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글은 2007년 한겨레 신문에서 의욕적으로 연재한 기획물 "지식인 논쟁" 중 '진보적 민족주의는 유효한가' 자료 전문입니다.
대학별 정시 전형을 앞두고 있는 도반들은 이 자료를 꼼꼼하게 정독해 보시길 권합니다.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1. 유효하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원어인 영어 단어는 내셔널리즘(nationlism) 하나이다. 근대 민족국가가 형성되면서 이른바 민족 혹은 국가 관념이 태동되었다는 게 일반적 통념이다. 우리도 조선시대만 해도 ‘소중화’ 의식이 뚜렷했을 뿐이다. 중국인들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주자학을 섬긴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근대 이후 민족주의는 우리 사회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이념이었다. 일제하 독립운동이나 분단 이후 통일운동까지 이 모든 투쟁의 배후에는 ‘민족’이 있었다. 친일파와 반공 지배세력도 민족이라는 외피로 국가주의적 성향을 가렸다.
독재에 맞선 저항적 민족주의의 주요 명분은 분단모순 극복을 위한 통일운동이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현재 상황은 많이 변했다. 국가와 기업가의 통일에 대한 열정이 기층 민중의 그것보다 더 못하다고 하기 어렵게 되었다. 급증하는 다문화 가족도 민족 관념의 정당성에 대해 되묻게 한다. 탈민족 담론이 거세지는 배경이다. 탈민족론자들은 민족이 함의하는 배타성은 민주적 개방성과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사회의 다른 갈등이 정당하게 자리잡지 못하도록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진보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지지하는 안병욱 교수는 이 글에서 공동체적 유대관계가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면서, 세계화 시대 민족주의적 가치관만이 무소불위 초국적 자본의 폭력을 견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각각 비판적 시각과 제3의 시각을 밝힐 계획이다.


초국적 자본 견제할 힘 저항적 ‘민족의식’에 있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민족주의라는 용어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고 그 쓰임새도 다양하다. 따라서 민족주의 논쟁은 매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말을 한국 사회처럼 친숙하게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한국 사회를 논할 때 민족문제는 빠지지 않는다. 현실을 논하건, 역사를 설명하건 민족 내지 민족주의 문제는 중요하게 거론된다. 역사적으로 어느 때건 주어진 나름의 과제가 있었다. 이 과제들은 한반도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외면하기 어려운 공통적인 사항이었기 때문에 민족공동체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대처해 왔다. 곧 민족주의적인 인식인 것이다.
한국인의 민족적 정체성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요인은 오랜 기간 역사공동체를 공유해 왔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천여 년 이상 하나의 국가로 운영되면서 불교·유교·기독교 등 다양한 문화를 공통적으로 향유해 왔다. 그 과정에서 원초적 공동체 의식을 공유해 온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유럽 근대사를 배경으로 형성된 민족주의 개념을 원론적으로 적용하여 한국 사회에서의 민족주의 문제를 비판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한계를 지닌 것이다.

한국 사회는 20세기 들어 식민주의의 지배를 겪으면서 민중의 자율적인 의지는 탄압받고 식민주의에 편승한 소수만이 민족과 분리된 채로 특권을 향유하였다. 이를 두고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 치하에서 성장의 과실이 조선인에게도 돌아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또 “많은 경우 종군 위안부들을 고통과 희생으로 내몬 원초적 요인들은 가정 내 가부장적 권력의 구타와 학대였다. 위안부의 비극은 민족이라는 잣대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성적, 사회적 차별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박지향 서울대 교수·서양사)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식민지배의 후과는 극복되지 않았으며 외세는 기득권층을 숙주로 하여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방 이후 남북분단에 이어 남한 사회는 반공주의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다. 반공주의는 이념에 의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공동체적인 유대관계를 파괴하고 민주적 발전을 차단하였다. 남북 분단은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했지만 안으로 지배층과 민중 사이의 민족주의적 인식차와 무관하지 않았다. 남북이 각기 외세를 내세워 분단을 초래하였고 급기야 전쟁으로까지 비화된 분열과 갈등을 초래한 것은 여전히 민족주의적 이념을 바탕으로 민족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었으며 불온한 사상으로 탄압을 받았다. 또 반공주의 아래서 한반도는 일종의 게토가 되어 그 안에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었다. 지난 20세기 후반 내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민주화운동은 이러한 게토를 파괴하고 밖으로 세계사와 소통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1960년 4월항쟁을 비롯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진 민주화 운동은 민중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적 유대 관계와 민족주의 이념에 기반하였다.

‘민족공동체의식’ 역사적 공유한 한국
서구 ‘민족주의’ 곧장 적용해선 안돼
식민·분단·독재에 맞선 ‘저항적 담론’

20세기 한국 사회가 겪어야 했던 분단과 전쟁, 독재 등 파괴적 혼란은 그 가장 큰 원인이 외세와의 관련 속에 있었다. 오늘날 통일문제와 함께 민주화·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야기된 내적 갈등 문제들을 안고 있고 또 밖으로 세계화 조류에 조응하면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과제가 중첩되어 있다. 이런 역사를 성찰적으로 검토한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자연히 가장 친화적이 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족주의가 여전히 한국사회의 지배적 담론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민족주의 담론에 비판적 문제 제기가 행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른바 탈민족을 내세우고 혹은 ‘민족주의는 반역’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 주장에 분명 유용하고 긍정적인 내용이 많다. 그동안 민족주의 담론에 다소 관념적이고 맹목적인 표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탈민족주의를 위해 지적되고 있는 것들은 논쟁을 위해 억지로 제기된 측면이 강하다. 일부에서는 지배권력을 추수하면서 전개한 국수적이거나 파시즘적 사례를 끌어다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성에 붙여 함께 매도하고 있다. 곧 “민족주의 패러다임은 한국의 지적 삶을 너무나 깊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여타의 가능한 역사 해석 방식을 모두 어지럽히고 포섭하며 또는 실제로 말살시켰다”(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탈민족·탈근대 주장에는 구체적인 대안을 찾을 수가 없고 오히려 한국 사회운동의 구심점을 해체함으로써 허무와 공허함을 조장하려는 듯이 보인다. 민족주의는 현대 한국사회를 인식하기 위한 그리고 역사에 참여하기 위한 의식화의 매개체인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시장만능을 내세우며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하의 초국적 자본은 세계화 추세 속에서 지구촌 곳곳으로 무소불위의 팽창과 전일적 지배를 관철하고 있다. 국제 경쟁력이라는 명분아래 자본과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차별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자본은 국경을 거침없이 넘나들지만 농민·노동자들은 떠돌이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절박한 처지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예전 같은 국가와 국경의 장벽은 이제 더는 장애가 되지 않아 보인다.

