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신화' 해체, 두려워할 이유 없다
[이동연 칼럼] 'X파일' 낱낱이 밝히고 우상의 실체 벗겨야 /오마이뉴스
    

몇 년 전부터 부강한국을 만들겠다며 정부와 미디어가 주도한 캠페인이 있는데, 이름하여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글로벌 스탠다드 운동은 한국의 경제, 정치, 복지, 문화를 세계 선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일종의 탈근대 계몽운동이라 부를 법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글로벌스탠다드’ 운동은 ‘삼성스탠다드’ 운동으로 동일시되고 있다. ‘세계 일류기업 삼성’, ‘한국 경제를 이끄는 삼성’, ‘세계 속의 브랜드 삼성’, ‘한국경영선진화의 선두주자 삼성 등 삼성과 관련된 찬란한 수사들은 곧 한국이 달성해야 할 글로벌 스탠다드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홍보된다.

주류 미디어는 삼성을 소득 2만불 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전략적 첨병기업으로 소개한다.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삼성의 이미지는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 더렵혀져서는 안되는 신성한 기호로 각인되어 버린 느낌이다.

‘삼성이 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삼성스탠다드의 신화는 사실 그냥 나온 허풍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미국 경제잡지 포춘지에서 조사한 세계 100대 기업에서 39위를 차지했다. 국내 기업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세계 50위 안에 진입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여지껏 전자입국 콤플렉스를 안겨준 일본의 대표기업인 ‘소니’(47위)를 한참 뒤로 밀어냈다.

삼성그룹은 우리 나라 총수출의 22%(527억달러), 시가총액의 23%(91조원), 세수의 8%를 차지할 만큼 한국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작년 삼성전자가 올린 총수익은 총 10조원인데, 이는 일본의 4개 주요 전자업체의 순이익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올 겨울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이것이 한동안 일본 미디어에 화제가 되었다.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인터브랜드’의 ‘2005년 세계100대 브랜드’ 조사에 따르면 2004년 세계 기업의 브랜드가치에서 삼성 브랜드는 20위를 차지했다.

이쯤되면, 삼성이 한국형 글로벌 스탠다드의 전형이 된다한들, 조금도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형 산업근대화의 표상으로 ‘저돌적인’ ‘현대’가 어울린다면, 글로벌 코리아의 표상은 ‘얄미운’ 삼성이 어울릴법하다(기업이 사람을 결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른바 ‘현대맨’과 ‘상성맨’의 이미지도 이에 부합한다). 한국기업도 세계에서 일류로 통할 수 있다는 국민적 자부심을 심어주는 데 ‘삼성’만한 확실한 계몽적인 스탠다드가 있을까?.

글로벌스탠다드인가, 삼성스탠다드인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삼성이 이루어 놓은 막강한 파워는 일반 대중들에게 부인하기 어려운 강력한 신화를 생산한다. 삼성의 힘에 대한 세간의 찬사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징적인 경배의 대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국정원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력을 가진 삼성, 국가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진 삼성, 정계와 언론계, 검찰을 장악한 삼성, 신비로운 베일에 가려진 이건희 회장 일상사에 대한 소문들, 엘리트 삼성맨들에 의해 유포되는 수십억대의 연봉 신화들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것을 넘어서 아예 ‘지각불가능한’ 경배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전 세계 다운타운 중심가에 거대한 스펙타클을 연출하는 삼성의 전자간판 로고는 그 나라에 사는 동포들에게는 소위 ‘신성삼성제국’의 위용처럼 보일 것이며, 축구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첼시의 유니폼에 새겨진 삼성의 로고를 머지않아 TV를 통해 보게될 때, 남미의 한 프로클럽의 유니폼에 새겨진 LG의 로고를 보았을 때보다 더 감격해 할 것이다.

삼성은 실물경제에서 광고에서 축구경기장에서 도심에 이르기까지 상징적인 기호로 반복 각인되면서 대중들에게 신화체계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삼성과 연관된 사회적 부정의나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촌스러운 일일뿐더러 반국가적인 금기행위가 되어버렸다.

지난번 고려대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으려는 이건희 회장을 제지하려는 학생들의 시위가 몰지각하고 철없는 행동으로 매도되고, 고대생의 삼성취업불가 걱정에 노심초사한 고려대 보직교수들이 급기야는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는 헤프닝이 연출된 것도, 비가시적인 상징권력이 되어버린 삼성신화의 일면을 보여준 사례이다. 철학박사라는 인문학의 가장 오래된 명예를 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한 경제인에 400억원에 판 민족고대의 ‘센스’는 아마도 삼성신화에 기가 죽은 것은 아니었을까?

어디 이뿐인가, 최근 MBC 이상호 기자의 삼성 관련 X파일 보도를 둘러싸고 MBC 경영진과 제작진이 보여준 나약하고 실망스런 태도는 1987년 민주화 국면에 시민의 힘으로 공영방송이 된 MBC의 정체성에 어긋나 있다.

'무노조 삼성'이 가장 경쟁력있는 기업의 표본으로 추앙받는다?

여기에 무노조 삼성이 오히려 가장 경쟁력있는 기업의 표본으로 추앙받는 것 역시 삼성이 만들어낸 강력한 신화이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성이 막후에서 정계와 언론계, 관계, 그리고 법조계와 타협한 정의롭지 못한 정보는 멕베드 부인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아라비아의 향수를 다 뿌려도 손에서 영영 지워지지 않는 냄새’를 배고 있는지 모르겠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현대의 신화는 자명하지 않은 것을 자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신화는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대중들에게 믿게 만드는 거짓된 신념체계를 의미한다.

마치 삼성에 노조가 만들어지면 국민경제가 파탄날지도 모른다는 신화, 이상호 기자의 X파일이 폭로되면 삼성 기업이미지가 나빠져 대외 수출이 안돼 주가가 폭락하고, MBC는 불법도청에 기반한 보도로 국민신뢰를 잃고 거대광고주를 잃게될 지 모른다는 공포심, 삼성족벌이 승계되지 않으면 삼성은 망할 거라는 두려움 등등이 오히려 과거보다 더 강력하게 대중들과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어깨를 짓누루고 있다.

‘삼성스탠다드’에 대한 사회적 강요는 일종의 거세공포증에 대한 강박증세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사회가 삼성을 ‘언터처블’(untouchable), 혹은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한 우상으로 만드는 신화체계는 삼성 스스로 조작한 것이지만, 대중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부자가 되어야 하고, 엘리트가 되어야 하고, 선진일류국가가 되어야한다는 강박증세가 결국 삼성과 관련된 신화파괴, 우상파괴의 모든 행동을 반경제적, 반국가적 행위로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경쟁에서 이탈하면 안된다는 이른바 ‘글로벌 거세공포증’은 수단과 과정의 정의로움을 거세시키고, 오직 결과만을 숭배하는 이상한 증상을 야기한 것이다.

‘삼성스탠다드’는 삼성신화의 왜곡된 우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정과 수단에 있어 투명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다른 더 행복하고 진실된 삶의 스탠다드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누구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투명하고 정의로운 것들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지켜지고,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삼성스탠다드의 장밋빛 이면에는 무노조삼성, 권력과 언론에 유착된 삼성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우리사회는 이러한 어두운 삼성의 신화를 벗겨내고 해체하는 그 어떤 행동에 거세공포를 가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거세공포는 진실도 아니고 실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이상호 기자의 X파일이 낱낱이 밝혀지고, 삼성스탠다드 신화의 실체가 벗겨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