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도박공화국 최후의 도박 /  박혜영/인하대 영문과 교수


2002년 12월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국민들은 ‘승부사 노무현’의 저돌적인 올인 정신에 감탄하였다. 부산 출신으로 민주당 후보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더니 급기야는 후보 단일화 결단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후보는 그야말로 정치 도박의 귀재로 불릴 만큼 매번 사선을 넘나드는 승부수를 던졌고, 그 때마다 멋지게 이겼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뒤로도 진땀나는 정치적 도박은 몇 번이나 계속되었다. 취임 후 1년도 안 돼 재신임 정국과 탄핵정국이 불어닥쳤고, 모든 것을 올인한 이 베팅으로 국민들은 또 다시 손에 땀을 쥐고 승률을 점치거나 아니면 급한 대로 촛불이라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야 했다. 물론 여기서도 멋지게 성공하여 노 정권은 여대야소의 정권 구도를 경품으로 얻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여야 했다.
국민들이 손에 땀을 쥐고 애를 태우며 정치도박을 구경하는 것도. 하지만 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은 한나라당은 물론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 대연정 제안과 이라크 파병이라는 연타 베팅으로 이어졌다. 이젠 노 정권의 높은 승률도 겁나기 시작했지만 더한 것은 이런 식의 돌발적인 정치도박을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건다면 건다’는 식의 베팅은 결국 한-미 자유무역협정까지 오고야 말았다.

녹색평론사에서 최근에 나온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우석훈 박사는 지금 정부가 “고이윤을 위해서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는 도박사 같은 태도로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정치도박이 겁나는 것은 승률의 결과에 따라 모든 것을 날리는 것은 노 정권이 아닌 바로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협상의 파장은 향후 5년은 지나야 나타날 것이고, 그 때쯤이면 지금의 ‘바다이야기’ 도박사건처럼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석훈 박사에 따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면 가계 평균 연봉 6천만원 미만은 심각하게 이민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갖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 때문이다. 협상에서 별도로 명시되지 않은 모든 항목들이 개방을 요구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서민들이 먹고 사는 방식이 실로 수만 가지일 텐데 이것을 어찌 다 일일이 협상문에 명시해서 열외로 한단 말인가? 게다가 기업소송권까지 용인한다는 것은 바야흐로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우리 정부의 정책조차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민들을 위한 정부정책이 가능할 것인가?

최고의 도박사라면 적어도 자기 식구들을 걸고 베팅하진 않아야 한다. 지금 노 정권은 가뜩이나 양극화로 무너지고 있는 이 땅의 서민들을 걸고 베팅하고 있다. 우석훈 박사는 이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라는 빙산을 피하려면 노무현호에서 서둘러 내려야한다고 하지만, 사실 서민들은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이미 ‘바다이야기’에 빠진 지 오래다. 노무현 대통령은 승부사로 시작해서 승부사로 멋지게 마감하고 싶겠지만 적어도 이번 베팅은 이미 사행성 도박판이 되어버린 서민경제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을 최후의 도박이 될 것이 자명하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아슬아슬한 승률을 지켜보아야 하고, 결국 승자독식의 경품이나 열망하는 사회라면 결코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선진사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출전: 한겨레신문 2006년 8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