신자유주의 대안은 민중 주체적 행동
노동 계급 성장 미흡한 현실에서
민족적 유대 ·가치관은 유효한 ‘무기’

하지만 한국사회의 오랜 공동체적 유대관계와 민족의식, 관습, 언어 등이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행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민족주의라는 이름에 포괄되고 있는 것들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강한 공동체적 유대가 오랜 동안의 민주화 운동 경험과 결합됨으로써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칸쿤·시애틀·홍콩 등의 반세계화 시위의 중심에 한국 민중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이런 맥락과 닿아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 중심의 사회이고 이를 위해서는 민중의 주체적인 행동과 능동적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탈민족주의는 불균등한 세계체제에 대한 대응논리와는 거리가 있으며 지배권력에 의한 통제와 순응을 지지한다. 자본에 의해 모든 인간이 줄을 서야 할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책은 인간의 자율적 의지에 기반한 유대에서 찾아야 한다. 흔히 계급의식과 성정체성, 젠더문제를 거론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는 계급·젠더 문제 이전에 국가 간의 이해 대립이 초래한 모순에 의해 더 좌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사회의 가장 유용한 유대관계는 민족의식이며 이런 맥락을 설명해 주는 것이 민족주의이다.
진보는 상대적으로 약자 계급의 집합으로 추동된다. 이러한 진보운동을 담지할 노동계급의 성장이 한국 사회에서는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한국에서 노동 부분의 지체는 분단과 전쟁에 따른 반공주의적 억압에 기인한다. 역설적이게도 노동계급이 제 위상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는 여전히 민족이 중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줄곧 지배층의 인식을 대변하기 위해서 민족논리에 시비를 걸었다. 민중과 진보세력에게 혼란과 갈등을 야기한다고 탓하면서 진보적인 논의를 억제하였다. 무소불위 초국적 자본의 폭력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현재 민족주의적 가치관이 아니고서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상 민족주의는 반역이라는 주장은 민족주의에 대한 대안 없는 반역에 지나지 않는다.

*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1948년생으로 조선후기 사회변동 문제와 민중운동·민주화운동에 관한 연구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거청산과 학술 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최근 국정원 진실위 보고서를 엮어냈습니다.




2. 유효하지 않다

지난 주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세계화 시대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으로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오랜 세월 유지해 온 공동체적 유대관계야말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이런 유대관계는 민주화 운동 경험과 결합됨으로써 반세계화 시위의 중심에 한국 민중을 위치짓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 교수는 또 20세기 한국 사회가 겪어낸 파괴적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외세가 지금도 “기득권층을 숙주로 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본다. “노동계급이 제 위상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민족이 진보 진영에서 중심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에 대해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조선 말기 한국 사회는 지역적 언어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는 등 동질성보다는 다양성이 강했다면서, 동질적인 것은 지배계급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교적 문약이 국망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그 대체물로서 부강을 우선시하는 사회진화론적 민족주의가 수용됐다는 게 그의 관점이다. 그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 모순이라는 기본적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면서 “국제주의적 계급 노선, 가깝게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의 ‘피해자 연대’”가 진보의 거시적 담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주에는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견해를 밝힌다.


