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학년도 이대 정시논술문제 해제와 글 평가
                                                
논제: 사회 공동체에서 언어는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 아래 지문들의 내용에 근거하여,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지 자신의 관점에서 논술하시오. 글 길이는 1500자 내외(1400~1600자)로 서술할 것.

(가) 인간이 벌이나 다른 군서(群棲) 동물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 동물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자연은 그 어떠한 것도 헛되이 만드는 법이 없다. 자연은 모든 동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언어 능력을 부여했다. 언어는 발성 능력과 다르다. 다른 동물들도 소리는 낼 수 있으나, 그들의 소리는 단지 고통스러움과 쾌적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도 본성적으로 쾌와 고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느낌들을 소리를 질러 서로에게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그러므로 의로운 것과 의롭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 간의 진정한 차이는 인간만이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을 지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공동의 인식을 소유함으로써 가정과 국가를 구성할 수 있다.

(나) 사람은 논변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사람은 누구나 홀로 서 있으면서도 의사소통적 문맥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이상적인 의사소통 공동체’가 의미하는 바이다. 논변적 담론의 참여자들에게 요구되는 합의는 현실적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서야 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속하여 있음에서 오는 그들의 사회적 유대감은 이런 담론 속에서 손상되지 않고 유지된다. 담론에 의해 합의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다음 두 사항에 의거한다. 하나는 예 또는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양도불가능한 개인의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자기중심적 관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비판 가능한 주장에 대해 예 또는 아니오로 대응할 수 있는 개인의 불가침적인 자유가 없다면, 동의는 진정으로 보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한편 각자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지 않는다면, 오랜 토론을 거치며 숙고해도 보편적 동의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은 양도할 수 없는 자율성을 지닌 동시에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는 관계망의 구성원이다. 이 두 국면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담론을 통한 결정 절차에서는 바로 이런 연결 관계가 고려되어야 한다.

(다) 토론을 하는 사람은 의(義)로써 서로 돕고, 도(道)로써 서로 깨우치고, 선(善)을 따를 뿐 반드시 이길 것을 구하지 않으며, 의에 승복할 뿐 말이 막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거짓으로써 서로 미혹케 하고, 화려한 언사로써 서로 혼란스럽게 하고, 나중에 멈추는 것을 서로 자랑으로 여기며, 어떻게든 이기기만을 바라는 것은 토론을 함에서 본받을 바가 아닙니다. 무릇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제후들을 현혹시켜 대국을 망하게 하고 군주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게 하였으니, 이들이 변설에 뛰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말은 나라를 어지럽히는 길이었습니다. 군자는 비속한 사람들과 더불어 군주를 섬기는 것을 꺼려하였으니, 그들이 군주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면서 어떤 일도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을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바르고 의로운 말을 받아들여 경(卿)·상(相)을 보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여 당장의 유리한 말만을 좋아하며 훗날의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 같은 식으로 관리 노릇을 하면 마땅히 중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1. 출제 경향 및 논제에 관한 포괄적 접근과 이해

