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그들의 고품격 아파트 (김종휘/문화평론가 2005년10월16일 한겨레 신문)


아파트.
한국 사람의 절반이 산다는 아파트. 층수만 다를 뿐, 남향을 향해 사각형 건물들이 겹겹으로 앞 동 꽁무니를 쳐다보는 단지를 들여다보면 똑같은 대문과 창문이 정확한 간격으로 박혀 있는 아파트. 평수만 다를 뿐, 붕어빵 구조물 안에 들어갔다가 최단 거리의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통해 차를 타고 빠져나가면 사람끼리 마주치지 않는 아파트.

이렇게 획일적인 주거 형태를 가진 아파트끼리 무슨 대단한 문화적 차이가 있는지, 여성 연예인의 이미지를 내걸고 품격을 다투는 노릇이 단연 상종가 화제다.

고현정 아파트, 이영애 아파트, 김남주 아파트, 최지우 아파트, 채시라 아파트, 김현주 아파트, 송혜교 아파트, 장진영 아파트, 김희애 아파트, 신애라 아파트, 김지호 아파트, 한가인 아파트….

그들의 이름은 더 있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러다 한국의 스타 여성 연예인들 동나지 싶다가 문득 궁금해진 것. 그들은 그곳에 살고 있을까. 한 해라도 살아보기는 했을까. 저축하고 융자 껴서 30년 만에 아파트 한 채 장만하거나 전월세 구하려고 다녀본 곳일까. 아닐 게다. 그저 모델료 받고 스튜디오에 가서 광고 촬영한 것이겠지.

더러 장동건과 배용준도 등장하나, 대체로 여성 연예인들이 주도하는 뜨거운 광고 경쟁 덕분에 분양가와 프리미엄 값이 뛰면서 아파트의 가치가 달라진단다. 모델료가 올라가면 브랜드도 올라간단다. 오죽 했으면 광고주가 이들에게 감사패를 줄까. 모델료는 5억원이 보통이고 10억원도 넘겼다는데, 더 올라가면 올라가지 내려갈 것 같지 않단다.

이쯤에서 “빌어먹을” 혹은 “젠장” 하면 당신은 아파트 때문에 서러운 사람이다. “뭐 어때서?”나 “좋기만 하구만” 하면 당신은 아파트 때문에 돈 버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미워하지는 말자’고 이성을 되찾았으나 뒤돌아서자 다리가 휘청거리면, 당신은 그런 고품격 아파트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할 초라한 신세에 빠진 사람이다.

상품 광고의 이치가 같을진대 유독 아파트만 갖고 그 여성들에게 시비 건다고 타박하시는 분은, 무주택자는 물론 그들이 광고하지 않는 아파트 주민들을 전부 무능력자로 낙인찍는 사람이다. ‘그녀가 하는 것은 유행이 된다’는 어느 아파트 광고를 보고 유행을 따라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낙오자를 양산하는 사람이다.

대체 아파트가 뭐길래 이래야 하는지. 대통령이 테이프 커팅을 했다는 최초의 단지형 마포아파트부터 줄잡아 아파트 역사 43년. 고층시대를 연 여의도 시범아파트부터 35년, 투기 바람의 효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부터 27년, 명품을 내세우며 삐죽 솟아올라 주상복합 아파트를 부채질한 타워팰리스 분양부터 고작 6년이다.

언제부턴가 아파트의 일부는 괴물로 악마로 변했다. 다수가 불행할수록 커지는 소수의 포만감은 사람의 안정과 자존과 친화를 으깨버린다. 이런 아파트는 사람을 위하는 집이 아니다. 모델 선 그녀를 미워하는 건, 건설 대기업과 투기꾼을 비판하는 것보다 어리석지만, 나는 그런 아파트 광고에 나오는 그녀들이 싫어진다.

아파트 원가 공개도 8·31 부동산 종합대책도 미지근한 이때, 예쁜 그녀들을 미워할 줄 알았다면 92년 대선 때 아파트 반값 공약한 정주영 후보를 찍을 걸 그랬나 싶은 심란한 마음뿐. 그나저나 기억하자. 아파트 공식 명칭은 공동주택이다. 내가 당장 살지는 않아도 내일이면 살지 모를 공동의 주택이기를 바라는 이름,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