* 민족 ‘신화’ 넘어 국경 없는 ‘계급연대’로 가자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최근 학계나 진보 운동계 일각에서 ‘탈민족’의 조류가 감지되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민족’만큼 신성화돼 있는 용어는 없을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는 ‘국민’/‘민족’ 담론에 호소하는 일이야 어디를 가나 흔하지만, 한국의 경우 보수와 진보 양쪽은 아직까지도 ‘민족’에 대한 일종의 충성 경쟁을 하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예컨대 지난달 필자가 평소 지지하는 민주노동당은 개천절을 맞이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논평을 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정신으로 이 땅 위에 나라를 세운 지 반만 년의 세월이 흘렀다 (…) 하늘은 아직 다 열리지 않았다. 단군 할아버지께서 돌을 놓으시고 우리가 열어야 하는 하늘이다. 민주노동당은 인간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홍익의 정신이 충만한 세상을 열어 나가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을 다짐한다.” ‘반만년의 역사’와 ‘단군 할아버지’의 역사성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계급 모순을 부정하는 ‘홍익’과 같은 수사를 노동계급의 정당이 이용한다는 것은 놀라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이는 우리 현실 그대로다. 1993년부터 단군을 실재 인물로 선전함으로써 과학적 근대 사학 자체를 폐기했다 싶은 이북(북한)과 달리 적어도 이남(남한)의 학계에서는 민족주의적 신화와 역사를 구분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국사 교과서에서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내용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배워야 할 만큼 ‘민족’의 신화는 여전히 사회 일반에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 발원지인 유럽에서 이미 우파의 구시대적 전유물로 전락해버린 ‘민족’ 담론이 한국에서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족’을 긍정하는 쪽에서는 한국에서의 ‘민족’의 불로불사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국은 근대에 접어들기도 전에 이미 고려·조선 왕조에 의해 천여 년 동안 통일된 중앙집권적 국가로 운영돼 왔다. 그만큼 어느 전근대 사회보다 국가의식과 내부 동일성이 높았다. 거기에다 일제에 의한 식민화가 충격으로 받아들여져 자기방어적·해방적 민족주의 담론은 사회의 통념이 됐다. 그리고 해방 이후 세계에서 동질성이 가장 높은 민족인 우리를 미·소 양국이 강제로 분단시켰으니 자연히 분단 극복 지향의 민족주의 담론이 진보적 사고의 중추로 굳어졌다.” 이런 설명은 꼭 틀리지는 않지만 오늘과 같은 ‘민족’의 위력을 과거에 무비판적으로 투영시킴으로써 한국 역사가 마치 ‘민족’의 중심적 자리매김을 늘 그 전개 목적으로 삼았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동시에 ‘민족’과 무관하거나 ‘민족’을 초월했던 부분들은 배제되고 만다.
예컨대 조선말기에 팔도 기층민중의 문화나 언어는 전혀 ‘동질적’이지 않았다. 충남 천안 출신인 조병옥(1894~1960)이 1911년에 평양숭실학교로 유학 갔을 때 이북 지방의 언어를 거의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지역적 언어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는 등 전통시대 말기의 한국 사회는 ‘동질성’보다 ‘다양성’이 강했다. 국가의식이 비교적 강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명한 의병장 이인영(1867~1909)이 일본군과의 전투 도중 부친상을 치르기 위해 의병 진영을 떠나 낙향했다는 것이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질 만큼 가족 윤리는 국가윤리에 우선되기도 했다.
‘동질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배계급의 성리학적 세계관이었는데, 조선 왕조의 멸망으로 성리학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유교적 ‘문약’(文弱)이 국망의 원인으로 지목돼 규탄 대상에 오르자 성리학의 대체물로서 ‘부강’(富强)을 우선시하는 사회진화론적 민족주의가 수용됐다. 민족주의가 성리학이 비워준 자리를 메운 것이 민족주의 위력의 근원이 됐다. 일제 식민화의 충격이 저항 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의 위치를 굳히게 했다는 것은 맞지만, 민족주의적 저항 운동 이외에도 민족 문제 해결과 계급적 혁명 노선을 병행하려 했던 국내 공산주의 운동 세력들이 식민지 시기 해방 전선의 주축을 맡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국내에서 ‘국제 노선’을 지켜온 공산주의 계열 투사들이 1946년부터 이남에서, 그리고 1953년부터 이북에서 각각 마녀사냥의 대상이 됐기에 우리가 지금처럼 저항 담론으로서 민족주의의 위치를 과장되게 평가하게 된 것이다. 분단 극복이 1945년부터 지금까지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는 것도 맞지만, 과연 1990년까지는 옛 소련, 그 뒤에는 중국의 지원으로 경제를 꾸려온 이북의 지배계급이나, 금융·기술·수출·시장·문화자본 그리고 석유공급의 안정성 등의 차원에서 미국과 일본에 여전히 의존적이지 않을 수 없는 이남의 지배계급이 진정한 분단 극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계급 갈등이 해결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만이 남북한 양쪽의 민중에게 유리한 통일 전망을 열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계급 모순이라는 기본적인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이다.
보통 탈민족주의적 입장에 서는 이들을 공격할 때에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그러면, 대안이 무엇이냐, 민족이 용도폐기되면 진보의 구심점이 될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곤 한다. 필자로서는 그 답이 분명하다. 국제주의적 계급 노선, 가깝게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의 ‘피해자 연대’가 진보의 거시적 담론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일차적 모순과 분단의 이차적 모순 극복에 가장 도움이 된다. 지금 세계 자본주의의 ‘커다란 착취공장’으로 떠오르는 광역의 동아시아·동남아시아는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들을 집중적으로 내포한다. 삼성이나 도요타의 중국·동남아 저임금 노동력 착취, 남한이나 중국에서 ‘정규직 노동’의 치명적 위기, 이민 노동자의 살인적 수탈, 황사처럼 국경을 모르는 환경 인재(人災)들…. 이 문제들의 해결에는 ‘민족’이 백해무익일 뿐이다. 그리고 만약 북-미 관계, 남-북 관계가 계속 개선돼 남한 등 외래 자본이 이북으로 대량으로 침투돼 저임금 노동력 착취를 한층 거대하게 벌인다면 ‘분단’과 ‘통일’ 사이의 모순이 결국 ‘남·북한의 피해 대중’과 ‘남·북한 지배자 연합’ 사이의 모순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15~20년 만에 현대와 삼성이 평양 주위에 공장을 세워 이북 노동자들에게 10만원 이하의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북한 권력자들의 대리인들이 남한에서 은행계좌를 열기도 하고 주식 투자를 하기도 하는 시대는 얼마든지 도래할 수도 있다. 남과 북의 착취자들이 하나가 되는 상황에 대비해서 남한 민중을 대변한다는 진보도 ‘남·북한 경협’에 대한 무비판적인 민족주의적 환희심을 버리고 북한 민중과의 연대, 공동의 계급 투쟁을 벌일 자세를 곧 준비해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를 두고 벌이는 논쟁 소리가 요란하지만, 해답은 이미 현장에서 얻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2007년10월18일치 〈한겨레〉에서 ‘하나로 뭉치니 마음은 하나, 힘은 두 배’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는가? 이 기사는 국내에서 최초로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이 함께 하나의 노조를 만들어 ‘국내외 출신 가릴 것 없이 모든 노동자들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라는 중요한 양보를 쟁취한 대구의 삼우정밀이라는 부품업체를 다룬다. 피부색과 온갖 편견들을 넘어선 자본 피해자들의 연대, 이것이야말로 모든 노동자가 평화롭게 같이 잘살 수 있게 해주는, 미래로 가는 길이다.

* 박노자 교수는 가야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등 처음에는 주로 한국 고대사와 고대 중세 불교사를 연구했지만, 최근에는 한국 민족주의 형성사, 한국 사회진화론 사상사 연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5세기말부터 562년까지 가야의 여러 초기 국가의 역사〉(러시아어판·1998), 〈당신들의 대한민국〉 (2001), 〈우승열패의 신화〉 (2005) 등이 있습니다.




4. ‘민족’은 대중의 생존기반

지난 3주 동안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민족과 탈민족의 관점에 서서 논쟁을 펼쳤다. 안병욱 교수는 한국 사회가 오래 유지해온 공동체적 유대관계야말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면서 세계화 시대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으로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와 임 교수는 탈민족 담론을 펼쳤다. 박 교수는 조선 말기까지 한국 사회가 동질성보다는 다양성이 두드러졌다면서 민족 관념의 실체를 부인했다. 그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 모순이라는 기본적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면서 “국제주의적 계급 노선, 가깝게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의 ‘피해자 연대’”가 진보의 거시적 담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서울과 뉴욕의 중심이 연합하는 지배엘리트의 국제주의 네트워크를 표상한다면서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지배엘리트 간의 국제적 네트워크에 대한 인식을 흐리고, 피지배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고 지적했다.
김동춘 교수는 이 글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가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양상을 점점 지니게 되었다면서도,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단위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했다. 민족 혹은 민족주의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기에 이를 병리적인 것 혹은 ‘특수한 것’으로만 간주하는 시각은 사태의 한 쪽 측면만 강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주에는 안병욱 교수가 그동안 제기된 탈민족 시각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다시 정리해 보여준다.