전통적으로 이대 논제는 인문학적 성찰이 요구되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어 왔다. 시사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해 찬반 견해를 묻거나 특정 학문의 특정 이론을 배경지식으로 요구하는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타인의 시선이 개인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2003), ‘소비 사회의 문제점과 그에 따른 해결 방안’(2004), ‘신화, 소설 등 비일상적인 것들의 기능’(2005)을 물었던 기출 문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2006학년도 정시 모집 문제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번 논술 주제는 ‘언어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것이다. 문제에서는 논제를 좀 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논술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학생들은 아마도 언어학이나 사회학 관련의 이론들을 떠올리며 더 깊은 배경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불안해했을 성 싶다. 그러나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학교의 교육과정에서도 다루어졌을 법한 주제이다. 또한 학생들 각자가 사회적 관심이나 역사적 지식을 동원하여 얼마든지 응용해 볼 수 있는 이슈이기도 하다. 주어진 제시문 속에 숨어 있는 실마리들을 잘 활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제시문 첫 문장은 “사회 공동체에서 언어는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로 시작되고 있다. 이런 문장은 주어진 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정보를 제공한다. 아마도 학생들이 언어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논할 때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라는 측면에 집중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지 말고 ‘그 이상의 역할’을 생각해 보라는 숨은 길잡이로 읽어내야 한다.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문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 글자 한 글자를 꼼꼼히 읽어야 출제자가 배려한 이정표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
이대 논술 문제에는 해마다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빠지지 않고 붙는 요구사항이 있다. ‘아래 지문들의 내용에 근거하여’와 ‘자신의 관점에서 논술하라’가 그것이다. ‘지문의 내용에 근거하여’는 문제가 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잘 살펴 이에 맞게 글을 구성하라는 주문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논술하라’는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아무나 읽어도 그만인 밋밋한 글이 아니라 학생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고 개성 있는 사고를 보이라는 요구이다. 뻔한 인용이나 예시보다는 참신한 논거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 구절은 학생이 사전에 유사 논제에 맞추어 암기식으로 준비한 논술문을 피하라는 주문이다. 출제 의도에 맞추어 글을 작성해야 평가자들이 채점하기에도 편하고 학생의 사고 수준을 평가하기에도 좋다. 실제로 각 대학의 논술 담당 교수들은 붕어빵을 찍어낸 듯한 똑같은 주장과 논거들 때문에 채점하기가 난감했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논제가 요구하는 방향을 따라 한 발짝 나아간 생각을 풀어내지 못하고, 익숙한 지식 패턴에 맞추어 글을 작성하다 보니 너나없이 다 알고 있는 뻔한 공식에 맞춰 글을 작성하기 때문이다. 제시문을 올바로 분석하고 독창적 사고력을 보이라는 논술 평가 기준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2..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 끌어내기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분석한 내용을 가지고 ‘자신의 관점에서’ 논하는 것을 가장 까다롭게 여긴다. 사실, 논술의 변별력도 제시문 분석보다는 주로 이 대목에서 발생한다. 독해 분석력보다 창의력과 논증력의 격차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시문 안에 힌트가 숨어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 것은 ‘꼼꼼하게 살펴보기’와 ‘현실에서 사례 찾기’이다.

예를 들어, ‘윤리적 가치를 공동으로 인식함으로써 가정과 국가를 구성할 수 있다’고 언급한 제시문 (가)의 핵심 내용에 주목해 보자. 여기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례를 떠올려 보면 지지 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남북의 이질적인 언어 문화는 혹시 어떨까?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동지’, ‘당파성’, ‘혁명’ 등 계급성을 강조하는 어휘를 많이 사용한다. 또한 주체사상을 강조하고 노동자 중심의 언어를 사용하려는 경향 때문에 외국어를 순우리말로 바꾼 사례가 많다. 한자어의 경우 ‘견인선(牽引船)’은 ‘끌배’, 외래어 ‘볼펜’은 ‘원주필’, 일상 용어 ‘도시락’은 ‘곽밥’ 등으로 표현하는 데, 이는 남한의 표준어와 다른 예들이다. 또 ‘효과를 얻다’를 ‘은을 내다’로, ‘책상다리를 하다’를 ‘올방자를 틀다’로 표현하는 등 말의 형태에서도 우리와 완전히 다른 것도 있다. 이런 언어들은 북한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그래서 통일 이후를 준비하자는 논의 속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중요 과제가 바로 민족 동질감의 회복이며 첫째로 꼽는 것이 언어 이질화 문제이다.

그 밖에도 일제가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펼칠 때 우리 선조들이 언어를 민족정신과 동일시 여기며 항거했던 전례가 있다. 주권을 빼앗긴 조국을 등지고 제 3세계로 떠났던 해외 한인들이 자식에게 한글을 전수함으로써 민족의식을 살려내는 것도 떠올려 볼 만하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조선족이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여기면서도 한민족의 풍습과 민속을 통해 자치구를 지켜내는 데에는 언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들 모두 언어가 가치관과 문화를 담아내고 그 속에서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사례들이다.

다른 측면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계층, 집단 간에 벌어지는 일에도 눈을 돌려보자. 인터넷에서 청소년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이모티콘과 채팅 언어는 익숙한 계층의 동질감을 쉽게 형성해 주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TV의 특정 개그 프로그램들이 양산하는 유행어는 그것을 시청하지 않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한다. 언어를 달리 사용하고 유머를 구사하는 규칙이 달라지면 대화의 어려움이 증폭된다. 여기에서는 공동체의 결속을 느슨하게 만드는 부정적 사례를 통해 논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수 있겠다.

