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들 중간고사 준비 관계로 저는 지금 한가로이 늦 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사를 했는데 제가 사는 아파트 이층으로 가득 안겨오는 풍경은 그저

봄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목련이 활짝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가 싶더니 어느 새 벚꽃 천지였고

매화며 라일락이 앞다퉈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봄 꽃 잔치를 온전하게 느껴보는 일도 참 오랫만이어서

그저 황홀하고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할 뿐입니다.


논술 수업을 잠시 쉬고 있지만 늘 하던 해오름 일은 여전히 넘치고

그래도 밤 시간은 한결 여유가 있어서 네살박이 막내딸이랑 뒹굴기도 하고

아내랑 밤 늦은 산책을 나가기도 합니다.

한동안 사 두기만 하고 읽지 못 했던 책을 쌓아놓고 한 권씩 뒤적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것도 참 즐겁습니다.



참, 온 나라를 흔들어댔던 사일오 총선이 끝났습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원내 입성에 성공한 것을 두고

다들 난리입니다.

이미 이천이년에 브라질에서는 노조운동가 출신인 룰라 선수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늙고 병든 브라질에 새로운 기운을 힘있게 불어넣어 전세계가 주목하는 신흥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부러워만 한 적이 있지요.

민주주의 종주국이라 일컬어지는 영국도 분배와 사회적 약자를 중시하는 정책을

함부로 일삼는 노동당이 '제3의 길'을 주창하며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굳세게

펴 내고 있는데도 그 나라에서는 노동당을 불온시 한다거나 빨갱이로 몰아가는

언론이나 집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 어이없게도 우리 나라는

전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냉전이데올로기 강력 유지 국가로서

아직도 노동운동이나 사회시민운동을 죄악시 한다거나 빨갱이로 보는 사시들이

들끓고 있고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민노당 원내 진출은 정말

사시들이 보기엔 환장할 노릇이겠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도 자주독립국가로서, 그리고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다질 수 있는 때가 온 것 같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요.

그 작은 씨앗이 무성하게 잎을 피우고 열매을 맺으려면 아직 수 많은 날들이

더 필요하겠지만요.


지금 봄 비가 조용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늦은 밤 시간 빗소리는 마치 밝고 명랑한 풍경소리처럼 들려옵니다.

이 비가 내리고나면 마른 대지에 갈증으로 목말라했던 많은 생명들이

한결 기운을 차리고 고운 잎들을 만들어 내겠지요.

연두빛 고운 새싹들이 딱딱한 껍질을 뚫고 새로운 새날을 맞이하는 광경은

빛나는 생명의 축제입니다.


모두들 시험 준비하느라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생명을 움트게 하는 봄 비를 보며 힘내십시오.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던 나무 등걸에 새 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우리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새 날을 맞이하기 위한 힘찬 박동이

쿵쿵 거리며 마구 뛰어오고 있는 것을 맘껏 느껴보시길 바라며.


도반들에게도 생명기운 가득한 봄 비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