민족 배제한 사회변혁 ‘순진한 발상’

김동춘/성공회대 교수

민족의 개념에는 종족적 동질성과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모두 함축되어 있다. 곧 민족에는 초역사적·자연적 성격이 언제나 전제되는 경향이 있지만, 시민권의 보유자라는 의미 역시 포함되어 있다. 유럽 등 서구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위는 전쟁 등 봉건질서의 해체와 근대 헌법과 시민권 형성 국면에서 만들어졌고, 자국이 제국주의 침략국으로 나서면서 훨씬 강화되었지만, 근대화·산업화에 실패한 주변부에서는 민족국가 실현의 이상 속에서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민족주의는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적 응집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유사종교인데, 그것이 민족의 자연적 성격을 강조할 경우에는 우익보수주의 혹은 극우 파시즘의 양상을 지닐 수 있고, 주권·시민권 확보의 내용을 강조하면 제국주의·시장주의에 의해 붕괴된 ‘공동체’ 복원이라는 이상을 지니기도 한다. 특히 과거 식민지·종속국의 민족주의는 정치공동체 혹은 ‘사회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어떤 경우든 민족주의는 국가 혹은 사회 내에서 계급적·사회적 차별이 없다고 가정하고 있다. 파시즘의 쓰라린 기억을 가진 서구에서 ‘민족주의’는 주로 부정적 현상을 지칭한다. 이 경우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는 애국주의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한데, 어떤 경우든지 내부의 정치적 억압, 계급 간의 대립을 축소하고 대중을 국가에 복종시키기 위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사회 내의 소수자나 소외된 자들을 억압·기만하기 위한 체제유지적 이데올로기만은 아닌데, 근대 민족국가 수립운동은 헌법적 질서, 시민권 확보, 사회의 공공성 유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권의 상실, 민족국가의 부재는 약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다. 일제 식민지,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체제가 누구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는가를 반추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대중들의 실천으로서 민족주의는 그들의 생존조건을 지키기 위한 운동의 양상을 지니기도 한다.

‘민족주의’눈 두개의 얼굴 지녀
국가 주도하면 ‘애국주의’ 양상
대중 실천하면 ‘저항운동’ 면모

그래서 민족주의는 누구에 의해, 어떤 정치경제 국면에서, 어느 정도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나오는가에 따라 매우 상이한 성격을 지닌다. 과거의 저항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인권·자유의 가치를 내장했지만,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는 전쟁·폭력·차별과 결합된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자본가적 국가주도하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있는데, 중화민족주의는 중국의 자본주의화와 더불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중화민족주의는 외적으로는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수단의 다르푸르 학살과 미얀마의 인권탄압을 묵인하고 있고, 내적으로는 소수자나 노동자 탄압, 언론 통제를 수반한다. 그래서 반제국주의에서 출발했으나 이제는 국가주도의 성장주의의 내용을 갖는 중화민족주의는 동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의 우경화보다 더 위험한 정치적 힘이다.
그 동안 반식민지·반외세·분단극복의 내용을 갖고서 저항 이데올로기로 기능해 왔던 한국의 민족주의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점차 보수 이데올로기로 변하고 있다. 1990년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분단 통일 민족주의의 측면보다는 일종의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양상을 점점 지니게 되었다. 민족주의의 보수화·우경화는 앞에서 시민권·주권 확보의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민족의 자연적 성격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이익과 자본의 이해를 강조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번의 황우석 사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 따라잡아서 1등 하기, 경제지상주의, 국가주의 등 민족주의의 모든 부정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나타난 황우석 신드롬은 민족주의의 맹목적 성격과 위험성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한국이 자본의 수출국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 민족주의가 이제 퇴영적 측면만 갖는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과거 식민지 시절의 저항 민족주의가 제국주의/경제주의에 의해 자유와 시민권이 억압되는 현실을 벗어나서 새로운 국민국가 곧 사회를 건설하려는 열망을 담고 있었듯이, 오늘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신자유주의 광풍에 맞서서 대중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요구는 모두 국가 재형성 혹은 사회 재형성의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분단이라는 특성 때문에 한반도에서 민족주의가 여전히 진보적 요소를 약간이나마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터인데, 어쨌든 분단극복과 통일국가건설의 지향이 인권·평화·민주주의· 공공성 확보와 같은 가치의 인도를 받는 한 그것은 진보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것의 최대의 수혜자는 남북한의 민중들일 것이다.

최근 ‘국가주의’ 우경화 뚜렷하나
민족은 관념 아닌 구체·사회적 힘
통일민족주의 수혜자는 남북한 민중

물론 현재의 지구화 국면에서 설사 남북화해와 분단체제의 제한적 극복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자본의 프로젝트일 가능성이 크고, 그 후 만들어질 사회가 지역·세대·계층으로 극도로 차별화된 사회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의 지구화가 곧 지구적 대안 설정, 지구적 운동의 연대를 보장한다는 전제하에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단위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세계경제, 지구화된 질서 속에서도 쉽게 이전되거나 사라지지 않으면서 대중의 정신적·물질적 생존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 그것이 오늘날 민족(국가)의 실제 내용이다. 문화와 언어, 자연자원, 기술과 교육 인프라, 사회복지 시스템, 중소기업을 포함한 영세기업, 노동자와 농민 및 그들의 재생산 기반, 역사적 기억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민족 혹은 민족주의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정책·제도·정치의 기반이 되는 무시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다. 따라서 민족, 민족주의를 병리적인 것 혹은 ‘특수한 것’으로만 간주하는 자유주의와 탈국가주의 좌파 시각은 사태의 한 쪽 측면만 강조한다. 물론 이제 자본의 수출국이 되고 다인종 국가로 변해가고 있는 한국에게 과거식의 단일민족의 신화나 자민족중심주의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공격은 미국발 대자본의 이해에 기초한 경우가 많다는 점, 과거 제국주의 논리의 현대판인 자유무역, 시장만능주의가 그것을 즐긴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의 중화민족주의와 일본의 우익민족주의의 틈바구니에서 경제적 생존과 문화적 자존을 도모해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반미 통일 민족주의가 대안인가, 아니면 동아시아 시민사회 수립, 노동자의 연대가 대안인가? 이에 대한 답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곤고한 삶을 살아가는 한국 민중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방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남북한 간 전쟁과 갈등을 막는 것, 우리가 원하지 않게 전쟁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째요, 한반도를 아우르는 헌법적 정치단위가 수립되어 경제적 약자들을 법이나 제도로 보호해 주는 것이 둘째요, 성장주의 독재의 뒤안길에서 소외된 중국·동아시아 인민들의 처지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고, 공동의 이상을 향해 연대를 하는 것이 셋째다.