한편, 제시문 (나)에서 ‘예 또는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 ‘자기중심적 관점의 극복’, ‘담론에 의한 합의’ 등도 논술문 작성의 실마리를 준다. 이 구정들에 착안하여 개인의 자율성과 상호 관계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말할 권리를 억누르고 자기중심적 관점만 내세우면 합의는 불가능하다. 또한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는 것도 담론 형성을 어렵게 한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왜곡하면 힘에 의한 질서만이 남을 뿐이다.

실제로 하버마스는 올바른 대화의 기준으로, 서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이 참이어야 하고 성실히 지킬 것을 믿을 수 있음과 동시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평등해야 함을 들었다. 제시문의 내용만으로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언어 행위가 민주 사회의 윤리성과 상통함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집단 간에, 그리고 나아가 국가 간에도 이 원칙이 적용될 분야는 많다.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구체적 모습으로는, 소신 있는 소장파 정치인들이 당의 압력에 눌려서 자신의 견해를 당당히 펼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소속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양심적 견해가 쉽게 묻히는 경우는 어떨까. 조직의 비리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당했던 사건들도 종종 쟁점이 되고 있다. 과거 독재 정치 기간에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도 결국은 마찬가지이다. 모두 다 평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개인이 가진 표현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점이 동일하다. 그러다 보니 권력을 가진 쪽에서는 자기만의 입장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며 억지 동의를 얻어낸다.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하면 의사소통 공동체는 먼 이야기임을 강조해 볼 수 있겠다.

제시문 (다)에서는 토론에서 피해야 할 여러 자세들이 거론되고 있다. 거짓말과 화려한 수사는 인간 관계의 신뢰성에 금이 가게 한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고 잘못은 먼저 인정하며, 이기는 것보다 옳음을 추구해야 생산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또한, 권력에 아부하고 옳은 소리를 숨기는 것은 공동체의 자정 능력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황우석 교수 사태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던 당시 거짓 보도를 했던 일부 언론의 태도나, 문제 제기 자체를 봉쇄했던 네티즌들의 자세는 반성해볼 지점이다. 또한, 권력을 감시해야 하고 공론의 장을 제공해야 하는 언론이 독재 정권에 아부했던 모습도 지적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방송 매체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이익 단체의 대변자들이 감정 싸움과 승패에만 집착하는 모습도 흔히 보게 된다. 이런 점을 비판하면서 옳음을 목표로 삼고 바른 말을 사용하는 토론이 공동체를 위하는 일임을 강조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더 설득력 있는 사례를 제시하거나 읽었던 책의 내용을 인용해도 좋다.

종합해 보면, 올해 문제의 출제 의도는 ‘언어가 공동체의 연대성과 윤리성 확보에 미치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잘 풀어내는지 평가하려는 데 있다. 제시문 독해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므로, 숨어 있는 단서들을 찾아내어 우리의 현실 맥락과 연결시킨다면 좋은 글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3. 출제 의도와 배경 생각하기

이 논제는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느냐에 관한 것이다.  17세기 정치가이며 소설가인 서포 김만중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나오면 말이 되고, 말에 가락이 붙으면 노래와 시와 문장들이 된다. 사방의 말이 비록 같지 않으나, 진실로 말 잘하는 사람이 있어 각각 그 말에 따라서 가락을 붙이면 곧 족히 천지(天地)를 움직이며 귀신에도 통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은 오직 중화(中華)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나라 시문(詩文)은 자기의 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을 배우니 설사 아주 비슷하게 한다 할지라도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민간의 나무하는 아이나 물긷는 아낙네가 '이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노래는 비록 천박하다고 하지만, 만약 진실과 거짓을 따진다면 학사 대부(大夫)들의 시(詩)니 부(賦)니 하는 것들과 함께 논할 바가 아니다.”

