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전문기자 칼럼)

                 굵은 허벅지가 좋다 / 홍혜걸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해마다 이맘때쯤 고민인 분들이 많다. 허벅지가 굵은 사람들이다. 요즘처럼 수영복을 입어야 할 때 몸매가 망가져 보인다고 투덜거리기 일쑤다. 그러나 굵은 허벅지를 가진 분들은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우람한 허벅지야말로 의학적으로 큰 축복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의대 학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허갑범 박사는 당뇨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허 박사는 진료실에서 유난히 환자의 허벅지에 관심을 둔다. 허벅지가 빈약한 환자들에겐 당뇨 합병증을 경고하고 훨씬 엄격하고 까다로운 처방을 내린다. 혈당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다. 다소 혈당이 올라가도 허벅지가 굵으면 치료가 잘 되기 때문이다.

허벅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근육에 있다. 허벅지는 인체 근육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근육량이 많은 부위다. 근육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된다. 첫째, 근육은 인체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당분 저장소다. 흔히 간으로 알고 있지만 허벅지를 비롯한 근육은 간보다 2배나 많은 당분을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할 수 있다. 밥을 많이 먹어도 허벅지가 굵으면 근육 속에 모조리 쌓아둘 수 있으므로 혈당이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당뇨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허벅지 근육에 쌓아 놓은 글리코겐은 유사시 포도당으로 방출돼 인체가 큰 힘을 발휘하는 데 요긴하게 사용된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허벅지가 굵을수록 지치지 않고 잘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근육은 인체의 쓰레기 소각장 역할을 한다. 식사를 하고 남은 이른바 잉여열량이 뱃살이나 혈관에 쌓이는 것을 막는다는 뜻이다. 허벅지를 비롯해 근육이 잘 발달한 사람은 동맥경화나 복부비만이 생기지 않는다. 운동을 요란하게 하지 않아도 허벅지 근육 안에서 끊임없이 잉여열량을 태워 없애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의 시작은 적게 먹는 것이지만 다이어트의 완성은 많이 움직인다'란 의학 격언이 있다. 일단 체중계의 눈금을 줄이려면 적게 먹어야 한다. 그러나 많이 움직여서 허벅지를 비롯한 근육을 키우지 않게 되면 반드시 실패한다. 근육량이 부족하면 먹은 음식이 죄다 지방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요요현상이다. 허벅지가 굵은 사람은 혈관도 맑고 깨끗하다. 잉여열량 등 노폐물이 혈관에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혈관이 깨끗하면 뇌졸중과 심장병 등 치명적 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성기능도 강해진다. 혈관은 음경에도 분포하기 때문이다. 허벅지가 굵은 사람은 정력이 세다는 말은 의학적으로 일리 있는 말이다.

  
허벅지는 굵을수록 좋다. 절대적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다만 줄자로 허벅지와 종아리 둘레를 합친 길이가 최소한 자신의 배 둘레보다는 길어야 한다. 그렇다면 허벅지 근육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토끼를 보면 알 수 있다. 토끼는 덩치에 비해 허벅지 근육이 매우 크다. 오르막 운동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허벅지 근육을 키우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기 바란다. 계단 오르기와 더불어 등산까지 즐긴다면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