* 김동춘 교수는 1959년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한국 노동자의 사회적 고립’을 주제로 하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과거사 정리 및 한국사회의 기업사회화 현상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근대의 그늘>(2000년) <전쟁과 사회>(2000) <미국의 엔진>(2004) <1987년 이후 한국사회 성찰>(2006) 등이 있습니다.



5. 현실적 역할 엄존한다.

지난 4주 동안 민족과 탈민족 혹은 중도적 관점의 논자 4명이 논쟁을 펼쳤다. 논점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근대 이전 민족 관념의 실체가 있었는냐의 문제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공동체적 유대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진단했다. 반면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조선 말기까지 한국 사회는 동질성보다 다양성이 강했으며 동질적인 것은 지배계급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불과했다는 시각을 보였다.
또 다른 논점은 민족주의가 피지배 계급 저항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안 교수는 공동체적 유대관계야말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면서 세계화 시대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으로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 했고 임지현 한양대 교수도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피지배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고 했다.
두 관점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1990년대 이후 한국 민족주의가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양상을 점점 지니게 되었다면서도 구체적인 사회적 힘인 민족을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이 글에서 민족의식이 계급연대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실사구시적 설명이 부족하다면서 계급연대는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6회와 7회는 권혁범 대전대 교수와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각기 주장을 펼친다. 애초 5회로 연재를 마칠 계획이었으나 이 주제에 대해 학계 안팎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져 논쟁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2회 늘리기로 했다.


계급-민족, 만나야 강력해진다

안병욱/가톨릭대 교수

‘진보적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논지를 펼쳐 달라고 청탁을 받기는 했지만 평소 필자가 민족주의와 관련된 논쟁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흔히 그런 논쟁은 서양의 이론을 끌어다 한국사회 연구자들을 비판하는 식으로 전개되어 왔었다. 그런데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한국사회를 연구한 성과란 서양에 비해 크게 뒤진다. 아직도 기초적인 사실규명에 급급한 처지여서 연구성과에 바탕을 둔 이론적 체계화가 크게 미흡할 수밖에 없다. 그런 형편에서 서양의 이론을 끌어다 전개하는 관념적이고 추상적 논쟁이 실제적이고 균형 있게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국사회에 통용되는 민족주의적 가치를 두고 허심탄회한 논의를 이끌어 내보고 싶어 청탁에 응하여 기고했다. 무엇보다 이번 논의를 기해 한국사회에 대한 심화된 분석이 이루어지고 세계사적인 시야가 확보될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
최근 4개 텔레비전 방송은 서로 앞다투어 가면서 고구려 시대를 소재로 한 연속사극을 방송해오고 있다. 역사를 소재로 창작된 드라마일 뿐이지만 이른바 중국 동북공정 문제로 야기된 민족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분명 올바른 역사 인식과 거리가 있는 우리 사회의 과장된 민족영웅사관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가 하면 독도문제로 인해 거의 주기적으로 일본을 향한 비판적 공격이 촉발되곤 한다. 상대국들이 문제를 야기하고 빌미를 제공한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사회는 이런 문제에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해 온 것이다. 때로는 그동안 쌓인 감정의 응어리를 쏟아내듯 맹목적으로 대응하곤 한다. 이런 모습들이 한국사회만의 고유한 현상은 아니겠지만 어떻든 세련되지 못한 낙후한 역사인식인 것이며 때로는 광풍에 가깝다고 할 만큼 과도한 점이 있다.

동북공정·독도 관련 맹목적 반응
민족인식 ‘과잉’ 측면 방증하지만
중·일 아닌 미 정부 비판은 불가능
‘숭미사대주의’ 해법 ‘민족’에 있어

이런 예에서 드러나듯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적 인식이 과잉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민족 정서를 건들면서 파고들면 쉽게 흔들리곤 했다. 거기에는 대중의 정서를 악용해 온 정략적 의도, 상업주의, 기득권 세력의 책동들이 얽혀 있다. 그에 따라 때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의가 불가능하게 되고 그런 정서를 악용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와 사회통제가 횡행해 왔다.
그와 같은 과잉된 현상이 두드러진 경우를 크게 세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중국과 관련되는 역사와 영토 문제 등에서 쉽게 드러난다. 말하자면 대외 관계에서 살펴볼 수 있는 민족주의적 대응이다. 그러나 다 같은 대외 문제이지만 미국과 관련해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현재 반세기가 넘게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어찌됐건 민족 내부문제 때문에 주둔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초국적 자본의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행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일 미국 정부를 비난한다면 사회적으로 무사히 넘어가지 못한다. 예컨대 어떤 경우라도 학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함에도 강정구 교수는 한국전쟁에서 수십만 명의 인명이 희생된 데 대한 맥아더의 책임을 논했다고 하여 2심 재판까지 진행된 현재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이다. 정치인들은 훨씬 제약이 심해 만일 발언 가운데 실수로라도 반미적 표현이 들어간다면 그런 경우 정치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런 상황하에서 한국에 민족주의란 존재하기나 한 것인지. 민족주의가 아니라 숭미사대주의라는 설명이 합당할지 모르겠다. 이는 19세기 서양에서 시민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민족주의가 형성되던 조건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민족주의적인 인식이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이주노동자 문제가 상징하는 것처럼 저성장국 사람들을 상대로 표출되는 흔히 졸부 근성이라고 비난받는 일부 한국인들의 행태이다. 참으로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그러나 이는 일부 사람들의 일그러진 행태라고 봐야지 그것을 민족성 내지 민족주의 탓으로 환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는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일시적 부작용이며 한때 일본관광객들에게서 제기되었던 문제와 비슷한 현상이다. 개개인들의 성숙된 인식이야말로 공동체를 매개로 형성되는 자율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오히려 공동체적인 유대관계를 순기능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사회를 마치 시대착오적 민족주의가 전횡한다고 하는 획일적 시각으로 재단하여 비난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왜곡된 편향이다. 개인들의 일탈을 민족적인 것으로 확대 인식하는 것은 지난날 일제침략을 위한 식민주의 사관과 다르지 않다.