서포만필의 글을 곰곰이 따져보면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나오면 말이 되고, 나온 말에 가락이 붙으면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과도 통할 수 있듯이, 그 마음이 입 밖으로 나타난 말도 역시 그러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보면, 김만중은 말과 사람의 마음은 같은 것의 안팎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언어학자나 철학자들은 말과 정신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 다양한 주장을 펼쳐놓았다. 슐레겔은 '언어는 인간 정신을 그대로 본떠 놓은 것'이라 하였고, 라이프니츠는 '언어는 인간 정신의 가장 훌륭한 반영'이라 했다. 헤르더도 '우리는 말하는 것을 통해서 사고를 배우는 것이니까, 사고는 언어에서, 언어로써 그리고 언어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헤르더의 사상을 이어 받았다고 생각되는 훔볼트는 "언어의 다름이란 것은 소리나 기호의 다름이 아니라, 세계관 그 자체의 다름이다."라고 하였다. 사피어도 언어가 관념, 감정,. 욕망을 전하는 방법임을 인정하면서, '가장 세련된 생각(사고)이 무의식적인 언어의 기호 표시의 의식적 짝에 지나지 않는 것'임은 이해하기 쉬운 일이라 했다. 희랍 말의 로고스(logos)는 '말'과 '이성'의 두 가지 뜻을 가졌는데, 이것은 희랍 사람들이 이 두 가지 현상(말과 이성)을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본 증거이다.

이처럼 언어는 본질적으로 인간 정신을 반영한 활동이다. 따라서 언어는 그 사회공동체 정신을 반영할 뿐 아니라, 사회적 언어들은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혹은 긍정적,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우리 생활 깊숙하게 그리고 매우 거칠게 몰아닥치면서 신자유주의는 모든 가치를 종속시키고 규율한다.
효율성, 무한 경쟁, 세계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는 그 동안 사회공동체를 강하게 유지해 왔던 모든 문화적 일상들을 한꺼번에 교체할 것을 요구한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당연시 여겨야 한다는 논리와 새만금개발이 합법적이라는 판결은 천성산 터널 공사의 정당성과 궤를 같이한다.
이처럼 한 낱말이 가지는 사회적 파괴력은 모든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풍요로운 삶, 혹은 균열된 삶을 선사한다. 그러나 대부분 풍요로움을 바라볼 뿐 그 뒤곁에 그림자처럼 숨어 있는 어둠의 실체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시장주의자들에 의해 멋지게 포장되어 우리에게 그럴듯한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사회공동체라고 하는 거대한 틀 속에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교묘하게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 우리 삶을 규정하고 일상을 견인해 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논제가 우리 사회와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문제의식을 적용해 볼 수 있다. 2005년을 돌이켜 보면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불법도청 X파일 사건, 청계천 복원, 검·경의 수사권 조정문제, 카트리나 재해, 교황의 선종 등 굵직한 사건들이 언어에 의해 포장되고 재단되면서 사회에 파장을 던졌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광고, 인터넷 채팅, 문자 메시지 등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사회는 언어에 영향을 미치고, 언어 역시 사회에 영향을 준다. 수험생이 언어와 사회를 둘러싼 관계를 깊이 생각하고 정리하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 이번 논술문제의 취지일 것이다.

4. 논점 이해와 요구사항 꼼꼼하게 따져보기

이 논술문제의 전제는 언어가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언어의 역할로서 ‘의사 표현과 전달’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논제는 언어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 규정을 의도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논제에서 요구하는 것은 제시문 (가) (나) (다)의 내용에 근거하라는 것이다. 이는 각 제시문을 정확히 분석, 이해하고 그 방향과 내용에 따르라는 것이다.
또한 논제가 지적하는 주된 논술의 대상은 사회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방식’이다. 사회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시문들 속에서도 발견된다. 지문들에서 제시되는 영향과, 논의를 확장한 결과 나타난 영향들에 대해, 각각에 대응하는 방식들을 생각해 보고 기술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방식이란 추상화된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고, 일련의 사건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영향을 미치는지 상세히 기술해 주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펴야 할 것은 자신의 관점에서 논술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관점이란 어떤 것일까? 이러한 관점에는 우선 언어의 역할에 관한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관점은 언어는 우리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것의 표현이며 반영으로서, 사고가 언어에 앞선다는 태도이다. 두 번째 관점은 언어는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그것을 지배한다는 견해로서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고 보는 태도이다. 영어공용화론과 얽혀 흔히 비교되는 견해이기도 하다.
두 번째 관점에는 사회를 보는 관점이다. 이들 관점에는 사회의 구성요소들이 상호의존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체 사회의 유지와 존속에 필요한 기능을 분담하여 수행한다고 보는 기능론적 관점과, 사회의 제반 구성요소들은 서로 갈등관계에 있으며, 이러한 갈등은 사회변동에 기여한다고 보는 갈등론적 관점이 있다. 이들은 각각 사회체계의 균형과 조화나 사회제도의 개선을 사회문제의 해결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결국, 논제의 요구사항은 ① 지문들의 내용에 근거하여 - 지문들의 논의방향과 내용을 중심으로 ②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지 -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여러 방식을 ③ 자신의 관점 - 언어와 사회에 관한 - 에서 논술하라는 것이다.

