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샘 논술자료 / 서강대 기출논술문제

※ 정보화, 세계화 시대로 일컬어지는 21세기는 범세계적 의식을 바탕으로 한 문화통합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아래의 두 제시문에서 나타난 문화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이를 긍정적 또는 부정적 논거로 사용하여 세계화 시대의 한국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글 길이는 띄어쓰기 포함 1,600자 내외로 쓸 것(±160자 허용)

(가)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는 성공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제 무덤을 파기 시작한다. 문화 영역에 그나마 온전히 남아있던 것을 해체하고 재가공하고 포장하고 판매하여 인간 활동의 거의 모든 내용을 상품화된 체험으로 바꾸는 데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앞으로 살펴볼 모든 이유들 때문에 그 승리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시장과 네트워크는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시장과 네트워크는 사회적 신뢰감과 공감대가 형성된 강력한 사회 공동체가 먼저 존재하고 나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파생물이다.
경제는 또 다른 의미에서 파생적이다. 문화 생산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빌려오는 것이다. 문화 생산이 상업 영역에서 시작되는 법은 절대로 없다. 산업 생산이 자연에서 나오는 원료에 의존하는 것처럼 문화 생산은 문화 영역이 제공하는 재료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산업 생산이든 문화 생산이든 기본적으로 뽑아서 쓰는 것이다. 자연처럼 문화도 자꾸 캐내면 고갈되기 마련이다. 언제까지나 시장을 위해 황금 달걀을 척척 낳아주는 문화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의 다양성이 중요한 것처럼 문화의 다양성도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인간의 경험을 상업 영역이 근시안적 영리 추구를 위해 착취하기만 하고 순환이나 재충전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경제는 결국 문화 생산의 재료가 되는 인간 경험의 방대한 수원지를 잃게 될 것이다. (중략)
문화를 소생시켜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문화를 생산하는 데 원료가 되기 때문이어서만도 아니고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문화가 만들어내기 때문만도 아니다. 문화는 다른 이유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생되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낳는 유일한 원천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소생하면 시장도 분명히 득을 보겠지만 문화가 단순히 시장의 원료로 사용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문화에서 흘러나와서 인간성을 창조하는, 인간과 인간이 공유하는 의미를 평가 절하하는 것이고, 개인적 오락과 치유의 형식으로 체험을 상품화하는 초라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문화를 격하시키는 발상이다.
철저한 가공과 순수한 시간성이 지배하는 네트워크 세계에서 지리는 더욱 각별한 뜻을 갖는다. 인간과 인간의 교류는 컴퓨터 전송과 수신, 컴퓨터 인터페이스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깊은 인간의 교류는 언제나 지리적 공간에서 일어난다. 문화 체험은 방송 매체와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전달될 수 있지만 원산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진정한 의미의 공유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은 줄어든다. 가령 아일랜드의 마을에서 공연되는 전통 무용은 춤추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의미를 실감나게 전달한다. 그러나 똑같은 무용이 무대에서 공연되거나 텔레비전을 통해 이역 만리의 시청자에게 전달될 때는 단순한 눈요기감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지리적 맥락을 박탈당한 문화 표현은 총체적 체험의 그림자일 뿐이다. 물론 그림자도 엄연한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즐거움도 줄 수 있지만 원래의 무용이 전달하려고 했던 대지와의 깊은 일체감은 맛볼 길이 없다.
모든 현실 문화는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친밀감은 지리적 공간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밀감이 없으면 사회적 신뢰망을 구축하기도 어렵고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문화를 소생시키고 부활시키려면 적어도 사이버스페이스에 쏟아 붓는 만큼의 관심을 지리적 공간에도 보여야 하고 채팅방에 들이는 만큼의 정성을 현실 공동체에도 기울여야 한다. (리프킨, 소유의 종말)

