리가 날아와서 소식을 전했다.
“복서가 쓰러졌어요! 옆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농장의 동물들이 풍차가 있는 언덕으로 뛰어 왔다. 복서는 마차의 굴대 사이에 끼여 머리를 들지 못하고 목을 뻗은 채 쓰러져 있었다. 복서의 눈은 흐릿했고 옆구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클로버는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복서,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녀가 외쳤다.
“폐를 다쳤어요. 하지만 나는 괜찮아요. 내가 없어도 당신들끼리 풍차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돌을 꽤 많이 모아 놓았으니까요. 어차피 나에게는 한 달밖에 남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나는 정년 퇴직하는 날을 마음 속으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제는 벤자민도 늙었으니까 아마 나와 함께 은퇴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같이 살 수 있게 될 겁니다.” 복서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빨리 도와줘야겠어요. 누구든지 빨리 가서 이 사건을 스퀼러에게 전해주세요.” 클로버가 말했다.
다른 동물들은 당장 이 소식을 스퀼러에게 전하러 농장 집으로 달려갔다. 클로버와 벤자민만이 복서 곁에 남아 있었다. 벤자민은 복서 앞에 앉아서 아무 말도 없이 긴 꼬리로 파리를 쫓고 있었다.
15분쯤 지나자 스퀼러가 동정과 걱정이 가득찬 표정으로 나타났다. 스퀼러는 농장에서 가장 충실한 일꾼에게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을 나폴레옹 동지가 알고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했다고 하면서, 복서를 월링턴의 병원에 보내 치료받도록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들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몰리와 스노우들 이외에는 농장을 떠난 동물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자기들의 병든 동지를 인간의 손에 맡긴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언짢았다. 스퀼러는 월링턴의 수의사가 이 농장에서보다 복서를 훨씬 잘 치료해 줄 것이라고 간단하게 동물들은 납득시켰다. 30분 정도 지나자 복서는 조금 회복이 되어서 간신히 우리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거기에는 클로버와 벤자민이 훌륭한 짚 침대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 후 이틀동안 복서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우리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돼지들은 욕실 약상자 안에서 찾아낸 커다란 분홍색 병을 보내 주었다. 클로버는 하루 두 번씩 식후에 복서에게 약을 먹였다. 밤이 되면 클로버가 그의 우리로 건너와서 함께 자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벤자민은 파리를 쫓아 주었다.
복서는 자기가 다친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고 했다. 만일 다 낫기만 한다면 앞으로 3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저 커다란 목장 한구석에서 평화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생전 처음 공부를 하며 마음의 수양을 쌓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되면, 알파벳의 남은 스물두 글자를 암기하는 데 여생을 보낼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복서가 벤자민과 클로버와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작업이 끝난 후 잠깐뿐이었다.
한낮에 복서를 태우고 갈 짐마차가 농장에 들이닥쳤다. 동물들은 모두 돼지 한 마리의 감독 아래 순무 밭의 잡초를 뽑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농장 건물 쪽에서 벤자민이 소리를 있는 대로 지르면서 뛰어 나왔다. 모두들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벤자민이 흥분하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빨리, 빨리요! 복서를 데려가려고 한단 말입니다!” 벤자민이 외쳤다.
동물들은 감독하는 돼지의 명령도 듣지 않고, 하던 일을 걷어치우고 농장 건물로 뛰어왔다. 과연 마당 한가운데 말 두 마리가 끄는 커다란 짐마차가 있었는데, 그 마차의 측면에는 무슨 글자가 쓰여 있었다. 마부석에는 낮은 중산모를 쓰고 교활한 표정을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복서의 우리는 벌써 텅 비어 있었다.
동물들은 짐마차 주위를 에워쌌다.
“복서, 잘 갔다 와요!”
그들은 함께 소리를 질렀다.
벤자민은 그들 주위를 뛰어다니며 작은 발굽으로 땅바닥을 동동 구르면서 외쳤다.
“바보들, 바보들 같으니라구! 이 바보들! 저 짐마차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오?”
그러자 동물들은 소리를 멈추고 조용해졌다. 뮤리엘이 글자를 띄엄띄엄 읽기 시작했다. 벤자민이 뮤리엘을 밀어 제치고 글자를 줄줄 읽어 내려갔다.
“알프렛 시몬즈, 폐마 도살 및 아교 제조업. 월링턴. 피혁과 골분 매매. 개집 공급 ― 저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저들은 복서를 폐마 도살장으로 데리고 가려 한단 말이오!”
모든 동물들로부터 공포의 외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로 이때 마부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말에 채찍질을 했다. 그러자 짐마차는 빠르게 마당에서 빠져나갔다.
동물들은 모두 힘껏 소리를 지르며 짐마차 뒤를 쫓았다. 클로버가 맨 앞으로 헤치고 나왔다. 짐마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클로버는 안간힘을 쓰며 굵은 네 다리로 마구 달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복서! 복서! 복서!”