5. 제시문 정밀분석하기

해가 거듭될수록 제시문 독해의 중요성은 더해 가고 있다. 따라서 독해를 함에 있어 평소 구조적 독해를 연습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제시문 (가)에서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이고,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지각할 수 있으며,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공동의 인식을 소유함으로써 가정과 국가를 구성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이란,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 차이가 언어에서 비롯된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제시문 (가)는 논제에서 안내된 언어의 의사표현전달도구 이상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언어는 여러 가치판단들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표현하고 이러한 공동인식이 가정과 국가를 구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하만은 "말이 없으면 이성도 없고, 따라서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고, 언어학자 소쉬르는 “심리적으로는, 곧 말로써 표현되지 않고서는, 우리의 생각은 꼴 없고 불분명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기호의 도움 없이는 우리가 두 생각을 똑똑히 그리고 한결같이 구별하지 못하리란 것은 철학자나 언어학자나 다 같이 인정하는 일이다. 그 자체로 본다면, 생각이란 것은 꼭 한정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성운과 같은 것이다. 미리 형성된 관념이라는 건 있을 수 없으며, 언어가 나타나기 전에는 똑똑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프랑스의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은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지 오웰은 『1984년』에서 언어조작이 무의식의 조작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렇게 본다면 언어는 제시문 (가)의 표현처럼 공동의 인식뿐 아니라 공동의 무의식까지 제조한다고 논의를 확장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제시문 (나)에서는 의사소통적 문맥의 구성원이자, 양도할 수 없는 자율성을 지닌 동시에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는 관계망의 구성원인 개인이, ‘이상적인 의사소통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조건들이 제시되고 있다. 담론을 통한 결정절차에는 개인의 권리존중과 자기중심적 관점의 극복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은 사회적 결정에 대한 명백한 자기 의사를 주체적으로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타자의 견해를 능동적,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함을 암시하고 있다. 반면 사회는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규범의 설정이 필요하고 그런 조건들이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만이 ‘이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사회 혹은 국가가 특정한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그 사회구성원들의 견해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절대성과 개인은 상호주관성에 의한 관계망으로서의 개인을 자각하고 그 사회공동체가 추구하려는 이상적인 가치실현에 대해 공동체적 가치를 인정해야 함을 말한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통해 통일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과제를 개인이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와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의 방법과 절차의 문제를 논의선상에 두고 따져볼 수 있다. 또한 황우석 사태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인  “생명의 고유한 가치와 시장의 이윤” 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인가? 에 대한 담론도 이 쟁점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제시문 (나)는 바람직한 의사소통과 이상적인 공동체를 위한 절차적 조건들 즉 방식들을 적시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 이론」에서 이러한 ‘이상적인 의사소통 공동체’를 주장하고 있는데, 상호성에 의한 다양한 소통 방안을 설치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침묵과 독선, 오만과 편견에 대한 경계와 공동체 구성원들이 사회적 담론형성에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참여의 태도가 필요함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시문 (다)에서는 토론을 하는 사람은 의로써 서로 돕고, 도로써 서로 깨우치며, 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따르지 않고 권력자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여 당장의 유리한 말만을 좋아하며 훗날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중벌을 받게 될 뿐 아니라 나라가 어지럽게 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제시문 (다)도 의사소통의 한 종류인 토론에서의 바람직한 방식들을 제시하고 있다.
토론은 논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체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를 찾아내되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선한 의지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권력을 독점하려는 의지에 의해 토론이 좌우되거나 토론의 결과가 권력의지에 예속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상호존중에 의한 합법성과 정당성을 가장한 토론의 형식이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추인하는 결과를 유발하게 된다면 절차적 민주주의의 허점과 모순을 긍정해야 하는 불합리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의제가 토론이라는 형식을 빌려 공론화 되거나 합법화 되는 과정에서 토론의 진정성을 이끌어내지 못 한다면 상호성에 의한 의사소통의 가장 민주적 방식인 토론마저도 실제로는 권력의지의 형식적 절차에 그칠 수도 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제시문 (가)는 언어의 의사표현전달도구 이상의 역할을, 제시문 (나)와 (다)는 언어가 사회공동체에 긍정적이고 올바른 영향을 주기 위한 다양한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6. 얼개 세우기와 논의 전개하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논제뿐 아니라 제시문도 논의 내용을 한정하고 논의의 방향을 제시한다. 만약 제시문에서의 방향제시가 없다면 논의의 폭이 확대되어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우선 제시문들에 나타난 방식과 영향들을 정리한 후 논의를 확장해 보자.