이주노동자·저성장국 폄하 문화
‘민족 공동체의식’으로 극복해야
“민족이 계급연대 저해” 주장보다
분단·차별 대응 방안 모색해야

셋째로 가장 맹목적 행태는 안으로 노동자 파업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목도하게 되는 우리 사회의 파시즘적 반응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본은 파시즘적 비호를 받으면서 무소불위의 횡포를 자행하지만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은 권력의 야만적 탄압으로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마저 양보해야 한다. 자본을 중심으로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는 여론 몰이에 혹세무민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삼성재벌과 같은 공룡이 탄생하고 나라는 삼성의 수중에서 농락당하는 형국이 되었다. 자본의 시장논리는 노동자의 파업권이 확보될 때 비로소 성립될 수 있는데도 삼성은 국가의 공권력을 이용해 그러한 최소한의 공리마저 무시해 오다가 초역사적인 괴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자본과 노동계급관계의 차원을 넘는다. 또 계급연대만으로 해결되기도 어렵다. 더욱이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더해지면서 노동자들의 의식은 오히려 더 열악해지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노동계의 동향은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 지난 1990년대 한국의 노동운동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을 때와 비교한다면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당시 노동운동은 민족민중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곧 노동자의 계급연대란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탈민족을 향해 나가는 세계사의 흐름을 부인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의식이 어느 시대 어느 조건에서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현재의 한국적 현실에서 불가피한 측면에 대해 변명한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세계사의 흐름에 조응하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 탈민족을 내세우면서 민족주의적 주장들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판할 뿐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말하지는 않고 있다. 계급연대를 말하지만 이에 대한 실사구시적인 설명은 부족하다.
때문에 그동안 민족의식을 매개로 지탱해온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기반과 역사성을 탈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고 허물어낸 틈새로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펼쳐지는 것은 아닌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민족의식이 계급연대를 저해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낡은 시대의식(민족주의)이 세계사적인 새로운 흐름(탈민족 계급연대)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모순된 인식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민족주의의 개념 정의나 이론도 아니고 또 민족의식에 책임을 전가하는 일도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인 민족분단, 민중 차별과 갈수록 열악해지는 생존 조건, 신자유주의 초국적 자본의 야만적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그 점에서 여전히 진보적 민족주의의 할일은 남아 있는 것이다.

*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1948년생으로 조선후기 사회변동 문제와 민중운동·민주화운동에 관한 연구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거청산과 학술 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최근 국가정보원 진실위원회 보고서를 엮어냈습니다.


6. 용도폐기 할 때

지난 5주 동안 네 명의 논자가 민족주의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을 펼쳤다. ‘민족’ 진영의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와 ‘탈민족’ 진영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임지현 한양대 교수 그리고 중도적 견해를 가진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현 단계 민족 담론의 유효성과 한계를 주제로 비판과 반비판을 전개했다.
이번 논쟁의 큰 축은 ‘저항적 민족주의야말로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이라는 안 교수의 입론을 따라 형성됐다. 그는 계급연대는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임 교수도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피지배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민족 현실론’을 폈다. 한국 사회에서 민족은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기에 이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는 이 글에서 민족주의의 본질을 배제와 차별로 규정했다. 민족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생명·평등 등 보편 가치가 그 아래 종속되고 개체적 정체성과 ‘개인해방’은 사소한 것으로 전제된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부국강병주의’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권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근거는 민족이 아니라 개발독재가 파괴한 작은 공동체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이제는 민족주의를 땅에 묻어야 할 때라고 단언했다. 이번 논쟁의 마지막 회가 될 다음 주에는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견해를 밝힌다.


신자유주의 못 막는 ‘민족’을 땅에 묻어라

권혁범/대전대 교수

제3세계의 저항적 민족주의와 제1세계의 민족주의를 뭉뚱그려서 한통속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자의 정당방위적인 성격과 후자의 공격적·제국주의적 성격을 구별하지 않는 위험을 갖기 때문이다. 사카이 나오키 등 제1세계 지식인들의 ‘탈민족주의론’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주변부의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관계를 은폐하는 기능을 맡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의 유사성을 간과하는 진보적 민족주의론에도 큰 문제가 있다. 여전히 ‘우리’와 ‘남’을 배타적으로 설정하는 프레임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민족은 동질적 집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상호 모순적인 성별 계급 등 간의 충돌과 이해관계를 무화시킨다. 계급의식은 몇몇 논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민족공동체’에서 더 강력해지는 게 아니라 약화된다. 진보진영에서 자주파와 평등파의 논쟁이 일어나는 이유다. ‘우리’의 강조는 ‘내부’의 문제를 덮어버리고 지배적 소수의 이익을 ‘우리 민족’이라는 언술적 가면으로 포장한다. 개인=사회=민족=국가=기업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그것을 ‘삼성 민족주의’라고 부르면 과장일까?
다른 한편으로는 ‘남’ 역시 동질적인 집단으로 타자화된다. ‘미국놈’ ‘미국사람’ ‘미국정부’ ‘미국 시민사회’가 똑같은 이해관계를 지닌 하나의 단위로 간주된다. 거기서 이삼성의 표현대로 ‘한국 내 냉전세력과 미국 내 군사주의 세력 간의 비대칭적 동맹’을 읽어내기란 어렵다.
민족주의는 민족 및 국가의 영원한 유지와 번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집단주의다. 따라서 생명·평등·인권·자유 등의 보편적 가치는 그것 아래 종속되며 개체적 정체성과 ‘개인해방’은 ‘사소한 것’으로 전제된다. 또한 사회적 소수자나 타민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자동적으로 생산한다.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일그러진 행태’나 ‘일시적 부작용’이 아니다. 배제와 차별은 민족주의의 본질이다. ‘가장 유용한 유대관계는 민족의식’(안병욱)이라는 주장은 다양한 집단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위계질서화하는 기능을 한다. 민족이 최고고 그 다음은 계급이고, 성별이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계급·젠더 문제 이전에 국가 간의 이해 대립이 초래한 모순에 더 좌우되고 있다”(안병욱)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민족보다 젠더가 더 중요한 기준일 수가 있고 장애인에게는 장애여부가 계급이나 민족보다 우선하는 범주가 될 수 있다.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던 내 후배(장애인)는 결국 캐나다 이주를 택했고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홍석천은 네덜란드로 떠나고 싶어했다. 국적을 넘어서는 월경적 주체를 지향하는 여성주의자에게도 민족은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탈민족적 주체들을 민족의 하위 단위로 포섭할 때 그것은 다중적인 주체의 형성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만다. 민족 및 계급해방 다음에 여성해방을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해방론’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와 ‘남’을 배타적으로 구분
우리 안의 다양한 모순 무화시켜
오히려 계급의식 약화 불러오고
‘남’에 대한 억압과 차별 자동생산

