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 속에 비친 여성관 /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된장녀’라는 단어의 유래를 두고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된장녀 묘사에는 일관되게 외국 문화에 대한 동경, 과시적 소비, 그리고 남성을 갈취하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진다. 된장녀 열풍이 단순히 사치와 허영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시끄러운 이야깃거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일부 남성들의 불안과 울분이 투영되어 있다. ‘곧 취직할 남자’, 즉 아직 취직하지 못한 백수를 뜻하는 ‘고추장남’이 된장녀의 대척점에 있는 것을 보면 된장녀가 왜 질시의 대상이 되는지는 분명해진다. 자신은 노력도 안하면서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뿐만 아니라 남성을 통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성을 보면, 힘들게 취직 준비하는 남성들은 짜증난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재벌가로 시집가는 노현정은 된장녀의 최고봉으로 비난받는다.
하지만 마초들도 속으로는 알고 있다. 폼 잡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 폼만 잡는 게 아니라 실력도 있다는 걸. 사실은 그래서 더 화가 나고 분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남성에게 의존하는 여성들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의 발목을 잡는다. 헌법재판소장에 전효숙씨를 지명한 것은 국면 전환용 또는 야당 입막음용 ‘여성 카드’라고 비난한다. 여성이라서 발탁된 것이니, 공정하지 못한 게임 규칙 때문에 남성들이 피해를 본 것이란다.

아주 잠시만 묵은 생각을 내려놓고 현실을 다시 보자. 지금도 남성과 비슷한 실력이면 여성은 취직 못한다.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노동자의 40%는 여성이지만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관리직의 10%, 임원 중에는 3%만이 여성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은 여성이지만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 중에도 여성은 13%뿐이니 여성의 뜻도 남성이 대변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통계 수치들은, 잘못된 게임의 규칙은 좀 더 오래되고 근본적인 그 어디에 있음을 시사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예전 같으면 처음부터 여성들을 경쟁 상대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가 이제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보면서 일부 남성들이 느끼는 피해의식은 한편으로는 노현정을 비난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전효숙을 깎아내리게 만든다.

이런 행태 자체가 심히 부당하다는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그럼에도 현실의 벽을 무시하고 무작정 앞으로 돌진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이 세상에 수많은 노현정과 전효숙에게 잘해달라고 부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얘긴데, 결혼한다고 뉴스 진행자 자리 내놓는 노현정 아나운서의 모습은 내 자신도 좋게 보아주기 어렵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야 잘 알지만, 결혼 앞에서 그동안 애써 키워온 자신의 일은 뒷전으로 밀어버리는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여성들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될까 두렵다. 학교 다닐 때 남학생보다 공부 더 잘하고도 취업하기는 더 힘들고, 돌아오는 건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던 여성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지 않은가? ‘언니’들이 잘해 주는 게 후배들 앞길에 돌멩이 하나라도 치워주는 일이다.

한명숙 국무총리나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 같은 분들은 모두들 성공한 공직자로 남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남성이 잘못하면 그건 그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지만, 여성이 잘못하면 여성 전체의 능력을 의심받으며 여성을 중용한 것 자체를 문제 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분들이 여성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하면 충분한 세상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출전: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