1) 제시문들에 나타난 방식과 영향
제시문 (가)에서 공동의 인식을 소유하게 한다는 의미는 바꿔 말하면 언어가 공동의 인식을 가지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영향은 사회현상들에 대한 가치판단의 형성과 전달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제시문 (나)에 따르면,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타율적이며 자기중심적 관점을 고집한다면 보편적 동의에 도달할 수 없으며 이상적인 공동체를 구성할 수 없다. 제시문 (다)에 따르면, 거짓과 화려한 언사, 유리한 말, 자신만의 주장을 계속하고 이기기만을 바라며 무조건 순종과 훗날을 생각하지 않는 방식은 중벌과 나라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다면 현대사회 및 한국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예들이 있을까? 부정적인 예를 먼저 든다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인터넷 채팅이나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를 통한 현대 사회의 언어 축약 현상이나 어휘의 폐기, 조작, 왜곡 현상, 의사소통의 혼란, 언어사용에 따른 세대 간 단절의 심화 등이 있다.
또한 정치, 광고, 대중문화 - 유행어에서 볼 수 있듯이 언어를 통한 대중조작들이 있다. 이를 테면 이라크 전쟁을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대테러전쟁이라고 언명하여 정치적 의도로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 기업의 광고언어, 여론조작을 목적으로 자유, 인권, 정의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 언어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지위, 역할, 서열 등을 규정하여 평등한 관계형성을 해치는 경우 등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유사사건(예: 각종 이벤트, 기자회견)에 의해 대중조작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긍정적인 예를 든다면, 남녀평등이 강조되면서 성차별적 언어가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언어가 사용되는 경우, 권위주의적인 군사용어가 사라지는 경우 등이 있다.

2) 논의의 확장과 방향
논의를 확장해 본다면 언어가 공동의 의식뿐 아니라 공동의 무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말에서처럼 언어의 조작이 과거의 기억을 없애고 역사의 왜곡에 이른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겠다.
논의의 방향에 대해 언급한다면, 논제와 제시문 (가)에서 언어의 역할 확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비판의식이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글 속에서 사고의 깊이가 묻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고의 깊이는 곧 삶의 깊이에서 우러난다. 청소년기를 보내며 치열하게 삶을 고민한 학생이라면 글의 깊이도 더해질 것이다.

