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이 해골처럼 누워있습니다.
대학 때 그 이가 쓴 시를 보며 시대의 아픔을 느꼈고
그 이가 쓴 소설을 읽으며 삶의 진정성을 생각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구로공단 오거리에서
공단 노동자들의 지친 발길을 잠시 머물게 했던 밥집을 운영하며
돈 버는 재미에 몰입했던 그 이가
글쓰기를 멈춘 지 십년이 되었을 즈음,
돌연 그 이는 다시 글쓰기를 하겠다며
집을 나왔습니다.

다시 십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이는 깊은 병을 얻어 해골처럼 병상에 누워있습니다.
퀭한 눈, 앙상하게 솟아나온 광대 뼈,
척추 마디마디가 손에 선명하게 잡혀오는 깡마른 등골,
바람에 날려 갈 것 같은 가벼운 몸이 되었습니다.

눈빛은 더 초롱초롱 빛이나고
음성은 한없이 잔잔해 졌습니다.
다 큰 아들과 딸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없이 처연하고 깊어졌습니다.
아내와 나누는 말은 따사롭기 그지없고

오랫만에 찾아 든 벗을 반기는 메마른 손은
아직 조금의 온기가 붙어 있었습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 암치료센터에서
하염없이 텅빈 천장을 올려다보는 몸은
이제 새처럼 비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사백여만원이 들어가는 항암치료제가 감당하기 어려워
일백만원짜리  싸구려 약으로 한 시간 한시간을 버텨 가는 중입니다.

벗을 내려다보며
벗의 빛나는 눈빛을 보며
내 가슴은 무너집니다.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절망과 함께
얼마나 긴 시간을 더 함께 나눌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기나긴 이별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웠던 청년의 때를 이야기 합니다.
길거리에서
어두운 밥집 한 켠에서
소리 낮춰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고
김수영과 신동엽의 정신을 부둥켜 안으려
김남주의 힘을 이어받으려 애썼던 고귀한 시간을
끼니를 걸러가며 토론했던 그 시절의 진정성을
돌이켜 봅니다.

입시를 앞 둔 고3 아들과
이제 중3이 되어 온갖 멋부리기에 여념이 없는 귀여운 딸은
아비의 눈빛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이별을 준비하는 아비의 가슴을 눈여겨 봅니다.

지금, 벗이 누리는 아픔은
내 늑막 깊숙이 큰 파동으로 다가옵니다.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지만
이렇게 이른 나이에 고통에 몸을 맡기고 무기력한 몸이 되어 버린
벗의 아픔은
나에게 비수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눈물보다는 분노가, 분노보다는 슬픔이
내 앞을 가립니다.

오늘 해가 질 무렵 벗의 병상을 찾아갑니다.
병상에서 해맑게 나를 맞이할 그 이의 웃음이 그리워집니다.
나는 그 이에게 무엇을 줄 수 없어서
이제 그 좋아하던 쐬주 한 잔도 나눌 수 없고
그렇게 맛나게 먹던 순대국밥도 함께 먹을 수 없어서
그 이의 맛깔나는 시도
가슴을 파고들던 소설도
이젠 나눌 수 없어서
오랫 동안 벗의 손을 잡고 몸을 어루만지고
껴안고 싶습니다.

나는 정말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예고된 이별이 이렇게 가슴 저미며 다가 올 줄은
벗의 부재가 몰고 올 상실감이
이렇게 아픔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벗이 누리는 아픔에
고요한 슬픔만이 함께 할 뿐인 것을.