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가 시작되면 온갖 계획을 세우며 올 해 만큼은 좀 더 의미있는 삶을 실천해 보리라 다짐하였지요. 그런데 이렇게 훌쩍 십이월을 맞이하고 보니 한 해를 돌아보기가 약간 겁이 나기도 하고 내가 제대로 열심히 살아왔던가 하고 고개를 가웃거리게 됩니다.

지난 해만 했어도 십이월은 하루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르게 보냈었는데 이번에는 나름대로 한가하면서도 여유로운 시간을 온전하게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유가 오히려 더 생경하기만 하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목표점을 잃은 사람처럼 가끔씩 허둥대기도 합니다.

아마,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면서도 하루 일상을 스치듯 보냈던 습관들이 나를 얽어매고 있어서 좀 더 다른 일상에 대해 낯설음을 견디지 못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3 도반들은  지금 다들 무얼하면서 보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마음 한 켠에서는 아련한 그리움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마지막 남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느긋하게 이런저런 기대도 해 봅니다.

요즘은 봄 날씨처럼 포근하고 바람결도 부드러워서 계절을 의식하지 못 한체 살아갑니다.
어제는 네 살된 딸아이랑 동네 한바퀴 돌면서 십이월의 밤을 느껴보았습니다. 약간 쌀쌀한 듯하면서도 여린 입김만 돋아나는 이런 날들은 일상에 대한 첨예한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것 같습니다.

고1, 2 도반들은 지금 기말고사를 치루느라, 혹은 준비하느라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겠지요. 한 학년으로 진급하기 전에 한 해 내 삶을 한 편의 시험으로 마무리 하는 현실이 참 우습고 인생이 이렇게 가벼운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연례행사가 꼭 중요한 일상으로 콱 들어앉아서 우리를 옭죄고 있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시험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하루하루 내 시간을 가지고 푸른 겨울 하늘을 보면서 가슴벅찬 삶을 계획해 보시길 기대합니다.
가끔씩 흐린 하늘로 인해 푸르름이 감춰지기도 하지만 하늘은 한결같이 푸른 빛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날이 좀 더 추워지면 신나는 겨울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한 강을 달려볼 계획입니다. 볼을 스치는 칼바람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나를 정결케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