클로버가 외쳤다.
그런데 이 순간 바깥의 소동을 들었는지, 콧잔등에 흰 줄무늬가 그려진 복서의 얼굴이 짐마차 뒷문의 작은 창에 나타났다.
“복서! 복서! 뛰어 내려요! 빨리요! 저들은 당신을 죽이려고 데리고 가고 있어요!”
클로버는 공포에 젖은 목소리로 외쳤다.
“복서! 뛰어 내려요! 뛰어 내려요!”
동물들은 모두 함께 소리쳤다.
그러나 짐마차는 이미 속력을 내어 그들을 멀리 떼어놓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복서가 클로버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그의 얼굴이 창문에서 사라졌고 이내 짐마차 안에서 쿵쿵거리는 발굽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짐마차를 발길로 차서 부수고 나오려고 했던 것이다. 옛날 같으면 복서가 발굽으로 두서너 번 발길질을 하면 그런 짐마차는 성냥갑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한동안 쿵쿵거리던 발굽 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사라져 버렸다. 동물들은 필사적으로 짐마차를 끌고 가는 두 마리의 말들에게 멈춰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동지들, 동지들! 당신들 형제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지 말아요!” 그들은 외쳤다.
그러나 바보 같은 이 짐승들은 너무나 무지해서 사태를 깨닫지 못하고 귀를 뒤로 젖혔을 뿐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복서의 얼굴은 두 번 다시 창문에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 먼저 달려가서 다섯개의 가로대가 있는 농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짐마차는 그곳을 빠져나가서 큰길 쪽으로 재빨리 자취를 감추었다. 복서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
사흘 후, 복서가 월링턴의 병원에서 온갖 치료를 다 받아 보았지만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스퀼러가 모든 동물에게 이 슬픈 소식을 전하러 왔다. 그는 복서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앞다리를 쳐들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것은 내 생전에 처음 본 눈물겨운 장면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임종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그의 침대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서는 마지막에 말도 못할 정도로 힘이 다 빠진 채, 내 귀에 대고 풍차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것이 가슴아프다고 속삭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지 여러분 전진합시다! 우리가 이룩한 혁명을 잊지 말고 전진합시다! 동물 농장 만세! 나폴레옹 동지 만세! 나폴레옹 동지는 항상 옳습니다! 동지 여러분!'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스퀼러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서, 복서에 관하여 얼토당토않은 나쁜 소문이 떠돈 것을 자기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복서를 싣고 가는 짐마차에 ‘폐마 도살업'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경솔하게도 복서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이라고 비약해서 단정을 내리는 자가 동물들 중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떤 동물이라도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스퀼러는 말했다. 스퀼러는 분함을 참지 못해 꼬리를 흔들며 이러저리 뛰어다니면서 친애하는 지도자 나폴레옹 동지가 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는 지극히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 짐마차는 전에 폐마 도살업자의 것이었고 그것을 수의사가 샀는데 그 수의사는 옛이름을 아직도 페인트로 지워버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 원인이라고 하였다.
동물들은 이 말에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스퀼러가 또다시 복서의 임종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같이 자세히 설명하며, 그가 훌륭한 치료를 받았고 나폴레옹 동지도 복서를 위해 아무리 비싸더라도 좋은 약을 쓰도록 지시했었다고 하자, 동물들은 모두 의구심을 떨쳐 버렸다. 동물들은 복서가 적어도 행복하게 죽었다는 생각으로 복받치는 슬픔을 억누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은 스스로 그 다음날 일요일 회합에 나타나서 복서를 찬양하는 짤막한 연설을 했다. 애통스런 동지의 유해를 운반해서 농장에 매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농장 집 정원의 월계수로 커다란 화환을 만들어 복서의 무덤에 갖다 놓도록 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2, 3일이 지난 후에 돼지들은 복서를 기리는 추모제를 갖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복서가 좋아했던 두개의 금언 ‘더 열심히 일하자'와 ‘나폴레옹 동지는 항상 옳다'를 다시 강조하면서 각자 이 금언을 신조로 삼으면 좋을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끝냈다.
추모제가 열렸던 날, 월링턴에서 식료품 가게의 마차가 농장 집에 커다란 나무상자를 싣고 왔다. 그 날 밤 떠들썩한 노랫소리에 이어 격렬하게 싸움을 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끝으로 열한시 경에 유리 그릇이 시끄럽게 깨지는 소리가 나기도 하였다. 그 다음날 점심때까지 농장 집에는 얼씬거리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돼지들이 어디선지 돈을 장만해 가지고 위스키 한 상자를 사다 마셨다는 소문이 들렸다.

※ 참고 : 복서 - 말, 스퀼러 - 돼지, 나폴레옹 - 우두머리 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