5. 예시 글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첫 대목이다. 잠자와 가족과의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순간, 그는 이미 인간일 수가 없었고 짐승 소리를 내는 벌레가 되었다. 카프카는 인간존재 조건으로 동물 소리를 넘어선 인간의 의사소통을 제시했던 것이다. 의사소통의 대표적인 수단인 언어가 동물들의 소리가 아니기 위해서는 쾌와 고의 느낌을 알리는 것 이상의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인간이 가정을 비롯한 사회의 구성원인 한, 언어 소통의 방식과 그에 따른 사회적 영향은 다양하게 발현된다.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언어를 통한 대중조작은 우리들의 판단능력을 흐리게 하고 맹목적이고 관성적으로 만든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저녁뉴스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보고, 강조되는 자막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시킨다. 작년 우리는 매스 미디어의 말과 말들 사이에서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파문, 불법도청 X파일 사건, 청계천 복원, 검·경의 수사권 조정문제, 카트리나 재해, 교황의 선종 등 굵직한 사건들이 언어에 의해 포장되고 재단되는 현상들을 목격했다. 제시문 (다)의 예처럼 거짓과 화려한 미혹적 언사, 권력에 대한 굴종과 끝없는 자기주장, 이기심과 근시안적 언행이 범람하는 방식을 경험한 것이다. 언어를 통한 대중조작은 전쟁을 미화하기까지 하며, 특정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한 유사사건을 통해 극에 달한다.
문화적으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터넷 채팅이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통한 현대 사회 언어축약 현상이나 어휘의 폐기, 조작, 왜곡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조지 오웰은 『1984년』에서 이러한 현상들이 인간의 사고능력을 축소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생략이 한편으로는 속도 위주의 현대사회를 반영하지만, 과정과 내용의 경시가 삶의 여유와 풍부함과 깊이를 희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세대 간 계층 간 의사소통의 혼란과 단절은 제시문 (다)에서 지향하는 보편적 동의와 이상적인 의사소통공동체의 성취를 어렵게 한다.
제시문 (가)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언어의 역할은 인간들이 특정한 가치판단에 대해 공동의 인식을 가짐으로써 사회를 구성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언어는 인간들의 공동의식뿐 아니라 공동의 무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은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지 오웰은 언어조작이 무의식의 조작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암시했다. 정치 사회 문화적 언어활동이 바람직하지 않게 나타날 때 무의식의 영역, 즉 의문의 여지를 주지 않는 영역, 당연시의 영역, 비주체적인 영역 속에서 맹목적 삶의 연속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언어활동의 변화가 사회에 나쁜 영향으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남녀평등이 강조되면서 성차별적 언어가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언어가 사용되거나, 권위주의적인 군사용어가 사라지기도 한다. 인간의 삶이 언어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언어는 인간의 사고와 삶을 변형시키고 지배하기도 한다. 문제는 언어가 삶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도록 자각하는 일이다. 갈등 해결을 통해 의사표현 자유가 개인의 불가침 자유로 보장되고, 우리 스스로가 상호 조정과 이해를 통해 자기중심적 관점을 극복할 수 있다면, 현실의 부정적 언어역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난관을 극복하며 이상적인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도반글 - 언어가 사회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인류를 다른 동물들과 구별하여 주는 특징의 하나이며, 인류 역사상 모든 인류는 개개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하여왔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가 사회 공동체에 있어서는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기능 이외에도 그 사회 공동체의 연대성과 윤리성 그리고 정화와 발전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크나큰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세 개의 제시문에 잘 드러나 있다.
              
  제시문 (가)에서는 인간만이 언어를 통하여 윤리적 가치를 공동으로 인식함으로써 가정과 국가를 구성할 수 있다며, 언어가 사회 공동체의 연대성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이 동질감을 형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편 것이고, 우리 선조들은, 선조들대로 우리의 언어를 민족정신과 동일하게 여김으로써 그것에 항거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언어에 의해 형성된 동질감이 어떤 사회 공동체의 연대성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제시문 (나)에서는 ‘예 또는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와 자기중심적 관점의 극복에 의한 다른 사람의 말할 권리가 동시에 인정될 때, 담론에 의한 합의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보장된 언어 행위가 사회 공동체의 윤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군사독재 시절을 통하여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고, 권력자들이 자기 입장만을 강요하던 때의 불합리한 사회 현상들을 충분히 경험한 바가 있다. 어느 사회 공동체에서 수평적이고 평등함이 사라졌을 때, 양심적 견해들은 힘을 잃게 되며, 그 공동체에는 비리가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제시문 (다)에서는 토론을 할 때, 따라야 할 사항과 피해야 할 사항들을 이야기하며, 권력에만 순종하고 의로운 말에 귀를 막는 것은 사회 공동체의 발전과 정화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사회 공동체를 위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각 단체나 정당을 대표하는 대변자들이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익만을 위하여 상대방의 의견에는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으며, 이기기 위한 발언에만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며 앞날을 걱정할 때가 종종 있다. 이렇듯 공인된 사람들의 언어 행위와 듣는 자세는 그 사회 공동체의 정화 능력과 발전 가능성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지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각 제시문들을 통하여 우리는 언어가 의사소통의 역할 외에도 사회 공동체의 연대성과 윤리성 그리고 정화와 발전의 역할도 수행함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 공동체에 있어서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언어의 역기능적인 면을 배제하고 순기능적인 면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 공동체의 공용 언어의 장이라 할 수 있는 각종 언론매체가 진정한 공론의 장을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각종 언론매체를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스스로 노력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