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2001년 기출 문제


※ 논제 : 제시문 (가)와 (나)에 근거하여, '인간과 동물의 지적 능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 논점들을 중심으로 논술하라. (글 길이는 2000자 ±200자)

논점1. 인간과 동물의 지적 능력의 차이는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인가?

논점2. 개인과 개인의 지적·정서적 능력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가) 본능(instinct)은 반사 작용과 같이 선천적이며 특정한 자극에 의해 유발되는 고정된 행동 양식으로 동물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사 작용은 단순한 반면 본능적 행동은 정교하며 순서가 있는 일련의 동작들로 구성되는 복잡성을 지닌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이 본능적 행동의 좋은 예이다. 거미줄은 매우 정교한 행위들이 복잡한 순서로 연결되어 완성된다. 거미는 자기들이 만든 거미줄의 형태를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마다 독특한 형태의 거미줄을 만든다. 본능적 행동은 마치 생체 조직이나 기관의 구조처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본능적 행동은 곤충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나아가 인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생후 2∼3주 된 유아가 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때 처음 짓는 미소는 본능적 행동의 한 예이다.
이와는 달리 학습은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정보를 처리하고 습득하여, 행동을 변화시키거나 발전시키는 현상이다. 따라서 학습은 인간과 동물이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된다. 본능과 유사하게 보이지만 이와 구별되는 원시적인 학습 형태로서 각인(刻印, imprinting)이 있다. 갓 부화된 새끼거위는 적당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적당한 크기의 물체를 접하게 되면, 그 물체를 따라다니기 시작하는 행동, 즉 각인된 행동을 보인다. 각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극에 노출되는 시기가 매우 중요한데, 이를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고 한다. 예컨대, 거위의 경우 결정적 시기는 부화된 후 대략 하루 정도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각인은 일어나지 않는다. 결정적 시기에 어미거위 대신 거위 소리를 흉내내는 사람을 어미로 각인한 새끼거위들은 평생 그 사람을 어미로 알고 따라다니게 된다. 만약 비행기 조종사가 기러기에게 어미로 각인되면, 그 기러기는 조종사가 비행하는 대로 같이 날아갈 것이다.
영장류가 특정한 행동 양식을 습득하는 데에도 결정적 시기가 있다. 갓 태어난 원숭이의 한쪽 눈을 6개월 동안 가린 후 그 눈을 풀어준 실험이 있었다. 그 결과 가렸던  눈의 시력은 발달하지 않았으며 자연히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도 갖지 못하였다. 생후 6개월간은 원숭이가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는 데에 중요한 시기이다.
단순한 감각 자극이 아닌 복잡한 정보를 학습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는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사람의 경우 언어적·음악적·수학적 능력은 사춘기 이전에 잘 발달한다. 사회적 행위 능력과 정서의 발달에도 결정적 시기가 있다. 1960년대에 수행된 생후 6개월 된 원숭이를 6개월간 격리시켜 키운 실험의 결과, 그 원숭이는 신체적으로는 건강했지만 우리 구석에 웅크려 앉아 있는 등 자폐 증상과 유사한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렇게 자란 원숭이는 정상적인 다른 원숭이들과 함께 놀거나 싸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한편, 같은 기간 동안 나이 든 원숭이를 격리시킨 실험에서는 원숭이의 행동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학습의 또 한 형태로 고전적 조건형성(classical conditioning)이 있는데, 이는 서로 상관이 없던 두 개의 자극이 연합되는 현상으로 러시아의 생리학자인 파블로프가 처음 연구하였다. 개에게 음식을 보여주었더니 사람도 그렇듯이 침을 흘렸다. 그는 매번 음식을 주기 바로 직전에 종을 울렸다. 이런 일을 수십 차례 반복한 뒤에는, 음식 없이 종소리만 들려주어도 개는 침을 흘리게 되었다. 서로 관련이 없던 종소리 자극과 음식 자극이 연합되어, 종소리는 음식을 예고하는 자극으로 학습된 것이다. 종을 울리고도 음식을 주지 않는 경우가 되풀이되자 개는 더 이상 침을 흘리지 않았다. 종소리와  음식 자극 간의 연합이 제거된 것이다. 파블로프는 이를 소멸이라 불렀다.
고전적 조건형성과 같은 연합 학습의 또 다른 형태로 도구적 조건형성(instrumental conditioning), 즉 시행착오적 학습이 있다. 예를 들어 스위치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게 되어 있는 상자 안에 실험용 쥐를 갖다 놓는다. 쥐는 우연히 스위치를 누르게 되고 곧 먹이를 발견하게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상자 안의 쥐는 먹이를 구하는 손쉬운 방법을 습득하게 된다. 스위치를 누르는 행동 반응과 먹이라는 자극이 연합된 결과이다. 이러한 조건형성 실험을 응용하면, 실험자는 동물에게 어려운 동작을 훈련시킬 수도 있고 동물의 지각 능력을 연구할 수도 있다.
한 차원 높은 학습 형태로 똑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지만, 유사한 과거의 경험을 활용하여 새로이 제시된 문제를  해결하는 통찰 학습(insight learning)이 있다. 통찰 학습은 특히 영장류에게서 발견되는 학습 형태로서 이에는 고차원적인 두뇌 기능이 요구된다. 침팬지에 대한 한 실험에서 연구자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천장에 바나나 한 다발을 걸어  놓고 마루에는 막대기를 갖다 놓았다. 연구자는 침팬지가  막대기로 바나나를 떨어뜨려 먹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침팬지는 막대기를 바닥에 세워 균형을 잡은 후 재빨리 타고 올라가 바나나를 손에 넣고는 흠 나지 않은 바나나를 보란 듯이 먹었다.
그렇다면 학습된 정보는 어떻게 기억되는 것일까? 학습으로 인해 신경계의 구조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가? 원숭이의 한쪽 눈을 가리는 실험의 결과, 결정적 시기에 학습이 결여됨으로써 가렸던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해야 할 대뇌의 시각 중추(시각령)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결정적 시기에 이루어진 특정한 학습이 신경계의 특정한 영역을 발달시켜, 신경계에 새로운 기능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장 후에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학습도 반복적이거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때 학습된 정보는 장기적 기억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도 학습으로 인해 신경계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억에는 신경계의 구조적 변화가 관여되어 있는 것이다.