고정적 우선순위를 두면 서열화와 억압이 발생한다. 가령 사회운동이 여성운동이나 장애인운동에 ‘앞서’ 국가보안법 철폐에 ‘집중’하자는 것은 현실을 단순하게 인식한 것이다. ‘진정한 진보’라는 말은 이래서 위험하다. 우선 순위는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족을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그 기준에 따라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하는 것은 이성애-비장애인-남성 중심적인 진보적 민족주의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려는 시도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민족주의로부터 나온다는 주장과 민족주의에 대한 공격이 ‘미국발 대자본’의 이해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지적(김동춘)은 어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전국적으로 일어난 ‘금 모으기 운동’과 ‘선진국 음모론’은 ‘내부’의 단결을 외치며 ‘외부’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함으로써 되레 재벌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고 한국사회의 내부적 변혁을 오히려 가로 막는 역할을 담당했다. 민족이라는 코드를 통한 한국의 대자본과 한총련의 입장이 이렇게 유사한 때가 있었는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닫힌’ 민족주의나 ‘열린’ 민족주의 간에 둘 다 낡은 부국강병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전통적 신분질서를 무너뜨리는 진보적 구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발전주의를 뒷받침하며 그것이 유발하는 모순을 정당화한다. 후진국에 대한 착취나 생태계의 파괴를 ‘우리 민족’의 번영과 ‘힘을 키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앙집중적 산업문명에 의한 자연의 정복과 약탈, 환경 공공재 파괴에 대한 고려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요즘 유행하는 ‘선진국’ 담론, 통일 담론에도 이런 점이 깊숙이 들어가 있다. ‘국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통일을 하려는 이유도 ‘한민족의 경제력 증강’을 위한 것이다. 진보적 민족주의는 국내·국제의 불균등발전과 재분배에 주목하지만 생태적 재앙을 일으키는 ‘부의 확대재생산’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전통질서 깼지만 ‘부국강병’ 내포
후진국 착취·생태계 파괴 정당화
세계화 맞선 국제연대에도 힘못써
친생태적 마을공동체 복원이 대안

자본과 상품이 무차별적으로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적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운동-노동·환경·여성·비정규직·이주자 운동이 민족이라는 코드에만 의존해 ‘국제연대’를 할 수 있겠는가? 점점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민족주의에 입각한 일국적 관점과 운동으로는 불가능해지고 있다. 개인을 넘어서면서도 민족에 안주하지 않으며 민족국가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초국가적 시민사회 및 시민운동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할 수 있는 근거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개발독재가 파괴한 작은 공동체, 곧 친생태적 풀뿌리 ‘마을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세계화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삶의 구체적인 테두리’(김우창)를 없애나가는 민족주의로 퇴행하는 것을 막으려는 녹색의 정치학이다.
민족주의는 ‘구체적인 힘’이고 민족을 무시한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김동춘)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30년대의 파시즘도 현실적 힘이 아니었던가? 민족의식이 부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면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그것을 견제해야지 따라가야 할 것인가?
제3세계의 진보적 민족주의가 한때 가졌던 긍정적 역할과 힘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가졌던 반냉전주의 및 반제국주의적 성향은 정당하다. 하지만 후자가 결국 주변부 부르주아의 자본주의적 헤게모니에 흡수되고 말았던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21세기의 세계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고민과 대안 모색에서 필요한 것은 탁석산이 인용한 지수걸의 말대로 민족주의에 대해 ‘겸허한 장례식’을 치르는 일이다.

* 권혁범 교수는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대(엠허스트)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주요 관심분야는 민족주의·환경·페미니즘입니다. 지은 책으로는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2000), <국민으로부터의 탈퇴>(2004),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2006), <우리 안의 파시즘> (2000, 공저) 등이 있습니다.



7. ‘민족’ 해체는 절박한 과제

이번 주로 모두 일곱 차례에 걸친 ‘민족주의 논쟁’을 마무리한다. 1, 5회의 안병욱 교수를 비롯해 박노자·임지현·김동춘·권혁범·김상봉 교수 등 모두 여섯 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가운데 안병욱 교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민족주의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저항적 민족주의야말로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이라면서 계급연대가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박노자·임지현·권혁범 교수는 탈민족주의 시각을 폈다. 박 교수는 민족주의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문제를 호도한다는 점에 강조점을 뒀다. 임 교수는 피지배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 교수는 ‘민족’이 최고의 가치가 되면서 생명이나 평등 등 보편가치가 종속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중도 시각의 김동춘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민족은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기에 이를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민족현실론’을 폈다.
마지막 논자인 김상봉 교수는 서양 이론에 기댄 소모적 논쟁보다는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가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족 해체로 민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민족과 국가가 폭력적인 홀로 주체로 군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것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으로 형성해가야 한다고 했다. 다음 주제는 ‘노마디즘,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핏줄의 민족’ 버리고 ‘주체적 우리’ 고민할 때