(나) 네팔 왕국의 수도 카트만두는 옛날에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1,400 여 M의 산상호수였습니다. 만주슈리가 큰 칼로 산허리를 잘라 물을 흘려보내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신(神)이 호수를 마을로 만들어 주었다고 구전되어 오듯이 막상 카트만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신입니다.
사원이나 탑에 신상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골목에도 있고, 시장거리에도 있고, 지붕에도 있고, 처마밑에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연못 속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신상들의 모습은 가난한 네팔 사람들의 차림새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공포의 시바신이 그의 처 파르바티와 함께 듀버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창문을 열고 바깥을 구경하는 여염집 부부 같습니다. 네팔의 신은 근엄하거나 숭고하지 않습니다. 쿠마리라는 살아 있는 여신이 있지만 이 여신은 어린 소녀입니다. 그리고 여신의 역할이 끝난 뒤에는 보통 사람들 속으로 돌아와서 대체로 보통 사람들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당신이 카트만두에 오면 가장 먼저 수많은 신을 만나게 됩니다. 신은 신이되 사람들과 가까운 자리에 내려와 있는 신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만나는 것은 사람들의 손길입니다. 오랜 세월과 풍상에 젖어 갈색을 띠고 있는 목조의 사원이나 궁궐 건물에 배어 있는 사람들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허술한 건물에도 창틀과 기둥에는 어김없이 정교하게 조각된 갖가지 문양들이 사람들의 정성스런 손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점의 좌판 위에서 햇볕에 따뜻이 익은 자잘한 기념품들에서도 구석구석 사람들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 신상이나 손길보다 먼저 사람들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순박한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수줍고 어색해 하는 사람들의 눈길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 순박한 눈길은 험악하게 변해 버린 우리들의 얼굴을 반성하게 합니다. 이처럼 카트만두에서 만나는 것은 신상과 사람, 물건과 사람들의 손길이 혼연히 무르녹아 있는 다정한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이 다정함이 사람들의 표정과 마음으로 완성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카트만두의 타멜 거리에서는 유년 시절을 만난다고 합니다. 비단 타멜 거리뿐만 아닙니다. 카트만두의 곳곳에서 우리들의 지나간 유년 시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산 광장에서 어느 골목을 접어들더라도 그 좁은 골목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유년 시절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도 하고 산업화되기 이전의 우리의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시간을 숫자로 계산하며 직선과 격식에 갇혀 있던 심신이 그 틀에서 해방되어 맨발과 땅의 접촉에서 건져올리는 편안함, 그것이 바로 우리의 과거이고 우리의 유년 시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곳 카트만두의 분지에 괴어 있는 유적과 사람들은 이처럼 커다란 거울이 되어 잃어버린 우리의 유년 시절을 보여줍니다. 카트만두가 호수였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비단 유년 시절뿐만이 아닙니다. 카트만두에는 도처에 삶의 원형을 보여주는 거울이 있습니다. 파슈파티나트의 화장터 풍경이 그렇습니다. 장작더미 위에서 타고 있는 시체나 그 시체를 뒤적여 고루 태우는 사람이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가족이나 그리고 임종을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나 어느 한 사람 슬퍼하는 이가 없습니다. 바로 그 밑을 흐르는 강가에서는 빨래하고, 물 긷고, 식기를 닦고, 머리를 감는 일상이 태연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만이 이 태연한 광경으로부터 충격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삶의 찰나성과 삶의 영원성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다신카리 사원에서 보는 암흑의 여신 칼리에게 바치는 번제(燔祭)도 그렇습니다. 짐승을 산 채로 목을 베고 솟아나는 피를 신상(神像)에 바르고 자기의 얼굴에도 바릅니다. 짐승의 체온과 비명소리가 채 가시지 않은 피와 그 피로써 행하는 제의(祭儀)는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합니다. 은은한 파이프 오르간의 성가 속에서 보았던 성체미사의 포도주와는 극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그 적나라한 원시성이 우리의 생각을 압도합니다.
나는 카트만두에서 만나는 이 모든 것이 한마디로 '문화의 원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문화가 치장하고 있는 복잡한 장식을 하나하나 제거해 갔을 때 최후로 남는 가장 원시적인 문화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삶과 그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문화의 자연'(Nature of Culture)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 산업(Cultural Industry)이라는 말이 있지만 문화란 그 본질에 있어서 공산품이 아니라 농작물입니다. 우리가 이룩해 내는 모든 문화의 본질은 대지에 심고 손으로 가꾸어 가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사람에게서 결실되는 것입니다. 문화가 농작물이라는 사실이 네팔에서처럼 분명하게 확인되는 곳도 드물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잘 사는 나라에서 이 곳을 찾아 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카트만두의 골목을 거닐며 네팔의 나지막한 삶을 싼값으로 구경하며 부담 없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은 혹시나 그들이 네팔에서 문화의 원형을 만나고, 그 문화의 원형에 비추어 그들 자신의 문화를 반성하는 대신에 네팔의 나지막한 삶을 업신여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우리가 문화의 원형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 이후의 산업화의 과정은 한 마디로 탈신화(脫神話)와 물신화(物神化)의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의 내부에 있는 '자연'을 파괴하는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외부의 자연을 허물고 그 자리에 '과자로 된 산'을 쌓아온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앞으로 예상되는 영상문화와 가상문화(Cyber Culture)에 이르면 문화란 과연 무엇이며 이러한 문화가 앞으로 우리의 삶과 사람에게 무엇이 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진정한 문화란 사람들의 바깥에 쌓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성 속에 씨를 뿌리고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성숙해 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네팔에서 만나는 유년 시절을 통하여 지나간 과거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깊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신영복, 더불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