(나)
인간과 동물은 두 가지 주요한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한다. 하나는 생물학적인 진화이며, 다른 하나는 학습이다. 고등 생명체의 경우, 생물학적인 진화는 수천 년 이상 걸리는 매우 느린 현상인 반면, 학습은 짧은 생애 안에서도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는 과정인 학습과 획득된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은 적절히 진화된 대부분의 동물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신경계가 복잡할수록 학습 능력은 뛰어나며, 인간은 가장 복잡한 신경계와 우수한 학습 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의 이러한 능력 때문에 문화적 진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서 문화적 진화라 함은 세대와 세대를 거쳐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과 지식이 발전적으로 전수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실 우리는 세계와 문명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을 학습을 통해 습득한다. 인간 사회의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보다는 거의 전적으로 문화적 진화에 의한 것이다. 화석 기록으로 볼 때 수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이래로 뇌의 용적과 구조는 결정적이라 할만큼 변화하지는 않았다.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모든 인류의 업적은 문화적 진화의 소산인 것이다.
학습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철학의 쟁점과도 관련되어 있다. 고대의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 정신의 본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져왔다. 17세기 말에 이르러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제기되었다.  하나는 로크, 버클리, 흄과 같은 경험론자들의 견해로서, 정신에 타고난 관념 또는 선험적 지식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모든 지식은 감각적 경험과 학습을 통해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등의 합리론자와 칸트의 견해로서, 정신은 본래 특정한 유형의 지식이나 선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감각 경험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인식의 틀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