김상봉 교수/전남대

민족주의가 ‘집단적 자기’에 대한 집착이라면, 민족주의를 해체하는 것은 지금 한국에서 절박한 실천적 과제다. 아집이 어리석은 것은 집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집이란 자기동일성에 대한 집착인데, 살아 있는 어떤 것도 순수한 자기동일성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런 동일성이란 플라스틱처럼 죽은 사물의 특징인 것이다. 하물며 개인도 아닌 집단인 민족을 두고 고정된 동일성을 몽상하는 것은 계몽된 시대에 어울리는 자기인식이라 말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민족의 구분기준은 너무도 야만적이다. 현행 중학교 도덕 교과서는 민족을 “씨족이나 종족, 부족 등의 단어와 마찬가지로 공통의 조상을 가진 한 핏줄로 이루어진 집단”이라고 정의한 뒤에 너무 자연스럽게도 민족을 “하나의 큰 가족”이라고 이르고 있다.(도덕 II, 156) 민족을 가족과 같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맞지 않은 것은 물론이지만, 민족이 핏줄로 규정되는 나라에서 민족 구성원들에게는 맹목적 충성이 강요되는 반면, 조금이라도 핏줄이 다른 사람들이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은 세계화된 시대에 정말 심각한 질병이다.
한편에서는 차라리 감옥에 갈지언정 군대 가서 총을 들 수 없다는 젊은이들은 핏줄이 같다 해서 군대에 끌려가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고 살면서 이 사회에 동화되어 살고 싶어도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다. 새로 결혼하는 일곱, 여덟 쌍 중의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하는 나라에서 계속 이런 식으로 핏줄의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린다면, 머지않아 우리 사회는 이 사회의 주류에게 까닭 없이 배제되고 차별받은 소수자들의 좌절과 증오가 집단적으로 분출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핏줄’ 로 규정되는 민족주의는 주체성 억압·타자와 소통 방해
“민족이 세계화의 대안” 주장은 질병으로 다른 질병 고치는 격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근절되지 않는 까닭은 민족주의 없이는 개인을 국가의 부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으로 훈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실린 국기에 대한 맹세는 우리에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조국은 언제나 민족을 팔아 충성을 강요한다. 그렇게 홀로주체로서 군림하는 조국과 민족 아래에서 개인은 주체성을 빼앗기고 전체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런즉 민족주의는 개인의 주체성을 억압하고, 타자와의 참된 만남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타파해야 할 이데올로기이다. 더러는 계급이 민족과 만나야 강해진다거나,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그나마 민족주의가 자기를 지키는 방파제가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질병을 다른 질병을 통해 고치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 사회의 도를 넘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이제는 노골적인 인종주의로까지 타락한 상태이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호히 국가주의에 저항하고 민족주의를 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민족주의를 비판할 뿐 그것의 존재 근거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족주의라는 질병을 결코 치유할 수 없다. 민족은 실체가 아니라 주체이다. 주체성은 자기인식에 존립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스스로 욕구할 줄 모르면서 주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자기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꿈과 동경 속에서 이상적 자기를 욕구하는데, 안정된 자기인식은 기억 속의 자기와 동경 속의 자기가 조화를 이룰 때 형성된다.
이 기억과 동경의 내용이 무엇이든지간에, 자기인식은 필연성과 자유라는 두 계기 사이에서 생성된다. 필연성은 고정성으로서 이를 통해 나의 존재는 안정성을 얻는다. 반면 자유는 유동성이지만, 이것이 없다면 나는 노예 상태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오직 자유로운 필연성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긴장 속에서만 자기를 주체로서 인식하고 실현하게 된다. 고정되어 주어진 나의 존재로부터 자유롭게 나를 형성할 때 비로소 나는 자기를 온전한 주체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함께하는 주체들의 공동체가 나라
민족이란 그런 나라 이루는 집단
국가 비판하며 능동적으로 형성할 ‘우리는 누구인가’ 묻고 모색해야

그런데 나의 주체성은 결코 고립된 홀로주체성일 수 없다. 나의 기억과 동경은 언제나 너의 기억 및 동경과 맞물려 있다. 그런즉 나는 오직 너와 더불어 우리가 될 때, 참된 주체가 된다. 이것이 서로주체성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체성의 현실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연성과 자유가 같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가족은 필연적 공동체일 뿐 자유의 현실태는 아니다. 반면 정당이나 기업 같은 사회적 결사체는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이지만 필연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 점에서는 계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은 가족 속에서는 자유의 결여 때문에, 그리고 계급 속에서는 필연성의 결여 때문에 참된 자기를 발견하지 못한다.
필연성과 고정성을 가지면서도 자유의 현실태인 공동체가 바로 나라다. 나라는 내가 그 속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에서 이미 주어진 나의 과거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내가 적극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의 현실태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다른 어떤 공동체보다 나라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강렬하게 확인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민족이란 그런 나라를 이루는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 한에서 민족이란 인종처럼 생물학적인 범주가 아니라 철저히 정치적인 범주로서, 그 속에서 나는 참된 의미의 주체 곧 시민적 주체로서 나를 인식하고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을 계급적 연대나 다른 탈민족적인 만남 속에서 해체하자는 제안은 세계시민적 주체성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제안이지만, 민족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이런 제안은 온전한 나라의 형성이라는 과제를 방치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현실적으로 규정하는 국가기구와 법률을 결국은 악한들의 손에 내맡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민족과 국가가 폭력적인 홀로주체로 군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으로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나라를 서로주체성의 현실태로서 우리의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를 같이 만들어야 할 서로주체인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수백년 동안 이 땅에 살아왔지만 분단되어 반세기 이상을 떨어져 살아온 사람들과 새로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과 이 땅에 살다가 다른 나라로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의 우리로 불러모을 수 있는 서로주체성의 이념은 어떤 것일 수 있는가? 민족의 문제는 오직 이 물음에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을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민족의 역사를 개방적으로 해석하는 박노자의 상상력과 고체화된 민족과 국가를 비판하는 권혁범의 이성과 온전한 나라를 형성하려는 김동춘의 열정을 모두 필요로 한다. 그런즉 지금은 민족주의에 대한 서양 이론의 한 끄트머리씩을 붙잡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 과연 우리는 누구인지를 서로 묻고 같이 대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 김상봉 교수는 1958년생으로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벌없는사회’를 만들어 전 사회적인 반학벌 운동을 전개했으며 현재는 5·18에 대한 철학적 해석에 연구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표 저서로는 <서로주체성의 이념> <도덕교육의 파시즘> <학벌사회> <나르시스의 꿈>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